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의 몰락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초록빛 모자'라는 단편소설을 여태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정이 그리워지는 날이 요즘 들어 퍽 자주 찾아왔고, 닭살 돋는 외로움이나 적적함이 덩달아 책을 읽게 만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와는 배나 다른 감동과 기쁨이 나에게 아주 나른한 봄볕처럼 찾아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고독한 인간들이었다. 대낮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인형 같기도 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주 외로운 이국의 여인들 같기도 하였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그녀들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떠오른 것은 백지였다. 아주 하얀 종이. 삶아 빤 아기 기저귀처럼 뽀얀, 안개처럼 모호한 것들. 주인공들은 그 흰색의 세계를 홀로 걸어가고 있는 검은 점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단지 그 지질린 백색의 이미지만 남아있었다. 특히 오후의 세계를 읽을 때는 더했다. 가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왜 소설을 읽나? 그리고 왜 내가 소설을 읽으며 웃고 미간을 찡그리고 그럴까? 달의 몰락에는 그 해답이 있을까? 나는 때때로 소설 속의 허구의 인물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 위로가 진정한 위로는 될 수 없을 것이지만...... 사람의 감정을 가끔, 아주 예리하게 건드릴 때가 있다. 그 순간의 기쁨을 얻기 위해선가? -----이 작품집에서 달의 몰락, 오후의 세계, 초록빛 모자, 겨울의 환이 가장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