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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면 이책에서 하워드 진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담론중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여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중립이 아닌 대세에 동조하는거와 다를바 없지 않는가? 그대가 중립을 지키는 사이에도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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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를 읽었다 물론 전편만 읽었지만 상당히 적잖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난다. 한 사람 책을 너무 많이 읽는 것은 좋지않다고 여겨 어느 정도선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 대표적인 책 한권을 골랐다. 저자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공군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그후 콜롬비아대학에서 수학을 한후 보스턴대학등 두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소개하고있다. 내 기억엔 미국은 8.15광복후 우리나라 선거에서 보통선거를 정착시켰는데 정작 자기나라에선 불평등선거를 계속 획책하고 있었다니 , 캐네디대통령이나 둘째 로버트캐네디등을 우리는 그의 자선전등을 통해 참 훌륭한 역사의 위인으로 학습해왔는데 흑인민권운동에 대해서 억압하는 백인편에 섰던것에 대한 실증적인 사건들을 보며 역사의 씁쓸한 면을 보개되었다. 요즘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는 소리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미국의 식민지였으면 우린 영어라도 잘할수 있었을텐데 에이 씨~~~ , 남북통일은 결코 되어선 안된다 우리가 이룩한 부를 그들에게 나누어주면 우리의 생활이 지금보다 많이 궁핍해질텐데 안된다고 목청을 높이는 남녀노소들,, 제발 이 책을 읽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삼천개의 섬을 가지고 있고 필리핀은 만개의 섬으로 되어있다 그 중에 가장 큰 본토는 루손섬인데 미국은 그곳에서 베트남전과 같은 무차별 전쟁을 일으켜 루손섬인구의 1/6을 학살한다 구한말 의병전쟁이나 독립운동때와의 사상자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엄청난 희생이다. 남한의 국민소득이 2만달러인데 만일 10만달러로 세계최고의 부국으로 올라서고 우리의 영토가 제주도와 전라도로 좁혀진다면 북한에 부를 나누어주지 말자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잠깐의 수고를 못참고 계속 주변국의 눈치만보는 나라로 전락하자는 이야기인가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인데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돌아가는 모양이다. 하워드 진은 그냥 그런 비평가인줄 알았는데 노만 촘스키와 같은 보스턴대학의 교수였다니 인연도 없는데 그냥 반가운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얼마후에 촘스키의 책도 읽어보려해서 그런가 하워드 진의 체험적 미국민중사인 달리는 기차.. 는 실전민중사란 의미에서 우리에게 값진 교훈이 될거라 믿는다. 나랑은 아무상관없다고 생각한 외국인인 하워드 진이 얼마전 타계했다고한다. 그런데 내 가슴 한곳이 잠시 무너지는 느낌이 나는건 왜일까 그의 글이 너무 내 가슴속에 사무친 까닭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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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멈춰있는 사람은 없다. 지구라는 커다란 비행선에 시속 1600km로 돌면서 초속 30km를 날고 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멈춰있는 세상은 없다. 고요하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곳곳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4.19혁명이 일어나고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6.10민주항쟁이 그러하다. 이런 커다란 사건들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조그만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 큰 소리로 세상을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좋은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워드 진의⌜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더 많이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다른 사회학 책과 다른 점은 바로 작가의 실천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전적 역사 에세이로 크게 3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남부와 운동은 흑인 인권운동에 대해 쓰여 있다. 흑인들이 다니는 스펠먼 대학에 부임하면서 흑인들이 받는 차별대우와 그에 대항하는 모습을 그렸다. 두 번째는 전쟁과 평화로 반전운동에 대한 내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2차 세계대전에서 폭격수로 참전했다. 조국을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중 만난 승무조의 사수로 인해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게 된다. 처음에는 몇 백 명의 사람들만이 반전집회에 참여하지만 몇 년 뒤 수십만의 사람들이 반전의견에 힘을 싣는다. 세 번째는 풍경과 변화로 작가의 법정에서의 경험, 교수 재임시절과 유년시절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세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작은 변화’라는 것이다. 사소한 사건들이 작은 변화들을 가져온 것을 자세히 서술하여 보는 내내 마음에 희망이 쌓이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광우병 수입 반대, FTA반대, 4대강 사업 반대 등 촛불 문화제를 통해 소리 내어도 권력 앞에서는 힘을 낼 수 없었다. 용산 철거, 쌍용차 노조 등 자기의 생존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도 돌아오는 것은 강경 대응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목숨을 잃고 아직까지도 추운 겨울 높은 철탑 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하고 있다. 언제부터 권력 앞에서 옳은 소리를 내는 것이 겁이 나는 세상이 된 것일까? 사람이 만들어낸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의심의 여지없이, 어떤 나라의 사법체제든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커다란 역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순응을 강요하는 압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치더라도, 사람들은 불의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학하여 감히 자신들의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 가능성에 희망이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일 것이다.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우리는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운동을 하고 있다. 지구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립적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중립이 아니다.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침묵이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사회의 흐름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지 않았나? 그 침묵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그 결과를 보고 우리는 또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지금은 작은 목소리이지만 그 목소리가 모이고 모여 희망이 될 것이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일들이, 또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희망을 향한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대항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뜻으로 달걀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달걀과 바위가 부딪히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둘 다 같은 힘을 받는다. 다만 질량이 작은 달걀이 큰 충격량을 받아 깨질 뿐이다. 이런 달걀들이 모이고 모여 더 무거운 질량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진압과 통제라는 열과 압력에 부서질 수도 있지만 후에는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 질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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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타계하셨죠.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 하워드 진의 에세이입니다. 부두 노동자에서 2차대전 참전 군인, 그리고 60년대 흑인대학의 교수. 그가 걸어온 길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미국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또한 인권운동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달달한 부분은 부인 로즈 여사를 만난 순간이고, 이 키가 190이 넘는 후리후리하며 멋있게 생긴 노교수의 인생은 그의 온화한 인상과 달리 투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뉴욕과 시카고, 시애틀과 하와이가 생각나는 화려하고 부럽기 그지없는 미국의 부유하고 여유있는 얼굴 뒷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으며 또 흐르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픈 것은 그 투쟁과 피의 역사가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죠. 아무 죄 없이 지옥같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은 지금은 미국의 역사가 됐고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로드니 킹 사건과 같은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일까요? 5천년을 검은 머리와 노란 피부의 우리끼리 살아왔지만 이제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그리고 무슬림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기대를 맞은 우리는 어떨까요. 이해와 사랑보다 차별과 증오, 미움을 먼저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노교수의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인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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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라 일컬어지는 하워드 진이 왜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가 21살이던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기를 타고,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던 지워버리고 싶은 경험에서부터 대학 교수가 되어 지역 사회의 흑인 평등 운동을 위해 행동했던 것, 베트남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시민 운동의 한 가운데에서 겪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그의 입을 통해 진술된다.
물론 그 진술의 방식은, 옛날엔 그랬지, 식의 회고담 수준에 절대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권리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당시 민중들이 겪어야만 했던 탄압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일어섰던 모습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사실 읽다보면, 복장이 터질 것만 같은 부분이 있다. 하워드가 회상하고 있는 시대가 1960년대부터 80년대의 미국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정말 절묘하게 대한민국의 현재에 어울리는 선언 아닌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리는 정부는 비애국적, 그네들이 자주 쓰는 말로 우리의 적이라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종북론적인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는 질서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특히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했으나 인종간의 평등은 소원해보였던 남부 지방의 투쟁을 보여주는 <1부, 남부와 운동>을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1860년대에 남북전쟁에서 승리했다면 100년 정도 지난 1960년 대 미국엔 인종 갈등이 없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들 알다시피 남아공 못지않은 엄격한 인종분리 정책이 당시 미국에서 실시 중이었다. 어떤 흑인 여학생은 버스 앞쪽 백인 여성 옆자리에 앉았다가, 다리가 밟혀 뭉게지고 백인의 욕지거리를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백인 승객들도 증오하는 눈초리로 욕지거리를 했다. 어떤 흑인은 병원에 하나 뿐인 인큐베이터가 ‘백인 전용’이라는 이유만으로 갓 태어난 아이가 죽어갔던 경험을 얘기한다. 이때 만약, 모든 흑인들이 그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려니 하고 체념하며 살았더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흑인들과 일부 의식 있는 백인들은 마음을 모아,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운동을 개진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 그러니 지금 정권이 아무리 암울할지라도 우리 절대 절망하지 맙시다. ‘결국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라고 말한 하워드 진처럼, 우리도 희망을 고집해야 하며, 그 희망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작은 저항 행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하워드 진이 몸소 겪은, 흑인 인권 운동에 가해진 백인들의 폭력적인 진압 행태는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참혹했다. 한밤중에 흑인 거주지를 향해 총을 난사하기도 하고, 보안관이 흑인 주제에 말대꾸 한다고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치는 것이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이때 하워드가 던진 질문이 의미심장하다.
확장해 우리에게 질문해보자. 1980년 광주항쟁과 2009년 용산참사 때 우리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나? 아니 과거를 돌아볼 것도 없이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었을 때 우리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정부, 즉 국가권력이란 결코 시민들의 정의에 서지 않는다. 몇몇 권력자들과 그 권력자들의 잇권을 받아먹고 사는 내시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 국가권력이다. 북한도 다를 바 없다. 아니, 북한은 더 심하면 심하겠지. 그러니 1인 독재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겠지.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무슨 말일까? 이 책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청중과의 대화’에 그 의미가 나와 있다.
지금 우리들이 국가권력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저 SNS 상에서의 분노와 욕으로만 머무른다면, 그것또한 그냥 지금의 사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문득 두려워졌다. 지금 우리들의 나태한 모습과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미래의 모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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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을 읽으면서 하워드 진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책을 한권 더 읽게 되니 그에 대한 관심은 열광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촘스키와 함께 매우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워드 진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삶을 살아 왔는지와 삶을 살면서 어떻게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진보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들려주고 있다. 3개의 장으로 내용은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에서는 그가 우연히 미국 남부에 있는 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흑인인권 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두 번째 장에서는 그의 또다른 관심영역인 반전운동에 참여하여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장에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1980년대 이후의 진보운동의 침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학자이자 행동가인 하워드 진 개인의 삶을 말해주면서 삶과 함께했던, 그가 참여한 운동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며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반전과 인권신장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의 삶이 자신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논의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가 강의실에서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자신의 말과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을 해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 저작을 통해서 단순히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재촉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좋은 의미에서) 편견을 갖고 있는 시각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식으로 그리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하워드 진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입장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째서 자신이 그런 입장인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속적인 변화를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삶이 단순히 개인적인 삶만이 아니라 사회와 유기적인 연결이 되어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그의 이 저작은 자서전처럼 읽히면서도 하워드 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미국 인권운동 그리고 반전운동이 어떻게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졌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매우 성공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는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읽고 봄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행동할 수 있기를 실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다면... 실천과 행동에 더 큰 힘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라는 말은 쉽게 들릴 수 있지만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읽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 요즘 인권과 전쟁에 관한 책을 줄줄이 읽고 있는 중에 내 손에 잡힌 책이 이 책이다. 조금은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주저하고 있던 책이 손에 들자마자 얼마나 잘 읽히는지(물론 시간은 좀 걸렸지만) 왜 진작에 읽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가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있을 때 적절하게 잘 집어든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로 유태인계 미국인인 그가 약자의 앞에서 '어슬렁' 거리며 꾸준히 해온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 대해서 들은 바 있었으나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책을 읽는 중간중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덧붙여 내 아버지가 두번이나 참전했던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자유에 대해서 날마다 떠벌리는 미국의 국가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경찰이 우리나라의 공무원, 경찰과 어찌나 판박인지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재밌었다. 사람사는 곳에 권력을 쥐었다는 자들은 뇌구조가 다 같은 모양이다. 또한 시민은 때로는 무지하지만, 알게 된다면 의지있게 행동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힘 없는 흑인, 인디언, 여성 등.. 수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좋았다. 이런 책들은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의미 없다 싶다. 꾸준히 하워드 진 교수의 책을 읽어볼까 한다. 생각이 커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
| 이 책의 첫페이지에 어느 강연 막바지에 누군가 그에게 질문했다. "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울한 뉴스들을 생각한다면, 선생님은 놀라울 만치 낙관적으로 보입니다. 무엇이 선생님한테 희망을 주는 겁니까?" 인간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 물론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시간, 혹은 돈, 혹은 기회, 혹은 의지가 없는 분들. 혹은 그저 안내키는 분들은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좋다. ( 고 내가 장담한다.)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에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이야기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 희망' 이다.' 어떤 책이라도 별 예상 없이 별 기대 없이 읽을 수록 놀라움은 커지고, 깨달음도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책의 머리말 ( 위에 적은) 을 넘기고 나온 이야기는 바로 미국 남부의 이야기이다. 헌법을 무시하고 인종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아틀란타의 어느 도시에서 역사 속의 대규모 사건에 불씨가 지펴진 시민들의 '앉아있기' 운동! 버스 보이콧 운동, 자유승차 운동이 일어난 곳에 있었던 하워드 진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학교 다닐때 교과서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별 생각 없었다. 힐러리의 자서전이나 클린턴의 자서전 혹은 에릭 시걸의 '닥터스' 를 읽고, 혹은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을 때도 별 생각 없었다. 나는 정녕 무뇌아란 말인가?! 그의 이야기는 선동적이다.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이 선동적으로 들리고, 위험하게 들린다. 그가 이야기하니,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사실들이 그저 또 다른 사실들로 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머리가 적극적으로 돌아간다. 1960년대라고 하면, 불과 40년전. 나와 일하는 그들이 겪었던 일이다. 내 시대에 그 대단하고 잘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 사실이 새삼 말도 안되고 얼토당토 않은 일로 다가온다. 남부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대항,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과 흑인운동의 만남. 그 모든 커다란 흐름을 주도한 것은 개인의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그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 늙지 않는 행동파 지식인은 '희망' 이란 것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고, 2차대전 때는 자신이 하는 일에 한점 의문 없는 폭격기 조종사였다. 민간인과 항복한, 철수하는 적에게 폭탄을 2만피트 상공에서 폭격을 퍼부었고, 히로시마 원폭 소식에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했었다고 고백한다. 히로시마에 가서 그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았고, 또 어느 곳에서 폴란드에서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다. 국가를 사랑하지만, 잘못된 정책을 행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불복종함으로써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하워드 진의 '시민 불복종'은 그것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무정부 상태를 낳을 수 있어 위험해 보이지만, 가장 큰 위험은 시민의 복종. 즉 개인의 양심을 정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와 같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루어낸 평화를 향한, 평등, 자유를 향한 커다란 한 걸음, 혹은 작은 몇걸음에 '불복종'이란 불순해보이는 단어가 숭고하기까지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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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일관된 자세로 저술과 강연 활동을 전개하여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미국민중사』와 『오만한 제국』이 대표작이다. 1922년 뉴욕 브룩클린 빈민가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부모님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로 뉴욕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대학에 갈 나이가 됐을 때 조선소에 일하러 가서 3년 동안 노동자로 일했다. 초보 노동자 노동조합의 간부가 되기도 했지만 기꺼이 조선소를 그만두고 항공대에 입대한다. 그러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기를 탄다. 전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믿음에 의문이 기어든 것은 다른 승무조에 있던 사수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와 하워드 진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책을 좋아하고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언젠가 그는 하워드 진에게 말한다. 지금의 전쟁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니라 제국을 위한 전쟁이라고. 영국, 미국, 소련 - 다 썩어빠진 나라들이고 히틀러주의를 도덕적으로 우려하는 게 하니라 그저 자기들 법대로 세계를 운영하기만을 바란다고. 하워드 진이 그럼 너는 왜 여기 있냐고 묻자 “너 같은 녀석들에게 말해주려고.”라고 대답한다. 하워드 진은 그에게서 깊이 감명 받는다. 그 대화가 있고 나서 2주 뒤 그가 탄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워드 진은 제대 뒤 원호법(GI Bill) 아래 뉴욕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정치학을 함께 공부한다. 그러고는 남부에 있는 흑인 여성들의 대학인 스펠먼 대학에서 처음 교편을 잡는다. 남부에서 하워드 진은 인종차별에 관해 눈을 뜬다. 그러고는 반인종차별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그러다 결국 종신교수임에도 1963년 해고되고 만다. 그렇지만 그 몇 년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캠퍼스 안팎에서 기성 당국에 대한 저항 정신을 목격하면서, 언제 어느 때든 모든 인류, 모른 생명체의 비범한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다. 보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뛰어든다. 뿐만 아니라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한다. 하워드 진이 보기에 가장 큰 위험은 시민의 복종, 즉 개인의 양심을 정부의 권위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복종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본 것처럼 공포를 낳고,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이른바 민주 정부의 자의적 결정 아래 국민 대중이 전쟁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반전 평화 운동은 투옥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외려 그것은 저항 의지를 더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순응을 강요하는 압력이 아무리 강력해도 불의에 대항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힘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싸우며 체득한 희망에서 비롯한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을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하게 행동한 시대와 장소들 - 이러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 을 기억한다면,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적어도 이 팽이 같은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288 - 28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