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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의 저주속에서 갈등하는 엘라 이책을 읽은 지 꽤 되었지만 이제 리뷰를 적어본다. 뉴베리 수상작이라고 하여 아이들 지도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읽어보았는데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현 세계에서 요정과 마법 그리고 도깨비 같은 괴물들이 함께 공존하여 살아가는 판타지 동화이다. 예전에 전래동화 뒤집기 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동화라는 것이 당시 시대의 정신, 가치관등이 담겨져 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관이 변한다고 전래동화도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몇 년전에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를 패러디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와 읽은 적이 있는데 참 기발하고 재치 있는 내용들이었다. 옛이야기속의 여성들은 대다수 예쁘고 , 순종적이며 남성에게 의존적이어서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은 이 상식을 깨트리는 동화들이 나오고 있다. 몇 년전에 그림책 <종이봉지공주>를 아이들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마법에 걸린 엘라>도 작가가 옛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아주 교묘하고 재치 있게 사건을 구성해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복종하고 싶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루신다라는 요정에게 복종이라는 선물을 받아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엘라를 도와주는 대모요정이 있지만 엘라를 이용하여 부려먹는 언니들도 있다. 자신의 부당한 처사에 불복종하려고 해보지만 그때마다 몸이 괴로운 것을 느낀다. 이 책에서 참 이해가 안가는 인물은 엘라의 아버지다. 진짜 아버지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딸 조차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 그래서 자신이 복종의 저주에 걸린 사실조차 아버지에게 숨겨야 한다. 사실을 틀어놓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아버지한테, 아마도 가족한테 받는 상처가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는 <신데렐라>로 넘어간다. 아버지가 올가부인과 결혼을 함으로써 엘가를 본격적으로 괴롭히는 두자매와 함께 살게된다. 엘라는 때로는 복종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때가 있다. 엘라에게 샤 왕자가 다가오지만 엘라는 거부한다. 자신이 왕자비가 되었을 경우에 자신을 이용해서 온갖 나쁜행동을 명령하여 나라를 위기에 파트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당장의 행복 보다는 먼 미래를 볼 줄아는 성숙함을 지녔다. 우리도 살다보면 큰일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마지막에는 명령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저주가 풀려난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복종이라는 마법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옳은일인지 부당한 일인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묵묵히 해야 한다. 거부하려고 마음 먹으면 엘라처럼 몸과 마음이 괴로워진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그래서 그냥 순종하는 것이 때로는 마음이 편하다. 그냥 복종하면 세상 조용해질 것을 뭐하러 힘들게 싸우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취미를 다 포기하고 윗사람들과 동료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때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어린이를 위해 쓰여진 동화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동화인 것 같다. 엘라처럼 내가 모든 말에 복종하였을 때 그 복종으로 인해 피해가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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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김영사에서 나온 '뉴베리 수상작 8'인 책입니다. 뉴베리상은 어린이 그림책을 대상으로 매년 시상하는 칼데콧 상과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동문학상이자 세계 최고의 아동문학상으로 손꼽히는 상이라고 하네요.(영국의 출판업자 존 뉴베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라고 합니다.그는 영국 최초로 어린이용 책을 만들어 판 출판업자라고 하네요.-책 첫 페이지에 나옴)독서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을 높이고, 아동문학가들의 창작욕을 북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 해마다 출판된 작품 가운데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품(작가)을 뽇아 수여한다고 하네요. 요정에게 ‘복종’이라는 선물(?)을 받은 엘라의 좌충우돌 성장 일기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따라 가는 듯 하면서도 모험을 떠나는 장면 등은 신데렐라의 현대판이네요. 381쪽에 달하는 분량이 말해 주듯이 아이들에게 쉬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공이 있는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재미있게 읽혀지는 책인 듯 합니다. 어른인 저도 엘라의 이야기에 푹 빠져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뒷표지에 적혀 있듯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무심코 내린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엘라에게서 내 의지대로 살아감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무더위가 이제 거의 한풀 꺽인 듯 하네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가을에 엘라에게 흠뻑 빠져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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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린 엘라]
우리는 이따금 성별,연령,장르를 떠나 한번쯤 책을 읽으면서 그 책 속에서 푹 빠져서 한 권을 다 읽고서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한두번쯤은 있으리라 본다.나는 그러했다.'마법에 걸린 엘라'는 내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의 역발상적인 각도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구성을 지니고 있다.게다가 태어날때부터 '복종하는 삶'을 본인이 원해서가 아닌 타의에 의해 타고난 운명을 부여 받았다면 그것은 삶에 있어 완전한 자유를 옭아매는 행위라 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여기 용감하고 그 어떠한 도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위풍당당한 '엘라'가 있다.이 책은 모티브의 기능과 의미적인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싶다.실상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동 문학상의 하나인 뉴베리 상을 거머쥐기까지 했고 단조로운 구조에서 그 흐름은 유독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흔히 성별,연령을 불문하고 우리가 판타지를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다시 재구성해 그것들의 실현화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순한 재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 인간이 지닌 의지에 대한 또 다른 물음에 대한 상상력을 가미해 그 가상의 체험을 통해 어찌보면 치유와 행복을 우리도 알게모르게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러한 이유로 본다면 '엘라'를 단순히 어여쁜 공주로만 국한하는 것이 아닌 공주라는 신분에서 누릴 수 있는 것보다 더 악한 환경에 놓인 엘라가 그것들에서 발만 동동 구리며 기다리는 상황이 아닌 또 다른 탈출구를 향해 열띤 도전을 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엘라'를 바라보는 시각은 현 시대의 우리 상(想)을 한번쯤 뒤돌아 보게 하는 시간적인 여유까지 선사하고 있음이다.
'게일 카슨 레빈'은 알고 있다.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바라보는 시각이 오로지 '아이들'중심에서 이뤄지면서 아이들을 존중할 줄 알며 아이들이 그 어떠한 도전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진정 아이들을 책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단순 신데렐라라는 내용을 역발상하여 스토리를 구성했다 하더라도 저자만의 독특한 필력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해서'엘라'라는 인물을 그간에 공주하면 연상되던 모든 수식어들을 한순간에 뒤바꿔 놓은 차별화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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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두께도 두께이거니와 <마법에 걸린 엘라>라는 제목에서 뭐 그냥 그런 내용이겠구나 싶었다. 물론 약간의 패러디가 있기는 하다. 요정의 저주를 받는 장면이나, 왕자를 만나는 장면, 무도회에서 왕자와 춤추다가 12시가 넘어 허겁지겁 돌아오는 장면, 그 와중에 잃어버린 유리 구두와 그 유리구두의 주인을 찾아나선 왕자를 보면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자마자 흥미롭게 책에 빠져드게 만드는 것은 비슷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또 새롭게 느껴지는 탄탄한 구성에 있었다. 특히 집의 요리사였던 멘디가 요정이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우리의 주인공 엘라가 교양학교로 가서 온갖 힘든 일을 다 겪다가 마침내 루신다 요정을 찾기 위해 용감히 길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생기발랄하고 꾸밈이 없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운 아가씨 엘라, 그러나 평생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저주를 안고 태어나 늘 다른 사람의 명령에 조바심을 치던 아가씨엘라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저주를 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찾아간 거인의 결혼식에서도 저주를 풀지 못하고, 오히려 그 저주를 행복으로 여기라는 명령(?)만 받고 돌아와 모든 부분에서 복종하면서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는 맹목적인 사람으로 변해버리기도 했다. 그걸 이용해 엘라를 하녀로 부려먹는 의붓자매인 올리브와 해티, 그리고 새엄마는 또한 신데렐라에서 나오는 나쁜 새엄마와 의붓자매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엘라는 샤 왕자와 편지를 나누면서 사랑을 하게 되고,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왕자가 저주에 빠질까봐 스스로 왕자를 사랑하고 결혼하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가짜 편지를 써서 왕자를 자기에게서 멀리 떠나게 한다. 그를 사랑하지만 왕자와 결혼하면 왕자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조국인 키리아까지도 위태롭게 할 것 같았기에 말이다.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지만 용감하게 결행하는 엘라를 보니 존경스럽고,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무도회에 가고, 거기서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오히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엘라는 용감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저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행동을 하게 되고, 이것은 바로 엘라에게 주어졌던 저주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결국 사랑과 희생의 힘이 저주를 풀었던 것이다. 그뒤로 더 씩씩하게 다니는 엘라는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좋고 멋진 일인지를 새록새록 느끼면서 짜릿한 전율도 느끼고,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그뒤로도 계속 행복하게 산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알고,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이 아닐까.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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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태어나면서 부터 복종 혹은 순종이란 억압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다른 하난 그것을 거부하고 내가 생각해서 복종하고 싶은 대상에만 순종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은 이것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운명을 개척하는 삶....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명작속에 등장하는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그런 신데렐라가 아니더군요
마치 엘라라는 인물은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는 삶속에 추구하는 역경속에 그 없을수 없는 고난을 헤쳐나가야 하는 나를 대변하는 인물같기만 하였답니다
그래서,엘라는 그냥 착하다는 말로 그 사람의 권리를 착취하거나 그런 말속에 나를 가두는 일을 그냥 방관하지 않는 우리가 진정 바라는 모습의 현대판 신데렐라이며 환타지속에 아름다움이란 단어만으로 그 모든게 용서가 되는 너무나 외모지향적인 인물과 거리가 먼 너무나 인간적인 여자를 그리고있어요
무엇이 이 책을 열광하게 만들었는가 ~ 읽는내내 뉴베리 상을 염두하고 읽었던 것도 사실인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한 일종의 진부하지 않은 환타지때문에? 실상 기대이상의 환타지를 갖고 있다는 것도 개성 있는 등장인물과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영화화 되었다는 것도 하나 틀린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웹검색과 무한 영화 서핑을 하게 하기도 할만큼 관심을 두게 했을 정도 였거든요
태어나면서 부터 복종이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호흡 곤란, 메스꺼움, 어지럼증에 고통받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며 원작보다 더 세세히 환타지를 현실에 맞게 조합함으로 주제 의식은 뛰어나지만 넘 튀지 않고 톡톡튀는 개성만점 문체와 인간냄새 폴폴나는 내면을 자극하는 문학성을 양립시켜 독자들에게 더 오랜 울림과 교훈을 던져 주었습니다
후반부는 한 편의 드라마나 미니 시리즈가 끝난 것처럼 어쩌면 이시대의 억척 줌마렐라를 닮아있는 현대판 왕비 신데렐라..... 솔직히 말하자면 "신데렐라가 아줌마가 된 그 후 이야기 "
우리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던져주는것은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것은 아닐까 ? 넌지시 환타지속으로 고고~!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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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베리 상> 은 독서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을 높이고, 아동문학가들의 창작욕을 북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 해마다 출판된 작품 가운데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품(작가)을 뽑아 수여한다. (책 속에서)
뉴베리 상을 수상한 작품을 접하면 늘 재미와 교훈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주니어김영사에서 출간하는 <뉴베리 수상작 시리즈>를 좋아한다. <마법에 걸린 엘라> 역시 재미와 함께 아이들에게 용기와 인내를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엘라를 통해서 "신데렐라"를 연상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주인공 ’엘라’는 신데렐라의 현대판 혹은 판타지 성격을 지닌 신데렐라편..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하지만 엘라는 신데렐라와는 좀 다른 성격을 가졌다. 무조건 언니와 엄마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는 신데렐라와는 달리 엘라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이다.
엘라가 태어나던 날 요정 루신다는 엘라에게 선물을 준다.
"내가 주는 선물은 복종이란다. 엘라는 언제나 복종하게 될 거야. 아가, 이제 울음을 그쳐라."
그 후 엘라는 명령을 받으면 무조건 그 명령대로 해야만 했다. 간혹 엘라는 듣고 싶지 않은 명령에 반항을 하려고 하면 몸뚱이가 펑 터져 산산조각 날 듯 싶어 엘라는 고통스러워 그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저주에 맞서려고 몸부림치면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싸움이었다. 귀에서 쉴 새 없이 윙윙 소리가 났고, 마룻바닥이 기울어져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베개를 어찌나 단단히 부등켜안고 있었던지 팔이 다 저릴 정도였다. 마치 베개가 잇따른 명령에 맞서 줄 닻이라도 되듯 말이다. 28p
엘라는 사랑하는 엄마와 요리사 멘디는 저주를 받은 엘라를 위해 사랑과 관심을 가지면 애를 썼지만,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엘라는 엘라의 뜻과 상관없이 아빠의 명령에 따라 교양학교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엘라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요정 루신다를 찾아서 교양 학교에서 도망쳐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인해 아빠는 돈 많은 올가 부인과 결혼을 했고, 올가부인과 그의 딸 해티와 올리브는 엘라는 시녀처럼 부려먹었다. 자신의 저주로 인해서 사랑하는 샤 왕자에게 해를 입힐까 싶어서 엘라는 샤 왕자와 이별을 하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다.
한편 엘라가 저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멘디는 꾀를 내어 요정 루신다가 주는 선물이 어떤 고통을 주는지 스스로 깨달게 하였다.
"만약 네가 석 달은 다람쥐로, 석 달은 순종하는 사람으로 지내 본다면, 네가 준 선물들이 네 생각처럼 감사해 마지않을 선물이 아님을 깨달을 거라면서..."
"내가 준 선물이 멋지다는 걸 깨닫기 위해 그 선물들을 내가 직접 시험해 볼 필요는 없어."309p
우리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환경을 탓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일이 더 많다. 더군다나 요즘 아이들은 인내과 끈기가 2% 부족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 진행되는 컴퓨터 세대들 그래서인지 조급한 모습 혹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많은 듯 싶다.
아이들은 엄마와 선생님의 잔소리와 명령을 싫어한다. 그런 얽매임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는 있을까?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는 세우고 있을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할 줄 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저주라는 환경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엘라의 모습에서 독자 어린이들도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용기와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노력과 인내를 가져보면 어떨까?
나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렸다. 나는 하염없이 몸을 흔들면서 울었지만, 내 생각은 가슴속에 파고들어 샤 왕자를 구해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진실만 들어차 있는 가슴 깊디깊은 곳에 온통 쏠려 있었다. 잠시 나는 안전하고, 튼튼하고, 믿을 만하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내 자신속에 머물렀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제껏 가져 본 적이 없는 강한 힘을, 루신다가 아니었다면 결코 필요하지 않았을 의지와 결의를, 그리고 좀 더 사소한 이유였다면 결코 찾아내지 못했을 꿋꿋함을 내 속에서 이끌어 냈다. 37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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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인챈티드... 마법에 걸린 엘라 영문판을 어찌어찌해서 다 읽었다. 기뻐서 춤출거 까지는 없고 번역해놓은 것을 잠깐 들여다보며 음... 음..... 내가 번역본을 어쩌다가 그리 열심히 읽은 거지? 대체 왜? 라고 반문하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텔레비전 앞에 멍청히 앉아서 주인공들 꼴을 보며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인 양 생각하며 울다 웃다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과는 소 닭 보듯 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책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뿐이지... 번역본 보며 '내가 영문판 읽을 때 이 구절을 어떻게 읽었을까?' '이렇게 부드럽게 표현하다니... 놀라워...' '실제로 있다면 정말 재미있겠네' 하며 같이 고민하다가 슬퍼하다가 마지막에 슬며시 웃는 나를 보려니 묘하다. 내가 약간은.. 아니, 정말로 싫어하던 사람의 모습처럼 하고 있으니... 앤 헤서웨이가 엘라로 출연한 영화를 먼저 보고나서 잊혀질 즈음 원작소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별다를 거 없는 신데렐라 얘기구나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고 나니 신데렐라이기보다는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엘라' 만 떠올랐다.
...영문학과라니... 방송대 영문학과 커리큘럼을 보니 시와 소설, 희곡, 비평 등 말 그대로 문학이었다. 생활영어나 시사영어, 영문법 등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막연하게나마 동경은 했지만 가까이서 차분히 살피려니 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그래서 딴세상에 속한 것으로 느껴진다. 나는 왜 착각 속에서 지낸 걸까? 물리치료사는 나와 정말 맞지 않아. 나는 좀 더 정서적인 것, 섬세하거나 아름답거나 ...그런 것과 어울리는 것 같아. 라는 엄청난 착각.
젠장... 착각이 심했음을 인정하면서 착각에서 벗어나야겠다. 깨몽! ㅡ_ㅡ;;;; 어찌되었거나 묘한 감동을 안겨준 소피의 세계로 넘어가야겠다. 글자수나 내용이나 몇 장으로 되었는지 따지면 엘라 인챈티드는 정말 가벼운 편이다. 엘라의 이야기는 가볍지만 다 읽은 후 느낌은 부드럽지만 톡 쏘는 신선함이 살아있는 맛있는 사과주스 같다. 다음주 토요일까지 소피의 세계 다 읽을 수 있을까? 번역판 읽는 데만 한달은 족히 걸렸다. 다음달에 읽을 책은 거의~ 확정된 상황이다. 스타시커와 앵무새 죽이기, 만약에.... 군사편. 나머지 한 권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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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몇 가지 동화를 버무려서 새로 만들어낸 동화입니다. 엘리노어(엄마 엘리노어와 구별되기 위해 엘라로 불립니다)는 태어났을 때 요정 루신다의 축복을 받아(또는 저주에 걸려) 복종을 하도록 강제됩니다. 즉 누군가가 권유가 아닌 명령을 하면 무조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엘라는 교양학교에 보내지게 됩니다. 가는 도중 올가 부인의 두 딸 해티와 올리브는 그녀의 비밀을 알아내곤 하녀처럼 부려먹습니다. 다행히 아레이다라는 친구를 사귀어 유일한 탈출구가 됩니다. 아빠 피터 경이 거인족 우악세의 농장에서 벌어지는 결혼식에 참석하고 또 거기에 요정 루신다도 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엘라는 루신다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저주를 풀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교양학교를 탈출합니다. 길에서 땅의 요정을 만나 도움을 받았지만 도깨비들에게 붙잡힙니다. 간신히 도깨비를 길들이는데 성공하였고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왕자 샤몬트(애칭 샤)와 그의 기사들이 도깨비를 잡으러 왔기 때문에 넘겨주고 결혼식에 갑니다. 하지만 루신다는 더 큰 축복(아니 저주, 복종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도록)을 내립니다. 아빠는 파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딸을 결혼시키려 합니다. 엘라는 강제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데 결혼상대로 잡았던 사람이 재산이 별로 없음을 알고 결혼은 무산됩니다. 대신 올가 부인과 아빠가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루신다가 나타나 두 사람에게 축복을 하는 바람에 아빠는 달아납니다. 축복의 내용은 평생 서로 사랑하는 것. 결국 여태 요리사로 있던 대모 요정 멘디가 나서 루신다를 3개월간 다람쥐로 또 3개월간은 복종하는 신분으로 지내게 합니다. 엘라는 루신다가 저주에서 풀리면 자신에게 걸은 저주를 풀어주리라 믿고 기다립니다. 그 새 올가 부인과 그 딸들은 엘라를 하녀로 부립니다. 아이오사에 간 왕자와 편지를 주고받던 엘라는 자신이 왕자와 결혼한 다음 적이 자신에게 왕자를 해하라고 하면 꼼짝없이 왕자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 달아난 것처럼 꾸밉니다. 돌아온 왕자는 무도회를 열었고, 엘라는 저주에서 풀려난 루신다가 이제 큰 마법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절망합니다. 저주를 푸는 것은 '큰 마법'에 속하기 때문에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이죠. 대신 작은 마법을 사용하여 엘라를 꾸며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흘째 무도회장에서 해티가 엘라의 가면을 벗기는 바람에 정체가 폭로됩니다. 달아난 엘라를 쫓아 왕자 일행이 옵니다. 왕자의 청혼을 엘라는 거절합니다. 그 순간 마법은 풀립니다. 몇 가지 동화들이 교묘하게 짜인 것을 아시겠죠? 한가지 짜증나는 것은 마법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마법. 책의 모든 내용은 그것과 직결되어 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구성상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점수가 조금 낮습니다. 101009/10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