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의 선물’은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을 적은 책으로서 자신의 두 번째 아이였던 한나가 암 선고를 받고 그 암으로 인하여 죽기까지의 일과 죽고 나서의 일로 인하여 깨달은 것들을 적은 책이다. 이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TRUTH, JOY, FAITH, COMPASSION, WONDER) 각 부분을 저자가 정의 내린 것을 보면 TRUTH에서는 ‘진실은 섬뜩하고 무자비하다. 우리가 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걸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바꿀 수는 있다. 실수를 저지르는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죽는 것은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다.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두려움에 용감하게 맞서야만 우리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에게 정직할 때에만 우리가 사는 삶과 우리가 받는 사랑이 진정 우리 것이 된다.’라고 정의 내리며 JOY에서는 ‘기쁨은 순간의 문턱에 서 있는 마술이자 평온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넉넉하게 베풀고 충만한 삶을 살 때 경험하게 되는 것이 기쁨이다. 기쁨은 규칙이라는 것을 모르는 탓에 불완전할까 염려하지 않으며, 가장 어두운 곳에서조차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FAITH에서는 ‘신뢰란 무엇을 믿는 게 아니라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신뢰는 어떤 일이 장차 달라지기를 바라며 기도하지 않는다. 신뢰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며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인정하려는 마음가짐이다.’ COMPASSION에서는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게 연민은 아니다. 연민은 모든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다는 걸 아는 데서 나온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든 사람들 사이의 이런 관계를 깨달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혼자 고통을 겪는 게 아니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WONDER(불가사의) 부분에서는 정의를 내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아무래도 불가사의는 불가사의인체로 아무런 정의 없이 두고 싶은 필자의 의도가 묻어나는 부분인지도 모를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이런 유의 책들과는 달리 죽기까지의 삶을 중점적으로 적은 책이 아니라 죽고 난 후 슬픔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일들과 자신의 심경의 변화를 잘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느껴진다. 그러하기에 더욱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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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감동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별로 감동받지 않은) 을 읽고 난 후 독자서평을 쓸 때 나는 가장 큰 혼란을 맞이한다. 아주 솔직히 말한다면 기대만큼 가슴 찡하지 않았다 -_- 그러나 내가 쓴 독자서평이 나를 감정이 메마른 사람으로 묘사하길 바라진 않는다. 분명 이 책의 기획목적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고 저자인 머라이어 하우스덴은 한나가 얼마나 착하고 순수하며 어른스러운 아이었는지 느끼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게다가 다른 독자리뷰들은 모두다 '정말 감동받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하게 쓰려고 하면 내가 몹시 시니컬한 사람인 것 같고 꾸며서 쓰려니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딜레마다;;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감동을 느끼지 않게 된 건, 정확히 말해 별 감흥을 느끼지 않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종류의 책을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이라는 백혈병 투병 아이들의 수기로 시작해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101가지 시리즈를 비롯, 광고문구나 책날개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책!'류의 글귀가 보이면 별 생각없이 책을 집어들었고 말그대로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런 책들에도 일정한 공식이 있다는 걸 감지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메시지들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어느 때인가부터 이런 내용들이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책 쪽이 나에게는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한나는 분명히 훌륭한 아이였다. 전혀 세 살 처럼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말투. 어른스러운 말솜씨.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한나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내가 책을 읽기 전 바라는 한나의 모습은 괴롭다고 칭얼대고 슬플 땐 울기도 많이 우는, 그렇지만 평소엔 긍정적 에너지를 마구마구! 뿜어내는 진정한 -_- 아이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한나는 그저 내 마음을 아프게만 할 뿐이었다.
한나는 나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길 요구한다. 웬만한 일이 있어도 내가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비록 감동은 닳고 닳아버렸지만; 지칠만하면 한번쯤 내 상황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런 책, 드라마, 다큐멘터리 etc...를 읽고,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나, 지금은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겠구나- 잘 자렴- 너의 덕분에 난 한번 더 내 생활에 감사했단다^^ (p.s 다만.. 너의 어머니께 이 말을 전해주겠니?? "죄송합니다만, 감동은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_-_;라고) [인상깊은구절] "엄마, 나 꿈 꿨어." 한나가 말했다. 나는 이불을 들췄다. 밤새 이불 속에 갇혀 있던 온기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한나가 이불 속으로 들어와 꼼지락꼼지락 자기 몸을 내 몸에 바싹 갖다댔다. "엄마, 나 꿈 꿨어." 한나가 다시 말했다. "아주아주 특별한 꿈이야." 우리의 얼굴은 거의 맞닿다시피 했다. 한나는 곧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잠시 뜸을 들였다. "하느님이랑 천사들이 와서 나를 안아가지고 하늘나라로 가는 꿈을 꾸었어!" 한나가 손뼉을 쳤다. "엄마,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무 근사할 것 같지 않아?" 한나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한나는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도 한나를 꼭 껴안았다. |
| 한 어린 아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 볼것입니다. 저 또한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하여도 한나처럼 깊이 생각하지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아마도 " 왜! 나에게 이런 아픔을 주시는지 좀더 살고싶은데, 좀더 이세상을 살아가고 싶은데, 엄마! 나좀 살려줘. 난 죽기 싫단말야.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하고 죽어야 하나요" 라며 울부짖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세살인 한나는 모든것에 아주 아주 침착하였습니다. 자신이 죽게되는것을 알면서도 그의 가족들에게 때쓰기 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모두들 차분히 맞아주기를 바랬던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파서 다시는 오빠인 윌과 놀아줄수 없다고 말하는 한나와 그의 오빠 윌의 대화를 볼때에 과연 우리들은 서로에게 이런말을 할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가 자신의 엄마에게 전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 엄마! 아이들도 죽어? 그리고 내 생일은 또 오지 않을것 같아 " 라고 말하는 그 어린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또하나 한나는 외할머니에게 자신을 잊지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보다는 그들에게서 "한나" 라는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까봐 더 걱정되고 아팠을거라 생각됩니다. 어린딸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자신에게 이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한나와의 음미할 시간과 기억할 시간, 작별인사를 할수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고맙게 여기며 다행스러워하는 한나의 엄마를 보면서 사랑스런 어린딸이 좀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편안히 갈수있도록 차분하게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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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세살도 안된 아이의 이야기가 맞을까... 한나는 세살이 되는 생일을 맞이하기 조금 전에 소아암 판정을 받는다. 4차례의 유산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심란해 하던 엄마는 4번째 유산을 하던날 한나의 소변에서 분홍색 핏자국을 발견하고, 유산의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나의 암진단에 무너진다...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아이의 몸속에 암덩이가 자라고 있었음에도 한참전에 병원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장난꾸러기 아이의 꾀병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의사의 말에 민망해 하며 발길을 돌리던 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내 아이의 아픔을 믿지 못하고 의사의 핀잔 섞인 말에 아이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때를 기억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마치 한나의 소아암이 자신의 부주의 때문인것 처럼.. 한나는 여느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물론 한나의 오빠 윌 또한 여느 아이들과 생각이 좀 다른것 같다. 한나의 죽어가는 상황과 시기를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엄마도 여느 엄마와 좀 다른것 같고.. 표지에 나오는 빨간 에나멜 구두는 한나가 병이 나기 전에 한나가 고대하던 유치원 입학식에 신을 구두를 사러 갔을때 한나가 손수 고른것이다. 물론 엄마는 한나가 가지고 있는 옷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빨간구두를 사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빨간구두를 산다.
수술실에 들어갈때도 빨간 구두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수술복은 입지 않고 발가벗고 들어갈지언정 맨몸에 빨간구두는 꼭 신는다. 보수적이고 사무적이기만 한 병원 간호원과 의사들도 한나의 고집스럽지만 아이같은 천진함에 조금씩 변해가고 뒷날 병원의 규정상 환자의 이름을 발설할수 없기에 병원에서 '빨간구두를 신은 아이'로 남게 된다. 머리가 다 빠지고 피부가 투명해질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가도 금방 다시 보송보송 머리가 자라고.. 안심하는 부모와 한나에게 또다시 계속 재발되는 종양과 수술. 마침내 한나의 몸속에는 더이상 제거하지 못할 부분에 종양이 자라게 되고, 부모와 의사는 수술을 포기한다. 그리고 한나는 아이 같지 않게 마지막 인생을 차근차근 준비한다. 한나가 암으로 투병할때 아주 먼지방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한나를 위해 퀼트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아주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친척의 손에 들려 보내주는가 하면... 한나가 죽은후 일년뒤에 다시 한나의 엄마 앞으로 거실의 카펫과 동일한 색의 러그가 배달되기도 한다. 한나가 죽은뒤 더 커져만 가던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엄마는 이 기적같은 일로 인해 한나가 언제나 자신의 가족들 주위에서 있음을 깨닫고 안도하고 다시 생활을 꾸리기에 노력한다. "삶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은 얼마나 오래살았나가 아니라 얼마나 충만하게 살았나 하는것이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이구절이 마음에 깊숙히 자리잡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삶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은 얼마나 오래살았나가 아니라 얼마나 충만하게 살았나 하는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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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실화다. 저자의 딸 한나의 죽음을 일기처럼 기록한 글이다.
한나는 이제 막 세돌이 되어가는 어여쁜 여자아이다. 그리고 한나의 엄마는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한나와 엄마는 같은 날 피를 흘리게 된다. 엄마는 유산, 그리고 한나는......,
한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속이 깊고 말도 무척 잘하는 똑똑한 아이다.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마치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 같은 아이였다.
한나가 피를 흘리는 이유가 종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애써 부정을 하며 긍정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종양일 거라 믿으며 수술을 한 후의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바로 암이라는 진단. 하지만 한나는 자신의 수술 자국을 친구들에게 마치 무용담처럼 자랑을 했다. 하여 아이들이 자신들도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한나는 밝고 긍정적이며 똑똑한 아이였다.
한나의 엄마인 저자는 아이들에게 참으로 많은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 주고 이해를 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언제든 엄마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윌과 한나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한나가 아프고 한나의 엄마는 한나의 동생을 가졌다. 그것이 자신들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한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한나의 곁에서 모든 것을 뒷바라지 했지만 한나는 종양 제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세번째 발병했을 때는 도저히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서서히 죽어가는 한나를 보아야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병동의 꼬마 아이처럼 한나가 인사도 없이 갑자기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서서히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한나는 죽음에 의연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었다.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많은 레지던트들이 한나를 그저 사람이 아닌 실험 대상으로 취급하듯 우루루 몰려와 진찰을 하려 할 때 한나는 기분 나빠했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 무턱대고 다가와 진찰을 하려는 의료진들의 행태에 다부지게 불쾌함을 드러냈었다. 이후 간호사든 의사든 누구 할 것 없이 항상 자신들의 소개를 먼저 한 후 진찰 여부의 허락을 구한 후 한나를 진료했다. 노상 떼거지처럼 몰려 다니며 환자를 보는 버릇들을 한나가 고쳐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나가 죽고 난 후에도 한나가 아닌 다른 꼬마 환자들에게 한나가 있었던 병원 의료진들이 그리 대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이 한나가 남기고 간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했다.
한나는 저자에게는 특별한 아이였을 듯 하다. 이후 딸을 둘이나 더 낳았지만 한나는 정말로 특별한 자식이었다. 세 돌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이해하고 많은 것을 헤아릴 수 있었는지. 자신들의 욕심일 수 있지만 한나의 동생을 가지고도 몇 번의 유산으로 인해 쉽사리 주변에 말을 하지 못한 채 8주라는 시간을 지난 후에 말을 하려고 기다릴 즈음에 한나는 엄마인 저자에게 그랬다. 유산한 아이 때문에 슬퍼 말라고. 하나님이 아이를 만들고 계시다고. 무엇을 알고 한 말일까. 많은 것을 이해하고 많은 것을 주었으며 많은 사랑을 알게 해 준 특별한 천사, 한나.
결국 아이를 잃은 부모가 이혼할 확률이 70%라는 수치가 있지만 자신이 그리 되리라 여기지 않았던 한나의 엄마는 결국 이혼을 하고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낳고 기름에 있어서 불의의 사고든 불치의 병이든 그로 인해 아이가 죽고 난 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껴안아 주며 극복할 마음을 왜 갖지 못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생각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한나의 생각이 났을 듯 했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슨 음식을 좋아했으며 무슨 행동을 했는지. 공유를 한다는 것은 더 없이 좋은 것이지만 자식을 잃은 괴로움까지 공유를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못할 짓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서로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헤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이해가 되었다. 비록 아직 아이가 없어서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래서 막연히 드는 감정에 따라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면 그때 다시 이 책을 읽어 볼 참이다.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을 품에 한가득 안고서 다시 한 번 꼭 읽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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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딸의 죽음을 절제된 슬픔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어린 딸의 죽음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보고 진정한 삶을 깨닫는다. 진정한 삶이란.. 슬픔과 행복의 사이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평범한 생활인것 같으면서도 그 평범함에서 아이의 죽음을 문득 발견하는 부분이 가장 엄마의 슬픔이 전이해 오는것 같다. 내 곁에 항상 있는 사람이 많이 아파 죽음을 앞두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이책을 읽고 난 답을 찾았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아마 느끼고 답을 찾을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을에 마음 한켠이 싸늘할때 읽으면 좋을 그런책이다 |
|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어린 아이들이 병원에서 나을지 어떻지도 모르는 병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심심차 않게 볼 수 있죠. 집안에 병자가 잇으면 온 가족이 고생이라고 하는데 이 가족을 보면 물론 온가족이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행복이 가정에서 떠나지 않은 것같아요. 무엇보다 어린 나이의 한나가 자기의 죽음에 대해 절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찾아내는 성격이 밝은 아이여서 그런것같아요. 그리고 주위에서도 거기에 잘 맞춰주기도 했구요. 어차리 나을 가망성이 없다면 살아있는 동안 만이라도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야 누구나 하지만 그래도 어디 부모마음이 그런가요. 어떻게 해서든 좀 고생이 되더라도 모든 불편을 감내하면서 아이가 기적이 일어나 병이 낫기를 바라죠. 그런 면에서 한나의 엄마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한나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낫지만 그래도 행복한 삶을 살고 떠났잖아요. 다 주위 사람들 덕이라고 생각해요. 쉽지 않았겠지만 한나가 좋은 부모를 두었네요 |
|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가르침은 죽음이라고 얼마전 이주일씨가 돌아갔을때 조영남이 신문에 쓴 그 글귀가 떠올랐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아이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이다.천진난만하고 불쌍한 네살배기 딸 '한나'의 의젓한 모습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갈수록 층이 두꺼워지고 한 겹 한 겹 벗길수록 매워지는 양파와도 같은 슬픔을 딛고 그 모든 슬픔을 조용하고 담담하게 가슴에 묻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한나 엄마의 모습이 장하고 아름답다. 감동 밀물. 밑줄 좌악--- 삶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은 얼마나 오래 살았나가 아니라 얼마나 충만하게 살았나 하는 것이다. 한나가 암 진단을 받은 이후의 몇 달이 얼마나 긴장되고 공포스러웠든 간에, 나는 한나와 함께하는 한순간 한순간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한없이 암울한 순간에조차 한 줄기 잔인한 기쁨이 있었다. 시간이라는 선물이 소박하지만 더없이 훌륭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음미할 시간, 기억할 시간, 작별할 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윌이 잠옷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있잖아요. 엄마. 엄마가 나한테 한나가 죽을 거라고 했을때, 내가 '앞으로는 한나가 낵 안 쓰는 다른 침대에서 자겠다고 할 때마다 그러라고 하겠다"고 말한 거 기억하세요? 그걸 한번 어겼어요. 어느 날 한나가 내 방에서 야구선수 인형들을 꺼내갔거든요. 그날 한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한나가 내 방에서 자겠다고 하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내가 왜 그렇게 치사하게 굴었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우리는 둘 다 울고 있었다. 한나가 죽은지 열 달이 되었건만 슬픔은 갈수록 층이 두꺼워지고 한 겹 한 겹 벗길수록 매워지는 양파와도 같았다. 요듬은 마지막 몇 달간의 한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한나를 보내도 한나는, 이 세상에서 한나의 몸을 거두어간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두려움 때문에 잔뜩 웅크리고 사는 사람은 너무나 많은 기쁨을 놓치게 된다. 나는 마거릿과 매들레인이 고개를 꼿꼿이 들고 웃는 얼굴로 발레 학원에 들어가는 모습(우스꽝스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나의 빨간 구두에 숨겨진 마법이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나는 이 선물을 나에게만 준 것이 아니었다. 두 여동셍에게도 똑같은 선물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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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미리 생각해둔 목록을 들고 갔습니다. 빌리려던 다른 책 옆에 꽂혀있던 이 책-한나의 선물 처음엔 몇 번씩 지나치다 어느 카페 게시판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걸 보고 읽게 되었죠.
이 책은 한나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암으로 목숨을 거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 속의 내용은 암, 죽음이라는 것과 반대로 오히려 밝기까지합니다. 물론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대목이 여러군데 있었지만요,, 특히 이 글을 쓴 한나의 엄마가 화장실에 가야했지만 자리를 비우기가 겁이났다던 내용-화장실과 자책감- 은 정말 와닿았습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게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일분에 한번 꼴로 자신에게 "2분전에 갔다 왔더라면 별일 없었을 텐데. 한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 라고 말하던 대목입니다.
천진한 어린아이가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놀라울정도로 어른스웠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다 덮고 난 느낌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처음 읽었을때의 느낌과 비슷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다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선 슬프긴 했지만 뭔가 삶을 이런식으로 살아선 안되겠다라는 반성이 더 강하게 들었던 반면 이 책에선 (이 책 역시 진정한 삶의 기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한사람의 빈자리에 대한 슬픔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것같아요. 4살이 채 되지않은 어린 아이의 이야기라 더 가슴아팠던 듯합니다.
ps:책표지의 빨간 에나멜 구두가 인상적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신뢰란 무엇을 믿는 게 아니라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신뢰는 어떤 일이 장차 달라지기를 바라며 기도하지 않는다. 신뢰는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이며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인정하려는 마음가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