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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주(식물): 그대에게도 『사계』 한 소절 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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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순이 30% 더 나왔다. 장미 하우스에서 해충이 사라져 농약 살포 회수가 1/12로 줄었다. 사람이 농약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줄었다. 오이는 수확량이 23% 증가했다. 특품 비율이 83%에서 95%로 향상했다. 맛도 좋아졌다. 소득이 증가했다. 오호. 이토록 반가운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작물에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성장활동이 왕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병충해
"이완주(식물): 그대에게도 『사계』 한 소절 들려주시길!" 내용보기

장미 순이 30% 더 나왔다. 장미 하우스에서 해충이 사라져 농약 살포 회수가 1/12로 줄었다. 사람이 농약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줄었다. 오이는 수확량이 23% 증가했다. 특품 비율이 83%에서 95%로 향상했다. 맛도 좋아졌다. 소득이 증가했다. 오호. 이토록 반가운 변화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작물에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성장활동이 왕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병충해를 방어하는 물질을 훨씬 많이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음악이라고 다 똑같은 효과를 낸 것은 아니다. 좋은 음악이어야 한다. 농학박사이자 공무원이었던 이완주는 그렇게 식물에 이로운 음악 곧 ‘좋은 음악’을 골라내어 ‘그린음악’이라 명명했다. 이 책 『식물은 지금도 듣고 있다』는 저자가 그린음악의 효과를 깨닫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투신한 3년 세월의 보고서이자, 이후 농업 현장에서 거둔 그린음악의 효과를 소개하는 성공담이다. 학자가 쓴 책답게 그린음악이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론적 배경 즉 식물과 소리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결과와 문헌자료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소닉블룸을 뛰어넘는 우리의 그린음악을 위하여

 

음악이 식물 생장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는 사실 낯설지 않다. 실제로 저자가 그린음악을 개발하기 전에 이미 미국에서는 농민들이 소닉블룸(Sonic Bloom)을 활용해 작물 생산성을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음악과 작물의 상관성을 인식하고 활용한 농민은 소수에 불과했다. 소닉블룸을 창안한 연구자가 노벨상 후보로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반향은 크지 않았다. 요컨대 미국이든 한국이든 보통사람들 사이에선 음악이 식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짐작만 있을 따름이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을 뿐 본격적인 연구과제로 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본업무인 뽕나무 종자개발 실험을 하면서 곁다리로 간단한 장비를 갖추고 ‘음악 실험’을 해보게 됐는데, 이 소박한 실험에서 곧장 음악과 뽕나무 생장의 상관성이 드러났던 것이다. 학자적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본인도 반신반의하던 가설을 들고 남들을 설득시키고 연구비를 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정한 형식을 갖춘 학술보고서로써 그린음악의 존재와 성능을 발표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연구를 개시하자, 저자는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성과들을 얻게 됐다. 오이, 상추, 장미, 포도 따위 작물의 소출 급증이 물론 가장 큰 성과였다. 그리고 식물 자체에서 가바(gaba)와 루틴(rutin) 생산이 늘어났는데 이들은 해충의 대사를 교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농약 살포 양과 횟수가 줄었다. 김매거나 수확하는 인부들까지 상쾌한 기분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됐다. 1994년 저자의 연구결과가 공표된 이후 그린음악의 효능은 우리 농촌에서 ‘상식’이 됐다. 전국 여러 농가에서 그린음악으로 톡톡히 재미보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어찌 하우스 작물만 건강하게 하리오?

 

저자는 그린음악의 연원이 미국의 소닉블룸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 조상들이 논가에서 사물놀이 풍악을 즐겼던 것이 바로 소리의 진동과 벼의 생장능력의 상관성을 경험칙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지난 세기에 이미 찰스 다윈 부자(夫子)가 소리에 대한 식물의 반응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새벽에 콩밭에 나가 작대기로 콩대를 쓸어주었던 것 역시 진동과 식물 생장의 관계를 의식했던 행동이었다. 다만 그들은 진동과 소리와 음악과 식물 생장의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그린음악은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같은 하우스 밖의 과수에도 현저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그 답을 얻기 전에 저자는 정년을 맞아 공직에서 물러났다.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성실한 독자로서 우리는 저자가 남겨놓은 의문에 대한 답을 다른 곳에서라도 찾아야할 터다. 이완주가 떠나면서 그린음악 연구가 멈춰버린 듯한 우리네 사정과 달리 미국에서는 꾸준하게 소닉블룸을 연구하고 보급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새다. 관련 홈페이지(http://originalsonicbloom.com)에서 음악 덕분에 호두나무 줄기가 기적적으로 굵어지고 열매를 많이 맺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린음악이 과수원에서도 한 몫 하리라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대목이다.

책을 읽는 중에 문득문득 ‘얼른 카세트플레이어를 마당으로 들고 나가서 화초들한테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마당에는 입동을 코앞에 두고 잎을 거의 다 떨어뜨린 뽕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덩그러니 서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의 바닥에는 계절을 착각하여 싹을 틔운 연둣빛 상추들, 퇴비에 섞여 있다가 뜬금없이 솟아난 감자줄기가 늦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돌아섰다. 사랑하는 화초들에게 그린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나, 그것은 내년 혹은 언젠가 자연의 품으로 귀환한 뒤에야 해볼 일이 됐다.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이 어찌 하우스의 오이와 장미에게만 유효한 것이겠는가? 업무와 고객과 때로는 가족과 부딪히며 지치고 닳아버린 나 자신의 영혼에게도 『사계』는 필요한 것이리니. 이완주에 따르면 심지어 이끼에게도 음악을 느끼는 영혼이 있다. 하물며 소와 돼지와 인간은 말해서 무엇 할까.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스윽 먼지를 닦아내어 플레이어에 꽂아본다. 비발디의 『사계』 겨울 1악장이다. 단단단단, 단단단단 …. 현이 일으키는 진동의 단순반복은 나의 영육에 스며들어 어느새 하나의 풍경이 된다.

 

동장군이 엄혹한 추위를 등 뒤에 슬쩍 감추고서, 들판과 거리를 가로질러, 살금살금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의 정경.

 

글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싱싱해지는 것 같다. 아무쪼록 이 겨울, 무엇보다 먼저 그대 자신에게 고전음악 한 소절 들려주시며 싱싱해지시길!

r******a 2008.12.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