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럽지만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대학 다니던 때만 해도 NL(민족해방) 계열이던 학교에서 NL이니 PD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두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이미 비운동권 출신의 총학생회장이 선출되고 전대협이 해산되는 등 학생운동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아예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고 소시민처럼 살았다. 소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이슈에 따라 또는 판세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국회의원들, 그들과 궤도를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인 국무의원들, 독립은 커녕 전혀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은 법조계 인사들까지 해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에 대해 관심을 잃은 지 오래이다. 이런 정치적 무관심 때문에 우리 사회는 더욱 기득권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이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책으로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2008, 주대환, 조원희, 장하준, 이성재, 이상이, 이종태, 장진호, 홍기표, 정세은, 오건호, 이정무, 최병천 지음, 산책자 펴냄)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의 표지에 실려 있는 '한국 사회와 정치 경제의 새 프레임,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모색한다'라는 설명은 책의 집필 의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부터 본격화되어 현재의 이명박 정부에서 봇물처럼 밀려 나오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기 위한 이 책은, 아직까지도 빨갱이와 연관되는 개념인 '좌파'를 제목에 내세우면서 그 올바른 의미와 지향점을 말한다. 책은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길과 복지국가의 실현이라는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1무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길에서는 여운형과 조봉암이라는 오래된 미래에서부터 민주노동당과 진보 신당의 분리까지, 넓은 스펙트럼에서 한국 정치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현존하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 원리들의 기원인 자유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가 태어났다.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신성불가침성, 규제 없는 시장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체 사회의 지속 가능성보다는 시장과 경제 성장을 강조한다. 영국과 미국이 그 대표적인 나라이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 뿐 아니라 사회 정의와 사회 연대성, 복지국가, 국가와 사회에 연계되어 조정된 시장을 강조하는 주의로서, 조정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복지제도를 통해 독립적 개인인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사회 연대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영국을 제외한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으므로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사회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에서 내놓은 제도들만 해도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작은 정부 지향, 의료보험과 공기업의 민영화 시도 등 극단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대한민국 5% 이내의 상위 그룹만을 향한 것이 아닐까. 교수, 변호사, 운동가,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에 있는 저자들은,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 연대라는 기치를 내걸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필요성을 설파한다. 2부 복지국가의 실현 편에서는 건강보험과 재정, 조세 개혁, 계급 동맹, 노동 운동,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스웨덴 국가주의론에 대한 설명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는다.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사항들이므로 1부의 이론적인 담론에 비해 좀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좌파의 개념을 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고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니, 지금껏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던 것들마저 흔들려 버렸다. 이는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언론 보도 때문일 수도,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내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다. 어렴풋이 드러나는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길에 대해 이제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겠다. 의료보험 민영화 저지를 이루어낸 네티즌의 힘을 믿으며, 앞으로는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
|
요즘 한창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보수 정권에서는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그간 좌편향적인 정책들에 대해 심판하겠다고 벼른다. 글쎄, 좌편향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금융규제나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서민의 입장에서는 그게 왜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과연 지난 정권이 좌편향적이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나 진보라는 개념을 상당히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사용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가가 우리나라에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보수일 뿐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 이야기는 단지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상대방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반대의 개념을 차용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 좌파라던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움찔한다.(그에 반해 진보라는 말은 상당히 그럴 듯하게 들려서 주로 그 말을 사용했다.) 이제 그런 강박관념을 떨쳐 버릴 때도 됐건만.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며 그 쪽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즉 실질적인 내용은 모르면서 겉에 드러난 몇 가지만 가지고 아는 척을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1부의 내용은 운동권이 아니었으며 지극히 평범한(때론 소극적인) 생활을 한, 그렇다고 그쪽 지식도 없는 내 경우는 책장 넘기는 속도가 무척 느린 부분이었다. 대신 많이 알게 되었고 나를 반성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민노당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왜 분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두 개의 정당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객관적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 보수인 정당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진보라 생각하며 한 쪽에 코드를 맞추고 있었으니. 그것만 보더라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은 진보니 좌파니 해도 실질적으로는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자신의 도덕성을 드러내보이거나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자처했을 뿐 진정 내 것을 내놓으면서까지 실천하고 싶진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연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올 당시만 해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건이 막 터졌을 때라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내심 아쉽다. 만약 그에 대한 것도 다루었다면 현재의 상황을 훨씬 잘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금융 위기가 왜 오게 되었고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우리에게 나타난 그간의 사건까지 두루 이해가 된다. 그저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미국의 주도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니 내 좁은 시야를 확인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2부의 내용은 현재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읽어내려갔다. 그나저나 미국의 금융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났는데도 우리는 그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의 복지정책을 동경한다. 그러나 그 재원을 마련해야 하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겠다고 말을 바꾼다. 분명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는 차근차근 설명한다. 스웬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사실 나도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말로 스웨덴의 복지를 인용하긴 했어도 정작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복지국가가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과정을 보니 쉽게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무수한 담론과 토론을 거쳐 형셩되었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에게도 과연 그런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까. 그래서 스웨덴처럼은 아니더라도 보편적 복지가 실현될 날이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도 대다수는 미국의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어떤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할 때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조건은 생각하지 않고 중간에 필요한 것만 똑 떼어내 단순비교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세금 인하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외국은 보유세가 우리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예로 들며 재산세를 낮추고 종부세를 수정하려 한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부문에서 웬만큼의 평등이 이루어진 상태라는 점은 간과한다. 세금을 줄여서 국가의 재정이 줄어든 것은 어떻게 메우려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늘려도 시원찮은 복지비용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것이 전 정권의 좌편향 정책이라고 공격하는 것일 테고. 사실 지금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야당이 없다. 진보 지식인들이 거대 담론을 형성해서 제발 지금의 이 난국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
|
어제도 점심을 먹으며 시작됐던 나와 옆 사무실 사장님과의 논쟁은 식사를 끝낸 후 차를 마시면서까지 이어졌고, 결국엔 사장님의 이런 외침으로 일단락됐다. |
|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를 찾았다가 거기 나온 글을 보고 읽기 시작함.
책 제목이 무지하니 딱딱하지만, 막상 책을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 편.
이종태, 주대환, 홍기표, 장하준 이종태 인터뷰, 오건호 이정무 인터뷰를 먼저 읽었음.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흥미를 충분히 불러 일으킴.
스웨덴이나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국가의 모습을 책으로나마 들여다보고 싶다.
- 그런데 맨 앞의 '사회민주주의를 선언한다'라는 글은 너무 모범적이고, 그래서 지나치게 아이디얼하고, 자의적이라는 느낌이.... |
|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을 만날 수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은 변화하고 발전하는 자본주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하여 정치적 입지의 강화를 기반으로 하여 국가 정책에 대한 계급적,민중적 투쟁과 타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진보적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끈질기게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우세한 정치적 반대 세력의 공격과 비판, 불리한 대내외적 환경 등 수 많은 장애에 직면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이 그런 불가피한 곤란과 장애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또한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가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믿고 끈기있게 전진하는 태도를 견지한다.."('책을 펴내며' 중에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모여 펴낸 첫 성과물이다. 이들은 올해 초 '사민+복지 기획위원회'를 꾸려 "신자유주의의 거대 흐름을 넘어설 설득력 있는 대안과 전략은 사회민주주의에 있다"는 주제를 연구해왔다. 이 책은 부제에서 나와 있듯이 '사민 복지 기획위원회'가 한국 사회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길과 복지국가 실현을 모색하기 위한 글을 모은 책이다.
책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찾아서'에서는 오늘날의 국내외 상황과 사회믽주의에 대한 부분과 2부에서는 '복지국가의 실현은 어떻게 가능한가'에서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전략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국내의 실천적 연구와 외국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세계화, Globalization. 지난 20년 동안 사회과학에서 가장 커다란 논란을 일으켜 온 이슈는 단연 세계화다. 세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좌파와 우파, 사회과학자와 정책입안가, 국제기구와 사회운동조직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진행돼 왔으며, 이는 다시 언론 매체를 통해 시민사회에서의 광범위한 토론을 촉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세계화를 지지하는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극적인 화해를 이루기도 했으며, 세계화에 반대하는 우파 민족주의자와 좌파 마르크스주의자가 예기치 않은'적과의 동거'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은 바로 세계화가 우리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심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세계화는 과연 미증유의 축복인가 아니면 미래의 재앙인가, 그리고 세계화에 대해서 어떤 전략이 최선인가는 여전히 해답이 주어지지 않은 채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
|
좌파, 우파니, 진보와 보수니 하는 말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썼던 말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정작 그 뜻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가 어디에 속했는지를 잘 아는 일도 그만큼 어렵다. 참 모호하다. 그러니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좌파는 진보이고, 우파는 보수이며 대부분의 좌파는 빨갱이이고, 대부분의 우파는 보수꼴통일까? ‘중도’라는 말 꼴통들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하는 수사이고, 중도파는 결국 변절자일 뿐일까? 각설.
정치 성향을 떠나서 말하자면, 나는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여겼다. 워낙 사물이 변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남이 변하는 것도 어색해하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런 따위의 말에 쾌감을 느꼈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일정하게 순환해야 안심이 되고, 거기 있던 것들이 적어도 그 주변에서 찾아져야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 중에는 예의 없는 사람을 제일 싫어라 하고, 염치 없으면서 “나 원래 그래.” 하며 자주 표정이 바뀌는 사람을 싫어라 한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스스로 보수적이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터무니 없을 수 있겠지만 정치적 성향도 다소 그랬다. 과격한 이야기를 쉽게 하는 사람, 남이 틀렸다고 단정하는 사람, 틀린 사람은 벌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다 저어했다. 대학 때 안티에 속했던 것도 단순히 그런 내 성향 때문이었다. 수업 거부에 쉽사리 동의가 안 되고, 보도블록이 깨지는 모습이 거부감스러웠고, 운동권 친구들의 한결같은 표정과 말투가 거부감스러웠다. 옳지만, 옳은 것이 모든 걸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고, 막연히 느꼈다. 그 많은 ‘부정’들로 무얼 이룰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동조하되 함께 행동해지지 않았던 오랜 내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 주었다. 이 저자들은 현실을 깨부수자고 누군가 외치면 도저히 따라가지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가진 바탕 위에서 조금씩 바꿔 나가보자.’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같아도 방법론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만 되풀이하면 ‘어쩌자는 거냐.’ 싶었다, 안 그래도.
여러 저자들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글들을 모은 책. 말하자면 국가와 민족을 긍정하며, 법과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지금 우리에게 맞춤한 ‘ism'이 뭔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흔히 좌파라고 하면 북한을 옹호해야 하고, 현 정부와 체제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싹쓸이 하듯 혁명적 변화를 일궈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던 구태를 벗고, 극단적 자유와 평등이 아닌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따라서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좌파의 뿌리와 단정적 개념 이야기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구구절절하지 않으며 대신에 매우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사민+복지국가로의 지향이다. 복지국가를 정확히 정의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가 상당히 깊숙이 개입하여 이익을 재분배함으로써 국민 전체가 ‘생존’ 아닌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시장의 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면 ‘공평’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원리다. 시장을 극단적 시장주의자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매우 설득력 있다.
사실 독후감에 인용하기 위해 수많은 페이지에 밑줄을 쳐 두었으나, 장광설이 될까봐 옮기지 않으려 한다. 기존의 좌파에게서도 우파에게서도 별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들의 글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것이다. 단순한 지지의 의미가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으로서의 의미이다. 내게는 제대로 된 교과서 같은 책이고 무엇보다 흥미진진하고 즐겁고 희망적이다. 밤새워 읽을 만큼. |
|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 사회의 좌파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참패를 했다. 오히려 기존의 보수의 이미지를 뛰어 넘는 새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는 기치를 내건 ‘뉴 라이트’ 출신의 국회의원이 약진을 하였다. 자유민주당은 자신들이 개혁정당이라고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수당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보수가 국정을 장악하여 진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의 좌파도 새롭게 변신을 할 때가 왔다. 지금은 7, 80년대와 같은 극한 이념이 대립하던 때가 아니다. 그런 구태의연한 이념 논쟁은 이제 쓸모가 없게 되버렸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너무 아쉬운 대목이다. 전 세계가 국경을 뛰어넘어 자국의 이익 창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내부의 분쟁으로 국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실용주의적인 모습으로 옷을 갈아 입을 때가 된 것이다. 지금 세계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선사한 외환위기로 앞도 뒤도 안보이는 망망대해를 표류 중이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집권에 성공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하려다 국민들이 밝힌 촛불 앞에 좌초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당이나 진보당의 지지도가 올라간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국내외적 시대적인 흐름에 맞추어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도그마를 해체하고 생산적인 보수-진보 구도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땅의 진보 세력의 실천에는 ‘이념 정치’는 존재할지 몰라도 ‘정책 정치’는 존재한 적이 없다. 이 땅의 혁명주의 또는 포스트모던 진보 세력은 이념을 가지고 있으되 이를 실현할 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불임의 정치 세력이며, 인민들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개입 능력을 잉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집권 가능한 정책 역량을 갖추지 못한 국민적 불신의 대상인데, 이와 같은 사상적․정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들은 국회와 지방의회 등 제도 정치헤서 영원히 소수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과거 군국주의 전쟁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정작 국가 운영에 관련된 진보적인 정책은 등한시함으로써 권력을 보수 정당에 내주고 주변화해 마침내 소멸한 일본의 사회당이 한국 진보 세력의 미래라면, 끔찍하지 않은가(29쪽).” 국민대 경제학과 조원희 교수의 위 말은 지금 현재의 진보세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는 대중을 통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념이나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념과 진리의 다양성에 대한 승인,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 사회적 연대, 평등한 생태와 환경적 권리, 평화주의, 노동자 계급 정당을 뛰어 넘는 인민 정당 또는 국민 정당으로의 지향, 경제 성장과 보편적 복지, ‘인민의 집’으로서의 ‘국가 공동체’, 의회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한국적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실현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현재 상황에서 이 책과 같은 기획물이 나온다는 자체를 반갑게 생각하고, 좀 더 깊은 논의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낡은 사고를 떨쳐 버리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그 날을 생각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때가 온 것이다. |
|
한국 사화와 좌파의 재정립, 나에겐 버거운 책을 골랐다. 사실 좌파와 우파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못하기에 이번기회에 뜻이라도 알고 지나가자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고난 지금도 나에겐 역시 어려운 주제이다.
한국의 좌파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지속된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태내에서 자연발생 하였다. 레닌주의를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후진국 러시아 에서 곧장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한 볼세비키 자신들의 지극히현실적인 정치적인 행동을 정당하하고, 재현한것이 레닌주의였다. 정권을 잡은 러시아 볼세비키들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사회민주주의 들과 자신을 구분짓고, 국제 공산당 즉 코멘테른이라는 새로운 중심을 세웠다. 그렇게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격한 파열음을 내면서 갈라지던 시기의 언어들은 과장되고, 일방적이다. 그리하여 한국 좌파 운동권의 뇌리에는 사회민주주의는 매우 나쁜 금기와 경멸의 단어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좌파든, 우파든 사실 난 관계없는 사람이다. 그저 우리나라 사회가 어느쪽이든 편을 가르지 말고, 열린마음으로 서로를 대했으면 하는 작은바램이 있을뿐이다. 책을 읽고 난후 좌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알게된것이 나에게는 큰 이득이 되었던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이책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