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는 '꼴린대로'살겠노라 깡있게 말했다. 지금도 그는 그런 듯 보였다. 나는 우리 주변의 디자인을 해석하는 김민수의 해석을 사랑한다. 그리고 선연하게 보지 못했던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도록 가르쳐주었다. 우리 주변에 디자인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디자인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며,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제약하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꾸어 나가야 할지를 모른 체 살아왔다. 그런 우리에게 우리 주변의 디자인에 대한 시원한 돋보기 같은 새로운 관점을 선물한다. 이 책을 통해 정말 삶을 위한 디자인 철학을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그가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 보여준 바른 시선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유관순 열사를 그린 그 친일 행적이 있는 교수를 그가 아니면 나라도 꼭 비판하고 잘못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그의 민족사에 대한 바른 시선 또한 나는 존경을 보내는 바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서 생명에 대한 사랑을 보지는 못했다. 깨어있는 삶을 위한 디자인, 철학이 있는 디자인이라면 생명이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 상해인가 어느 지역이 발전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공물로만 조성된 그 다양한 건축물들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훌륭한 디자인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니다 싶었다. 그가 따뜻한 생태적 시각도 갖기를 기대한다. 아마 곧 그렇게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
|
김민수의 문화디자인을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먹먹해졌더랬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그가 불문율을 따르지 않고 상식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복직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2004년 3월, 새학기가 시작된 지금에도 그의 복직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내 생각에 김민수는 꿈꾸는 대장장이다. 그는 디자인이 삶의 호흡을 담아낸다고 믿으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 호흡이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내리막 길에서 안전 장치 하나 없이 발의 힘만으로 쓰레기 수레를 세웠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그다. 조금만 신경을 써서 디자인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안전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을텐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투쟁의 삶이라고 밖에 할 수 없고 그 가운데서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건 두 부류다. 하나는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일을 다 마무리 해놓고 자신의 것을 향유하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투쟁을 통해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조금 포기하면서 삶의 감춰진 부분을 찾아내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이 일상 속에서 무언가 잘못된 것을 찾아내고 억압된 것을 발견해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김민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하찮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들의 삶을 얼마만큼 규정짓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좋은 디자인을 통해서 부를 거머쥐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디자인을 통해 우리 삶이 얼마나 더 안락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이제까지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고 알려준다. [인상깊은구절] 디자인은 삶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장식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섭리, 물질의 존재, 세상의 이치를 성찰하는 철학이자, 철학과 문화의 접점을 창조하는 실천 행위이다. 나는 디자인이 한낱 ‘기술적 잔재간’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믿고 있다. 이 그릇이 쓸모 있는 것은 그릇 안에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 김민수 교수의 글은 다분히 비타협적이다. 디자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글쓰기가 일부의 사람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여겨지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디자인 비평가가 학교에서 쫓겨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 또한 김민수 교수의 그런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우리 디자인의 역사없음, 도안주의에 대한 매몰, 전시행정에 그치고 마는 디자인, 월드컵을 통해본 자연스러운 디자인의 가능성 등의 다양한 소재와 주제가 펼쳐지고 있다. 한 사회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느냐 못하느냐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비평문화의 활성화도 하나의 가늠자 역할을 한다. 비평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주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9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영화산업이그 한 예이다. 그러나 일부는 이 비평을 비판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김민수 교수의 복직을 바란다. 만약 그가 복직하지 않는다면 그는 순교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김민수 교수는 순교자가 되기에는 너무 재주가 많고 발랄한(?) 분이다. 그의 강의를 정식으로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