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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즐거움 이 즐거움이란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포함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즐거움을 원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즐거움속에서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지만 그 즐거움을 찾기가 매우 힘든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찾기 쉬운 사람과 어려운 사람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지적이라는 단어와 많은 연관이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보았다. 즐거움이란 지적이다 그렇지 않다의 관계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적즐거움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성장해 갈 수 있다. 그 즐거움의 파급효과는 많은 부분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것이다. 해머튼은 우리에게 ‘지적즐거움’을 통해 지적생활의 소중한 씨앗을 움트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책의 두께에 한번 위압감을 느끼고 지적이라는 말에 상당한 무게감이 있고 웬지 나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는 상태에서 곧게 뻗어진 가로수의 짚은 녹음의 표지를 보면 마음의 평화를 자리잡고 책장을 넘겨본다. 지적즐거움 열개의 파트로 나눠어져 있고 각 파트마다 편지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지적생활의 육체, 정신적기반,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육, 시간, 금전, 결혼, 교제와 고독, 지적즐거움, 직업과 천직, 환경으로 나누고 있다. 여러 파트로 다양한 계층들에게 편지형식으로 그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세대의 차이가 있어서 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여성의 지적인 삶의 각도도 여성우월주의에 빠진 독자에겐 상당히 충격을 던져주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그의 생각이나 현실이 무모하게 던져진 말은 아니지만 시대가 변화고 점차적으로 여성의 기회가 많아지고 교육의 질도 많이 향상된 이 시점에서 아마도 그런 독자들과 상당히 거리감을 느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단지 높은 교육을 받은 것만이 아닌 일상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과 제약을 극복하고 풍요롭고 강인한 지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속에서 이 얼마나 힘든 지적생활인가 말이다. 지금 배우고 있는 모든 학생이나 일반인들까지 높은 교육열속에서 힘든 경쟁을 하면서 우리는 배우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 이 교육의 현장일 것이다. 그런 현장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힘든 사정과 제약을 극복하고 강인한 지성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정신적으로 많이 나약해져 가는 현실이 무척 아까울 따름이다. 스스로 배우고 극복하려는 마음보다는 쉽고 편하고 수동적인 생활패턴에 많이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강인한 지성을 하루 빨리 만들도록 우리는 자극을 주어야 할 것 같다.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즐거움에 대한 선물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사람을 지적으로 만드는 것은 배우고 익힌 학식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고 생기발랄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일종의 덕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고 생기발랄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일종의 덕에 마이너스인 사람이 많아졌다. 어떠한 현실에서 점차적으로 긍정적으로 대하고 추진하는 것보다는 뭔가 있겠지 무언가 함정이 있고 그것에 대해 나는 강력한 대처를 하고 주도 면밀하게 예방을 해야 한다는 각박한 생각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즐거움을 즐겁게 슬픔을 슬프게 보려 하지 않고 하나 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좀더 능동적이고 밝은 생각속에서 나의 지적생활의 즐거움을 찾아 보도록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 찾아 보고 실천을 해 봐야 할 듯 싶다. 해머튼이 여러 측면에서 여러 계층의 인간에게 주었던 메시지처럼 말이다. 결코 쉽지 않고 어렵겠지만 그 속에 느끼는 감정의 효과는 크다고 생각된다. 가장 쉬운 길에서 얻은 지성의 발달은 가장 좋지 못한 방해꾼이라고 했다. 지적생활은 일종의 전략 혹은 연습이 요구된다고 했다. 나만의 전략과 연습을 찾아내서 나만의 지적즐거움이 쌓아갈 때 나만의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나만의 성장은 곧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로 뻗어가는 커다란 씨앗의 시초가 될 것이다. 좀더 나은 씨앗을 키우도록 우리는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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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년전 사람의 글
1834-1894. 이 책의 저자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삶의 기간이다. 1800년대....... 지금보다도 무려 170년전을 살았던 사람의 글이다.
사실, 상당히 흥미있게 구성된 챕터에 끌렸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이리 읽고 저리 읽고를 건너뛰며 흥미있게 읽어나가다가 끝으로 갈수록 전체적인 맥락이 잘 안잡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기를 하지 않아서인가 싶어서 처음부터 주욱- 다시 읽기도 시도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이 저자는 현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그러자, 그렇다면 생각보다 많이 오늘을, 아니 현시대 그저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치고는 과거 사람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리몽송하게 읽히는 이 책은 지루한 듯 하면서도 꽤나 여러사람에게 할배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의 사람이라고 하기엔 무서운 통찰력과 미래를 이야기했다.(현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콩커플만 벗겨졌을 뿐인데도 굉장히 다르게 보게 되는 내 자신도 참..;;) 현재 우리는 무언가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자기의 연구분야나 관심분야가 너무나 넓고 시간이 없어 빠듯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 부족한, 자신을 깨닫곤 하는데(나만 그렇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만 그럴수도 있지만^^;)... 할아버지가 되어(각 챕터별 질문대상에게 맞는 사람이 되어 편지를 쓰듯 쓰인글이기에..) 많은 분야의 학문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말해주는 조언은 조용한 여운을 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만큼 많은 시간이 없다는 절박감이 할아버지에게는 없다. 매일 하고 싶은 일을 느긋하게 행하며 조용하게 자기의 학문을 쌓을 수 있었다.... 생략.... 자신의 학문이 불완전하다는 비참한 압박감도 없었다." 104쪽
이 구절은 특히나 내게 울렸는데, 늘 조급히 해결하려 하고 불완전함에 비참해 하는 나에게 주는 위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책을 읽다 본 구절도 생각난다. "어린이가 자기는 한계가 많고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 소년이 되는 것이고, 자기뿐 아니라 남들도 모순투성이 인간임을 알게 되면 청년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부족하단 걸 알고도 사랑할 줄 알게 되면 어른이 된 것이고, 남들뿐 아니라 한계 투성이 자신마저 사랑할 수 있으면 이미 노인이 된 것이다.!"(<사람에게 가는 길>,김병수,마음의숲) 남들뿐 아니라 한계 투성이 자신마저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노인이 된 것. 노인이 되기 이전에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란 쉽지도 않고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일터.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왠지 어려운 상대를 만난듯이 쉬운 말들로만 이루어진 책이 내겐 어려웠던 책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라는 말을 하고픈지 전에 한번 읽었을 땐 보이지 않던 말들이 내게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대상을 선택하여 매일 조끔씩 즐기며 꼼꼼하게 애정을 갖고 구석구석까지 연구한다. 약간 작은 땅을 가진 농부가 자기 땅을 경작하듯이. 이러한 생활이 바로 무엇인가를 연구할 경우에 가장 부러워해야 할 지적 생활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생각해야 할 다른 측면도 있다. 우리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최초의 장애물은 교육이다. 현대의 교육은 많은 점에서 초보는 가르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가르치지 못한다. 107쪽
이렇게 쓰여진, 쉽게 이루어진 교육만으로는 사람을 저절로 자라게 할 수 없다. 아마도 부단히 수련하고 수련된 자기만의 학습으로 스스로 자라날 수 있게 될 것임을 알려주려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하나 하나를 즐김이 진정한 지적즐거움으로 즐길 수 있는 나날로 보낼 수 있음을 알려주려는게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주 아주 머언 옛날 이국땅에서 이미 해머튼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말로 말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지금도 앞으로도.... 주욱- 이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 작가, 교육자... 들에게 말이다. 스리슬쩍 방법까지 일러주는 할아버지의 말을 곰곰 씹으며 읽다보니 내가 잊고 바삐 살아갈 때 다시 한번 툭- 허니 손을 잡아 줄 것 같은 그런 책.^^ (은근, 나중엔 할아버지의 조크에도 웃게 된다.^^ 이를테면 "아는 체 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금도금에도 얼마만큼의 금이 꼭 필요한 것처럼."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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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다...라는 말은 듣는 사람을 흡족하게 하는 말이다. <지적 즐거움>은 그것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려준다. 지적이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고. 때문에 책 내용을 읽다보면 이 책이 지적 탐구 그 자체를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이렇듯 지적이다라는 것은 지적인 과정 자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닌 경험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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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자기계발서를 보다. '지적 즐거움'. 제목만으로도 교양이 넘칠것 같은 분위기다. 왠지 인문학의 향기가 날릴 것 같다. 만약 출판사가 이러한 분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싶었다면 일단 제목의 선택에서는 성공한 것 같다. 네이버 책이나 인터파크에서도 인문학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은 19세기에 쓰여진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즉, 지은이가 생각하는 지적 생활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어떤 삶에 대한 태도와 실천방안을 가져야되는 가에 대해 편지형식을 빌려 적고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매하고 순수한 진리를 열렬히 추구해 가는 것" 이다. 지적 생활의 본질은 늘 수준 낮은 생각보다는 격조 높은 사고 쪽으로 선택하는 것에 있다. 지적으로 생활하는 기술이란 주변을 유리한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일상 생활과 관련된 온갖 사정과 제약을 극복함으로써 풍요롭고 강인한 지성을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서도 밝히고 있는 이 책의 방향을 고려해 볼 때도 자기계발서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뒤에서도 이야기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19세기의 책이라는 것을 읽는 독자는 생각해야한다. 21세기의 현재적 관점에서 보면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전혀 옳지 않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적 생활에 있어 육체적 활동에 대한 내용 중에 담배에 관한 것을 보자. P32 ' 내 경험으로 보건대, 적절한 흡연은 뇌에 상쾌한 자극으로 작용하지만, 근육조직에는 일시적인 권태를 일으킨다. 쉬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지만 근육을 윰직이로 있을 때는 다소 장애가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담배의 이러한 효과를 느낀 사람은운동 중에는 흡연을 피하고 휴식할 때는 지적 노동을 할 때만 피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문장의 조금 뒤에는 담배가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담배를 적극적으로 못 피우게 하지는 않는다. 담배 케이스에 담배를 피우면 암에 걸릴 수도 있고 위험하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코미디 같은 세상인 요즘에서 보면 조금은 우스운 19세기 지식인이 바라보는 담배 이야기다. 이 책은 띄엄띄엄 읽어도 좋다. 각 Part가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기에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관심이 있어보이는 부분부터 읽어도 전혀 지장없다.
21세기의 눈으로 19세기 교양인의 지적 생활을 엿보다. 이 책의 지은이인 필립 길버트 해머튼은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인- 영국남자다. 여기서 영국남자임을 굳이 강조하는 까닭은 그의 글이 19세기의 시대적 배경과 철학의 범위내에서 남성의 시각으로 쓰여졌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이 책의 곳곳에서 그러한 한계가 나타난다. 하지만 21세기의 눈으로 19세기의 교양인의 생각과 생활을 재단하는 것은 결코 옳바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 시대를 뛰어 넘어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고 앞선 시대의 기술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사상과 철학도 시대에 발맞춰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대를 뛰어 넘는 사상을 가진 분들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2600년전의 부처가 나타나 자비와 생명의 존중함을 이야기하고, 2000년전에 예수가 나타나 만민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고, 다시 그로부터 600년후에 마호메드가 나타나 신 앞에 평화와 평등함을 이야기함으로 감히 그 시대를 뛰어 넘는 사상을 설파했을 때 우리는 그 분들을 성인이라고 부른다.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인 필립 길버트 해머튼에게 그런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테니 그냥 웃으면서 옛 어른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특히 part 6. "지적생활에 있어서의 결혼"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여성들이 보면 분노의 눈길을 보내겠지만, 19세기의 인물이 쓴 글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보는 것이 좋겠다. '지적인 삶에 있어서 결혼'를 보면 도저히 요즘의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여성관이 나타난다. P238"나는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 결혼에 관해 취할 길은 두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낳고 많은 가사 일을 빠뜨리지 않고 행하고,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일에 질투하지 않는 질박하고 충실한 여성과 결혼하던가, 반대로 높은 지성을 소유하고 자기 교양을 학교에서 받은 교육 이상으로 높일 수 있는 지적 노동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여성과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생각인가!! 여성이 단순히 남편의 보조축에 지나지 않고 자신의 지적인 생활은 남편을 보조하는 경우에만 유용하다니...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자. 영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주어진 시기가 언제인가. 이 책이 쓰여진 시기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시대이다. 여성 참정권이 세계최초로 인정된 뉴질랜드에서조차 1893년이니 이 책이 쓰여지기 전일 것이다. 참고로 영국은 1928년 이르러서야 전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었으니 형식적으로나마 남성과 평등한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 이책의 지은이가 19세기에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보조자로서의 존재였을 것이다.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사고이다. 뿐만아니라 돈에 대한 태도나 직장에 대한 태도도 미국의 청교도적인 근검절약과는 많이 다른다. 육체노동에 지식노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대목도 요즘은 인정하기 힘들다. 다시 한번 19세기 영국남성의 시각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말고 웃음어린 얼굴로 볼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을 가져야 한다. 19세기 영국 교양있는(?) 남성은 이떻게 생각했는지를 그 일면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곁가지.. 책장에 꽂아 놓고 읽지 않는 또다른 19세기 자기계발서 사무엘 스마일즈의 '자조론"과 '인격론' 빨리 읽고 비교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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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그러니까 1800년대 초반 영국 작가들의 에세이는 그나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전 에세이들이다. 이들 작가들의 에세이의 특징을 나름 집어보자면, "비록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아 놓고서는 이런저런 인용구를 들이대고 자기 나름대로의 가설과 주장을 덧붙이며 하나의 글꼭지를 전개해 나간다는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참신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개는 유익하지도 무익하지도 않은 사변의 흐름의 충실한 재현인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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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발달하면서 각 사회에는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지적 즐거움'은 이러한 지식사회에서 나타나는 폐단과 인간이 가질수 있는 혼돈과 딜레마를 정화시켜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지적 즐거움'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독자층의 다변화와 다변화된 독자층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노력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식노동자란 나이와 환경 그리고 성별을 불문하고 나타날수 있다. 즉 우리 자신 누구도 지식노동자가 될 수 있고 그렇기에 너무나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계층이다. 아마도 이 시대 사회 대부분의 계층이 지식노동자라고 말 할수 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너무 광범위하기에 각각의 개성과 특성 그리고 성격을 맞추기에 힘이들고 두리뭉실한 정책과 제도가 사회에 나타나게되며 실제적으로 이러한 제도와 정책등에 관련없는 지식노동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기에 본 책과 같이 전체 지식계층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멘토적 역할에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짧고 분명한 메시지가 필요할것이라 생각된다. 책은 지적인 인간들의 전체 삶의 환경을 모두 다루려 애쓰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식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소중히 보지 않지만 가장 소중했던 것들... 즉 가족, 친구, 직장, 사회라는 모든 것들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실질적으로 나의 상황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며 행복한 것인가를 느끼게 되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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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즐거움! 삶에 지친 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에게 들려주는 앤솔러지 ˜˜˜˜˜˜˜˜˜˜˜˜˜˜˜˜˜˜˜˜˜˜˜˜˜˜˜˜˜˜˜˜˜˜˜˜˜˜˜☀☀☀☀˜˜˜˜˜˜˜˜˜˜˜˜˜˜˜˜˜˜˜˜˜˜˜˜˜˜˜˜˜˜˜˜˜˜˜˜˜˜˜˜ 나에겐 몇 가지의 콤플렉스가 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미적콤플렉스이고 또 하나 는 지적 콤플렉스이다. 미적 콤플렉스는 요즘은 왜 그렇게 예쁜 사람들이 많은지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잘나고 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많아 회사에서도 밖에서도 그들의 특별함에 못생기고 키 작고 못난 사람들은 활개를 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머리도 좋아 똑똑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요즘의 잘 생긴 사람들이 미적감각과 지적인 능력 또한 골고루 갖춰져 있다면 만인의 인기를 누릴 금상첨화한 조건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트랜드가 그러할 진데 용감하게도 성격도 미모도 지적인 능력도 변변찮은 사람들은 그에 따른 열등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고 우습긴 하지만 그렇다고 터부시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 다각적인 방면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미적인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쭉~ 미뤄왔던 ‘책과의 친밀한 관계형성’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교과서가 즉 책이라는 부정적인? 연결고리에 글자로 이루어진 책보다 직업적인 특성도 있었지만 그림과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어 책과의 친밀도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조카도 생기고 나이도 점점 더 들다보니 나의 ‘무식’에 점점 한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뭘 물어오면 덜컥 겁부터 나고 일일이 검색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무식하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이러다간 안 되겠다 싶은 절박한 위기감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책 한 권을 붙들고 근 한 달을 버티며 ‘친밀도’형성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릴 때 그토록 좋아하던 책이 ‘가까이 하기에 힘든 당신’이 될 줄은 예상도 못했던 터라 나 또한 내심 놀랐던 시기였다. 어쨌든 그것을 극복하고 나니 이젠 친밀도를 지나 ‘중독’이 되어 버려 손에 그 어떤 것이라도 책이 손에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낄 지경까지 가게 되었으니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다분히 문제가 많은 것으로 봐야 할 지 깊이 숙고해 봐야 할 문제이다.
『‘지적 즐거움』 에선 말하고 있다. ‘사람을 지적으로 만드는 것은 배우고 익힌 학식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고 생기발랄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일종의 德이라고. 마치 도덕이 생기발랄한 아름다운 몸짓에 기쁨을 느끼듯 지적인 생활이란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매하고 순수한 진리를 열렬히 추구해 가는 것이라고. (해머튼의 서문 중에서) 그렇다. 지적인 것을 향유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적탐구는 분명 본능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적인 향유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본능과는 또 다른 행위와 행태로 인간들은 늘 그것을 꿈꾸고 향유하려고 했고 누리고 있었다. 중세시대 때 우리네 선비들의 지적향유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영국의 예술가이자 예술평론가, 그리고 작가였던 길버트 해머튼이 저술한『‘지적 즐거움』은 이미 100년 전에 출간된 내용을 토대로 저술된 책으로 인간의 지적 생활에 있어 육체적기반, 정신적기반을 다질 소양과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육, 시간, 금전, 결혼, 교제와 고독, 지적 즐거움, 직업과 천직, 환경 등 10개의 Chapter로 나누어 현재 그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또는 학생에게, 직장인에게, 일반인들에게 지적인 삶을 잘 지낼 수 있게 다각적인 지침을 때론 충고를, 격려를 담백하고 짧게 일깨워 주고 있다. 저자가 100년 전에 출간되었던 책을 굳이 또 다시 만든 이유는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목적에 이끌려지는 삶을 추구하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물욕에 속박됨으로써 점점 삶의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어 보다 지적인 삶을 영위하여 그 즐거움을 되찾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취지하에서 발간하였다고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밝히고 있다. 진정한 삶의 즐거움은 외부에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샘솟는 자기만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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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지적 노동자를 위한 책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나의 지적 노동에 대한 평가를 하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노동이라는 것을 지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으로 구분 지을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지적 노동이라고 생각되며, 업무를 함에 있어서 이 지적 노동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느끼고 있는 요즘이라, 지적 활동에 종사하는 지적 노동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이 책이 나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길 바라면서.. 두꺼운 책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보리라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이책은 지적생활에 있어서 육체적기반, 정신적 기반, 지적인 삶에 있어서의 교육, 시간, 금전 등의 각각의 10가지 파트로 나눠져 있는 책이다.
지적인 생활은 곧 정신적인 것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이 10가지의 파트 중에서 정신적 기반에 대한 파트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
정신을 단련하고, 또 단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지적인 노동자가 아닌 어느 누구더라도 보다 좀더 나은 삶을 위한 고뇌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마음속에 지적 즐거움을 만들고 긍정적으로 생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무의미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추천 해 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