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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 나희덕, 「어린것」
나희덕 시인의 등단작 「뿌리에게」에는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에 이르면 시인의 가슴이 얼마나 넉넉한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몸에 있는 자양분으로 온갖 벌레며 식물들을 살아가게 하는 흙. 마치 어미가 자식에게 제 몸의 일부를 내주었다가 나중에 몸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에는 온갖 헌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 같다. 이를 일러 모성이라고 할 텐데 모성은 제 자식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을 향해 있어 감동을 준다. 하여 나희덕 시인은 내게 다람쥐를 보고 젖가슴이 도는 시인으로 각인되었는데 여기 나희덕 시인과 같은 부류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유소림 시인이다. 시인 또한 ‘구름이를 안고 있다가 문득 젖을 물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이 처음부터 구름이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감성을 가지지는 않았다. 본디 바탕이야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겠지만 시인의 고백에 따르면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이러한 삶에 눈을 뜬다. ‘삶이란 명석함이나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을 단 한 권 읽지 않았더라도 누구보다 깊고 풍부하고 감동적인 생을 산 엄마의 삶에 대한 이해에서 나왔다. 꽃과 나무와 풀에서 배운 엄마의 삶. 그리하여 ‘내가 동물에 가려 있던 식물을 발견하고 청맹과니처럼 눈뜨고도 몰랐던 순환을 생각하게 되고, 관심사를 성공에서 실패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도 모두 엄마와 이별하고 나서였다. 아버지가 갈날 같은 스승이었다면 엄마는 청춘을 지난 나에게 소리없이 스며들었던 향기 같은 스승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엄마와 이별하고 난 뒤 엄마 같은 스승을 만나니 바로 퇴곡리 ‘형님’이다.
형님은 주위의 모든 목숨붙이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있었다. 자식들을 전부 분가시키고 혼자서 감당하고 있는 논농사가 점점 힘에 부치지만 “아침에 나가보믄 벼 잎사귀에 청개구리들이 조롱조롱 앉아있는 거, 그게 정말 이뻐서” 또 한 해 벼농사를 한다. 그 개구리들이 뱀에게 잡아먹힐 때는 개액깨액 우는데 그 소린 정말 못 듣겠단다. 그래도 형님은 물뱀이 울타리에 걸려(형님네 논은 고라니와 멧돼지 방지용 그물 울타리를 쳐놓고 있다) 나가지 못하고 뱅뱅 돌면 그물을 들어올려 그놈을 나가게 해준다. “그것도 살려고 애쓰는걸.” 형님은 강원도에서 태어나 오대산 밑자락 외진 골짜기에서 소 기르고 감자 짓고 꿀벌 치고 한때는 누에까지 치며 환갑을 넘겼다. 그이는 생태니 환경이니 하는 배운 사람들의 단어를 쓰는 적이 없었지만 뛰어난 생태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소와 감자와 꿀벌과 누에에게서 저절로 얻은 감성이었다. (21 - 22쪽)
시인이 강원도 퇴곡리로 이사를 한 것은 부모님을 다 떠나보낸 뒤였다. 주문진에서 들어온 노인 부부와 시인에게 땅을 판 아랫집, 시인의 집까지 합해 겨우 삼가촌(三家村)인 마을로 이사를 한 것인데 바로 시인에게 땅을 판 아랫집 안주인이 여기서 말하는 형님이다. 학교 교육이라고는 입김도 쐬지 못한 사람. 그러나 자연의 능력에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 ‘비 오시는 저녁이면 꽃빛이 더 좋다며 낡은 우산을 쓰고 우리집 마당까지 올라오면서도 그 꽃을 탐내지 않고 꽃이 자신의 꽃밭을 찾아와줄 때를 즐겨 기다리는 사람’. 앞 못 보는 남편을 평생 지극 봉양하고 둘레의 모든 목숨붙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 그리하여 형님과 함께 퇴곡리 사람이 되어가는 시인은 뱀을 만나도 ‘나는 뱀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무덤가를 떠나오며 뱀이 어서 기운을 회복해 저 늙은 호두나무 아래에서 다시금 위험스럽게 꿈틀대기를’ 비는 또 다른 ‘형님’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