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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소설은 인간의 유한함과 결함, 어리석음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요 고급스러운 풍자다. 그러나 그것은 차가운 비판인 동시에 또한 그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나 그 운명과 맞서 싸워야 하는 휴머니티의 본질에 대한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며 모든 것을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인간이란 늘 사소한 이해관계나 감정에 휩싸여 대사를 그르치고 마는 한심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에게 ‘어떤 것에 대한 앎’이란 늘 현재진행형이지 완료형이 아니다. 아직 미숙하기만 한 주인공 알리의 시점을 통해서 보여지는 소설의 전개는 알리 자신의 지적 성장의 기록이자 도전과 좌절의 기록이기도 하며, 이러한 알리의 작은 성취와 커다란 실패 그 자체가 우리들 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은유다.
소설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건의 완전무결한 해결을 배제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알라 할림」은 완전성과 절대성을 전제로 하는 모든 담론들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주된 모티브로 등장하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만 해도 그렇다. 관용, 상대성,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최소한의 문명적 원칙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요즘 500년 전 지구 저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명의 충돌’ 같은 것은 없다. 기껏해야 ‘문명 내에 존재하는 야만들, 문명의 탈을 쓴 광기들의 충돌’이 있을 뿐이다. 1499년 12월 그라나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야만적 분서 사건과 이에 저항하는 무슬림들의 폭동은 그러한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진정한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고 교류하며 공존하며 지혜의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소재만 놓고 보면 「알라 할림」은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오래된 대결구도를 십분 활용하고 있지만,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진정한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대결과 충돌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 점 또한 인간의 유한함을 전제로 열린 사고를 지향하는 작가 자신의 철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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