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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때 국어시간에 이광수나 최남선의 작품이 어떻다는 소리를 듣고 무언가 기대를 하다가 막상 그 작품을 직접 접하고선 '이게 뭐야~!'라는 실망을 한 적이 있었을꺼다. 다른 것 보다, 거기서 느껴지는 재미라는게 어색한 문체와 이야기 전개의 비약때문에 참 찾기 어려웠던거지.
생각해보면 그 시기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쓰여진 어느 나라의 문학이든 그모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만 루쉰이나 토마스 만의 작품들은 나름 다른 느낌을 주긴 했지만, 나스메 소세끼나 찰스 디킨스, 빅토르 위고도 대충 그러저러하더라.
러시아의 새로운(?) 작가라는 미하일 조쉬첸꼬의 작품도 그런 어색한 문체들로 쓰여진 것들이었다. 다만, 아주 짤막하게 쓰여진 것들이라는 것, 그러다보니 유머와 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점이 다른 오래된 문호들의 작품과는 달랐다고 할 수 있을 듯. 더구나, 혁명이라는 극단적인 사회변화의 가운데에서 풍자를 추구했다는 것은 무언가 가벼우면서도 좀 더 넓게 통할 수 있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어쩜, 루쉰의 작품에 다가가기 쉬웠던 것도 그의 단편들에 한정될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아무래도 세련되지 못한 구석은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작품에서 그리듯이 '행목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라는 상식과 같은 진리를 지극히 세속적인 한 노동자의 입으로 그려보는 것, 그리고 '교훈적인 이야기'란 작품에서 소개한 정말로 교훈적인 - 지식인과 정치지도자, 그리고 우매한 대중들 모두를 까댈 수 있는 풍자는 꼭 그 당시의 세태를 추정하지 않아도 그 날카로움이 매력적이었다.
일상에 만연한 사회의 모순... 그에 대한 러시아적인 스케치라 하겠다. 100년이 조금 못되는 그 옛날 이야기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