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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나라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해온 가장 큰 힘은 바로 선비라는 사대부의 존재이다. 500여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조선은 이들 선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정책이나 정치이념에서 비록 절대군주의 나라였지만 선비들의 힘은 막강했다. 군주의 교체까지도 감행했던 선비들은 조선의 기둥이었던 것이다. 그럼 조선과 지척에 있던 일본은 어떠했는가? 조선에 선비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그에 사응하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비록 그 형태는 상이하지만 두집단의 정치적배경이나 힘이 동일시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그리고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출현은 조선의 선비보다 그 연대를 앞서 있다. 대략 서기 9세기에서 10세기에 무력을 소유한 형태의 집단이 출현하면서 사무라이라는 신흥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이 책은 사무라이의 출현에서 부터 성장 그리고 몰락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를 소개하면서 단순히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성망흥쇠의 기록이 아닌 사무라이이 계급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을 역사적 고찰보다는 사회문확적고찰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내용 또한 광범위하고 내용의 깊이 상당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하면 히데요시나 도쿠가와등의 쇼군을 대표하여 칼을 차고 인민을 호령하는 무사계급정도로 알고 있는게 현실이다. 사무라이계급의 공식적인 해체는 메이지 유신(1868년)이후 그 특권이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대의 일본의 아직도 사무라이정신이라는 무사도에 대해서 국민들 의식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마치 선비정신이 아직도 대한민국국민들의 정서에 남아있듯이 말이다. 그러면에서 볼때 사무라이라는 계급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금의 일본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무라이시대를 크게 나누면 1190년-1333년의 최초의 바쿠후시대인 가마쿠라시대, 15세기-16세기의 센고쿠다이묘의 전국시대, 그리고 도쿠가와막부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마쿠라시대를 보면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주도한 일본최초의 준 중앙정부를 개창한 시대였다. 천황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귀족들이 지배한던 시대를 무사계급의 출현과 동시에 사무라이 집단이 그 역활을 대신해 나가는 시대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사무라이집단이 집권을 했던 시대는 아니였다. 단지 군사전문가로서의 사무라이가 기존의 귀족계급을 제패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사무라이 내부적으로도 중앙집권적인 형태가 아닌 일개 이에(家)를 중심으로 합종연횡한 상당히 개인적인 성격이 강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언제든지 분열될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는 그런 조직체였던 것이다. 그 만큼 쇼군을 위시한 이에의 수장에 대한 정치적인 자율성 또한 상당하였고 이에에 소속된 무사들은 쇼균이 아닌 이에의 가신으로서 역활을 할 뿐이었다. 군신간의 관계 또한 이에의 영지를 적극인정해 주는 일종의 장원제같은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에간의 군사적인 특징도 개벌적인 성격이 강한 탓에 1:1대결과 같은 사적군대의 특징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가마쿠라 바쿠후의 붕괴이후 지방에 근거를 둔 대이에라 할 수 있는 센고쿠다이묘의 등장으로 인해 일본은 절대강자가 없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그래도 귀족들의 입김이 살아있었지만 전국시대에는 그야말로 명목상 천황만 존재할 뿐 귀족들은 완전히 쇠락하는 시대가 되고 일단이 농민들 또한 자력구제의 방침으로 무장을 하는 그야말로 일본 전국은 무장화의 시대로 칼만이 생명을 담보하는 시대로 접어든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무라이집단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다이묘의 영역안에 있는 이에경우 기존의 자율성이 상당히 감소하게 되고 영지인 장원제도 많은 제약이 따르는 간다카로 바뀌게 된다. 또한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일개인의 특출한 무공이 아닌 군대라면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집단화된 구조로 전환하게 된다. 특히 이시기에는 다이묘들간의 연합등을 통해서 서로 견재의 역활을 했다.
이런 전국시대를 거쳐 히데요시가 잠시 다이묘를 통합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나 그 기반이 약했던 관계로 와해된다. 사실상 전국시대를 통일한 절대강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와서 그 종지부를 찍게된다. 이시기부터 일본은 도쿠가와막부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기본의 다이묘를 제압하고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는 누구보다 사무라이의 속성을 제대로 인식한 이였다. 그래서 그가 조치한 첫번째 개혁이 바로 영지의 사유화를 철저히 배척했던 것이다. 일종의 신봉건제 국가의 형태를 주창했던 것이다. 결국 이 시대에 와서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절대강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전국시대의 무장화 되었던 농민계급의 무장해체를 통해 무력은 사무라이계급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급제도를 관료제로 이양하면서 세습이나 녹봉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물론 다이묘의 영지를 박탈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다이묘를 중앙에서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사무라이계급의 군사기능을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명목상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이런 일련의 역사를 거치면서 최초 귀족에게 봉사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사무라이는 유일무이한 지배계급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인 배경이외에 사무라이의 문화적인 배경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관점이 남아있다. 흔희 사무라이하면 명예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명예에 죽고사는 그런 계급이 사무라이이고 명예를 빼곤 사무라이를 논단하기도 힘든게 사실이다. 단지 명예라는 개념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상이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역사적 세시기에 맞추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마쿠라시대의 사무라이는 극히 개인적인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이에에 대한 명예가 우선이었다. 아니 그게 전부였다고 할 수 있따. 아무리 쇼군이라고 해도 이에의 가신에게 수치스러운 지시를 할 수 없었다. 그 만큼 개인의 자율성이 강했던 시기였다.
세켄(평판)이라는 명예공동체 속에서 사무라이는 동료라는 의식이 강했고 평등하다는 생각이 이었다. 그래서 이에간의 경쟁 또한 상당하였던 것이다.이런 틀 속에서 사무라이의 명예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고 성숙하게 되는 시기였다. 일종의 명예에 대한 제도화가 이루지기 시작한 시대였다.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개인의 명예보다는 상위의 개념인 공동체의 명예가 강조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해서 결국 도구카와시대에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사무라이집단에게는 준시라는 일종의 순장같은 풍속이 있었다. 이에의 수장이나 다이묘가 사망할 경우 가신이 사무라이 또한 그 주군의 뒤를 이어 활복하는 풍습이 이었다. 이는 준시를 통하여 사무라이의 존속을 강화시키고 단결을 한층더 공공히 하는 점도 있지만 결구 이에라는 개별적인 집단으로 남게 하는 단점이 있는것이다. 이러한 풍습이 결국 도구카와시대에 와서 근절되므로서 일게 이에나 다이묘가 아닌 바쿠후라는 최고정점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사무라이는 초기에 폭력과 자율성에 대한 긍지에 기초한 명예에서 출발하여 일종의 명예문화라는 형태로 설정하므로서 계급의 지속성을 이어왔다. 조선의 선비들이 성리학이론에서 그 존재가치를 찾았듯이 사무라이는 명예라는 곳에서 그들만의 존재가치를 찾았던 것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사무라이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수치심에 대한 자료는 극히 일본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그 만큼 명예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잘 알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이는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중 일부이지만 일본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사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마치 선비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을 이해하기 힘들듯이 말이다. 이 책은 역사서적이기보다는 사회문화학적인 서적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내용도 상당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사무라이계급의 실체를 설명하다보니 내용이 방대하고 쉽게 접근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큰 틀에서 사무라이라는 계급의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어느 국가나 그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 사무라이의 정신은 지금의 일본을 존재하게 하는 그런 시대정신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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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개괄하다
사무라이의 정신, 명예에 대한 존중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보다는 학술적인 이 책은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읽었기에 의미를 놓친 부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무라이의 역사와 사무라이의 특징들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by 꽃다지, 2008년 10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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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분야에 흥미를 갖고 관련책을 꾸준히 읽던중에 2차대전시 일본인 전투기조정사들의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명령과 복종으로 이루어진 계급 문화에서 그토록 그들이 목숨을 걸면서 지켜온 정신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 바탕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자세한 대답을 얻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일본역사에서의 사무라이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일본정신의 모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들의 저변에 깔려있는 정서 내지는 민족정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나 이해 없이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했던 문제들을 이번 기회에 일본의 정신인 사무라이정신에 대해서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것같아 '사무라이의 나라'라는 책제목에서 일본정신의 원류인지부터 지금까지 발전된 일본을 이끌어온 저력에는 무엇인가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무라이 정신' 즉 '무사도'는 한국인에게도 결코 낯선 말이 아니다. 그것이 현대 일본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정신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우리는 일본을 좀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이 정신을 알 필요가 있을것 같다.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일본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에서 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무사도는 근대 일본이 탄생시킨 자기 환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들의 자기들의 모습을 숨기려는 술책인지도 모른다. ‘환상으로서의 무사도는 군국주의시대 일본 군부의 모럴로, 다시 지금은 일본문화론과 일본경영론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하여 일본 무사의 정신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일본 역사에서 폭력과 소유의 길들이기라는 사회구조 속 명예를 바탕으로 한 사무라이 문화의 변모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초기의 사무라이의 형성의 시대부터 가마쿠라 바쿠후, 중세 전국 시대, 도쿠가와 바쿠한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이 어떻게 변화되어갔고, 또 이러한 변화에 당시 사무라이 개개인들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통해, 일본 사회의 면면에 흐르는 문화적 상징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무사도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의리와 체면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오직 살아남기 위한 것이 진정한 가치였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고대사와 중세사에 걸쳐서 보이는 특징이다.할복 자살도 주군에 대한 의리의 외형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에 보면 이는 옹(恩)과 하치(恥)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옹은 은혜라고 할 수 있으며 하치는 수치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가진자, 윗 사람이 베푸는 것을 아랫 사람은 옹이라고 하며 이것을 아랫 사람이 갚지 못할 때에는그것을 수치라고 한다. 이것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것이 의무화 되어 있으며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기 보다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생겨난 것이 체면이다. 체면을 손상 당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할복 자살의 또 하나의 단면이다. 일본사람들은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였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체면을 세우면서도 실리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일본인의 이중적인 성격도 여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명한 47인의 사무라이들의 복수에는 개인적 긍지와 자립을 강조하는 사무라이 문화가 할복자살이라는 극단의 순간에 이르게 하는 신화적 의식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무가사회의 관행은 어떠한 역사과정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무사는 자기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날때부터 한발 한발 죽음을 향해 걸어 가는 중이라고 한다. 모든것에 떳떳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진정 무사도가 추구한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무라이의 영향력은 일본 사회에 깊게 침투해 있으며 메이지 유신 초기 사무라이의 후예들은 국가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되었다.
일본 역사를 지배해 온 사무라이의 형성과 변화를 통해 우리에게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처가 있어 일본에 대해 안좋은 인상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주장과 목소리는 높다. 틈틈이 나오는 과거 청산 문제,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 보통 국가를 목표로 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서 비롯된 독도 문제 등 일본을 언급할 때마다 우리는 정상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일쑤다. 사사건건 문제가 터졌다 하면 감정부터 앞선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의 독도문제와 역사 교과서 왜곡 피동은 그러한 모습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고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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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러나 또한(but also)'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본인들은 누가 참으로 용감하다고 하면서도 겁쟁이다, 라며 덧붙여 말하게 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일본인들에 대해 싸움(칼)을 좋아하면서도 아름다움(국화)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싸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하여『사무라이의 나라』는 일본 정신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의 견해를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상상 속에 있던 사무라이(さむらい)의 뜻이 명확해진다. 좀 더 말하면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종자(從者)라는 개념으로 귀족을 시중드는 남자들을 말한다. 또 하나는 무사(武士)라는 개념으로 전투가 직업인 성격이 거친 자들을 말한다.
사무라이의 역사를 보면 헤이안 시대의 우아한 귀족 문화 속에서 낮은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일본 정치의 주역이 된 것은 그들이 ‘무장한 영주(토지 소유자)’로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12세기 후반 사무라이에 의한 최초의 준 중앙 정부가 성립되었다. 가마쿠라 막부에서 도쿠가와 막부까지 사무라이는 신분이 상승하면서 엘리트 계층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 때 대도(帶刀: 폭력을 행사하는 군사신분을 상징)를 금지당했고 집단의 특권도 부정되었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사무라이의 권력 구조를 보면 주군에 대한 무사의 강렬한 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경제와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의 ‘보호자- 피보호자’ 관계에서 일본은 ‘가신 봉건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무라이 집단은 하나의 이에(家)아레 결합되었는데 이는 군신기능과 경제기능을 함께 가지는 혈족 관계의 조직체였다. 이에의 핵심인 혈족과 가신이라는 부하들이 주종관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도쿠가와 시대에는 주종관계가 재설정되는데 폭력보다는 자기 수양을, 군신 관계에서 조직으로, 능력에서 신분으로 바뀌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무라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현실적인 고난들과 싸워나갔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무사에 깃든 살인과 파괴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야만이라는 심리적인 보복으로 증오해왔다. 하지만 사무라이의 심연을 들여다볼수록 일본 정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무라이의 실체는 명예형 개인주의에 있다. 사무라이 문화는 명예로운 무사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통제해야 했다. 그 뒤 일본 역사에서 사무라이를 길들이는 사회 정치적 과정은 개인적인 자기의식을 공공의 사회 목표와 책임에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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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두가지이다. 일본 강점기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에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망언을 일삼아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적반하장의 대표격인 오만한 일본이라는 이미지. 그리고 소설과 만화, 영화부터 음식, 자동차 등등 밉지만 일제를 거부감 없이 - 어떨 땐 일본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까지 보여가며 - 받아들이는 상반된 이미지이다. 감정적으론 싫지만, 축구나 야구의 한일전이라도 열리면 무조건 이겨야하는 대상이 일본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가 된다. 소설책부터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에 데리야키간장에...우리 집에 있는 일본 제품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다.
나에게 일본하면 언뜻 떠오른 이미지는 긴 칼 옆에 차고 있는 사무라이와 그들의 할복자살, 일만 죽도록 열심히 하는 일개미의 모습이랄까.... 웬지 그들은 개인의 감정이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대신 단체의 통일성을 더 중시할 것 같은 느낌. 몰개성화, 잘 짜여진 집단, 일중독, 그리고 고독한 개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표면적으로는 누구에게나 대체로 친절하지만 한 발 더 다가서 가까워 지려고 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것 같은 사람들. 일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처럼 부정적이다. 하지만 슈퍼의 매대에선 다르다. 메이드 인 저팬이라는 걸 발견하면 웬지 신뢰감이 든다. 중국제품이라면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과는 반대로 일단 믿고 보는 것. 이것 또한 일본에 대해 갖는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한국이나 중국은 예로부터 '무'보다는 '문'을 중시하는 문화이다. 사회를 이끌었던 지배계층도 문이 중심이었던 양반(선비)이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일본은 '무사(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나라이다. 무를 경시했던 우리와는 다르게 사무라이는 꽤 오랜시기(거의 1000년이나)동안 일본을 이끌어가는 주요세력이다. 비록 계급사회가 무너져 이제는 양반이 존재하진 않지만, 우리의 문화와 생각 저변엔 '선비정신'이 존재한다. 일본은 책제목에서 처럼 '사무라이의 나라'이다. 일본 역시 사무라이는 메이지 유신이후로는 사라진 계급이지만 일본을 이해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사무라이일 것이다.우리에게 선비정신이 있듯 그들에겐 사무라이의 정신이 있다. 문이 중심인 문화와 칼이 중심인 문화의 차이는 극과 극처럼 큰 차이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일본을 이해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본이란 어떤 나라이며, 사무라이는 독특한 사회구조가 이끌어 온 나라에 대한 역사학적,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해서 쓴 책이라기 보다는 나같은 외국인을 위해 쓰여진 논문같은 책일것이다. 논문같은 책이기에 일반인이 편하게 읽기에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일본이라는 사상의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사무라이의 정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와는 다르게 무의 계급이 사회를 이끈 나라 일본. 명예와 평판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행해졌다는 할복자살. 개인보다는 집단의 명예를 더 중히 여기는 일본. 지금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일본식 평생직장의 개념. 미워하지만 일본의 제품이라면 믿을만하다고 믿는 신뢰감. 일본을 싫어한다면서 한국소설보다 일본소설을 더 많이 읽고 있는 지금 시대에서 일본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밀어내기보다는 일본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리라. 한 걸음 다가가 그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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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학부 박사답게 사회학과 사회심리, 그리고 역사적 사례가 잘 조화되어 있지만...너무 논문적인 문체로 인한 딱딱함으로 대중적으로 읽히기에는 좀 내용의 전달이 용이하진 않을거 같습니다.. 역시 표지에 나온바대로 세계적인 대학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교재로 채택하고 있다는 얘기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역사학자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내용을 표지에 담은 것을 보면 이 책의 성격이 논문적이며, 학문적이라는 것을 의연중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명예형 개인주의'라는 개념어를 활용해서 예전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개론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의 핵심개념어인 '수치'에 대해 약간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이 '국화와 칼'이란 책에 대해 평가하고 비평하며 수용하는 내용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명예형 개인주의'라는 특질로 인해서 집단주의와 개인성의 이상한 조합을 사회적, 사회심리적, 사회역사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체제에서 비롯됐던 '47인의 사무라이 복수'는 사무라이에게서 내재된 '주군의 주군은 주군이 아니다'라는 봉건제 군신제도의 전제가 숨어 있으며, 또한 충돌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 '로버트 드니로'의 '로닌'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거의 한세기 반을 떠들썩하게 했고 수많은 연극과 픽션으로 그려지며, 직속 주군에 대한 충성과 최고지위의 바쿠후에 대한 충성의 대립과 모순이 빚어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 부조화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사무라이'라는 어원이 백제의 '사오라비' 그리고 고구려에서 비롯되었다는데....어떤 정신이 이어져 이렇게 변천되었을지는 읽는 동안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았습니다. 책의 엄청난 분량과 내용, 그리고 각 주제와 소제목들에서 나오는 많은 논의로 읽고난 후에 정리가 잘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불길처럼 일어나는 분노.. 바로 야생적인 분노로 폭발하는 공격성이 문화와 조화되며,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그로 인한 숭배가 그 바탕이 되어 이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무라이의 정신문화가 쇠하는 것에 대해 한탄하며 '쓰네토모'가 쓴 '하가쿠레' 라는 격언집도 사무라이의 정신에 대해 맛 볼수 있는 몇 안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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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이 말을 듣고 볼 때마다 나는 긴 칼을 옆에 차고 당당하게 활보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책표지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무사 쥬베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고, 맹인이면서 기가 막히게 칼을 잘 썼던 맹인 검객 '자토이치'를 떠올렸다. 어찌보면 하나의 신화같은 이야기로 느껴질법한 말들이 실제로도 존재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종의 문화적인 콘텐츠로써 자리잡았다는 그런 의미로써 생각하기도 했었다는 말이다. 수많은 권법을 내세우며 중국의 그 넓은 땅을 주름잡았던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이케가미 에이코는 단순히 사무라이라는 그 의미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사무라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속에서 찾아내고 싶어하는, 그리고 현재까지도 버려지지 않는 그 '사무라이'의 정신이 남겨주고 간 것들과 연관적인 일본의 문화적 상황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토지를 소유한 무인, 토지와 농산물의 지배를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던 무사 '사무라이'.. 사무라이란 원래 전문가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기능집단이었다. (89쪽) 일종의 성주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변에 모여 살았다. 아니 그렇게 모여 살도록 만들었다. 고대 일본에는 군대가 없었다는 말을 빌어 볼 때 그들은 영지를 개간하여 경지화한 후 허락을 얻어 경작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은혜와 봉사의 교환 즉, 은혜를 입었으니 그를 위해 나는 봉사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은혜와 봉사의 개념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 참 특이하다. 거창한 말로 '나라를 위해서'라거나, 멀리 있는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녹봉을 주고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신만의 '주군'을 위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관계를 명예롭게 여겼다. 자신에게 속해있는 가솔(여기서 가솔이란 단순히 자신의 가족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지를 통하여 먹고 사는 모든 이들을 일컫는다)들을 지켜주고 또한 자신에게 은혜를 배푸는 주군을 위해 기꺼이 죽을 줄 알았던 그들의 관계는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생겨나지 않았을거라는 말은 지극히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사로서 무인의 명예에 대한 배경을 보게 되면 이렇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용맹심, 겁쟁이로 보여서는 안되며,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올바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너를 좋게 보도록 신경써야 한다 라거나 의식적으로 자세를 낮추어라. 상관없는 사람일지라도 공손하게 대하라 라는 무사적 배경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무사 즉, 무인계급이라하면 문인과는 반대적인 이미지를 풍기게 마련이다. 나쁘게 말한다면 이런 저런 생각없이 힘만을 최고로 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무라이의 배경을 보게 되면서 나는 저자가 왜 '명예'라는 말을 앞서 설명하려 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사지만, 공사의 처리에 뛰어나야 하며 건전한 판단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 말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단순히 무예만을 으뜸으로 치지 않고 그 무예를 다룸에 있어서의 교양까지도 그들은 잊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주군이 죽자 그 복수를 하기 위하여 2년동안이나 준비를 해 왔던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는 정말 사실이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주군을 위한 복수를 하고 죽음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자체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가던 일본의 상황으로 볼 때 일종의 사병이기도 했을 그들만의 관계를 인정해주고 또한 보호해주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조선의 역사 같았으면 그 사병으로 인한 반란을 미리 염려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썼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 상황들은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반란이나 반역 따위는 할 생각조차 없었으며 지배계급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군대를 보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뭔가 다른 게 있었던거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강한 연대감으로 묶어놓았을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크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유교적인 관념이 일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에게 먼저 '효'를 다하기보다 주군을 위한 '충'이 먼저였다는 일본의 신유교를 알게 되었다. 일본식 신유교는 이에 즉, 家를 번영케 하는 유일한 길은 공무에 헌신하는 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말하자면 국가적인 논리에 따라 '충'은 공적 가치인데 반해 '효'는 사적인 가치로 여겨 '충'을 우선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일리있게 들리기도 한다. 물론 그 시대적인 상황에 맞추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문화는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자신의 처지에 맞게 받아들이고 수정할 줄 알았던 일본적인 시각에 왠지 부러움마져 느껴졌다.
중국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중국에 맞는 수많은 제도들을 우리에게 접목시키려 했던 우리의 역사와는 다르게 일본은 중국식 유교사상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유교의 도덕적 특성만을 정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그들의 토착적 관습에 유교의 영향력이 깊게 침투하지 않았고 가족의례나 친족관습 등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유교적 특징을 일본식으로 변화시켰다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둘 수 있었다는 말도 되는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종교적인 의미 또한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았던 듯 하다.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단기적인 욕망을 스스로 규제할 줄 알았으며 개인의 충동이나 욕망을 사회조직적으로 정의한 목적과 조화시킬 줄 알았던 사무라이의 명예문화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사무라이 문화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확고한 명예심이 경쟁적인 개인성과 질서있는 의식, 그리고 성실성을 뒷받침해 주었다는 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 영주의 직무가 단순하게 군사영역이나 정치활동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고 재산이나 자원, 인재를 등용하는 복잡한 관리체계까지도 포함되어져 있었으니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농업생산력을 개선하는 수단을 강구해야 했으며 그들 영지내에서의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활동등을 통해 수입을 얻으려고 했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자립적인 의미를 보여주고 있음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본의 전통이라는 말조차도 나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나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는 아주 단면적인 지식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런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내면을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수확도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들의 문화를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일본인으로써 현재의 그들을 있게 해 주었던 것, 일본의 전통에 대해 도움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랬던 저자의 말처럼 안다는 것은 정말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제대로 보여주며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얕보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역자 서문의 말이 왠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런 우리이기에 정말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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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를 접하고 난 후였다. 학교에서 일본문화와 문학사 수업을 들어 조금의 흥미는 느끼고 있었지만 그 때는 그저 '음, 시대의 한 기류?' 정도의 의미로만 그들을 파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사무라이의 세계를 [칼에 지다] 의 등장인물인 신선조를 통해 충분히 맛보게 되었는데, 아무리 소설이었지만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왔었다. 차갑고 무서운 듯 보이지만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의리와 남자다움을 중요시했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었으나 그들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들과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궁금해졌다. 일본사는 각 시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사무라이가 시대를 평정했던 중세와 근세는 그 중에서도 특히 색다른 시기였음에 틀림없다.
사무라이라는 말은 '사부라이'가 변한 것으로 귀족을 시중 드는 남자들을 가리킨다. 귀족시대라 불리던 헤이안조. 그들이 세련된 문화생활을 즐기던 9세기에서 10세기 경 무력의 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 출현하는데 그들이 바로 사무라이다. 그들은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이었는데 사무라이의 뜻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 이전에 군인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라이들이 군사기술에서 보다 전문적이고 위계조직이 분명하며 전문 무사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겠다.
그들의 성립과 존속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할 때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무인이 가치있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랜시간 과거 시험에서조차 등장하지 못했었고, 그들은 항상 문인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사무라이들은 피에 대한 케가레(오염, 더러움) 를 기피했던 귀족들 덕분에 그들 고유의 영역을 지켜나갈 수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가신들이 주군에게 바치는 호코(봉사의무 )와 주군이 가신에게 내려주는 고온(주군으로부터의 은혜)이 그것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저자는 정치학적, 사회경제학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다. 기존의 사회질서와는 다르게 전문적인 폭력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토지가 그들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 사무라이의 성격 변화와 함께 여인들의 삶의 지위 문제 등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놀라웠던 것은 '무사도'로 대표되는 그들의 모습이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싸움과 죽음 (할복자살 포함) 에 대한 그들의 의식은 헤이안 시대와 중세, 근세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보인다. 헤이안 시대 때는 전장에서 패배한 무사는 도망치거나 바로 항복을 했는데 중세 일본 때부터는 목숨을 버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무사도' 라는 말이 실제로 쓰인 것도 도쿠가와 시대 초기의 일이라고 한다.
중세부터 메이지 유신, 서구문명이 들어오고 막부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긴 시간을 풍미했던 사무라이들. 책의 분량이 많기도 하고 번역상 어색한 부분도 많아 읽기 힘든 점도 있었지만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그들 안에 시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100%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성립 배경과 기원, 그들이 고수했던 사상들에 대해 더 깊이, 그리고 즐겁게 알 수 있었던 유용한 시간이었다. 대학교재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만큼 괜찮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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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이나 삶의 방법을 명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는 개인과 사회가 맺는 방식의 상호관계와 거리를 재는 아주 좋은 체온계이다. 이 체온계를 사용해서 일본의 역사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사회학적 '작전'이다."(한국어판 서문에서)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개인이 사회를 변혁시키기도 하고, 사회가 개인을 변화시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끊임없이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성장과 발전, 또는 퇴보의 길을 가는 개인과 사회에서 '명예'라는 개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일본의 역사 속에 사무라이의 등장과 더불어 '명예'라는 관점은 일본이란 나라 자체를 설명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사회학적 개념이고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敗色)이 짙어가던 일본제국주의가 최후의 도전이자 미국에 엄청난 피해를 주어 전세(戰勢)를 역전시키고자 했던 '가미가제' 조종사들의 자살공격도 사무라이의 '할복자살'이 현대화된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명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사회 속에서 인정되어지는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회의 체면이나 이목을 보면서 절대 어떤 이탈행위를 하지않고 이탈행위를 했을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과 따돌림을 받게 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이런 문화속에서 자연히 사람은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 되기 쉽기에 일본인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닌 그 모든 선택을 자신이 한다는 철저한 개인주의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명예형 개인주의 '는 일본의 사무라이와 현대의 일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적 도구임에 틀림없다.
내 아내는 일본사람이다. 며칠 전에 이 책을 보면서 아내에게 "당신의 조상이 혹시 사무라이가 아니었나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사무라이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때 나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 아내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니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사무라이의 후손인 내 아내를 '명예형 개인주의"라는 렌즈로 한번 바라본다면 내 아내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그녀는,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20년쯤 뛰떨어진 나라(한국사람이 필리핀이나 태국사람을 바라보듯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시집을 온 그녀는 조금은 자신의 주장이 강한 개인주의형 인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