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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따지고 보면 맘 편히 먹을 것은 하나도 없다.
정확히 궁극에까지 이르러 말하건데 차라리 리프킨이 주장하는데로 소비와 향락을 줄이는 것이 대안이라면 수긍이라도 가겠는데...
명백히 인류가 초래한 것임에 명백한 지구 온난화를 '그 전에는 더 더웠던 시절도 있다' 라는 식으로 덥고 넘어가거나, '곧 빙하기가 올 것이기 때문에 괜찮타' 라는 말은 이 사람이 어떤 무지에서 나오는 말인지(권위자니 그건 아닐테고)
아니면 어떤 신념에서 나오는 말인지..그것도 아니면 더러운 모종의 거래 관계에서 나오는 말인지는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해당 업계 관계자면 돈좀 주고 잘 꼬셔 보겠다...
그것도 아니면 지구가 온난화 되어도 수증이가 많이 생성되어서 이것이 구름을 형성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에 괜찮타 라는 주장을 읽고 있노라면 다른 모든 학자들을 한방에 바보로 만드는 그의 능력을 감탄해야 하는지 아니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의 취기에 놀라워 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말이다.
다이옥신등 인간이 만든 유해 물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감자싹을 먹으면 해롭다, 독버석을 먹으면 해롭다 라고 전주를 삽입하는 것은 이제 유치해서 그 의도가 너무나 뻔히 다 들어나 보인다. 세상에 어떤 미친 바보가 독버석을 먹고 감자싹을 '다량으로' 먹겠는가...그러면서 내추럴 한 것이 더 해악이라니..이런 괴악스러운 주장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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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제목 씹어대기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유전자 변형식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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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물질은 없다. 그러면 우리 사는 세상은 너무나 위험해… 그렇다고 다 위험한 물질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물, 인공물 등 다양한 이름이 붙은 이런 물질 없이는 하루도 아니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천연물은 위험하지 않고, 인공물질은 위험한가? 천연물질을 연구하여 흉내를 내거나, 새로운 용도로 만든 것들이 인공물질이다. 그러면 인공물질은 다 위험한가? 아니다. 하지만, 위험할 가능성도 높다. 천연물질은 안전한가? 라고 묻는다면, 일반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요 내지 모른다 가 맞을 것 같다. 인간의 세계 즉 환경에서 물질에 대한 우리가 아는 지식은 아직도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충격적인 결과 대부분이 큰 문제가 발생한 후에 알게 된 사실들이다. 더불어 어리석은 경험을 많이 해서 얻은 지식이 많다. 왜 알기가 힘든가? 워낙 적은 반응 등 미시적인 영향과 자연계전체에 미치는 거시적인 영향을 파악하기는 아주 어렵다. 단시간에 알 수 있는 결과도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어떤 반응을 할 수도 있기에. 물론 선도적인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익의 추구가 우선시 되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처럼, 사전에 주의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모든 물질은 그 정도(량)에 따라 인간에게, 자연에게 다른 영향을 미친다. 인공화합물에 비해 자연물질은 안정하다는 편견,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의 머리에 세뇌되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용도와 양이 문제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량이 문제이고, 그 사용법이 문제이다. 어떤 상황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연의 물질이던, 인공의 물질이던 다 물질이다.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책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물질은 책임이 없다. 물론 인공물질은 천연물질에 비해 그 유해성의 규명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기존부터 사용해오던 천연물질에 비해 안정성과 관련된 자료와 연구가 부족하다. 우리의 잘못된 상식을 잘 지적해주는 책이다. 우리가 가진 지식의 허를 찌르는 명확환 논리와 예를 들어서 설명하기에 아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기농산물은 다 좋고, 안전하고 일반농산물은 다 해로운가? 물론 유기농은 농약재배에 비해서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꼭 안전하다고 장담을 할 수도 없다. 여기다 여러 가지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상황의 고려가 필요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기농산물이 안전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로 대부분 채소나 과일의 문제는 식중독으로 우리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세척을 하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이기에 우리와 상황을 다르지만, 천연물을 이용하여 농약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화학비료가 아니라 유기질비료를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소비자나 일반사람들의 몫이지만, 정확한 자료나 지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점점 유기농이 산업화되어 가기에 과연 다른 점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한번 생각해봐야 할 도덕적 선택의 문제, 말라리아와 DDT의 유해성, 과연 어떤 점에 주안을 두어야 하는가? 지금 당장 사람을 구할 것인가? 미래의 환경을 구할 것인가? 물론 DDT를 대체할 만한 물질을 만들면 쉽겠지만, 무해한 살충제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우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어떤 합의를 도출하고 사회적으로 충분히 추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가기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우리 주변의 물질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엄청난 화학물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책 속에 다양한 지식과 많은 가르침이 숨어있어 보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오늘도 잊지 마시기를 적당한 량, 적당한 사용법 더불어 우리가 배움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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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공해, 유기농식품들이 인기가 많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시중에 파는것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스스로 음식을 만들기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들이 많이보이고. TV에서는 심심하면 먹을것 가지고 사건 사고가 끝이질 않는다. 소비자 프로그램에서는 제조 음식들의 위생불량을 고발하고 먹을것 가지고는 장난치면 안된다는데 끝임없이 사건이 터지니 어른말씀들 참 안듯는다. 이런 말안듣걸 뒤로 하고 우리는 많은 비용과 수고를 하며 유기농 식품을 먹는것이 능사일까?? 책은 오히려 자연에있는것들도 제조 식품보다 위험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의 제목인 내추럴리 데인저러스 답게 책의 내용은 자연적인것이 안전하다는 우리의 통념을 산산이 부셔버린다. 제조약품보다 훨씬 위험하고 강한 독성을 가진 음식도 많으며, 우리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중금속 카드뮴같은 것 들도 꼭 필요한 성분이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라 듣기만 해도 거북한 물질들이 사실 우리 지천에 널려있고 매일 우리 몸속에 생성하기도 하며, 날라가기도 하고 사실 큰 양이 아니라면 거의 무해하다는 과학적 사실은 신선한 정보였다.
이 책에서는 식품과 약에 관한것 말고도 다양한 우리가 잘못알고 오해하는 음식,건강 환경에 대한 100여가지 지식을 총 집합해 놨다. 다양한 화학용어가 나오지만 한번쯤은 다들 들어보고 본인이 이과 출신이라면 오히려(?) 친숙할것이다. 암이라던가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여러 화학에 관련한 자주 언급되는것들에 대해 쉽고 꼼꼼하게 써놨다. 수능때 나에게 매우매우 큰 절망을 줬던 화학이라는 과목이 뒤늦게 보니 재밌다는게 새삼 난감하다. -_-;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대목은 유전자 변형 식품이였다. 요즘은 변형 식품은 GMO마크를 필이 부착해야되고, 소비자에게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는 정보를 충분히 알려야하는 의무가 법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 여러 환경단체에서는 GMO의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글쌔 아프리카 같은 기아가 넘처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유전자 변형식품을 통해 더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아프리카에서 음식특성상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 생기는 질병은 막기위해 개발된 변형식품이 버젓이 다 개발되었는데도 그걸 나둬야 할까?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거센 반대 운동이 있지만 이러한 식품들이 특별히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도 역시 없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대중의 공포 심리를 자극한다. 그에 반해 오히려 영양분도 더 떨어지고 기생충 감염이나 자연 생성되는 독성이 남아있는 유기농 사과를 껍질을 깍지 않은채 먹는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변형 개발 식품의 종자를 무상으로 저개발국가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변형식품에 반발심과 편견은 유전자 변형식품의 산업개발의 저하를 가져오고 그것은 당장 먹을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넘처나는 저개발국가의 원조를 막는길이다.
일찍이 스스로를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규정한 영국철학자 버드런트 러셀은 자신의 과학적 회의주의에 대한 에세이집-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하였는가에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잘 적립된 과학적 결과라면 그것이 명박한 진실은 아닐지라도 이성적 행동 강령이 될 만큼 충분한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며, 수천만명의 목숨을 뺐어간 스페인독감과 패스트를 치료할 능력과 힘을 갖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과학의 산물인 약과 화학물질을 불신하며, 잘못하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일으키는 약초나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경계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의 많은 세금(?)을 통해 안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이 과학의 산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와 효율성과 안정을 위해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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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진실과 대중적 인기 사이의 괴리를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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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건강상식과 관련된 일련의 연구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실험실과 같은 통제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러한 연구결과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웰빙을 쫓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과연 진정 잘 사는 삶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의 불확실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이러한 지필 자세만으로도 이 책은 무시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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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두에 소개된 이야기는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 과학에 대해 무지한 일반 대중들을 꼬집고 있다. "한 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우리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무색무취한 화학 물질인 ‘일산화이수소’가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복합 물질은 심각한 수화 현상을 일으키거나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땀이 많이 나게 하고 구토를 일으키며 기체 상태에서는 심각한 화상을 입히기도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흡입했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 물질은 말기 암 환자의 종양에서도 발견됐고 땅을 침식시키며 산성비의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50명의 학생들에게 이 화학 물질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해 달라고 했을 때 43명이 흔쾌히 서명했다. 6명은 결정을 보류했으며 단 한 명만이 반대했다. 단 한 명만 그 화학 물질이 바로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기농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서평도 아니고 신문지 하단에 실린 광고만으로 이 책을 선뜻 구매하게 된 건, 바로 이 공격적인 카피 문구 때문이다. 정말 유기농이 더 위험하단 말인가? "합성 화학 비료를 사용해 키운 농산물보다 짚을 썩힌 퇴비를 사용해 키운 유기농 식품이 실제로 우리 몸에 훨씬 더 위험하다고 지적하는 식품 과학자들도 있다. 자연 비료를 쓸 때 동물의 배설물에 든 치명적인 세균들이 식품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약 잔류물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은 여태껏 한 명도 보고된 적이 없지만, 음식을 통한 세균 감염으로 죽는 사람은 질병 통제 센터에 매년 수백 명씩 보고된다." 물론 광고 카피처럼 유기농이 더 위험한 건 아니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여 재배한 농산물이 가진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되었으며 그것을 대체하는 유기농 재배나 각종 규제 정책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식품에서 발암물질이나 유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졸지에 그 제품의 판매가 급감한다. 주변에서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란 말이냐, 란 푸념을 듣는 것도 일상이 됐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안전한 것은 없다. 그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부터 늘 있어왔던 문제이며, 오히려 ‘순수한 자연의 시대’였던 과거 환경이 더 열악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저자는 위험성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양’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성물질이라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것은 아니다. 위험성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양’을 먼저 따져 봐야 한다. 만약에 훈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고기 안에 들어 있는 기생충이나 세균 같은 위험한 유기체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과학 기술과 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는 많아도 그에 대한 옹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즘이다. 과학 기술과 문명에 대한 옹호는 ‘시대착오적’으로까지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과학 기술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한 주범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이제 거의 ‘상용화’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 속에서 세심한 분석이나 성찰을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기술에 의한 생산물과 과학기술을 동일시하면서 정작 과학이 가지는 철학적 정신이나 태도를 외면하기도 한다. 유기농 식품에 대한 맹신은 달리 말하면 이처럼 성찰 없이 재생산된 과학기술 비판의 구체적 사례일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대중들의 과학적 무지를 비판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과학적 무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43명의 학생들이 ‘일산화이수소’가 물임을 모르기 때문에 서명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무엇인지 따져보지 않고 서명을 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건 어째서 그들은 그것이 물임을 따져보지 않았느냐에 있는 게 아닐까? 첫째, 아마도 그 ‘화학명’이 가진 ‘불온성’때문일 것이다. ‘물’과 ‘일산화이수소’의 심리적 어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산화이수소’는 폐쇄된 연구소에서 각종 독극물 속에서 정제되어 탄생된 화학명이 가진 위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산화수소’라는 이름은 말할 나위도 없이 ‘물’보다 더 위험하다. 이 이름이 가진 ‘편견’은 물론 각종 화학물질이 보여주었던 역사적 활약상에 기인한다. DDT, 다이옥신, 사린, 프레온, 포르말린, 벤젠 등등의 유해 화학 물질들을 떠올려 보라. 둘째, 이 사례는 과학기술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태도의 기초는 회의와 의심이다. 이리저리 따져보고 확정하기 어려울 때는 심리적 판결을 유보시켜야 한다. 물론 사람들의 태도가 무조건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은 너무 어렵고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에, 늘 판단의 기준이 그 효과와 결과가 되는 것이다. 캠페인의 내용에는 ‘일산화이수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치명적인 유해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일산화이수소가 광범위하게 끼치는 부정적 효과와 결과만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학생들은 그 효과와 결과를 기준으로 서명을 했던 것이다. 저자는 놓치고 있지만 이 두 가지는 과학기술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과연 환경단체의 ‘정치적 올바름’과 대중들의 ‘과학적 무지’는 ‘계몽’과 ‘계도’를 통해 수정 가능할까? 두려움이나 공포는 분명 무지의 산물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광우병’이나 ‘GMO'가 두려운 것도 그것을 우리가 아직까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지의 대상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두려움이나 심리적 거부감을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저자도 예를 들고 있지만 DDT도 처음 나왔을 때에는 그 유해성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우리가 광우병과 GMO를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역사적 사례가 주는 교훈때문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장 확고한 과학적 판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기농이냐 유전자변형식품이냐 온실가스 규제냐 아니냐 등등의 모든 과학적 사안은 결국 ‘정치적’인 역학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순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꽁짜 점심은 없다! 우리 삶은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단지 어떤 위험한 요인을 덜 위험한 요인으로 대체해 나갈 뿐이다. 예를 들어 살충제에 노출되는 것은 항생제를 먹는 것보다는 위험하지만, 핵발전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이 책은 현대판 화학 상식 사전이라 할 만하다. 동시에 온통 화학 물질에 대해 비판만 난무한 이 시대에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유용한 판단 기준을 일깨워 주고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아슬아슬 피해가고 있는 경계 선 밖의 메시지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정의적(正義的)’ 존재이다. 과학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과학자 콜먼이 보내는 메시지는 ‘합리적’이긴 하지만 ‘정의적’이진 않다. 그래서 아무리 등산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해도 내가 사는 옆 동네에 핵발전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반대할 것이다. 위험은 단순히 확률로 환산해서 선택할 몫은 아닐 것이다. 설령 등산보다는 핵발전소가 더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그 둘을 비교하는 건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마 이제까지 감기때문에 죽은 사람이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고 해서 전쟁이 덜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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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보면 어떤 음식은 무엇 때문에 못 먹고 어떤 음식은 무엇 때문에 꼭 먹어야 한다면서 따지고 가리는 사람들이 있다. 채소의 싱싱한 상태나 조리 과정이 깨끗하다거나 더럽다거나 하는 차원의 음식의 질이 아니라 음식 속에 담긴 영양소나 재배 방법에 의해 선택하는 음식의 질. 어떤 음식은 어떤 병을 예방해 주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거나 어떤 병을 일으킬지도 모르므로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게다가 본인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나를 아주 미개인처럼 여기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사실 나는 먹는 일에 좀 둔감한 사람이다. 주부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나 우리 가족을 위해 내가 준비하는 먹을 거리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재료들을 사거나 동네에서 재배되는 채소들을 얻어 먹거나 그때 그때 나오는 농산물을 위주로 그냥저냥 먹고 산다. 유기농이라고 애써 찾아다닌다거나 건강에 좋다는 보조 식품들을 이리저리 구하고 그것으로 몸에 좋다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먹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먹기 싫은데 몸에 좋다고 일부러 찾아 다니며 먹는다거나, 몸에 좋지 않다고 좋아하는 음식을 일부러 끊어 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도리어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사실 먹는 일에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몸에 좋은 것만, 영양이 있는 것만 먹겠다고 난리치는 사람일수록 아픈 곳이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한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으니 읽고 난 내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지구 위 어떤 것도 100% 안전한 식품이 없다는 것, 모든 음식에는 우리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영향을 미칠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독이 되고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된다는 것. 그 동안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중에 꽤 많은 것이 그릇된 정보였음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건강에 대한 허위 정보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려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나를 화나게까지 했다. 너무 많이 알면 사는 게 고달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알아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속지 않고 살기 위해, 사기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은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믿든 믿지 않든 그 또한 독자의 선택이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이 철저히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처럼. 나는 남보란 듯이 요란하게 먹고 싶지는 않다. 그냥 깨끗하게, 보잘 것 없어도 정성있게, 먹을 만큼만 먹고 살고 싶다. 먹기 위해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내 마음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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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의심되는 유해물질을 내돈들여 사 먹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먹고 싶은데 몸에 좋지 않다고 일부러 피해 다니며 먹는다거나, 몸에 좋지 않다고 좋아하는 음식을 일부러 끊어 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구 위 어떤 것도 100% 안전한 식품이 없다. 모든 음식에는 우리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영향을 미칠 요소가 들어 있다
지구 위 어떤 것도 100% 안전한 식품이 없다는 것, 모든 음식에는 우리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영향을 미칠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독이 되고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된다는 것. 그 동안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 중에 꽤 많은 것이 그릇된 정보였음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건강에 대한 허위 정보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려는 무리가 있다는 것은 나를 화나게까지 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이 철저히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음식이라도 개인이 만족하고 먹을 수 있다면 족한 것이다. 이책은 개인의 선택에 도움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