|
아래 많은 리뷰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탈자가 매우 많을 뿐더러 일본어투인 고유명사의 처리를 볼때 일본판을 중역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이 원판을 구하기 어려운 70년대도 아니고, 영어전문번역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런 선택을 한 출판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물론 일본판을 중역하더라도 잘된 번역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번역은 최소한의 외래어 표기법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는 등 내용에의 몰입을 상당히 방해하는 수준이다.
작가의 명성만을 믿고 섣불리 이 책을 구매할 독자들이 없도록 짧게 적어보았다. |
|
|||||
|
딘 쿤츠의 소설들은 몇 년전 재미있게 읽었었다. 게다가 제목이 '살인의 기술'이라지 않는가.
신, 천사, 악마, 퇴마 등등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닌(즉, 퇴마록의 세계가 아닌) 평범한 세상에 나타난
주요 인물인 주인공 몇 명만 크게 부각이 되며 그 주변은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이 소설 같은 경우, 이렇게 큰 사건들이 펑펑 터졌는데 주인공 몇명을 제외하고 다른 인물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대충 훑고 지나가는 수준이다. 사람들의 심리라든가 행동에 대한 묘사도 살짝 모자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쿤츠의 소설은 어딘지 영화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 있다.
딱딱하고 끊어지는 번역이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설령 이것은 작가 탓이다라고 우긴다 해도, 대화 중간에 반말과 존댓말이 뒤섞이고 있다. 게다가 단어들. '리볼바'는 어디서 새로 나온 총인가? '숏건'은 뭐며 '머싱건'은 대체 뭘까?
부디 이 책을 사려는 분들은 재삼재사 생각하시길 바란다.
|
|
예기치 못한 죽음의 연쇄적인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이 긴박하게 진행된다. 온 세상의 황혼이 도래 되었다고 믿는 황혼교단의 교모 그레이스는 꿰뚫어 보고 듣은 바에 따라, 어느날 불쑥 나타나 크리스틴과 그의 아들 조이에게 무서운 경고를 한다. 조이가 악마라고 지목하면서 세상을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고.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무시하기도 전에, 그녀를 마녀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믿을 수 없는 잔인한 공포의 그림자는 그들 모자가 있는 곳 어디든 존재한다. 어떻게든 그들을 피하려는 크리스틴은 탐정 사무실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찰리는 투철함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해쓰지만 상대의 맹목적인 공격앞에 손 쓸 틈도 없이 문제가 꼬여만 가는데....., 이미 드러나 있는 존재에 대해 경계심을 제대로 품을 겨를도 없이, 긴박하게 내몰아 대는 빠른 상황 전개는 흥미진진함과 모두의 촉각을 곤두 세우게 만든다. 과학적인 것에 더 많은 신뢰를 하는 우리들은 한편으로는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 때문에 다양하게 생겨나는 신흥종교들에 몰입하게 된다. 정상적인 것이 아닌것 같다는 구분이 되는 것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이들이 심취하게 되는 것일까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확고한 틀과 기준이 있는 사회에서 급박하게 살아가다보면 그외의 소외되고 고립되는 일면을 교묘하게 합법화하는 것이 그러한 종교들의 특성이라 생각되는데.......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문제가 생겨나고 그것으로 인한 멸망, 파괴등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치유하기 보다는 더욱 강조, 조장하는 믿음을 과연 어떻게 수용해야 할 지 난감하고, 알 수 없는 절대명제하에 희생양처럼 그러할 수 있을지도....... 그래서인가 오히려 황혼교단측 이들의 존재가 더 위험한 듯 한데, 그들은 악마라고 지목하는 조이만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마다않는 헌신을 한다. 쫓고 쫓기는 시간이 흘러 막다른 최악의 상황이 되고 조이를 대면했을때 우연인지, 운명인지 신의 철지팡이 노릇을 하고자 했던 카일의 심리적 혼란과 충격으로 인한 포기와 이상하게도 때 맞춰 나타난 박쥐떼의 공격으로 인해 그레이스는 ....... 그래서인가 그동안 몇 번의 불안했던 조이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더해만 간다. 6살의 순진하고 귀여운 행운아 조이가 때로는 그답지 않은 반응과 행동을 할 때는 그럴리 없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고 증폭되어만 가는데....... 전체적으로 자신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 그에 대한 불안함과 맞물려 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모성애는 용감하게 그려지고 있다. 자신감을 찾은 일상으로 돌아가 그들이 어떻지 궁금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것은 궁극적인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조이가 알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이면 어떨까 해서, 어디에 촛점을 맞춰야 할지 생각의 대립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아마도 읽는 이들마다 되풀이 할 문제처럼 느껴지는데...... 우리가 우리들의 운명을 알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문제가 없을 수 있는 것인지, 맹목적인 부정적 개념들이 전반적으로 퍼져 간다면 어마어마한 혼란과 슬픔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클 것 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올바른 성찰과 기준으로 삶을 주도해 가야 하는 이유 또한 되새겨 본다. |
|
얼마 전 참으로 오랜만에 딘 R. 쿤츠의 신작을 읽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능력의 힘겨움과 함께 여러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노력을 참 대견하고 안쓰럽게 읽어나간 시간이었다. 대학 다니던 시절 개가열람실에서 자주 만나던 딘 R. 쿤츠의 이름은 듣기만 해도 반가워서, <살인의 기술> (2008, 딘 쿤츠 지음, 세시 펴냄)도 기분좋게 펴들 수 있었다.
2월답지 않게 따뜻한 일요일 오후, 엄마와 아들은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가려는 참이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만난, 온통 녹색으로 치장한 할머니가 아이를 보더니 정체를 밝히라고 소리치면서 이 괴물을 살려둘 수 없다고 협박한다. 바로 그날 밤, 아이 방에서 함께 자며 아이를 지키던 개가 머리가 잘린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협박 전화까지 걸려온다. 엄마와 아들은 사설탐정회사에 보디가드를 의뢰하고, 그날부터 파상 공격에 들어오는 상대방을 피해 끝없이 막막하고 절박한 도피를 택한다. 이들이 주차장에서 만났던 할머니는 황혼설을 주창한 교주로서, 지구의 천년을 지배할 악마가 그 소년의 몸에 깃들어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에게 그 악마를 잡아 없앨 것을 지시한다. 하늘로부터의 은혜를 받고 신의 말을 전달하는 사도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이 여인, 그레이스 스피비는 뚜렷한 교의나 성스러운 분위기 대신 영적인 교류 이후에는 잔뜩 겁먹은 모습과 기억 감퇴에 시달리는 등 뭔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우스코스터에서 라그너비치로, 벤츄라에서 산타바바라로 계속 몸을 피하던 이들은 결국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사크라멘트의 산 위에서 마주치고, 생사를 건 대결을 시작한다.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대결은 치열하고 절망적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주인공은 선의 편에 서는 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설정이 약간 특이하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검은 머리의 파란 눈, 웃는 얼굴이 귀여운 잘생긴 6살 소년은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신부이자 순교자인 오빠를 이어 수녀원에 들어갔으나 2년 만에 서원을 파기하고, 선박 여행에서 만난 남자와의 정사로 미혼모가 된 엄마와 잘 생긴 탐정은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게다가 골든 리트리버 종의 애완견까지. 반면 신의 뜻을 전하는 선한 편이라는 그레이스 스피비는 추한 몰골에 광기로 번득이는 눈동자, 영계의 색깔에 따라 복색을 맞추는 등 영매 또는 무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신도들의 죽음을 오히려 천국으로의 티켓처럼 여기도록 고무한다. 이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과 악의 이미지를 바꿔 놓은 것을 제외하면 이야기의 진행은 그리 별스럽지 않다. 가끔 공포나 액션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들, 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말을 많이 하면서 미적거리다가 다 잡은 먹이를 놓치고 마는 식상함을 딘 R. 쿤츠의 책에서 만나게 된 것이 참 의아했다는 말을 하면 너무 스포일러가 될까. 거기에다 수없이 많은 오탈자와 경어체와 평어체의 혼용, 띄어쓰기 오류 등은 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으니 '스릴러 작가의 교과서'라는 표지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아쉬웠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숨가쁘게 넘기면서 하루 만에 읽었지만, 내가 과연 딘 R. 쿤츠의 작품을 읽은 것인가 반문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
|
"이 이야기는 캄캄하고 태풍이 휘몰아치는 밤이 아닌, 따스한 햇살 속에서 시작되었다. p.13"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흔히 공포, 스릴러 영화의 첫장면이 천둥과 번개가 동반된 야심한 밤인데 비해 사건의 시작은 의외로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였던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틴 스카베로는 여섯살 된 아들 조이와 함께 쇼핑센터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이 때 주차장에서 낯선 노파가 불쑥 나타나서는 조이에게 말을 걸더니 급기야 두 사람을 위협한다. 서둘로 집으로 돌아온 크리스틴은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달래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 괴물을 살려둘 수 없어!" 정신나간 노파의 헛소리라고 무시하기엔 연이어 벌어진 사건들이 너무나 엽기적이다. 크리스틴은 조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설탐정 찰리 해리슨을 고용하고, 마침내 노파의 정체를 밝혀낸다. 뜸을 들이는 것이 생략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첫장을 펼치는 순간 부터 긴장감에 휩싸이게 만들더니 위험의 실체도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안다고 해서 결코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모자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노파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노파는 그레이스 스피비라는 광신도 집단의 교주로 스스로를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주장한다. 교주인 그레이스는 계시를 통해 사악한 영혼을 가려내고, 신도들은 지목된 인간을 처단하는 식인데 한번 빠져들면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할만큼 조직적이고, 치밀한 집단이다. 그레이스의 오른팔쯤 되는 카일이라는 인물은 '다빈치 코드'의 사일러스와 흡사한 인물이다. 가끔씩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고통받거나 회의가 들때마다 믿음이 부족함을 탓하며 마음을 다지곤 한다. '신을 위해서...' 라는 변명으로 죄책감을 떨쳐내지만 그들의 치명적 오류는 자신들 속에 존재하는 사악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한 미친 사람이 자기가 본 환각을 믿기 쉬운 사람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눈 깜짝할 사이에 히스테리컬해진 군중이 출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량한 의로 하에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의심을 받으면 자기 정당화라는 갑옷을 걸친다. p.466"
기대이상으로 대견스런 조이의 모습이 오히려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공포,호러물에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순수함'과 '사악함'이 대비를 이룬다든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효과적인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내 자신이 엄마되기 전과 엄마가 된 후 느끼는 정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 아줌마여서 용감하다고 비꼬지 마시라~ 엄마이기 때문에 용감하고, 엄마이기 때문에 못할 것도 없다. 한숨 돌렸다 싶으면 다시 원점이다. 어디에 숨든 무엇을 하든 그레이스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종일관 쫓고 쫓기는 상황의 반복이다.
<살인의 기술> 추리소설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공포, 스릴러에 가깝다. 섬세한 묘사 위주라기보다 대화체가 많은 상황위주라서 그런지 470여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는 특징이 있다. 'The Servants of Twilight' 라는 원제가 어쩌다가 '살인의 기술'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물론 '황혼의 노예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 ^^;;) 딘 쿤츠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인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이 작품이 1984년 작품이라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그제서야 추리소설의 교본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는... ^^ |
|
'The Servants of Twilight'는 1984년 발표되었고,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동일 출판사에서 '불특정 집단살인 1 황혼교단의 살인지령, 2 살인게임'으로 분권화 출판되었던 1999년이다. 이번 출판되면서 제목을 '살인의 기술'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제목이 내용과 너무나 상반된다고 생각된다. 내용을 참조할 때 차라리 원제를 그대로 살려서 황혼(혹은 여명)의 추종자들이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처음에 번역판 제목만 보고는 '살인의 해석'과 같은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엄격했던 어머니의 억압적 성장배경과 20살의 어린 나이에 수녀수련을 받았던 폐쇄적 삶으로 위축된 정신세계를 가진 크리스틴. 그녀가 한때의 열정(실수?)으로 가졌지만 삶의 기쁨이 되어준 조이. 영웅적 삶을 동경하는 사명감에 심취된 탐정 해리슨. 마치 '오멘'을 연상시키듯, 이 세 사람이 6살 어린 아이에 몸에 악마가 깃들였다 생각하여 종말을 막으려는 자칭 계시를 받았다는 괴노파 그레이스와 '황혼 교단'의 추격을 받는 내용이라 하겠다. 사이비 종교단체를 연상시키는 황혼 교단과 교모라기보다는 교주(마녀) 같은 그레이스, 광신도들. 믿음이 아닌 맹신이 주는 공포가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책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터운 만큼 얼마나 지속적으로 긴장감과 호흡을 유지하느냐가 이 작품의 관건이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딘 쿤츠 스타일이라고 할까. 약간의 반전과 적당한 로맨스, 빠른 전개와 흡입력,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딘 쿤츠의 반전은 화들짝 놀라게 하는 예상 밖의 것이 아니라 두고 두고 여운을 남기며 의심토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조이가 악마일까 아니면 그레이스의 망상이었을까 끊임없이 되새기며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 딱히 결론을 내리지 않은 열린 결말적 느낌에 혹시 연결작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20세기 범죄추리작가사전’은 『살인의 기술』을 "만약 당신이 스릴러 작가가 되길 바란다면 이것이 바로 그 교과서이다(if you want to a thriller's your textbook)"라고 평했다.
딘 쿤츠는 국내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물에서 스티븐 킹만큼 높은 지지도를 얻고 있고 꽤 많은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알려져 있다. 대부분 '사이코', '와처스'를 기억할 것이다. 흔히 딘 쿤츠는 작품의 성향과 대중성 면에서 스티븐 킹과 비교되곤 하는데 "스티븐 킹이 롤링스톤즈라면 딘 쿤츠는 비틀즈다(플레이보이誌)"라고 말할 정도로 인지도와 대중성에서는 오히려 스티븐 킹을 앞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스티븐 킹이 직관적이고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중심이라면, 쿤츠는 부단한 자료조사와 연구를 통해 현실적인 공포를 초현실화시킨 잘 짜인 플롯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그만의 특징이 있는데, 딘 쿤츠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와처스'의 외부세계와 차단된 삶을 선택한 트라비스와 노라, '살인예언자'의 유약한 요리사 청년 오드, '남편'의 평범한 소시민인 밋치. 그리고 불운하거나 애정결핍의 유년 시절을 경험한 어찌 보면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들이다. 아마도 딘 쿤츠 자신의 불행한 어린 시절이 투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약간은 병적일 만큼 심리적으로 소외되어있는 인물이 매력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여러 편의 딘 쿤츠 소설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의 소설은 호러소설 혹은 스릴러 소설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SF로 데뷔한 이래로 발표한 작품마다 호러와 로맨스, 미스테리, 서스펜스, 판타지의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6년 국내 발간 된 '남편'이라는 작품을 보면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주어진 60시간 동안 납치된 아내를 구하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물임에도, 부부와 사랑에 대해 묻는 것 같은 내용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달까.
여름마다 서점가를 점령하는 호러,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들. 매해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딘 쿤츠의 작품. 발표된 시기만 봐도 세대차가 꽤 벌어짐에도 그만의 스릴러 세계에 매료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이 책의 선전 문구인 "만약 당신이 스릴러 작가가 되길 바란다면 이것이 바로 그 교과서이다(if you want to a thriller's your textbook)"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릴러 작가가 되고 싶다면 스티븐 킹은 물론이요 딘 쿤츠의 작품도 읽어봐야 할 것이다.
|
|
'딘 쿤츠.'
내겐 너무나도 낯선 작가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살인의 기술' 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작가 미국의 대표적인 스릴러 작가라고 하니 유명하지 않을수 없겠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의 남다른 '스릴러'를 느껴보았기에
그의 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책 다음으로 바로 접해 보면 어떨까 하는생각도 잠시 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 미혼모인 크리스틴과 그녀의 아들 조이.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괴노파와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혼교단의 그레이스.
그녀는 천년동안 악마가 지배하는 세계가 도래함을 예견하고 그 악마가 다름 아닌
여섯 살의 어린아이 '조이' 라고 말하며, 그를 처단 하려고 점점 포위망을 좁히면
서 숨통을 조인다.
이에 크리스틴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탐정인 '해리슨' 을 고용하면서 그의 손길
을 벗어나려고 한다. "
이 작품 참 스릴만점이다.
거의 500 페이지에 이르는 책 이지만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손이 간다.
시작하는 시점에서 부터 끝나는 마지막 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전개들..
다음 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악마(조이) 를 죽이려는 '그레이스' 의 손아귀를 벗어났겠지 하는 편안함(?)을
생각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그들의 추격이 바짝 쫓아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이번엔 어떻게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어찌 보면
'살인의 기술' 은 우리 사람들이 지녔을 '살인' 에 대한 단편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남의 목숨을 빼았아 버려도 괜찮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믿고 있는 믿음으로 다른 누군가의 삶을 빼앗아 버리고 목숨을
빼았는다면정말 그것이 믿음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
'그레이스' 그녀를 생각하면 참 잔인한 마녀(?) 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
다른 한편으로 생각을 하다보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는 생각도
들어버린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이지만'부스박사' 라는 정신과 의사를 통해 그녀의
심성을 엿들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 하지 않는다.
'그레이스' 는 왜 '조이'를 악마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조이' 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일까 아니면 '그레이스' 말 마따나
아직 자기자신을 알지 못하는 '악마' 일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쫓아야 하는지. 왜 쫓겨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판단하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선인지. 누가 악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낯선 스릴러를 느껴보았다.
그다지 '스릴러'를 잘 읽지 않는 나에겐 정말 스릴 만점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
|
딘 쿤츠, 국내에서 아주 인지도 있는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릴러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와처스], [사이코] 등을 통해서 이미 그 이름을 어느 정도 들어봤을 것이고, 그 이름만으로도 이 소설은 어느 정도 보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가 딱히 분위기가 없거나 뜬금없는 제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게 출판된 국내 책 제목과-아무리 원제가 한글 제목 위에 크게 써있다고 하더라도 - 뜬금없는 여자 시체가 크게 그려진 책 표지를 보면 웬지 얼마 전 나름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스릴러 소설인 [살인의 해석]을 떠올리게 한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고, 이는 무언가 원 작가를 무시하는 행태같아서 그닥 기분이 좋아지지 않게 한다.
그런 번역 문제는, 소설 내에서도 간간히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계속 등장하는 '오렌지군'이 지명인 것 같은데 어디인가 한참을 고민해야 했고('오렌지카운티'이다.) 그 외에도 무언가 탁탁 튀는 단어들과 눈에 거슬릴 정도의 오타들이 소설로의 몰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번역자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번역자가 일본어 전공이고 일본문학쪽을 주로 번역했던데 갑자기 왜 영문소설을 번역했는지 잘 알 수 없다)
소설 자체는 적당히 재미있다. 정말로 스릴러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 하다. 전형적이며 통속적인 스릴러 소설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가 모두 녹아있다. 빠른 전개, 시점의 수시 전환을 통한 긴장감의 극대화, 미남 미녀 주인공과 그 둘 간의 적당한 로맨스, 적당한 권선징악과 그러면서도 아주 깔끔하지만은 않은 해피엔딩까지. 거기다 이런 요소들을 매우 자연스럽고 짜임새있게 녹아내었다는 것이 이 소설 최대의 미덕이다. 덕분에 무언가 상투적이고, 조금은 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책이 참 두꺼운데, 읽다보면 그다지 책이 두껍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말부분의 '과다한 우연'이 좀 불편했으나, 이는 '깔끔하지 않은' 엔딩을 위해서는 더욱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조금은 단편적인 심리묘사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사이비종교와 광신도의 묘사는 참 훌륭해서, 책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나치게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건이 일어나지 싶지만(예를 들어, 똑같이 총을 맞아도 상대방은 한 번에 죽으나 주인공은 어깨만 스친다던가..똑같은 일반인들임에도!) 워낙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빠른 덕에 그런 쪽에 많이 신경을 안 쓰고 얼른 눈을 돌릴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재미'를 기대하고 읽는 책인지라, '재미'가 충분하니 사실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제목 및 내용의 번역에 좀 더 신경을 잘 써주었다면, 책의 가치가 훨씬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는 순간 뇌리에 맴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