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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환갑 잔치도 안 하는 추세이다. 그래도 칠순 잔치는 한다. 가끔 칠순 잔치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어르신들의 생일날엔 트로트만 불러야 하는 걸까?" 아는 혹은 부를 줄 아는 트로트가 한 곡도 없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이다. 노인들이 트로트를 좋아하고 무조건 흔들어대는 춤을 좋아할 거라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나같은 경우는... '칠순잔치'처럼 불특정 다수가 여럿 모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여든 가량의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Love me tender'와 'Try to remember'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두 경우 다 당사자가 너무 좋아하셨다. 한 번의 경우는 그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로 가 즉석에서 연주를 하셨는데, 애드립까지 들어간 연주가 너무 멋져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여든이 넘은, 한국 남자가, 피아노를 멋드러지게 연주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멋지고 세련되고 우아하고 고상한 노인들도 얼마든지 있다.
1937년생의 시오노 나나미. 우리 아빠보다도 무려 열 살이나 많다. 그러니까 보자. 한국 나이로 하면 올해 몇 살인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1/4 정도 읽을 때까지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아니, 무척 건조하게 읽혔다. 영화잡지에 연재했던 글이기에 그랬겠지만 분량이 좀 애매했다. 한 편의 분량이 좀더 길다면 좋았을 걸, 좀 몰입할까 싶으면 이야기는 이미 서둘러 끝을 맺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감정이입을 하며 읽기엔 지나치게 오래된 영화들이 많았다.
그런데 좋은 작가이냐 그렇지 않은 작가이냐(혹은 잘 팔리는 작가이냐 그렇지 않은 작가이냐)는 결국 내공에서 판가름나는 것 같다. 일관성 있게 건조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지만, 어느 순간 경청하게 된다. 물론 이건...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건, 말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잘 하거나, 듣기에 재밌을 만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엄마나 할머니와 같이 읽기가 될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종종 든 생각이다. 물론 아빠나 할아버지와 읽어도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추억들은 많아지는데 그것을 공유할 사람은 적어진다. 이게 노인들이 가지는 고충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시오노 나나미처럼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측면에서 복을 받은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나이만 해도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 중 본 영화보다는 보지 않은 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와 동시대를 살았거나, 그보다는 어리지만 여전히 우리보다는 연세가 많은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라면 분명 이 영화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 주변이나 그 즈음의 사회에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어떨까? 누군가의 살아온 삶에 귀기울일 수 있다는 건 사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도 축복일테니까.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그래서 예수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듣는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했던 것일 게다. ^^)
엄마 생각. 6개월, 아니 3개월, 아니 1개월이라도 짬을 낼 수 있어서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순간순간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을 함께 보면서라도 좋겠다.
"엄마는 이때 어땠어요?" 엄마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드릴 수도 있겠다. 엄마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만큼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좋은 매개물도 없는 듯하다.
'나도 없는데 엄마는 누구랑 이야기를 하지?'
그러고 보면 나는 작가보다는 독자 쪽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오직 한 사람만의 독자가 되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를 스스로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느낄 수 있게, 자기가 살아온 삶이 무가치한 게 아니라 매우 가치 있고 존중받을 만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독자'로서의 삶도 유의미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고, 엄마가 무척 보고 싶었다.
[덧붙임]
1. 한국에 간다면 엄마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영화는 릴리언 기슈, 베티 데이비스 주연의 1987년 작 '8월의 고래'. 위엄과 품격을 유지하면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기에 좋은 영화같다.
2. 책을 전부 다 읽을 여유가 없다면 맨 뒤에 있는 '시오노 나나미가 뽑은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라도 읽어보자. 그리고 시간 있을 때마다 한 편씩 감상해보자.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함께라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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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고대 역사와 로마어를 정규 교육으로 배우지 않고도 <로마인 이야기="">라는 대작을 집필하고 있는 작가이다. 물론 그녀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그녀의 저서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네러티브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본다. 그녀는 역사를 단순히 시간 순서로 저술하지 않고, 소설처럼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거나 전쟁도 군사 전략적 관점을 가진다.
이런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들의 영향으로 영화광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영화에 대한 단상을 모은 책이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이다. 인생을 영화관에서 시작하다니, 이 얼마나 거창한 제목인가! 하지만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고전영화들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비전문가적 관점, 팬으로서의 애정이 담뿍 담긴 에세이 모음집이다.
실제로 ''작가''가 스토리 라인을 따라 그 안의 개연성이나 구성을 평하는 영화평은 오래된 방법이다. 소설이 글로써 이해되고 비평받아야 하듯이 영화로 영화적 관점(스토리, 시각, 음향, 미술...)으로 이해되고 비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화면의 구도나 분할에 대해서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또한 위대한 감독들에 대한 좋은 평도 ''영화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영화비평적 관점으로 본다면 이 책은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매력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고전영화에 관한 영화 비평가나 영화 감독의 글을 읽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맘 먹고 산 루이스 쟈네티의 <영화의 이해="">는 통독하는 자체가 힘들었고, <박찬욱의 오마주="">는 결국에 본 영화에 관한 글을 먼저 뽑아 읽어야 했다. 그 이유는 나의 고전영화에 대한 상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2개의 책은 나에게 "중장기 프로젝트" 목록으로 넘어간 책이 되었다. 이 목록에는 10~20대 시절 ''서른이 되면 다시 읽을 거야'' 다짐한 박상륭의 책들이나, 청소년 필독서라고 명명되었으나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던 고전들이 포함되어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생, 70살의 작가이다. 당연히 그녀가 이야기하는 영화들의 반 이상이 고전 영화이다. 고전영화에 관해 감독의 히스토리, 실험적인 화면 구도, 그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 대신 시오노 나나미 본인이 빠져있었던 배우에 대한 소개, 작가로 성공한 다음 거장을 인터뷰했을 때의 흥분을 이야기하니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를 알고 있는 영화광을 한 명 만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최근의 신세대 영화광들은 DVD를 모으거나, 다운로드 받는 방법으로 영화를 소장한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화광들은 비디오를 사고, 좋아하는 영화를 TV에서 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녹화를 했다. 이 책은 그런 시절에 대한 나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또한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명쾌하면서도 다르게 보는 관점으로 영화를 보는 점도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귀여운 맥라이언을 만날 수 있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에 대해서 섹스없는 남녀 간에 애정이라는 영화 주제보다 자신의 궁금점 "섹스를 하는 사이에 우정"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빠져있었던 영화배우 게리 쿠퍼와 패트리사 닐,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의 불륜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 있어난'' 것은 무시하자고 하면서 불륜이 아닌 사랑과 집착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 흥미로운 점이 다른 역사서와는 다르게 전략과 전술에 대한 묘사와 전쟁의 주역들에 대한 분석이 현대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글을 써온 그녀이기 때문에 전쟁 영화의 주인공들에 대한 평면적 묘사에 대해서는 무척 아쉬워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군들이 영화화되지 않거나,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 놓은 점도 재미있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가 “영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시청각 소스에 대한 글이라는 점이다. 아들에게 사준 미국 NBA 다큐멘터리에 대한 흥분을 전하기도 하고, 올드팝을 듣고 볼 수 있는 콘서트 실황 비디오에 대한 감동을 전하기도 한는 것이다. 또한 영화나 영화배우를 다룬 서평으로 시작해서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의 스펙트럼이 그렇게 다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타고난 ‘정보를 받아들이는 관대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비롯해서 각국의 역사, 문화, 언어를 자신의 잣대나 관점에 맞추기 보다 관용하고 이해한 다음, 분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들을 교육시킬 때에도 ‘제약을 두지 않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고전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관점의 영화를 보여줬다고 한다.
원래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최근에는 단순히 영화를 많이 보는 데서 벗어나고 싶어서 영화평이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한 책이나 잡지를 열심히 읽는 편이다.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도 그런 관심에서 읽게 된 것이다. 이번에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영화 에세이를 읽으면서 평론의 가치는 정확함이나 정밀함일 수 있지만, 팬의 애정에 시작한 글이 일반인들에게는 더 정감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영화 전문 비평가들이 비전문가적인 영화평을 올드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소설가를 비롯한 비전문가들의 영화 감상문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나의>로마인>박찬욱의>영화의>나의>나의>로마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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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 처음이라 이런 말을 하는게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별 감흥은 없다. 그렇다고 형편없는 읽을거리는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럭저럭.
책속에 "로마인 이야기2"를 집필 중이란 언급이 자주 나오는걸로 봐서는 쓰여진지 꽤 오랜 된 듯 한데 초판인쇄가 2002년 8월 30일로 되어있다. 작가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나온 상업성의 결실인지, 팬을 위한 출판사의 진정한 배려인지 알 길은 없으나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지긋한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영화 이야기는 오랜 된 고전이 많았기에 받아들이기 낯설은 부분이 제법 있었지만, 간혹 본 영화(의외로 많았다.)가 나오면 꼭 그때 추억이 떠오르니 말이다.
<하이눈> 그때 누나는 게리쿠퍼를, 나는 그레이스 켈리를 보기 위해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밤 늦게까지 잠 안자고 TV앞에 앉아 있었던 기억. 9시쯤이면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멘트를 날렸던 그때. 아주 꼬맹이였던 내 눈에 참으로 이뻤던 그레이스 켈리. 누나 역시 게리쿠퍼의 모습에 만족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로마의 휴일=""> 초등학교 6학년 때쯤. 밤늦게 친구 집 심부름 갔다가, 온가족이 그 영화를 보고 있길래 나도 같이 본 기억. 집에서는 애가 안 온다고 전화와도 영화 다 보고 집에 갔다면서... <다이하드><베어>등은 학창시절 극장에서 봤는데 그 당시 극장 주변이 많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그 주변을 돌아다니던 기억...등등
훌륭한 독자가 아니라 작가의 글을 심도 있게 분석해서 장단점을 풀어낼 재간이 없다. 단지 이 책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만한 거리를 찾는 분은 한번쯤 읽어도 좋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나는 천성이 낙관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베어>다이하드>로마의>하이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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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인생이 영화로 시작되었다? 전문 분야인 역사나 정치가 아닌 영화에서 그녀의 삶이 출발했다니,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199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2년에 출간된 에세이집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어보니 진짜였다. 열두살 때 영화배우 게리 쿠퍼의 팬이 된 그녀는 고등학교 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율리시즈>를 읽게 되었고, 그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대학 졸업과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가 역사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녀의 삶을 바꾼 건 영화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다. 아니, 영화가 그녀의 삶을 바꾼 게 맞다.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에는 시오노 나나미가 평생에 걸쳐 가장 사랑한 배우 게리 쿠퍼를 비롯해 마를렌 디트리히, 오드리 헵번, 리처드 기어 등 영화배우와 펠리니를 비롯한 영화 감독, 그리고 그들의 영화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다. 오래된 영화들이라서 보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읽는 재미가 워낙 좋아서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영화를 고대 로마사에, 국제정치에, 이탈리아 사회 등등에 빗대가며 설명하는 그녀의 솜씨가 나는 너무나도 좋다. 어디 영화뿐인가. 어떤 책에서는 패션에, 또다른 책에서는 축구나 농구같은 스포츠에 빗대기도 한다. 대체 얼마나 관심사가 다양하고 박식하면 이처럼 지성과 위트가 적절히 어우러진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1937년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이란. 동년배들과 다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역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 나는 오후가 되면 조깅 슈즈를 신고 로마 거리로 나선다. 조깅이 목적이 아니라 지도를 한 손에 들고 현대의 로마를 걸으면서 고대의 로마 거리를 머릿속에 재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인 노부부를 만났다. (중략) 내가 가르쳐준 길을 찾아 멀어져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부러웠다. '저런 행복도 맛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딘가에 소중한 것을 버려두고 온 듯한 슬픈 기분이 들었다. 다만, 멀어지는 노부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뒤를 따라가다가 내 눈의 초점은 점점 넓어져갔다. 노부부도 다른 관광객도 현대 로마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에 하얀 장의 또는 형형색생의 단의를 걸치고 회당과 신전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2천 년 전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불가능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뜻이 아닐까. (pp.337-8) 영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나는 간간히 나오는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그녀의 옛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아들에 대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추억 등등이 이따금씩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그녀가 여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은 대가와 그 대신 특별한 삶을 택해 얻은 기쁨을 이야기한 마지막 글이 가장 좋았다. 대외적으로 그녀는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며 화려하게 살았지만, 사적으로는 이탈리아인 남편과의 이혼 후 아들 하나를 키우며 싱글맘으로 살았다. 그녀라고 괴롭지 않고 외롭지 않은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동년배 여성들, 적어도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처럼 평이한 선택을 하면서 살았더라면 남편과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하는 꿈 정도는 가볍게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없이 부러운 풍경을 떠나보낸 뒤 그 위에 떠오르는 자신의 세계를 보면서 그녀는 천명을 느꼈다. 나에게 불가능한 것, 허락되지 않은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심플해지고, 비범의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보며 깨달았다. |
| 시오노 나나미는 어린시절 부터 등급에 관계없이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그 영향이 커서 <트로이의 헬렌>을 보고, 지중해를 봐야 겠다는 일념으로 성장했다니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 이탈리아인 아들과 현재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니 한 편의 영화가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 책은 그녀가 40편이 조금 넘는 영화평론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영화평론가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것이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웬지 너무 전문적이어서 영화가 주인공이 아닌 평론을 위한 평론이 아닌가 싶을때도 있다. 특히 독립영화라든가 제3세계영화등...(이건 순전히 내생각~) 그러나 그녀의 글을 상큼하고, 시원하고, 재미있다. 어린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니 당연 그녀가 다루는 영화들은 주로 고전이다. (이책이 일본에서 1995년에 출판되었음) 고전영화니만큼 우리들 가슴에 아스라한 옛추억을 일으킬뿐더러, 무엇보다 시오노 나나마씨의 글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에서 영화를 본다는 점이다. 군데 군데 나타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저절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녀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읽어내려가다가 중반이후에 책을 읽으려니 슬그머니 이 작가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저서들과 배경을 보니 당연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의 저서들을 보면 방대한 그리스 로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그녀의 영화선별에는 전쟁영화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가 다루기에 다소 부담되는 전쟁영화들을 그녀의 시각에서 봤을때 참으로 신선했다. 한권의 책을 읽고나니 또 한명의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기분이다. 언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볼 수있는 상큼한 책인것 같다. |
| 시오노 나나미의 팬인 우리 엄마 책장에 가득한 두꺼운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성격상 두꺼운 책에는 손이 가질 않아 로마인 이야기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는 손도 못 대고 있던 나는 가볍게 읽을 거리로 이 책을 택했다. 그녀가 본 영화나 배우에 대한 평론까지는 아니고 느낌을 말하고 설명을 한 책이다. 아이 키우며 가볍게 한 장 한 장 읽기 좋고 이런 저런 내가 보지 않은 영화의 이야기를 미리 알아 앞으로 영화 고를 때 참고가 되니 좋고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선 나와는 다른 작가의 또다른 관점을 느끼게 되니 그것도 흥미롭다. 작가의 나이 때문에 주로 옛영화나 나이든 옛 배우들을 다룰 때는 좀 지루한 면도 있지만 배우게 되는 것도 많은 책이다. 거의 마지막을 읽어가는 중인데, 마음에드는 단락이 있어 연필로 줄을 그으려다 내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이리로 달려와 적어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20대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0대는 할 일을 결정한다. 30대에 뜻을 세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40대,50대가 되면 할 일은 점점 뚜렷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성격과 범위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40대에 흔들림이 없어진다든지 50대에 천명을 안다고 하는데, 어차피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아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을 안 뒤에 실현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그럼 실현한 뒤에는? 인생은 큰 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나의 경우를 보면, 하고 싶었지만 기분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못한 일, 예를 들면 된장을 맛있게 담가보는 것, 고도로 정밀한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등이 있다. "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게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해 왔는데 시오노 나나미는 나와 비슷한 것을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나도 그녀처럼 생각해야겠다. 그게 더 의욕적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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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보르자를 본 이후에 그냥 한번 사보자는 느낌으로 구입했었다. 과연 시오노 나나미.
이렇게 과거에 대한 동경을 가진적은 고구려역사 빼고는 처음이다. 너무나 흥미롭게 영화에 대한 추억과 자신의 감정을 잘 녹여 놓았다. 일본책은 역사서 부터 읽어서 일까? 너무 공감도 가지않고 한글실력까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아 역사서 이후 일본책을 읽지 않다가 체사레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던 것을 동경하게 하는데 기가막힌 재능이 있는 듯 하다. (적어도 나로서는) 거기다가 책사이의 사진들은 나도 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만든다. 흑백-답답한,어두움,구태의연이라는 내 생각을 추억,향수,과거의 향기로 바꿔 준 책이다.
때때로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이 옛 이야기를 하실때 느끼는 그 동질감이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다. [인상깊은구절] "언어가 없다는 것은 머리도 가슴도 빈약하다는 말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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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책은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첫 권의 몇 페이지를 읽다가 곧바로 접어 버리고, 오히려 '남자들에게'와 이 책을 더 흥미있게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나이가 많다 보니, 주로 최신 영화보다는 오래된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그것도 좋았다. 시오노 나나미가 주로 얘기하는 영화는 내가 어린 시절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것이다. 비디오도 없던 시절 오로지 영화를 볼 수 있는 그 시간에 나는 때론 양쪽 채널 중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던 그 때를 충분히 떠올리게 해주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영화' '남자'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인상깊은구절] 신데렐라 증후군은 전업주부가 걸리고, 보디가드 증후군은 커리어 우먼이 걸리는 병이다. |
| 예리하고 유쾌하지만 읽을 때마다 그 수준에 두 손을 들고마는 시오노 나나미의 신작이 눈에 들었다. 시오노 할머니가 쓴 영화 에세이란 점에서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내가 필연적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역시 내 짐작대로 시오노 나나미는 쓰는것 못지않게 '보는것'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특기는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보았듯이 바닥까지 파헤쳐 분석한 다음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는 이 책에서 예리한 매의 눈처럼 작품을 꿰뚫어 보기도 하고 게리쿠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설핏 고백하기도 했으며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또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주기도한다. 다만 영화의 상당수가 5,60년대의 고전이 차지하고 있어서 그 시대 영화를 거의 접하지 않은 나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영화 산문'굴비낚시'를 썼던 김영하와는 달리 그 부분에 있어서 시오노 나나미는 상당히 친절한 편이라 읽어 나가는데 불편함은 거의 없다. 나는 몇십년을 두고 마음에 남았던 영화를 글로 써놓고 시오노 나나미의 나이가 되었을때 펼쳐보면 좋겠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넒은 책상에서 그렇게 하고 있을 그녀가 너무 부러웠다. 지난날을 사진으로 일기로 돌아볼 수도 있지만 영화로 돌아보는것...괜찮은 일이다. 책장이 넘어 갈수록 시오노 나나미의 젊은 날이 그려지고 시들지 않는 그녀의 필력을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재기발랄함에 웃을 수도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제가 '섹스 없는 남녀의 우정은 가능한가'라는 말을 듣고 시오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섹스 없는 남녀의 애정이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섹스가 있는 남녀의 우정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 라고.해리가>로마인>나의> |
|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좋아한다. 물론, 그녀가 나눈 독자의 부류 중에 선택형 독자에 속하기는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생이다. 우리 엄마와 동갑이다. 생일도 7월 7일이라니 울 엄마와 같은 달에 태어난 완전 동갑내기 작가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뭐라고 할까? 참으로 알 수 없는 희귀한 감정이다. 특히 이번 글을 읽으면서는 계속 우울하고 착잡한 마음이 계속 되었다. 나의 엄마와 동갑인 그녀는 제국의 딸이다. 내 어머니는 식민지 치하의 반도의 딸이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살아온 길은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귀족학교를 다녔고, 태어나면서 영화를 보면서 자란 고귀한 신분의 여자이다. 그에 비해 나의 어머니는 일제 치하에서 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가신 뒤 힘들게힘들게 살아오셨다. 같은 시간의 시오노 나나미는 영화관에서 인생을 배우고. . . 소개한 영화 중에 내가 본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도 영화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도 영화관에서 보낸 날이 많았다. 식민지 치하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세대를 한 세대쯤 물러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영화를 보는 시각은 날카롭고도 냉철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 대사 한 마디도 쉽게 놓치지 않았으며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비디오테잎을 통해 보고, 좋은 영화라면 일본에서건 이탈리아에서든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 풍부한 감상력이 오늘의 훌륭한 작가를 만든 것인가보다. 여느 영화평론가가 쓴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진지하다. 영화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각기 다른 영화와 배우들을 자신의 느낌대로 적었다는 것은 영화감상문의 모범답안같이 보인다. 단, 그녀의 개성만큼이나 강한 편견을 다소 갖고는 있지만, 그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녀간의 우정에 대한 영화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우정이란 과연 무엇일까라고 자문한다. 일본어 사전 속의 우정이란 '친한 사람 사이의 애정'이라 하고 이탈리아어 사전에서는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동지 사이의 정신적 연대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말 사전은 뭐라고 되어 있을까? 나도 찾아보았다. 우리말 사전엔 너무 간단하다. '친구 사이의 정' - 그러면서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은 남자란 여자에게 몹시 불안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 억지를 부려도 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표현 아닐까?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올가미에 씌어져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엉터리 관념에 휩싸인 탓에 진정한 우정도 진정한 사랑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침략자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여유가 있고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상상도 풍요롭고 여유롭다는 묘한 시샘도 느끼게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재미있다. 영화감상문도 시오노 나나미가 쓰니 정말 재미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울화통이 터지지만 그래도 놓치지 않고 읽는다. 그녀가 제국의 딸이 아니었다면 나의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 . 영화의 진미를 새롭게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특히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자신이 느낀 느낌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박수를 치며 '맞어, 맞어'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