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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정말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서평 하나를 쓴다. 얼마전 이 책의 저자이자『전쟁의 발견』의 저자인 이희진 선생님과 온라인상에서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아직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예전에 필자가『전쟁의 발견』에 대한 서평을 쓴 바가 있었고, 그 서평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인데...저자의 학문적 스타일이 어떤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대화가 엇나갈 수도 있겠다~싶어서 또 다른 책을 하나 구입해보게 되었다. 일단 이 2권의 책 말고도 여러 책들을 쓰셨지만, 일단은 이 책 하나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구입해놓고는 이래저래 송년회다, 신년회다, 종무식이다, 시무식이다...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겨우 서평을 쓰게 되었다.
암튼...딱 제목만 봐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새삼 논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책 표지의 신공황후가 그려진 우표만 봐도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의 목차는 크게 제1장 식민사학 왜 문제인가?, 제2장 한국 고대사 학계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 제3장 깡패 논리로 심어지는 식민사학 이렇게 3개로 구분할 수 있겠다. 제1장에서 저자는 식민사학이 무엇인지, 일종의 개념 정리를 하고 있다. 그 다음에 그러한 식민사학이 한국 사학계에 어떤 식으로 투영되었는지, 한국 사학계가 어떤 식으로 식민사학의 잔재 속에서 허우적대는지를 학문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지, 왜 이런 현실이 오늘날 계속되고 있는지...비판적인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었다. 이 정도만 말해도, 왠만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와! 정말 이런 내용을 책으로 써낸 사람이 있단 말이야!!!'라고 느끼면서 놀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다. 그리고 그 문체가 상당히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데다가 실명을 거론하고 있어서 더더욱 놀라운 글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딱 책 표지만 살짝 넘겨서 나오는 저자의 약력만 보고도 앞으로 나올 책 내용이 기대되서 두근두근거렸다.
- (전략) 하필 역사학 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한국 고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 와중에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될 고대 한일 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중략)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이러한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다 -
우리나라의 그 어떤 역사학자가 이런 내용을 거침없이 책 표지의 '저자 소개'에 쓸 수 있겠는가. 그것도 인터넷상에서 활약하는 아마추어나, 되도 않는 대륙삼국론 등을 주장하는 재야사학자가 아닌 정식으로 대학원에서 석 · 박사 학위까지 받으신 분이 말이다. 이전에 책을 읽을 때는 이런 분인 줄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니 저자에 대한 상당한 호기심이 갔다. 아무리 비주류 사학자라고는 하지만, 정말 이런 책을 내고도 별탈이 없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언급하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한국 고대사학계가 어떤 곳인지는 필자도 대강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그렇게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겨봤다.
일단, 제1장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식민사학의 갈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야 원체 유명한 식민사학자니깐 알고 있었지만,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에 대한 내용은 몰랐던 부분이라서 적이 놀랐다. 그는 단지 꼴통 보수학파와 달랐을 뿐, 그 역시 식민사학자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주장이었다. 단지 그가『일본서기』를 비판적으로 보자고 했을 뿐, 오히려 더 교묘하게 식민사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李弘稙의『韓國古代史의 硏究』를 실례로 들면서 쓰다를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한 '양심적인 학자' 쯤으로 기억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다. 식민사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교묘하고, 깊숙하게 한국 고대사학계에 스며들어 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한국 고대사 학계의 기득권층을 규탄(비판이 아니라 거의 규탄 수준이었다. 필자가 느끼기에는)하는 내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는 내용들이다. 이병도 선생님, 그리고 서울대학교,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줄줄히 졸업해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는 역사학자들까지...그러면서 저자는 창의력이 말살된 학풍은 식민사학을 재생산할 뿐이며, 남의 연구를 베껴 먹는 성향이 곧 식민사학을 재생산하는 것과 맞물려 학계를 좀먹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 특히 고대사 학계의 식민사학 문제는 식민사학 자체의 논리보다 학계의 구조적 비리와 훨씬 더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그 식민사학의 잔재를 체계적으로 추적해서 청산하기 어렵다는 저자의 지적이 피부에 와닿는 듯 했다.
어떻게 보면 고고학을 전공하는 필자 역시 이러한 역사학계의 문제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저자는 143~148쪽에 걸쳐 '고고학 팔아 식민사학 비호하기'라는 작은 장을 마련해 고고학을 비판하고 있었다. 저자는 고고학이 역사 해석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 하면서 고고학은 오랜 시간에 걸친 문화 흐름을 보여주는 데 적합한 학문이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정치적 변화를 보여주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치의 영향과 문화의 영향은 다르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문화의 영향, 냉전 시대 소련에 펩시콜라가 들어간 것,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 베트남에 한류 열풍이 부는 것 등을 이유로 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으로 고고학을 해석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오히려 문헌에 나오지 않는 기간의 일반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문헌사가 아닌 고고학으로 복원이 가능하다.『삼국사기』만 갖고, 삼국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집에서, 무슨 그릇을 쓰면서 살았는지 알 수가 있을까? 전혀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적힌 기사가『조선왕조실록』처럼 매일매일을 적지 못 하고 있는데, 그 공백 기간의 일까지 문헌만 갖고도 알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고고학은 단순히 오랜 시간에 걸친 문화 흐름뿐만 아니라, 특정 유물과 유구의 변화상을 통해 급진적인 문하의 변화상에 대해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역사고고학의 경우, 문헌과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지만, '문헌에 이러이러한 기록이 있으므로, 그 고고자료는 그렇게 해석되서는 안 된다!' 라는 식의 결론은 도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특히 토기 같은 경우는 사용자(더 엄밀히 말하면 그 사용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그것을 만든 제작자)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으므로 그걸 갖고 사용세력에 대해 구분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물론 저자의 발언처럼 토기만으로 100% 세력을 구분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기가 출토된 유구의 종류, 공반 출토된 다른 유물까지 같이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과 구소련, 미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고고자료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데에는 당연히 그와 관련된 문헌기록이나 뉴스나 신문같은 언론매체, 수많은 인터넷 상의 자료가 있기 때문에 교차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고대사에서 그럴만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없는 부분은?? 믿을 수 있는 것은 고고자료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고고학을 비판하면서 언급한 학자로는 가야사 연구자이신 金泰植 선생님인데, 솔직히 이 분을 가야 고고학자라고 보는 고고학자는 없을 것이다. 이 분은 사학자이다. 우리나라의 고고학 자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보고서로 잘 만들어져 전부 공개하고 있는데, 그런 자료를 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인용 과정에서 고고 자료의 해석을 고고학자와 다르게 하는 경우다. 물론 별로 해석하지 않고, 보이는 현상들을 나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봤을때 저자가 김태식 선생님을 언급하면서 고고학을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그건 필자가 인류학자를 거론하면서 문헌사학계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일이랄까?
필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한국 고고학의 태동 및 성장에 있어 일본 고고학(혹은 건축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얼마전 전국고고학대회때도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있어왔고), 식민고고학(식민사학처럼)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고고학계의 영향이 적지는 않지만, 고고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새롭게 확인되는 유물과 유구를 갖고 논리를 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과거 수준에서 발전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일본 고고학의 영향을 받을지언정, 연구과정이나 연구성과에 있어 저자가 비판하는 식민사학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골치아픈(?) 문헌사를 공부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필자도 한때는 한국 고대사 전공을 하려고 했으므로), 그러한 식민사학에서 탈피하는데 있어 고고학이 어떤 도움이 될만한 것은 없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제2장에서 저자가 크게 지적한 3가지,『삼국사기』초기기록에 대한 지적, 4세기 백제와 일본의 세력균형에 대한 지적(더불어 천관우 선생님에 대한 지적까지), 신라가 일본에 보인 저자세에 대한 지적은 여러모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삼국사기』초기기록에 대한 지적이야 필자 역시도 저자와 공감하는 부분이며, 실제 고고자료 상으로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저자가 실례로 들어준 고구려, 백제, 신라 트집 잡기 시리즈(?)는 필자가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는데 유용했다. 특히 노태돈 선생님이 많이 까이셨는데(?), 아마 이는 한국 고대사학계의 큰 기둥으로 남아 있는 '부 체제론' 때문인 것 같다. 이종욱 선생님과 극히 대립적인 이 이론에 대해서 필자 역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그게 좀 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그밖에 4세기에 대해서 저자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랑 기본적으로 생각이 달라서 딱히 할말이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신공황후의 활약과 칠지도 등을 4세기가 아닌 3세기때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4세기가 한-일 양국의 고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지는 못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하는 4세기 근초고왕에 대한 평가가 심히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4세기에 백제가 영산강 유역 등을 완전하게 병합하지도 못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삼국사기』에는 근초고왕 재위 시절에 영산강 일대가 백제에 병합되었다는 직접적인 기사는 없다. 다만,『일본서기』의 신공황후 관련 기사를 4세기로 비정하여 그렇게 해석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고고자료상 4세기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를 통합했다는 근거는 없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고고학이 잘못 해석되었다고 하면서, 식민사학에 일조하였다고 비판하신 것 같은데...오늘날 영산강 유역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그 지역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토기를 비롯한 유물과 그 곳에서 확인된 수많은 고분들을 갖고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4세기에 영산강 유역은 백제에 통합된 지역이 아니었다.' 고 말이다.
암튼, 이 부분은 나중에 저자와 따로 온라인상에서 얘기를 나눠봐야 할 부분이므로 여기에서는 Pass!
마지막으로 신라가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의견에 대한 지적, 이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료 비판에 있어 다소 비객관적인 시각으로 당시 역사를 바라보다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 김태렴의 구라(?) 사건만 보더라도 당시 신라가 일본에게 저자세로 일관했다고 볼만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삼국시대 내내~통일기까지 한반도 혹은 중국에서 수많은 인력이 일본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본의 국력이 성장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새로운 성장 원동력의 유입이 곧 일본이라는 국가의 성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일본이 그렇게 성장할 동안 한반도 내의 다른 정치세력들의 성장이 정체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기 이후 일본의 성장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가쁘게 제2장까지 살펴본 저자는 제3장에서 드디어 칼을 뽑아 단죄를 한다! 한국 고대사학계의 온갖 비리와 추악한 실태를 낱낱히 고해 바치고 있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제3장의 제목이 '깡패 논리로 심어지는 식민사학'이겠는가! 깡패 논리라...정말 저자의 호탕함이 절로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3장의 작은 챕터들을 살펴보면 그걸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검열보다 더한 검열 - 심사
어떤가...그동안 이런 글을 썼던 역사학자가 또 어디 있을까? 제3장의 내용은 필자가 100% 경험하지도, 동의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필자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고, 또 직접적으로 살에 맞닿는 내용이라 더 잘 읽혔다. 특히 심사라는 부분, 뭐 대학원에서 교수님이 지도학생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야 예전부터 나온 말이고, 기득권층을 위한 시스템이라든가, 파워와 야합, 학술지 등급제(야합의 길), 야합에서 비호로, 공개 발표(쇼 같지 않은 쇼), 편파 판정, 검증 기피, 패거리 가르기 등등. 어떻게 보면 가려운 곳을 쏙쏙 긁어주고 있는 글이고, 어떻게 보면 감추고 싶은 것을 팍팍 들춰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사학계는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하게끔 만들어준 내용이기도 했다. 분명 다른 나라에서도 자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쳐주는 사학과라는 것이 있을텐데 그 나라에서는 이러한 학술 시스템이 어떻게 정비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런 면에서 고고학과 관련된 부분은 필자의 생각과 일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대단히 굉장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그 용기와 자신감에 찬사를 보내고 싶으며, 그러한 배짱과 호탕함을 지닌 저자의 성격에 존경심까지 보내고 싶다. 그렇기에 나중에 저자와 온라인상에서 대화할 생각을 하니, 더 흥분되고 들뜨기까지 하다. 암튼, 나중에 시간을 두고 저자가 쓴 책을 몇권 더 읽어보려고 한다. 어쨌든 간만에 속시원하고 통쾌한 내용의 책을 봐서 아주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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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작정하고 이 책을 쓰기로 한 것 같다.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고대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 책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할려고 한다(7쪽)고 거두절미하고 서두에서 공포하고 있다. 한일 고대사는 서로 180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식민 지배의 정당화라는 명분 얻기였다. 한국 사람들에게 ‘너희는 조상 때부터 식민 지배를 받아야 할 만큼 못난 족속이었으니 현실을 받아들여라’란 메시지를 머리 속에 구겨 넣고자 하는 정치적 요구에 맞추어진 역사를 만들어 냈다. 사료가 적은 고대사 분야는 각 시대사 가운데 가장 조작하기 쉬운 분야일 뿐만 아니라,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 분야이다(14쪽). 식민사학의 뿌리는 ‘일본서기’다. 이를 통해 만든 것이 황국사관으로서 만세일계의 황실을 받들어 온 일본 민족의 역사를 구성하고 황실의 존엄과 국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사관이다. 이러한 식민사학의 교육을 받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지금 한국학계를 지배하고 있고, 그 밑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학계의 현실을 저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마구 쏟아낸다. 타당성이 있는 얘기이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 개인적인 막말 수준의 언어를 쓴다는 것이 조금 거북했지만 사실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선 일정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저자는 한국 고대사에 관한 논문도 문제 삼는다. 식민사학자들이 제시한 근거를 찾아 보았지만 없다고 얘기하고, 근거가 없이 결론만 명백하게 내렸다고 얘기한다. 또한, 일본서기의 왜곡과 오류는 지적하지 않고 그것을 인용하는 국내 역사학자의 태도도 문제다. 역사학자는 ‘기록이 항상 진실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뒤에 숨겨진 사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175쪽).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국내 역사학계의 학술 토론 방법도 비판하고 있다. 지정 토론자까지 지들(?) 맘대로 정해서 끼리끼리 띄워주는 쇼나 하고 끝내 버릴 수 있다(241쪽)고 열변한다. 역사는 현실이다. 오늘이 역사다. 매일 방송, 인터넷, 신문지면 등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 역사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연일 미디어는 상반된 기록들을 쏟아낸다. 역사는 지금도 만들어 지고 있다. 후세에 올바른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지금 이 순간도 느낀다. 진실된 정보와 거짓된 정보가 난무하는 현실 앞에 시민은 냉정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기호체계처럼 현실 뒤에 감추인 기호들과 본질들을 볼 수 있는 힘을 책을 통해 길러야 한다. 굳이 책이라고 함은 책은 읽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읽고, 비판하고, 긍정하는 종합적 사고체계를 통해 뇌가 훈련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면위의 파도는 바람에 의해 움직이지만 해저에 있는 물길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거대한 흐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
| 70년대에 한참이나 민족사관이니, 식민사관이니,추종자가 누구이니 참 많이도 토론했었는데 요즘 많이 시들해 질 때에 다시 한번 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쯤 제대로 역사가 고쳐지고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직시하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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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에 대해서 이 책이 설명한 부분을 읽게 되면 애매모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없었더라면 식민사학이라는 말 자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식민사학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그런 학문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필자의 말에 의하면 꼴통 계보와 학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릴 쓰다 소키치를 필두로 한 계파. 식민사학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모호하지만 바로 쓰다 소키치 계파로 인해 그 애매모호성이 더욱 증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애매모호하다고 해서 쉬쉬 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당황한 만한 것은 우리 나라가 쓰다 소키치를 식민사학자로 분류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사기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칭송해왔다는 것이다. 그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식민지 시대는 이미 끝이 났는데 어째서 아직도 마치 아직도 식민지 시대인 듯 식민사학자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것인지 조금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뿐만 우리도 그 식민사학의 뜻을 알고 식민사학이 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 있게 보지 못하면 우리는 식민사학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애매모호하다는 이유로 알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봐주어서도 안된다.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기사라도 뜨면 당장에 가서 욕을 쓰고 올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지금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때문에 말들이 많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문제지만 왜곡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서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제1장 ‘식민사학 왜 문제인가?‘와 제2장 ’한국 고대사 학계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와 제3장 ’깡패 논리로 심어지는 식민사학‘으로 이 책은 이루어져 있다. 이만큼의 구성으로 그 안에 담긴 내용으로 아마 식민사학이라는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아는 것만큼이나 이해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좀 더 알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래서가 아니라 당연히 식민사학가 한국고대사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조금 어두운 부분을 다룬 책이었지만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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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내가 가장 즐겨보던 프로가 종영했다. 바로 역사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그램은 다른 형태로 몇 다시 방영되긴 했지만, 이마저도 얼마전엔 끝나버렸다. 주말에 내가 볼 만한 프로가 또 하나 사라진 것이다.
역사란 퍼즐찾기 혹은 수수께끼 풀이와 같다. 아무도 모르는(그때 타임머신을 타보지 않고는.. )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남겨진 흔적들을 통해 추리해 보는 과정이다. 때문에 해석하는 이의 개인적 견해가 자주 반영되고, 제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아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른바 전문가집단의 합의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역사'를 이루어 낸다. 과거에 그러했든 안 했든 후세에는 이 해석된 '역사'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건데 '역사'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각 왕조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고, 책이 되었건, 건축물이 되었건 그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유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될 수록 이러한 유물들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져 과거로 올라갈 수록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 쉽지가 않다. 즉, '주관적 판단'의 여지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식민사학'이라 부르는 일단의 학자들이 저지른 실수(?)의 단초가 된다.
'식민사학과 한국 고대사'는 이러한 식민사학에 대한 정면 비판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 언급된 이들이 사학계의 유명인사라곤 하나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인물이기에 그다지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저자의 표현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어이없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매스컴이나 기타 여러 경로로 우리의 사학계가 '식민사학'의 영향아래 아직도 놓여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과연 무엇이 식민사학이고, 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이 공유되지 않았다. 그저 '눈에 확 띄는' 임나일본부설이나 광개토대왕비의 조작파문 등에 대해서만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형편이다. 이런 차에 저자는 아직도 우리의 역사학계는 그러한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 황국사관의 영향아래 놓여있다고 단언한다. 과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세가지 논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식민사학이 실증사학이냐는 점이고, 두번째는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세력은 누구냐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누가 이들을 방조하냐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어가면서 식민사학의 허구성을 들춰낸다. 조잡한 증거위에 어색한 변명으로 우리 고대사의 몇백년을 깡그리 날려먹은 것이 바로 식민사학의 영향이다. 두번째 이러한 경향을 강화시킨 세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방 직후 일본의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당시 고대사학계였다. 그들이 이후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해왔고, 그에 따라 사학계는 마치 마피아집단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방조자로 언론과 관료를 짚고 있다. 무사안일/출세주의에 물든 관료들은 학계의 기득권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며, 저명하다는 이름으로 언론이 끌어들인 기득권 세력의 견해는 곧 정설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견해는 단호하다. 글에 나타나는 느낌 역시 강하다. 한마디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읽고 있노라면 기존 고대 사학계의 폐해가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비단 이 집단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유독 과거에 대한 청산없이 제 몫 차리기에 급급한 사학계에 한조각 비판을 던지는 듯 하다.
다만, 이 책이 좀더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비판의 칼날을 조금 거두고 고대사에 대한 기존 견해와 새로운 저자만의 견해를 좀 더 다루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비판의 내용만 가득하다보니 처음 이 책에서 얻고자 했던 식민사학과 한국 고대사에 대한 다른 견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과거 자신의 저서 혹은 저술로 이야기를 갈음하는 부분에서는 '처음' 접했는데 어찌 과거 저술을 아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각주나 요약문 정도로라도 자신의 견해를 강화시켜주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다. 적어도 이 책은 학술지가 아니니 말이다.
비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다. 저자의 이런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물론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보수적으로만 보이는 고대 사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들이 다루는 역사는 단지 그들만의 역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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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으로 나라가 떠들썩 했었다. 요즘은 북한 핵 문제에 밀려 뭍혀지고, 또 경제위기에 눌려 잊혀져 간다. 그러나 국가의 가장 큰 목표중 하나가 바로 영토를 지키는 일이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살아온 삶의 질곡이 아무리 아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지켜야 할 역사와 국토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과연 민족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 흐르는 세월에 따라 합쳐지고 쪼개지면서 바뀌어가는 국가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 자체가 비교적 근세의 일이 아닌가라고...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까마득한 과거의 고대사쯤이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역사의 중요성이다. 역사. 그리고 특히 고대사는 단지 까마득한 과거의 일뿐만은 아니다. 그 역사는 바로 오늘날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국사관에 미쳐 날뛰며 젊은 목숨을 어이없이 버려가던 일본인들의 삶을 생각하면 역사라는 것이 가지는 힘의 무서움을 느낄수 있다. 우리나라가 식민통치에서 해방된지 벌써 오래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건국 60년 기념 행사를 치루었다. 그런데 아직도 식민사학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다고 설명하는 이 책은 참으로 놀라운 책이다. 그까짓 식민사학정도는 벌써 극복해버렸고, 지금은 동북공정에 맞서서 북으로 북으로 우리의 민족적 자존을 펼쳐가는 시대라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분강개한 목소리로 꾸준히 설득하는 이 책을 차분히 읽어보면 어떻게 식민사관이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것인지, 얼마나 식민사관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고대사학계에 뿌리깊게 자리를 내리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민족적 자긍심이 필요한 시대에 그들이 미치고 있는 해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 또 저자같은 사람이 겪었을 수모와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반인이 읽을수 있도록 무척 쉽게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약간 지나칠 정도로 논리정연하게 쓰여져 있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깨닳을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답답한 가슴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책의 페이지마다, 줄마다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큰 공감을 느꼈는지 알 수가 없다. 저자와 반대진영에 선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가 어떻게 그렇듯하게 들릴지라도 이 책의 저자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가치는 결코 퇘색하지 않을 것 같다. 식민사학이 어떻게 오늘날 실증주의 사학이란 이름을 뒤집어쓰고 학계의 주류행세를 하게 되는지의 과정이 너무나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시대를 지내면서 역사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고,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를 모두 거꾸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들이 이미 철지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대사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 뿌리가 너무도 깊은 학파들이, 교묘한 탈을 쓰고 주류행세를 하고 있는 현실을 철저하게 깨달으면서 이 책을 쓰면서 비분강개했을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수 없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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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언론에 잃어버린 고구려 역사 137년을 되찾았다라는 기사가 떴다.외국의 유명 교육사이트가 한국의 고구려,백재,신라 건립연도를 심하게 왜곡하여 고구려는 BC 37년 대신 AD 100년으로, 백제는 BC 18년 대신 AD 250년으로, 신라는 BC 57년 대신 AD 350년으로 각각 기술하여 고구려는 137년,백제는 268년,신라는 407년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이를 시정시켰다는 것인데 막상 목청껏 외국의 무식한(?)한국사 인식을 비난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이 내용은 바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쓰여 있는 내용이 아니던가?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 백제는 3세기 고이왕, 신라는 4세기 내물왕 때가 되어서가 비로소 고대 국가체제를 갖추었다.’라고 가르치고 외국에는 왜곡된 내용이니 고쳐달라고 하였으니 그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주: 고대국가체제를 갖추었다는 것은 삼국이 그시기에 건국되었다는 의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 한국강단사학계는 고대국가건국시기를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의 주장보다 더 후대로 본다는 것이다.2005년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를 보면 신라는 4세기에서 5세기 전반으로,고구려는 2세기에서 3세기후반으로 건국시기가 더 늦추어졌다. 물론 명확한 증거와 논리가 있다면 수긍해야 한다.하지만 그것에 근거해서 그런 학설이 나왔을까? 스승의 왜곡된 가르침을 절대 진리인양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패거리정신으로 선후배가 뭉쳐서 자료를 왜곡,편집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갖다붙여 학설이라고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다.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수호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식민사학인 것이다. 식민사학은 본래 조선인들을 일제의 충실한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그 본질은 조선인의 열등감과 무능력을 강조하여, 일본인의 지배를 받을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전개과정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일본이 한반도에 대해 역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가 가장 만만한 대상으로 선택됐으며 사료에 대한 왜곡,편집을 통해 목적을 충족시켜 갔다. 물론 시간이 흘러서 변화는 있다. 과거에는 고대일본의 야마토정권이 한반도를 정복하고 통치했다고 했지만, 근래에는 막강한 야마토정권이 적어도 한반도남부의 국제정세정도는 좌우할 영향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겉옷은 바뀌었지만 일본이 우위여야 한다는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맞추어 나온 학설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삼국의 건국시기 늦추기,4세기 지우기,신라의 왜에 대한 저자세외교설등으로 하나같이 강단사학의 대표적 이론들이다. 해방후 식민사학자들은 한국대학교의 강단을 장악했다. 그들이 식민사학을 고수하는 것은 망해버린 일본제국에 충섬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배운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라는 신분이 문제였다. 제자들을 키우고 학파를 형성한 것이다.교수는 이바닥에 남을려는 제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스승과 제자사이가 어느덧 교주와 신도로 변한다. 좁은 바닥에서 패거리를 만들고, 이권과 자리를 자기들끼리 나눠 가졌다.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이과정에서 정당한 비판과 검증은 사라졌고, 교수에게 순종하는 자들만 득세했다.창의력이 말살된 학풍은 식민사학을 재생산 하고, 표절과 재탕,짜집기가 횡횡하며 학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한국강단사학계의 문제는 식민사학 자체의 논리보다는 학계의 구조적 비리와 더 밀접하게 얽혀 있기에 그 잔재를 체계적으로 추적해서 청산하기는 현 학계구조에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식민사관이란 실체가 있는 역사관이 아니라 권력에 복종하고 현실에 야합하려는 반역사적 태도를 학문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저자 이희진은 자신의 약력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하필 역사학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한국고대사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또한 그와중에 못볼 꼴을 많이 보게될 고대한일관계사부분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대사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존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되는 미천한 신분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책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식민사학이 왜 문제인가,한국고대사학계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 식민사학이 어떻게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가이다 맺힌것이 많아서 인지, 저자는 몸담은지 15년이나 되는 한국고대사학계를 향해 복마전,지식사기,파렴치,깡패짓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밷는다.박사학위까지 딴 저자가 식민사학의 엉성한 논리를 파 헤칠때는 통쾌함을 느끼다가도,강단사학계의 구조적 문제를 읽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희망은 없는 것일까...그냥 이대로 흘러가는 것일까... 식민사학과 그 구조적 생산체계에 관심이 많은 강호제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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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우면서 참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이 기원전 2333년으로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 청동기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10세기라고 배웠다. 그러므로 고조선은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는 설명에 대치된다. 사료와 유물 부족으로 그 궁금증은 오랫동안 풀 수 없었다. 그런데 2007년 국사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우리나라에 청동기가 도입된 시기가 기원전 20세기에서 기원전 15세기로 1000년 가까이 빨라졌다고 한다. 이는 그간 발굴된 유물을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하여 얻게 된 과학적인 성과라고도 하고, 어쩌면 고조선의 건국 시기에 맞추고자 끼워 맞춘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역사는 시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지도가 없이 먼 길을 가다 보면, 가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처음에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길을 잘못 제시해 두면 그 뒷사람들은 그 잘못된 길을 따라 점점 더 멀리,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되돌아서 진정한 방향으로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린 이런 일이 일본 식민지배 시대에 우리 국사 해석, 특히 고대사 분야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서 다져진 넓은 길 취급을 받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고발하는 내용이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2008, 이희진 지음, 소나무 펴냄)이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리나라 국사학계에 식민사학이 얼마나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는지 통감하며 그 위험성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는 식민사학 왜 문제인가?, 한국 고대사 학계에 침투해 있는 식민사학의 논리, 깡패 논리로 심어지는 식민사학의 세 부분에서 식민사학이 만들어지고 성장하여 정착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서 미래의 교훈을 찾는 역사학의 본분은, 현재를 위하여 과거를 조작하는 일본의 황국사관으로 오염되었다. '만세일계의 황실을 받들어 온 일본 민족의 역사를 구성하고 황실의 존엄과 국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쓰여진 <일본서기>, 그 황국사관에서 파생된 식민사관이 일본 식민지 시절에 우리나라를 정복했다. 저자는 식민사관을 '한반도 지배를 위해 조작된 일본 역사학계의 논리를 근거도 없이, 또는 억지 근거를 만들어 좇아가는 것'으로 규정했고, 현재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주류인 서울대학교 출신의 상당수가 식민사학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2부에서 그 근거를 조목조목 대고 있다.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신덕황후도 그처럼 조작된 일본 역사의 증거로 등장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맨 처음의 청동기 도입 시기 수정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과 유물의 발견에 따라 바로잡힐 수 있는 역사가, 해방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생살부를 든 지도 교수의 영향력에서 어렵게 어렵게 벗어난다손 치더라도, 학술지에 게재할 논문 심사에서 배제되기 일쑤이고, 야합과 비호, 사리사욕과 편파 판정 등으로 인해 주류와 다른 의견은 발을 붙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와 같은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는, 공익제보자와 같은 심정으로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내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황우석 사태가 떠올랐다. 국가의 자존심이 걸렸고 신지식인으로까지 뽑혀서 국고 지원과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기 때문에, 그는 실패로 끝난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대신 끝까지 부인하고 숨기고 조작했다. 이 책에서 다룬 우리나라 식민사학자 주류들도 어쩌면 똑같지 않을까?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가속이 붙은 차에 타고 있는 그런 입장 말이다. 그러나 그들만의 영달을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자긍심을 양보할 수는 없다. 식민사학에 대한 반발로 지나친 국수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탄스러운 현실을 똑바로 짚어낸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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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이 우리 국민에게 끼친 영향력과 우리나라 역사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식민사학과 대한민국의 고대사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식민사학'의 정의를 좀더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사전을 뒤져봐도 식민사학에 대한 명쾌한 정의는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를 만난 이유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펼쳤다.
서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이 자기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한다는 게, 더군다나 일제가 자기들 편하게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의 틀에 우리 역사를 담아서 가르친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 대한민국 고대 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데 무슨 이유로,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방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식민사학을 심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리고 그런 자들이 활개치고 다니게 왜 가만 놔두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저자는 복잡하고 유서 깊은 그 이유에 관해 쉬운 언어로 다듬어서 독자를 이해시키고 있다. 그의 살아 있는 경험담과 예화는 설득력을 높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일조를 한다.
'식민사학'이란 역사를 통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역사학을 일컫는다. 식민사학의 뿌리는 고대사와 직결되어 있고, 고대사는 각 시대사 가운데 사료가 적어 조작하기 쉽다고 한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고대사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대한민국의 고대사는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에 찌든 일본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고 한다.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은 학계의 원로들이 살아 남으려면, 자신들이 키운 제자들이 학계를 장악해야하고 굳건하게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세력이 모인 집단이 한국 고대사 학계의 기득권층이다.
한국 고대사 학계에 몸담은 지 15년이 되어가는 저자는 한마디로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그는 고대사 학계의 비리와 병폐를 누구보다 잘 하는 한국 고대사의 전문가다. 이 책은 젊은 학자가 학문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원로와 선배, 동료들의 역사왜곡과 비리를 폭로하고 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그것도 젊은 학자가 그 계통의 대표겪인 원로 학자들의 이름을 낱낱이 공개하면서 그들을 실랄하게 비판, 고발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교수라는 그의 직업까지도 위태롭게 만드는 모험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위험을 무릎쓰고 한국 고대사 학계의 식민사관과 모든 문제점을 고발한 저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계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억울함 때문일까, 자신의 학풍을 잇지 못하는 울분일까, 식민사관에 물든 자들이 그의 앞길을 막기 때문에, 아니면 대한민국 고대사를 바로잡기 위해서일까?
그렇다. 대한민국 고대사를 바로잡아 다시 쓰기를 바라는 저자의 애타는 심정을 충분히 느꼈다. 어찌보면 달걀로 바위치기나 매한가지지만, 그 출발선에 이희진 교수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를 응원할 것이다.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많은 학자들이 그와 더불어 연구하고 새롭게 고대사 학계를 변화시키기를 바란다. 그에 주장에 따르면 아주 꿈같은 바램이지만,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라. 이 책을 읽는 중간중간 교수들의 이름이 그대로 공개되어 적잖이 놀랐으나, 일면 시원한 감도 없잖아 들었다. 이 책을 그들이 읽는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식민사관을 넘어서기 위한 책 임에는 분명하나 내가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게 구성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식민사학이 우리에게 준 영향과 잔재,앞으로의 과제와 대책 등을 다루었으면 공감대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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