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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영문과 학생이든, 경영학부 학생이든, 미술대 학생이든 할 것 없이 일단 우리나라 사람이면 우리나라 역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평상시 생각해 온 나이다.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한국근ㆍ현대사가 아주 의미 깊었다. 그러던 중 담당교수 이민원 교수님이 탈고하신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일반 역사책과는 달리 특이하게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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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영문과 학생이든, 경영학부 학생이든, 미술대 학생이든 할 것 없이 일단 우리나라 사람이면 우리나라 역사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평상시 생각해 온 나이다.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한국근ㆍ현대사가 아주 의미 깊었다. 그러던 중 담당교수 이민원 교수님이 탈고하신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일반 역사책과는 달리 특이하게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근대와 현대 파트로 나누어 각각 28개, 18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그에 따른 그 당시 시대상황,것이다. 최익현 선생 같은 분은 단발령에 반대하다 투옥까지 되지 않았던가. 이러한 시대에 대다수 국민들의 상투를 자르게 한 사건이 단발령 선포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조선이 세계에 개방되던 시기였고 단발령이 내려지기 이전에 초기 개화파인 서광범은 이미 상투를 자른 상태였다. 물론 단발령 이후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투를 자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발령이 오늘날 한국인 두발 양식의 출발선 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 하다. 게다가 단발령이 비록 일본의 압력에 의해 공포되었던 것이긴 하지만, 만약 단발령이 내려지지 않았어도 개항의 물결 속에 자연히 상투는 잘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흥선 대원군의 평가에 관한 문제이다. 중ㆍ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배웠고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시대의 흐름을 잘못 파악한 쇄국정책의 잘못됨을 비평하는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던 나도 무조건 그렇다고 외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대원군이 그 당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양 세력의 유입에 따른 왕조의 붕괴를 우려하여 쇄국정책을 펼쳤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우리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그 시대가 지난 시기의 사람들에 의한 평가인 것이다. 과연 대원군이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 수 백 년 동안 조공을 바치며 섬겨왔던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무너졌고 주변국 일본도 명치유신을 일으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정말 대원군이 시대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여서 쇄국정책을 편 것일까? 라는 의문을 항상 가져왔다. 그는 개항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사회적인 혼란과 백성에 미칠 피해 등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서양세력이 들어올 경우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듯이 왕조가 무너질 것을 걱정 하였는데, 이는 한 나라의 군주(왕은 아니었지만)로서 당연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500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자신의 대에서 끊어진다면 그것보다 더 큰 굴욕은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원군이 개항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쇄국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결과적으로 쇄국정책이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늦추었고 신식 문물을 갖추지 못하여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대원군의 판단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이었다면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훗날의 역사가들이 그를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무능한 정치인 이라고 평가해 버린다면 대원군이 참 억울해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쇄국정치를 펼치지 않고 서구 세력에 개항을 하였다면 과연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된 상황이 만들어 졌을까? 이에 대한 의문점도 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쇄국정책을 펴지 않고 일본보다 더 빨리 개항을 해서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지금의 일본을 훨씬 앞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개항을 일찍 하였다고 근대화가 먼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미국에 의한 개항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항 이전에도 일본은 쇄국정책을 폈던 시기인 에도시대조차도 네덜란드와 같은 서양국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보다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에 국민 통제력이 강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있었기에 개항 이후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은 서양국과의 교류가 없었으며 사회구조 또한 성리학에 물들어 폐쇄적이었고, 농민들의 반란 등으로 혼란스런 시기였다. 만약 개항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근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원군이 이러한 사실들을 모두 고려하여 쇄국정책을 고수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써 증명이 된다면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또 다시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근대사보다 비교적 논란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 현대사 부분에 대한 이견이다. 현대사는 근대사에 비하여 시간이 덜 지나간 시기의 사건들이고 게다가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룬 4ㆍ19혁명 부분의 마지막에 남북 분단의 현실이 때로는 순수한 시민의 민주화 운동이나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굴절시켰던 것도 사실이지만 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ㆍ일 월드컵을 지나면서 많이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군사평론가 지만원씨가 기부천사 탤런트 문근영씨를 좌파 빨치산 이라고 운운한 것과, 위장간첩 원정화 사건 등등 여전히 남ㆍ북 측은 분단 상황을 자신들의 상황에 유리한 것으로 이용하려 한다. 또한 삐라를 여전히 살포하며, 남ㆍ북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할지라도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순수한 마음으로 촛불시위를 한 시민들 사이에서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볼 때 현재도 남한과 북한 분단의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문제점을 안겨주고 있다.

한국 현대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박정희일 것이다. 5ㆍ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18년 동안 우리나라의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 인물.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그를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억한다. 박정희가 이룩한 놀라운 경제 발전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을 우선순위에 놓았기 때문에 독재 정치를 구현하였고 민주화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개발 독재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는 필요악 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 독재가 과연 필요악 이어야만 했을까? 필요악이란 해로운 걸 알지만 큰 일을 이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을 말하는데, 개발 독재가 꼭 필요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빈국에 속할 만큼 가난한 나라였고 경제 개발이 필수였던 시대이다. 국민들은 당연히 잘 먹고 잘살기를 원하였을 것이고 박정희는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새마을 운동,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화학 공업 육성 등 여러 가지를 이루었다. 정부의 힘을 강하게 하여 경제발전을 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지만 독재를 한 것은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굳이 독재를 하지 않았어도 그 당시 군부의 세력은 이미 막강했기에 강한 힘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요악으로써 독재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결국 박정희는 권력에 눈이 먼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 쿠데타를 일으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발전만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막상 이루고 보니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헌법까지 개정해가며 재선, 삼선에 성공하였고 민주화를 탄압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내부의 암살자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가 만약 독재를 하지 않고 민주화를 탄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빛나는 발전을 이룩하였다면 진정한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에 관한 내용인데, 저자는 한ㆍ일 월드컵의 장점만을 부각시켰다. 물론 한ㆍ일 월드컵이 우리 국민에게는 물론 세계인에게 준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그에 따른 부가가치와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건 한ㆍ일 월드컵이 한창이었을 당시 발생했던 서해교전에 대한 언급이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진출로 온통 축제의 현장이었던 2002년 6월 29일 서해 앞바다에서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당시 언론에서도 이 사건은 월드컵에 묻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군으로서 생각해볼 때 그때 그 젊은이들은 그 상황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사격장에서 총을 쏘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는데 실제 북한군과 대치하고 전투를 벌였을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은 실제 전쟁을 치른 것이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작 축구대회 때문에 그들을 잊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이익이 무엇이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지켜준 그들이 아닐까? 친북 정권이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였고 뒤이어 노무현 정부 때에도 그들은 잊혀졌다. 정말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한ㆍ일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에 못지않게, 아니 더 강조해서 서해교전을 이야기하고 그 영웅들을 추억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사건들을 저자의 시선과는 다른 내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한국을 위해 살았던 서양인 아펜젤러 목사, 언더우드 목사, 헐버트 박사 등등에 대하여 새롭게 알 수 있었고 특히 ‘런던 데일리 뉴스’의 기자였던 베델이라는 사람은 한국의 항일 투쟁을 돕기 위하여 정착했다는 사실은 약간의 충격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의 사람이 우리나라의 항일 투쟁을 도왔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한ㆍ소 정상회담을 하였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어떠한 인물이고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밖에 아는 것이 없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 탁구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되었다는 것과 테니스는 1924년 이후 64년 만에 정식 종목이 되었다는 것도 상식으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쉽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이 책에 약간 아쉬운 점은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독자에 따라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지만 서점에서 이 책은 아동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기초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용어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전반적인 한국 근ㆍ현대사의 사건을 알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저자의 생각과 평상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의견을 대립시켜 보는 유익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몰랐던 사실들을 새롭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거기다 오랜만에 책 읽는 기쁨을 준 기회이기도 하다. 알지 못한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n*******h 2008.12.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