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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에 의하면 철학의 진정한 대상은 보편적,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언어에 의해 ‘진리로 규정된 진리’이다. 마찬가지로 역사학의 대상도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과거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존재하는, 텍스트화한 과거이다. 로티가 언어 이론을 통해 철학과 역사학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면 화이트는 문학과 역사학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있다. 화이트가 강조하는 것은 텍스트로 존재하는 역사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으로서 역사서술이 갖는 문학성이다. 화이트에 따르면 모든 역사 서술은 비유의 수사학, 구성적 상상력, 플롯을 동원한 이야기로서, “순수 역사”가 아니라 “메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고, 그 점에서 역사 서술과 창작, 사실과 허구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점은 없다. 라카프라도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역사 연구는 언제나 언어에 대한 연구라고 본다. 그러나 화이트가 역사 서술, 곧 역사 쓰기에 주목한다면, 라카프라는 텍스트화된 역사의 읽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역사가로서 데리다적인 입장에 가장 근접한 라카프라는 컨텍스트(사회적 현실)도 언어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텍스트(기록)와 컨텍스트의 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해체하고, 텍스트 그리고 텍스트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텍스트가 생산되면서 재생산되는 컨텍스트 상호 간의 복합성에 주목한다. 이처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서 텍스트의 범주를 확장한 라카프라는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역사가에게 텍스트와의 ‘대화’, 즉 테스트 저자뿐 아니라 상호 긴장과 대립, 경쟁관계에 있는 텍스트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화이트에게 역사 서술이란 진리를 텍스트를 통해 전달하는 언어적 행위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역사 서술이란 과거 속에서 발견한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사실 혹은 역사의 진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서술은 하나의 언어적 인공물이다. 역사 서술은 제멋대로 서술하고 지어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야기체로 형성하고 구성한다는 의미에서 픽션이다. 역사서술은 소서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경험에 대한 언어적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인식론적 목적을 가진다. 똣한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상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 서술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방법에서 과거의 사실이라고 불리는 것을 서술하는 특성을 가진다. 즉 역사 서술은 방법론상 모방적이다. 화이트는 역사 서술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플롯 구성을 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역사의 문학성을 강조한다. 플롯은 역사 사실에 내재되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는 플롯을 구성할 때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역사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 담지하고 있는 신화, 우화, 민속, 과학적 지식, 종교, 문학 예술 등에 개념화되어 있는 관계 양식들이 역사가의 플롯 구성의 양식에 직접, 간접적으로 양향을 미친다. 더욱이 사료는 파편적으로 남아 있기에 사료와 사료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 역사적 상상력이 요청된다. 그 역사적 상상력은 콜링우드가 말한 바와 같이 이미 확증된 사걸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어떤 사건들이 틀림없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식의 구성적 상상력이다. 역사가는 역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 속에 있는 관계 양식들과 자신의 구성적 상상력을 통해서 주어진 사건들을 배열하는 플롯 구성에 참여함으로써 역사서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231-233쪽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그것이 그 자신에 의한 것이건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건 간에-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 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역, 까치, 2000, 5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