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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까?
"당신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까?" 내용보기
앵무새죽이기의 주인공은 분명 1인칭 자아인 '스카웃' 이다. 그리고 또한 가장 가까운곳에 있는 그의 오빠 그리고 딜 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것이다. 물론 비슷한 또래 라는 점에서 이 세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카리스마를 차지하는 인물은 애티커스 핀치, 바로 그들의 아버지 이다. 아버지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
"당신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까?" 내용보기
앵무새죽이기의 주인공은 분명 1인칭 자아인 '스카웃' 이다. 그리고 또한 가장 가까운곳에 있는 그의 오빠 그리고 딜 이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것이다. 물론 비슷한 또래 라는 점에서 이 세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카리스마를 차지하는 인물은 애티커스 핀치, 바로 그들의 아버지 이다. 아버지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들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켜준다. 마치 문제를 도저히 풀 수 없을때 나타나는 백마탄 기사처럼...... 책의 첫 부분에서 학교의 교육과 아버지의 교육을 대조해서 약간 보여 주게 되는데 보통 아버지들과는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다. 어떤일로 오빠와 스카웃은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고는 학교에 보낼수 없어 " 라며 완벽하게 아이들을 자기 품에 끌어 안고 있는 그런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 아주 막강한 힘을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런 발휘하고 있는 '학교'라는 존재보다 자신의 아이들의 존재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학교에 보낼 수 없어" 이 말...... 나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설령 내가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고 그러하더라도 "학교에 보낼 수 없어"라는 말은 죽어도 꺼낼 수 없을것이다. 한 번의 결석처리로 인한 다른아이들 보다 덜 한 평가를 받는 열등감과 그 날의 수업의 불참으로 인한 또다른 열등감과 또 그 다음날 가서 선생님께 추궁을 당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말은 꺼내지 못할 듯 하다. 나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해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그런 아버지가 나도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애티커스핀치는 또 다른 경이로운 체험을 '젬' 에게 하게 한다. 경이로운 체험이라기 보다 아버지로써는 왜 그런 경험을 하게 한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상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 마지막에서는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로 부터 한 방을 먹게 된다. 애티커스 핀치는 젬이 이미 죽을때가 다되어가는, 치매가 있는, 성격이 불같고 욕을 해대는, 침을 마구 흘려대는, 모르핀 중독자인, 심지어 그들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에 대해 모독을 하는 듀보스 할머니에게 잘못을 했을 그때 핀치는 젬에게 매일 할머니에게 가서 책을 읽어드리라고 한다. 임종이 가까워 왔을때 까지 젬은 책을 읽어드렸으며 결국에는 듀보스 할머니는 임종을 맞게 된다. 그리고는 젬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이렇게 말한다. "할머닌 훌륭하신 귀부인 이셨지..."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때 바로 용기가 있는거다. 승리란 드문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요즘 세상에 자신의 자식을 그런 치매가 걸린 죽어가는 노인에게 책을 읽어드리라고 홀로 보내는 그런 아버지가 있을까? 애티커스 핀치는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깨고 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교육을 그런 참된 교육으로 그의 아들 젬의 가슴에 파문이 일게한다. 이것이 그들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의 교육 방식이다. 당신에게 많은 파문을 일게 하지 않는가? 마치 스카웃과 젬이 영향을 받은것처럼...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애티커스 핀치의 아들이 되어 있었다.

[인상깊은구절]
"...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때 바로 용기가 있는거다. 승리란 드문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w****r 2004.07.10. 신고 공감 1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어려서 못봤던것들..
"어려서 못봤던것들.." 내용보기
중학교 2학년 때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었다.흔히 만화책을 빌리는 곳에서 나는 이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이 책은 두꺼웠고 그때는 이 책의 표지도 달랐다. 어쨌든 유명한 책이라는말에 나는 이 책을 들고 가서 읽기 시작했고 읽다가 잠들고 읽다가 잠들고를 반복하여 마침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채워 읽지도 못하고 들고 가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해서 다시는 이
"어려서 못봤던것들.." 내용보기
중학교 2학년 때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었다.흔히 만화책을 빌리는 곳에서 나는 이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이 책은 두꺼웠고 그때는 이 책의 표지도 달랐다. 어쨌든 유명한 책이라는말에 나는 이 책을 들고 가서 읽기 시작했고 읽다가 잠들고 읽다가 잠들고를 반복하여 마침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채워 읽지도 못하고 들고 가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미없는 책으로 기억해서 다시는 이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내 생일날 나의 착한 여동생이 내게 도서상품권 만원짜리를 선물로 주는 바람에 작은 동네 서점에 가서 이 책 저 책을 둘러보다가 다시 이 책에 도전하고 싶은 맘에 이 책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책은 어릴 때 보던 것과는 달리 아주 재미있었다. 첫 부분의 부 래들리에 관한 얘기는 하숙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나에게는 공포감 비슷한 느낌을 주었고 톰로빈슨에 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는 걸 생각하며 그 때는 왜 재미가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생각해 보았고 내 친구들, 내가 싫어하는 친구들과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나의 부모님 그리고 장애인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았고 여러가지로.. 지금도 여러가지 생각중이다.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좋은책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s****s 2004.06.30. 신고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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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많은 앵무새를 죽이고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앵무새를 죽이고 있을까?" 내용보기
우리는 흔히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개인의 아픔과 갈등을 이겨내는 플롯을 생각하기가 쉽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한없는 감동을 주고 공감을 하지만, 또 어떤 작품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감동을 주는 작품들은 아마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어온 경험과 사회현실이 맞아떨어진 경우가 아닌가 싶다.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작품으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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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개인의 아픔과 갈등을 이겨내는 플롯을 생각하기가 쉽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한없는 감동을 주고 공감을 하지만, 또 어떤 작품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감동을 주는 작품들은 아마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어온 경험과 사회현실이 맞아떨어진 경우가 아닌가 싶다. 성장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작품으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든다. 그리고 주저 없이 추천을 하기도 한다. 이 책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난 [난쏘공]이 떠 올랐고, 그래서 때로는 마음이 아팠다.

 

이야기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스카웃이 여섯 살부터 아홉 살이 될 때까지 3년 동안 앨리베마주 메이콤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고 있는 이 작품은, 어린 소녀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하퍼 리는 1931년에 일어난 스코츠보로 재판사건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내가 읽은 것은 단순히 흑백 인종문제뿐만이 아니라, 학교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가정에서의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과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변호사인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는 메이콤에서 발생한 톰 로빈슨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죄가 없는 톰이 피해자들의 진술만으로 강간범이 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모든 백인들의 비웃음과 조롱 그리고 협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톰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는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 젬에게 사람들은 다 똑같음을, 차이가 없음을 자신의 행동으로써 보여준다. 톰의 변호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가 죽은 후 부엌에서 일하는 캘퍼니아 아줌마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그런가 하면 그는 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엽총을 사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앵무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먹거나 창고에 둥지를 트는 등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여기서 애티커스는 젬과 스카웃에게 흑인을 앵무새로 비유하여 말하지만, 우리사회는 어떤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장애인, 철거민, 이주노동자 등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수많은 앵무새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또 애티커스는 스카웃과 젬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때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려를 많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나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했는지, 아니 이해하려 한 척은 아니었는지 반문해본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오히려 생경하기 까지 하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는 고사하고, 자신의 생각과 아집 속에서 비난하는데 더 익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또한 우리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리고 그들 나름의 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하고, 그들이 질문을 했을 때 뭐라 대답해 주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내가 자라오면서 들은 그대로, 내가 그들이 아닌 아버지로써, 어른으로써 생각하는 그대로를 이야기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저 너희는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는 이 작품을 읽고서 타자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k*****1 2011.03.17. 신고 공감 16 댓글 28
리뷰 총점 종이책
'미국인의 양심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 화제작' - 앵무새 죽이기
"'미국인의 양심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 화제작' - 앵무새 죽이기" 내용보기
어떤 책들은 그 책의 작품성보다 메시지가 주는 호소력이 뛰어나서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경우 우리나라 사형제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메시지가 문체를 압도해서 문체의 뛰어남이 돋보이지 않을 뿐이다.'라는 주장이 나올만큼 메시지가 강렬했던 한 예이다. 이처럼 메시지가 사회적으
"'미국인의 양심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 화제작' - 앵무새 죽이기" 내용보기

 어떤 책들은 그 책의 작품성보다 메시지가 주는 호소력이 뛰어나서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경우 우리나라 사형제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유명하다. '메시지가 문체를 압도해서 문체의 뛰어남이 돋보이지 않을 뿐이다.'라는 주장이 나올만큼 메시지가 강렬했던 한 예이다. 이처럼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경우 책도 많은 인기를 얻기 마련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메시지가 강한 작품의 전형적인 예이다. 솔직히 이 책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워낙 유명하고 수십년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작품에 기대를 거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내가 문체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문체가 그리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대문호의 반열에 든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섬세한 필치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진기할 정도로 빠져드는 맛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느낌까지는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롯 자체는 무척 재미있고, 신선하다. 조금 지나치게 말한다면 문체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하퍼 리는 미국인들, 미국 사회의 매우 본질적인 문제를 아주 멋지게 다루고 있다. 물론 좋은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의 아주 큰 이해관계가 걸린 핵심적인 인간 본질의 문제가 이 작품에서 펼쳐진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정체성이 있다. 이 정체성이 형성되는 데에는 가족, 사회, 국가, 종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울타리들이 큰 역할을 하고, 그 본질을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박힌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을 찾지만, 동시에 안정감이 침해당할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울타리를 공유하지 않는 타자와의 만남은 언제나 긴장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긴장감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본성은 양심만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 그 본질 속에는 이해관계와 권력관계가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일례로 나와 울타리를 공유하지 않는 타자를 대할 때 우리가 다수이면서 강자라면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폭력적이 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내재된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양심이라는 또다른 양면적 속성이 있다. 우리의 양심은 나와 다른 타자도 나와 동일한 인간이며, 마땅히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의 양심의 소리에 따른다면 내 정체성에 내재된 울타리를 확장하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나에게 힘이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나에게 힘이 있다면, 법보다 주먹이 더 손쉬운 해결책이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법조차 힘의 논리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으니 실제적으로 힘의 논리는 현실세계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흑인 톰 로빈슨이 강간혐의로 체포되고 법정에서 재판받는 사건 전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은 애티커스 변호사의 딸이자 일인칭 화자인 스카웃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한층 성장하게 된다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미국 남부의 흑백갈등, 재판과정, 남부 사회의 모습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어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있어서도 교과서 이상의 역할을 감당하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또한 미국에서 4천만부 이상 팔리며 성경 다음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책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인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인기는 미국인으로서의 도덕적 자긍심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힘을 가진 미국은 법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한다. 그렇다고 미국을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도 이 점을 인식하고 이 책을 폭발적으로 성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관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애티커스 핀치의 말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호이해에 기반하지 않은 관계는 종국에는 파괴적인 결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단순히 양심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역지사지를 통한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 책이 인기를 누리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YES마니아 : 골드 s*******1 2010.11.08. 신고 공감 9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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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군..
"모든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군.." 내용보기
리뷰를 보면서 어느누구도 이 책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다는 걸 보았다..그런데 난 이책이 별로 였다^^ 특별히 감동을 받거나, 인상을 받거나, 재미를 갖거나, 마음이 잔잔해 지거나,숙연해지거나 하는게 전혀 없었다..요새 들어 내가 성장소설을 읽고 있어서 이 고귀한 책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 "하퍼 리"께서 하신 말씀 모두 맞으시고 어디하나 흠 잡을때
"모든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군.." 내용보기
리뷰를 보면서 어느누구도 이 책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다는 걸 보았다..그런데 난 이책이 별로 였다^^ 특별히 감동을 받거나, 인상을 받거나, 재미를 갖거나, 마음이 잔잔해 지거나,숙연해지거나 하는게 전혀 없었다..요새 들어 내가 성장소설을 읽고 있어서 이 고귀한 책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 "하퍼 리"께서 하신 말씀 모두 맞으시고 어디하나 흠 잡을때 없다.. 이책으로 인해 미국 백인들중에서 반성할 사람들 무척 많을 것이다..그리고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봐도 자신도 모르게 내제되어있는 백인지상주의 그리고 동남아 사람과 흑인들을 미국사람못지 않게 기피하고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 시민을 포함한 백인들만 반성할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함 생각을 해보야할 것 같다..책을읽을 때 재미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읽기 힘들고 지루했던 책이였다..나는 단지 어리석게도 책을 읽을 때 소설적 재미를 많이 추구한다..그러므로 나와 같이 재미를 좇는 분들은 이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c****z 2004.05.20.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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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용기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용기에 대해 들었고, 또 사랑에 대해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이고 사랑이란 어떤 모습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진정한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양심에 대해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1부는 아서 래들리(부), 2부는 톰 로빈슨의 재판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
"진정한 용기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용기에 대해 들었고, 또 사랑에 대해 수없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이고 사랑이란 어떤 모습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진정한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양심에 대해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1부는 아서 래들리(부), 2부는 톰 로빈슨의 재판을 둘러싼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를 통해 진정한 삶의 자세란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백인 변호사인 애티커스 핀치의 딸 스카웃이 일곱 살부터 열 살까지 겪었던 일을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성장 소설이다. 애티커스는 백인 여성을 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던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깜둥이 애인이라는 비난과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비난과 매도 앞에서 애티커스는, 주먹이 아닌 머리로 싸우고 말한다. 흑인이라면 무조건 매도하는 남부의 집단적 편견 속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아버지이길 희망하는 애티커스의 태도를 통해 젬과 스카웃은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배워 나간다. 소설의 얼개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인 아서 래들리는 부모의 집착이 빚은 희생양이다. 집 밖으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는, 마을 아이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그는 젬과 스카웃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구해준다. 그 역시도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일 뿐으로, 우리는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는 하나의 상징이다. ‘앵무새’는 인간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노래만을 불러주는 새인데, 이 책에서는 로빈슨과 같이 버림받고 소외된 타인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저지르는 야만에 대한 경고이다. 영어판을 읽지 않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문예출판사의 ‘앵무새 죽이기’는 한겨레의 ‘앵무새 죽이기’에 비해 좀 더 충실한 번역을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의 여부는 논란이 있겠지만 몇몇 인물들의 말을 우리 사투리로 고치는 등 원본의 느낌을 살리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나의 기대를 모두 채워주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한겨레판을 읽었는데 굳이 다시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서이고, 또 좀 더 완벽한 책을 만나고 싶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이 2002년 9월에 나온 1판 1쇄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자가 너무나 많았다. 특히 뒤로 가면 갈수록 심해서 교정을 제대로 본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그 뒤에 나온 책에서는 아마 수정했겠지만 기왕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버릴 수 없다. [1]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내말을 들으라고 다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카웃, 변호사라는 일의 성격으로 보아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게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학교에서 이문제에 관해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만 해주렴.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아래에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겅을 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를 가지고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거란다.”(146) →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비난과 매도 앞에서 애티커스는, 아직 너무나 어려 아버지의 힘겨운 싸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용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 “맞아, 하지만 그밖에 달리 어떻게 내 아이들을 대면할 수 있겠나? 잭,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 못지않게 자네도 잘 알고 있잖아. 젬과 스카웃이 별 고통 없이, 무엇보다도 메이콤ㅁ의 그 흔한 질병에 감염되지 않고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야. 흑인과 관련된 문제만 생기면 왜 이성을 가진 사람들도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날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젬과 스카웃이 읍내 사람들 말을 듣지 말고 나한테 와서 답을 물어보기를 바랄 뿐이지. 그 애들이 나를 충분히 믿어주면 좋으련만….”(170) → 애티커스는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문제에 대한 동생의 조언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근거 없는 편견과 그것에 기초한 횡포에 맞서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 그리고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3]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172) → 이 책의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는 하나의 상징이다. ‘앵무새’는 인간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노래만을 불러주는 새인데, 이 책에서는 로빈슨과 같이 버림받고 소외된 타인들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저지르는 야만에 대한 경고이다. 타인에게 가하는 근거 없는 횡포에 대한 경계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공기총을 사 주며 충고하는 이 부분에서 상징적으로 찾을 수 있다. [4]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더…. 때로 나는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누군가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아.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셔.”(208) →로빈슨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 애티커스의 행동은 흑인에겐 인권이 없다고 믿는 당시 남부의 집단적 편견 속에서 심한 야유와 비난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생명의 위협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아버지이길 희망하는 애티커스는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 받은 스카웃이 “아버지는 정말 검둥이 옹호자인가요?” 라고 물을 때에도 의연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통해 젬과 스카우트는 양심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배워 나간다. [5] “그래, 훌륭하신 귀부인이셨어. 할머닌 세상일에 대해 할머니 자신의 생각이 있으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이…. 얘야, 네가 그때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할머니께 책을 읽어드리도록 했을 거야.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겨우 98파운드의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할머닌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닌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어.”(214) → 두보스 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뒤, 아이들이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에게 추하게 늙고 성격이 불같으며 아버지를 비난하는 할머니에게 한 달 동안 책을 읽어주게 한 이유를 물었을 때의 대답이다. 아버지를 통해 아이들은 진정한 용기란 총을 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겉이 아닌 내면을 보고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6] “좀 더 생각해 봐. 그건 우연이 아니었어. 지난밤에 난 현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너희 모두가 인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단다.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역시 걸음임에는 틀림없다.”(407) → 마치 여자 애티커스라고 말할 만한 모디 아줌마가 젬과 스카웃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렇다. 애티커스는 결코 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언제나 승리만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티커스는 자신이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했고, 그의 노력으로 완고한 남부 사람들의 머릿속에 과연 자신들의 생각이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작지만 틀림없이 중요한 한 걸음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가로등이 읍내까지 길을 환히 비쳐주고 있었다. 나는 여태껏 이 방향에서 우리 이웃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모디 아줌마네, 스테파니 아줌마네-그리고 우리 집이 있었고, 현관에 있는 그네가 보였다-레이첼 아줌마네 집이 우리 집 건너에 환히 보였다. 듀보스 할머니네 집까지 보였다. <중략>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j***g 2005.01.03.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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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 173)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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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p. 173)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앵무새가 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며 때론 죽어야 하는가?

 

이 소설은 1930년대 경제 대공항기란 시대적 배경과 흑인차별이 심했던 남부 알라바마주란 공간적 배경에서 스카웃이란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앵무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린 소녀의 눈에 비쳐진 어른들의 편견과 이로 인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두 명의 억울한 인간 '앵무새'의 모습이 그려진다. 첫번째는 마을의 이웃사람 이야기이다. 부 래들리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어린이를 돌보아주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유령이나 흡혈귀처럼 외면당한 채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고 애들에게는 집 근처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는 그런 존재로 나타난다. 두번째는, 톰 로빈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강간범의 누명을 쓰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불쌍한 재판이야기가 전개된다.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시공간적 배경을 생각해 볼때 이 소설은 흑인차별과 같은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남들을 규정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돌아보는 그런 배려과 너그러움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다가온다. 



c******4 2010.04.14. 신고 공감 4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사람들 - 앵무새 죽이기 -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사람들 - 앵무새 죽이기 -" 내용보기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일어났다.   어린 소녀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제레미는 분명 '선' 을 알고 있었고, '정의' 를 알고 있었다. 변호사인 아빠는 분명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법원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 역시 그것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고'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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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일어났다.

 

어린 소녀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제레미는 분명 '선' 을 알고 있었고, '정의' 를 알고 있었다.

변호사인 아빠는 분명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법원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 역시 그것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고' 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하지도 않은 죄를 덮어써야 했다.

모든 상황들이 그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죄인이 되었다.

 

스카웃과 젬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정의가 무너지는 모습을, 선이 뭉개지는 모습을.

 

또한, 아빠인 애티커스가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쏟아진 친절하고 착하던 이웃들의 멸시와 조롱과 위협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알아 나가고, 아빠의 가르침을 통해 그것들에 의연히 대처해 나가는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1930년대 앨라배마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하퍼리' 의 유일한 작품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받았고, 작품을 발표한 이듬해인 1961년에 하퍼 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은 슬프게도 차별할 다른 기준을 찾아 나서지요 -슈퍼맨: 버스라이트-'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언제나 차별이 있고, 차별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소외가 있다.

피부색, 성별, 국가, 종교, 이념...

그게 무엇이든, 자신과 다른 것은 무조건 배척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많건 적건, 다수는 언제나 소수를 차별한다.

언제나 차별할 기준을 찾아나서고, 다수에 속하면 소수를 차별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차별본능.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카웃과 제레미는 차별을 시키는 '다수' 에 속해있으면서, 차별을 당하는 '소수' 를 위해 헌신하는 아빠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차별과 차이, 정의와 관용, 진정한 용기를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작품속에서 스카웃과 제레미의 아빠인 애티커스는 '앵무새를 죽이는 행위' 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라고 말한다.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지만 피부가 검다고 죽이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인 것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지만, 피부가 검다고 그들 전체를 차별하는 행위는 불의한 일인 것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않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우리와 다른 말을 쓴다는 이유로 그들 전체를 차별하고 소외하는 일은 악한 일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보여지는 차별과 그로 인한 횡포를 목격하면서도, 자신에게 신체적, 물질적 피해만 입지 않으면 눈을 감아버린다. 차별당하는 대상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그 어느 사회에서건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남아나 중국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횡포를 들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전체가 한국 사회에서 한국 사람들로부터 차별받고 불이익을 당해야 할 이유는 정당하지 못하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일반화의 오류를 통해 그들은 사회의 해악들이고 차별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는 기준은 명백하다.

피부색, 국적,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거주하는 '소수' 인 외국인들.

 

분명 우리나라에도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한국인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선을 행하고 있으며, '인권' 이라는 이름의 정의를 수호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잊고, 단지 인도주의적인 입장만으로 외국인인 그들을 위해 나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작품안에서 스카웃과 제레미의 아빠인 애티커스는 단지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로 살해협박까지 받게 된다. 심지어 제레미와 스카웃은 정말로 끔찍한 위기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아빠로서 그런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정의라고 믿고, 선이라고 믿는 것을 행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아빠를 보며 자란 스카웃과 제레미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도 미국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대단했고, 지금도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와 이 작품이 발표된 1960년대 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다.

그것은 분명 애티커스같은 부모들이 존재했고, 그런 부모들을 보며 자란 스카웃과 제레미 같은 세대들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사회적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것에 맞서싸운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의 역할, 가족의 역할. 이 사회에서 가족이 왜 필요한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요소가 왜 가정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스카웃과 제레미의 아빠인 애티커스가 흑인인 존의 변호를 맡게 된 이유는 단순히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타파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세상이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바랐다. 단지 피부색으로 한 인간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인 사회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바꾸지 못한다면, 자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피부색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세상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진정한 정의와 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움을 피하지 않는 용기 또한 물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없이 자랐던 스카웃과 제레미는 처음에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과정속에서 애티커스가 스카웃과 제레미를 교육시키는 방식이 참 인상적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아직 어린 스카웃과 제레미를 때론 논리적으로, 때론 이성적으로, 때론 감정에 호소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육하는 방식은 유교문화 아래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가정교육들을 돌아보게 한다.

 

나도 애티커스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그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도 했다.

 

 

사람은 언제나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그것을 죄라고 불러도 좋다. 악이라고 불러도 좋다. 불의라고 불러도 좋다.

성숙한 인격과 미숙한 인격의 차이는, 그것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고치려고 노력하는지, 얼마나 고칠 수 있는지를 통해 나뉠 것이다.

그리고, 그 인격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결정된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쉽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화를 제어하지 못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 '욱' 하는 성질을 못이겨 폭력을 넘어 살인까지 전이되는 사건과 사고들을 많이 보게된다.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사회의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 가정교육까지 많이 무너진 현실을 보게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식들을 엄히 가르쳤다. 

자식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부모가 자식을 대동하고 그에게 찾아가 무릎꿇고 사죄했으며, 그 앞에서 자식이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르게 했다.

자식들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자기가 한 죄의 크기를 가늠했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손해를 입히는 일이 자신의 자존심보다 더 무겁고 중한 죄임을 깨달았다.

 

차별이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만 자존심이 있다.

넌 그런거 필요없다.

나랑 내 자식만 자존심이 있다.

넌 그런거 필요없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의 자존심만큼, 타인의 자존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속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나는 과연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



f******g 2010.05.2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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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앵무새 죽이기
"다시 읽은 앵무새 죽이기" 내용보기
책모임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칼의 노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더 많이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주 우리가 읽은 책은 '앵무새 죽이기'다. 나는 이 책을 20대 초반에 읽었었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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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칼의 노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장면을 더 많이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주 우리가 읽은 책은 '앵무새 죽이기'다.

나는 이 책을 20대 초반에 읽었었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부 지역에서 죄없는 흑인을 변호해 주는 백인 변호사 이야기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1부에서는 과연 20대 초반에 내가 읽은 책이 '앵무새 죽이기'였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분명 제목이 하도 독특하여 헷갈리지는 않을텐데, 1부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것이다.

이 책은 이제 다시 읽는 책이 아닌 처음 읽는 책이 되버렸다.

 

화자는 학교에 곧 들어가는 '스카웃'이라 불리는 여자 아이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오빠와 변호사 일을 하는 아빠, 집안 일을 돌봐주는 흑인 아주머니가 있다.

지역은 미국 남부,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극심한 경제공황에 시달리는 시기다.

 

1부에서는 아빠의 양육철학이 빛을 발한다.

엄마여서인지 무슨 책을 읽어도 양육자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혼자 된 아빠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사람들을 대하는 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스카웃과 타협하는 모습이라던가 부 래들리씨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때론 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빠는 그 어떤 사람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아빠의 이런 믿음은 아무 죄도 없는 흑인을 오직 흑인이라는 이유로 만장일치로 유죄로  판결하는 순간에도, 이웰씨가 침을 밷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이 세상 사람들의 불합리한 태도에 분개할 때도 긍정성을 일깨운다.

 

흑인을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위협하는 사람들, 흑인이라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는 사람들은 다수이다. 대신 협박 당하는 변호사를 지키는 3명의 이웃들, 재판에 졌을 때 스카웃 가족을 위해 달콤한 케익을 구워주는  모디아줌마,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이웃집 아저씨 부 래들리는 소수이다.

 

아빠는 말한다.

"수백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라고.

 

이 문장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 문장이 나를 패배주의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나에게 다시 '우리 나라에 대한 희망'을 '세상에 대한 긍정'을 의무가 아니라 믿음으로 갖게 할 수 있을까?

n****5 2015.06.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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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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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제목만 보고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었다. 정말 앵무새를 죽이는 이야기일까? 그럴리는 없었다. 퓰리처 상까지 받은 책인데 그런 단순한 이야기일리 없다고 생각하고 첫장을 폈다.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스카웃이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눈으로 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는 아직도 흑인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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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제목만 보고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책이었다. 정말 앵무새를 죽이는 이야기일까? 그럴리는 없었다. 퓰리처 상까지 받은 책인데 그런 단순한 이야기일리 없다고 생각하고 첫장을 폈다.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스카웃이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눈으로 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는 아직도 흑인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변호사인 스카웃의 아버지는 모든 일에 공정하다. 부인이 없으니 흑인 가정부에 모든 것을 의지하였는데, 그녀를 존중하고 아이들에 대한 그녀의 교육에도 신뢰를 보낸다.

 그러면 여기서 앵무새가 누구를 비유하는지 조금 감이 올 것이다. 앵무새는 다른 새의 말을 따라하는 새다. 여타 다른 새처럼 농사를 망치거나, 다른 둥지에 알을 낳는 짓도 하지 않는다. 즉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앵무새를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죽이고 있다. 유색인종, 장애인, 각종 오해와 선입견으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일 것이다.

 사랑, 박애, 평등의 신념에 충실하려는 아버지 덕분에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는 정의와 진리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이들로 인해 세상이 갑자기 변할리는 없다.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헐리우드 영웅 영화가 아니니까. 하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다문화로 시끌벅적하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면서 다양한 인종이 밀려오자 혼란스럽다. 피부색이 흴 수록 우월하다는 어떤 연구 결과가 없음에도 우리보다 피부가 검은 사람을 무시하고 색안경을 끼고 본다.

 장녀로써 가정일에 치이다보니 남자와 전혀 접촉이 없었던 한 백인여자가 지나가던 친절한 흑인 남자에게 대쉬한다. 그가 거부하는 중에 아버지에게 들키가 흑인남자가 자기를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말하고 그 것이 결국 재판까지 가게된다. 스카웃의 아버지는 이 흑인 남자를 변호하게 된다. 그것이 불러오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살해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정황상 흑인남자는 무죄였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들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가 요즘 유행이다. 정의, 도덕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싶다.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초등 고학년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y******e 2011.02.07. 신고 공감 2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