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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반딧불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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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려는 영화는 디브이디가 한국에 없고,일본 디브이디는 검색이 안 될 뿐더러다른 자료도 검색을 할 수 없기에,반딧불이 삶과 이야기를 잘 들려준다고 보이는 책에이 영화 이야기를 걸칩니다.널리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반딧불의 별ほたるの星 : Fireflies: River Of Light, 2003  우리는 모두 이웃이면서 동무이다.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한식구이자 한몸이다. 마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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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려는 영화는 디브이디가 한국에 없고,
일본 디브이디는 검색이 안 될 뿐더러
다른 자료도 검색을 할 수 없기에,
반딧불이 삶과 이야기를 잘 들려준다고 보이는 책에
이 영화 이야기를 걸칩니다.
널리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반딧불의 별
ほたるの星 : Fireflies: River Of Light, 2003


  우리는 모두 이웃이면서 동무이다.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한식구이자 한몸이다. 마땅한 일 아닌가? 너와 남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우리는 늘 하나이다. 너와 남으로 나뉜 한몸이 아니라, 다 같은 숨결이면서 다 다르게 빛나는 노래이다.

  영화 〈반딧불의 별〉은 지구별에서 서로 빛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막상 이 영화 속내까지 파고들어 살피면,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외로운 아이(3학년, 열 살)’와 ‘외로운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이녁 또한 어릴 적에 외롭게 자라야 했다)’는 지구별 목숨이 아니라고 한다. 두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사람 모습을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반딧불나라 한식구’라고 한다. 반딧불나라에 큰 싸움이 생기는 바람에, 반딧불나라 어머니는 아이(지구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아이)를 사람이 되도록 했고, 혼자 보낼 수 없어 아버지(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오늘 이곳에서 겉으로는 사람 모습이지만, 속내로는 다른 숨결이자 다른 님일 수 있다. 아니, 다른 숨결이자 다른 님일 테지. 다른 별에서 지구별에 왔다고 할 만하고, 이 지구별에서 서로 툭탁거리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밝게 빛내려는 뜻으로 어우러지는 한몸이지 싶다.

  반딧불, 그러니까 개똥벌레는 춤을 춘다. 저마다 따로따로 떨어져 혼자 춤을 추기도 하지만, 다 함께 모여 새로운 빛을 이루는 모습이 되어 춤을 추기도 한다. 우리 몸은 작은 숨결 하나가 바뀐 모습일 수 있지만, 수많은 숨결이 하나로 모인 모습일 수 있다.

  참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참다운 사랑이란 무엇일까. 참다운 빛과 노래란 무엇일까. 오늘날 지구별 사람들은 왜 경제개발을 해야 하는가? 오늘날 지구별 사람들은 왜 전쟁무기를 만들어 평화를 지키겠다고 설레발을 쳐야 하는가? 오늘날 지구별 사람들은 왜 돈과 슬기와 힘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꿈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별(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별(나)은 스스로 빛난다. 별에서 살아가는 별이기에 다 같이 빛난다.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유투브에서 영화 볼 수 있는 곳] 영어 자막이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S9JVTZczjBI&list=PL02868A3F9634E286




h*******e 2014.07.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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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웃생명들과 나누는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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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낚시를 갔다가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다. 강원도 산골의 한 하천에서였다. 아쉽게도 나는 내 앞서의 세대나, 극히 적은 수의 동세대 사람들만큼 운이 좋지는 못했다. 내가 본 것은 단 한 마리의 반딧불이었다. 비록 군무는 아니었지만 홀로 추는 빛의 왈츠는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 깊은 것이었다.    지금의 어린 세대만큼은 아니라도 우리의 세대 역시 도시 생활의 큰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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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 낚시를 갔다가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다. 강원도 산골의 한 하천에서였다. 아쉽게도 나는 내 앞서의 세대나, 극히 적은 수의 동세대 사람들만큼 운이 좋지는 못했다. 내가 본 것은 단 한 마리의 반딧불이었다. 비록 군무는 아니었지만 홀로 추는 빛의 왈츠는 참으로 아름답고 인상 깊은 것이었다.

 

 지금의 어린 세대만큼은 아니라도 우리의 세대 역시 도시 생활의 큰 혜택을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우리의 세대는 종종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아름다움들을 잊곤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그리하여 풍경이 좋은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왁자지껄 떠든다. 물론, 그 또한 자연이 빡빡한 회색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조그마한 혜택이다. 그러나 아파트에 앉아 단지를 찾아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베란다 화분틀에 새가 마시고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담아두는 즐거움이나, 조용한 강계나 저수지를 찾아 깊은 밤에 낚싯대를 드리워 캐미라이트를 꺾은 찌를 세워놓고 친구와 작은 목소리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흥취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자연은 조금 더 색다른 유흥 문화의 장처럼 비춰지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서울에서 자라왔지만. 어린 시절을 자연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다. 하남과 붙어있던 아파트의 화단에는 온갖 풀벌레, 날벌레가 가득했고, 비가 고여 화단 한 쪽에 물이 고일라치면 인근에서 온갖 수생곤충이 몰려들고 올챙이가 돌아다녔다. 비가 오면 달팽이와 지렁이가 아파트를 돌아다니고, 맑을 때는 하늘로 고개를 처든 나뭇가지마다 잠자리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요즘은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도통 보기 어려운 광경들이다.

 아마 지금까지도 곤충이며 생물에 작은 애정과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낚시라는 조금은 늙은이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것은. 모두가 유년시절의 기억 탓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반딧불이는 무척 생소한 존재였다. 오직 책과 TV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일상이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조금은 전설 같이 되어버린 개똥벌레. 그래서 강원도 산골에서 본 그 반딧불이가 그렇게나 신기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받게 되었을 때, 나는 우리 부근에서 사라져가는 몇몇 곤충들을 다루는 책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펼쳐보니 뜻밖에도(?) 지면 전체를 반딧불이에게 할애하고 있는, 반딧불이만을 위한 책이었다. 보다 다양한 곤충의 이야기를 기대했던지라 처음에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딱정벌레 전문가인 저자의 경험과 입담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니, 저자의 애정이 절절하게 묻은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따스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책 후미에 담겨있는 ‘더 읽을만한 책들’이란 챕터에서는 여러 곤충 관련 서적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반딧불이 통신’을 통해 주변의 작은 이웃 생명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이 그런 관심을 지속하고 키워갈 수 있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은 아니었을지.)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오로지 반딧불이에 관한 책이었고, 반딧불이와 저자의 인연, 반딧불이의 특징인 발광의 원리, 반딧불이의 채집 방법과 사육 방법 외에도 반딧불이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과 주의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책에서는 당연히 반딧불이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덕분에 나 역시 한두 가지의 오해도 풀어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과거에 한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외국의 반딧불이종 중에는 다른 반딧불이의 발광 패턴을 흉내 내어 유인해 포식한다는 종도 있다는 내용을 본 일이 있다. 그 일을 보고 막연히 반딧불이는 성충이 되어서도 여전히 포식자로서의 습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책 속에서 소개된 반딧불이 종들은 유충 시절에만 포식자로서 살아가고, 성충이 되어서는 오로지 한순간의 사랑을 위해 곡기를 끊고 제 생명을 불태우는 것으로 적혀있다. 아마 책에 소개되기로 알과 유충 역시 발광을 하나고 하니, 외국의 반딧불이 역시 유충이 다른 종의 성충을 유인하는 것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일러스트나 편집 구성만으로 보아서는 연령대가 보다 낮은 이들을 위한 책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내용은 어른이 보기에도 부담이 없고 재미있다. 특히 발광 원리나 구애 과정에서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에는 이 책이 단지 아동이나 학생들을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쓱싹쓱싹 지워준다. 이 책은 연령에 상관없이 반딧불이라는 생소한 (혹은 그리운) 친구에게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굳이 말해보라면, 생물을 다루는 책이 실제 사진 등을 실어주지 않고 오로지 만화풍의 일러스트로만 구성을 했다는 점을 들어보고 싶다. 예쁜 일러스트들이 책의 재미와 풍취를 살려준 것은 사실이고, 개똥벌레의 실제 모습에 가까운 그림도 있었지만, 기실 생물에 관한 정보는 사진 등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보다 사실감 있고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에서다.

i**********s 2009.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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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따뜻한 빛이 되는 반딧불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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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여름 밤 초록빛 빛을 내고 날아다니는 곤충은? 답은 모두 알고 있는대로 '반딧불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딧불이'를 '반딧불'로 잘못 알고 있다. 흔히 개똥벌레라고 불리던 그 곤충의 정확한 이름은 '반딧불이'이고 그 곤충의 엉덩이에서 나는 불빛이 '반딧불'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껏 살면서 실제로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내내 저자가 부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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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여름 밤 초록빛 빛을 내고 날아다니는 곤충은? 답은 모두 알고 있는대로 '반딧불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딧불이'를 '반딧불'로 잘못 알고 있다. 흔히 개똥벌레라고 불리던 그 곤충의 정확한 이름은 '반딧불이'이고 그 곤충의 엉덩이에서 나는 불빛이 '반딧불'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껏 살면서 실제로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내내 저자가 부러웠고,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힘들어했던 모습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10년 전에 저자가 봤던 반딧불을 나는 본 적이 없을까? 그 이유는 책에 나와있다.

 

<반딧불이 통신>은 총 열 두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처음 반딧불이를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이유와 역할, 반딧불이의 생애, 반딧불이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반딧불이가 사라진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저자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려주듯, 일기를 쓰듯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반딧불이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쉽게 이 따뜻한 매력의 곤충에 빠져들게 된다.

 

반딧불이는 정이 있는 곤충이다. 저자도 반딧불이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한다. 엉덩이로 조그마한 빛을 내는 곤충이 우리 마음에 따뜻함을 주다니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 그 배경에 있는 시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에 대해 푸근하고 따뜻하게 느끼는 우리의 마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마음의 따뜻한 빛으로 느끼는 반딧불은 열이 없는 빛, 냉광(冷光)이다. 더 신기한 것은 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반딧불이들 중에서는 애반딧불이만 빼고는 암컷은 날 수 없다. 밤 하늘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은 모두 수컷 반딧불이로 구애의 활동으로 빛을 내는 것이다. 수컷들이 온갖 용을 쓰면서 춤을 출 때 암컷은 편한 객석에 앉아 그들의 춤을 감상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전부 번식을 위함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반딧불이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갔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는 반딧불이를 잡는 법부터 키우는 법까지 반딧불이에 대한 즐거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지금은 반딧불이를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딧불이는 알다시피 이슬(수분)을 먹고 살지만 애벌레는 다슬기나 우렁 등 육식을 한다. 반딧불이도 반딧불이지만 요즘은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여 물과 흙이 오염되어 다슬기나 우렁도 보기가 힘들다. 먹이가 없으니 반딧불이의 개체 수가 확연히 줄어듬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반딧불이의 신비함에 대해 알아가다가 결국 반딧불이를 볼 수 없는 환경문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곤충이 없어지다 보면 같은 생물인 사람도 언젠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마음 속에 언제나 따뜻한 빛으로 남아있는 반딧불이를 보호하는 것으로 환경보호가 시작될 수 있다. 물과 흙과 공기를 깨끗이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학부시절 반딧불이와의 인연부터 그간의 이야기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와 큰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반딧불이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의 빛 뿐만 아니라 자연과 세계의 빛(환경보호)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반딧불이 채집 경험담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들려준 저자에게 고맙다.

h******e 2009.07.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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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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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는 外柔內剛의 곤충이다. 꺼질 듯하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빛은 끈질긴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나, 술집, 모텔, 관광시설 등이 반딧불이의 사랑 장소를 점령하면서 반딧불이를 만나기 어렵다. 그 많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반딧불이는 세계적으로 2100 여 種인데, 우리나라엔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꽃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갈색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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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는 外柔內剛의 곤충이다. 꺼질 듯하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빛은 끈질긴 생명의 상징이다. 그러나, 술집, 모텔, 관광시설 등이 반딧불이의 사랑 장소를 점령하면서 반딧불이를 만나기 어렵다. 그 많던 반딧불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반딧불이는 세계적으로 2100 여 種인데, 우리나라엔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꽃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갈색반딧불이, 북방반딧불이, 그리고 왕꽃반딧불이의 8 種이 있단다. 일본은 더운 지역인 오키나와에만 44 種이 있다니, 이 곤충은 열대지방에 더 많이 서식함을 알 수 있다.

 

형광빛을 發光하는 반딧불이는 배우자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빛을 깜빡인다. 암수 둘은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서 짝짓기를 치른다. 비록 곤충이지만 백주에 사랑 행각을 벌이는 인간에 비하면 훨씬 예절(?)스럽다. 짝짓기 사랑을 마치고 나면 이후 곧 죽음을 맞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빛을 發光한다고 모두 반딧불이는 아니다. 뉴질랜드 노스섬에 있는 와이모토 동굴은 "반딧불이 동굴" 로 알려진 名所이다. 그러나, 이 동굴 속에서 초록빛을 내는 애벌레는 빛버섯파릿科의 곤충일 뿐이다. 멕시코에 살고 있는 방아벌레도 배에서 주황빛을 發光한다고 한다.

 

반딧불이의 이름은 어떻게 변했을까? 16 세기의 한자 자습서 [훈몽자회]엔 "반도" 로, [청구영언]엔 "반되" , "반되불" 등으로 기록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68 년 한국동물명집이 편찬되어 반딧불에 接尾語 이字를 합쳐 반딧불이란 정식 곤충명을 기록했다. 한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개똥벌레라고 부른다. 두엄 근처에 모여 있는 반딧불이를 보고서 개똥이 변해서 벌레가 된 것으로 착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강원도에선 개똥벌기, 충북에선 개똥버러지, 전남에선 개동벌가지, 경북에선 개똥벌갱이, 경남에선 개동벌갱이, 황해도에선 개동파리 등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중국 고전 [禮記]에도 "腐草爲螢"이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腐草란 거름더미이고 螢이란 개똥벌레란 의미이다. 반딧불이는 영어로 firefly, 일본어론 호타루로 불린다.

 

반딧불이는 俗談이나 逸話가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생활에 매우 친숙한 곤충이었다. "반딧불이가 높이 날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 는 속담은 마치 반딧불이가 기상캐스터인 듯한 느낌을 준다. 반딧불이의 飛行力이 신통치 않기에 바람이 많이 불면 높이 날 수가 없음을 시사한다. "개똥불로 별을 對敵한다" 는 속담은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 格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빗댄 말이다. 또한, 조선朝 수양대군도 어릴 적 반딧불이의 追億을 잊지 못해 백성들에게 이를 잡아 오라고 한 다음 경회루 앞 뜰에 수 백마리를 풀어 그 장관을 감상했다고 한다.

 

반딧불이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것이 "螢雪之功" 의 故事이다. 중국 진나라 효무제 시절, 車胤이란 인물이 어려운 가정 환경탓에 낮엔 일하고 밤엔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이를 넣어서 등불 삼아 공부하여 벼슬에 오른다. 같은 시기에 孫康도 너무나 가난해서 등불을 밝히지 못하고 밖에 쌓인 눈 빛에 책을 비추며 공부하여 관직에 오른 두 인물에 얽힌 이야기이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한 마리에 3 럭스 정도란다. 사무실의 밝기가 대개 500 럭스임에 비한다면 반딧불이 200 마리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그 가능성을 직접 실험해 본다. 어두운 방에서 반딧불에 의지해 성공적으로 소설을 읽었다는 저자의 실험정신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많았던 반딧불이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반딧불이가 많이 살던 곳이 채석장으로 변한 곳도 있다. 사람들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반딧불이 서식처를 쉽게 파괴한다. 반딧불이의 애벌레는 알려진 대로 청청수에만 살고 있는 다슬기를 먹으면서 성장한다. 청정수가 흐르는 江과 개천이 사라지면서 다슬기의 생태가 파괴되면 자연히 반딧불이도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무주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딧불이 축제 행사를 개최하면서 생태보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다행이긴하다. 그러나, 얼마전 무주 반딧불이 축제에 참관했던 나의 소감은 답답했다. 반딧불이 구경은 못하고 오히려 노래자랑, 장기자랑, 먹거리 장터 등의 소란한 행사만 구경한 기분이어서 너무도 안타까웠다.

  

대학 재학생이던 1996년 6월 반딧불이를 처음 관찰하면서 시작된 저자의 반딧불이 사랑이 이 책에 소록히 담겨 있다. 모두 열 두편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반딧불이의 일생을 모두 관찰하면서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네 단계를 거쳐 완전 변태하는 과정을 일일히 소개하고 있다. 반딧불이의 꽁무니엔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이 있어서 빛을 낸다며 반딧불의 비밀을 밝히면서 시작한 이야기가 螢雪之功의 故事로 끝이 난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반딧불이 연구활동과 생태계 복원사업 추진에 微力하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5****0 2009.07.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