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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고종황제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개인적인 의견으로 역대 우리의 역사를 회고해보면 고구려의 멸망과 조선왕조의 멸망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다. 고구려의 멸망으로 우리의 강역은 한반도라는 지협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고 조선의 멸망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우리 역사의 지울수 없는 치욕이 시대를 열어 나갔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조선왕조 군주중에서 가장 무능한 군주를 지적하라면 거의 선조, 인조, 고종을 들 것이다. 이 들 3군주의 공통점은 외우내란에 적절히 대처 못했던 점 그리고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상상을 초월한 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중 고종에 대한 책이다. 그동안 고종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종을 폄하 하는 입장에선 대역죄인으로 치부된 것이고 두둔하는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는 현실이었다는 평가이다.
이 책은 저자는 다소 고종의 입장을 두둔하는 견지에서 서술하고 있다. 고종이 제위에 올랐을때는 사실상 왕조국가라는 명목만 유지한채 거의 몰락하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조사후 벌어진 세도정치의 행태를 보면 왕조국가인지 일개집안의 국가인지 분간하기 힘든 상태였다. 역사의 가정이란 있을수 없지만 정조사후 입헌군주정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일제강점같은 치욕은 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역사라는 큰 강물은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고 그 마지막에 고종이 있었던 것이다.
고종의 치세는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부인 명성황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유교전통인 효라는 명분하에 끌려다녔던것은 사실이다. 고종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치세를 열어가고자 발버둥 쳤지만 결국 명성황후의 죽음이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자신의 의지로 정세를 펼쳐보게 된다. 물론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전제주의 개념이 많이 희석되고 있는 시점이라 후대에서 보면 엉뚱한 고집을 부린 격이 되지만. 그리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왔던 것이다.
저자는 당시 고종의 입장에서는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된 청과 조선에서 다양한 열강들에게 이권을 주면서도 국체를 보존할려고 노력한 고종의 정치형태를 살아남기위한 마지막 투쟁으로 그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이이제이 전략으로 열강과 열강의 싸움을 붙여 조선의 안전을 보장받는 방식의 고도의 정치적 책략을 고종이 이용했다는 논지의 늬양스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상황에서 고종의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점을 전부다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수용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듯 하다. 결국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군주는 어떠한 형태로든 변명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안녕을 떠나 한 국가의 안녕을 책임져야 하는 군주로서 무책임한 행동으로 밖에는 보여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를 상고하면 절대군주만으로 제대로 된 정치를 향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멸의 군주인 세종 또한 자신 혼자서 정치를 한것도 아니다 결국 참모들의 활용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는 바탕이된 점을 감안하면 고종의 시대에도 분명 지각있는 참모들이 건재했다. 그러나 고종은 그런면에서 정치술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다 쓰러져 가는 조선이라는 왕조를 놓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판단으로 본인 뿐만 아니라 나라전체를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게 만든것은 사실인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한국사의 경우 최근대사라는 이유로 자료 또한 다른 시대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군주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그러한 역사적 편견이 고종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거짓은 아닐것이다. 특히 자신의 대에 와서 망국이라는 멍애를 진 고종의 평가는 가혹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고종에 대해서 그간 가지고 있던 편향된 역사인식을 좀더 객관화 해보자는 취지에서 저술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볼 경우 고종만큼 불우한 군주 또한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군주는 일개 개인이 아닌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점을 고종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것 같아 안타까운 것이다.
항상 우리의 근대사를 볼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편치 않을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일뿐이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교훈만이 오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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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의 조선 군주 열전 시리즈가 새로 나왔다. 이번엔 고종황제다. 정조대왕 붐이 한창이던 때 <이산 정조대왕>으로 그의 책을 처음 만났는데 어렵게만 느껴지던 조선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조금은 가볍게 풀어내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줘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래서 같은 시리즈로 나오는 <이도 세종대왕>에 이어 이번 <이경 고종황제>까지 찾아읽게 되었다.
전작에서 다루었던 정조대왕이나 세종대왕이 이미 오래전부터 명군으로 인정받아 왔던 군주였던 데에 비해 이번 책의 주인공이 고종황제인 것은 조금 의외였다. 흔히 고종황제 하면 격동의 세월을 보낸 군주,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라는 걸출한 인물들에게 휘둘린 나약한 군주 정도로 여기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 고종황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활발하다. 고종황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약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를 했던 군주라고 인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책을 통해 기존의 고종황제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깰 수 있었다. 고종황제는 일본이 만든 이미지처럼 나약하고 맥빠진 암울한 군주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속에서 조선을 살릴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늘 고민했던 왕이었다. 비록 정세가 불리하고 힘이 없는 나라의 왕이라 많은 수모를 당해야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조선의 군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 그가 세웠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해야했던 고종황제를 바라보며 참 가슴이 아팠다. 조선의 어느 왕보다 힘겨운 시대를 거쳐야했던 그의 고민과 노력을 이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현대적 어투로 역사책을 가볍게 썼다는 독자들의 원망을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상황 설정이나 가벼운 말투 등이 현저히 줄었다. 그런 가벼움이 이책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었는데 저자가 그런 원망 섞인 소리가 많이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또한 이번 책을 마지막으로 조선 군주 열전 시리즈가 끝을 맺는다고 한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시리즈이기에 그 소식이 무척 아쉽다. 비록 조선의 군주에 대해선 끝을 맺지만 더 멀리 나아가 고려와 삼국시대의 여러 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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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조가 탄생하였다가 사라진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를 뜻한다. 삼국이 통일을 하기까지도 힘겨웠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후에는 국왕의 통치이념부터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계층의 사고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조선왕조 500여년은 유교의 영향아래 있었던 탓으로 신분제도나 남존여비, 사대주의등 폐단도 많으나 우리 역사속에서 정치, 경제, 과학등 여러 분야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조선 초기에 세종대왕이 있었고 후기에 정조가 있었다면 말기에는 외로운 군주이자 비운의 군주인 고종이 있었다.
사극열풍과 함께 이미 방영된 적이 있는 드라마 '명성황후'를 기억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둔 시점에서 괜시리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식민지 사관으로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인다는 취지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큰 행사를 치러야 하는 상황인만큼 해묵은 오류를 바로 잡기에 오히려 더없이 좋은 기회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제목그대로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펼쳐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대립 구도의 또다른 축인 대원군이 부각되고 결과적으로는 고종의 입지가 좁아져 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아버지와 부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약한 모습의 군주, 지금까지 고종을 떠올리면 연상되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고정화 된 고종의 모습은 버려라~!!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역사는 어떤 시각으로 조명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경 고종황제>에서는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의 자주국권을 수호하기위한 고종의 노력, 개혁정치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구한말 조선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가. 고종과 명성황후는 조선이 특정한 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서구 열강들에게 조금씩 이권을 나누어주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위해 황제가 되었고, 광무개혁을 통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다만 당시 세계 정세는 몇몇 강국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었고, 철저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약소국들을 나누어 가지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한국을...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종 스스로는 조선의 자주권을 포기하는 어떠한 의사 표시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이 세계사에서 사라진 후에도 밀서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병 활동을 돕거나 세계기구, 언론등에 조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에 있어서 고종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고 결국은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역시나... 역사는 정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옆으로도 보고, 세워서도 보고, 뒤집어도 보아야 하는 것이 역사다. 이 책은 읽은 후, 나에게 고종은 더이상 우유부단한 황제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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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하고 병약한 왕이였고, 사나운 흥선대원군의 호통에 웅크리고 있거나, 간교한 명성황후의 치마폭에 휘감겨져 있던 바보같은 임금의 모습이 이 책을 만나기 전의 고종의 모습이였다. 역사에서 그려지는 고종황제의 모습 또한 그랬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뉴스를 들었다. 고종이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여 주권을 빼앗기고 그 조약이 일본의 무력에 의한 공정하지 않은 조약이였다는것을 자신의 친필과 옥쇄가 찍혀진 문서들이 세계 몇몇나라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그가 주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엿보였다. 일본과 다른 주위의 열강들 사이에서 특사를 파견하면서 그렇게 하긴 힘들었을것이다. 조약 후에 고종에 대한 감시가 더욱 거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한 사실이 고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드러내 놓고 자신의 명령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말을 못하지만 그들 눈 밖에서 조선의 주권을 대한제국의 주권을 다시 찾고자 노력했음을 고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도 조금은 우유부단한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자신이 조선을 생각하는 자신의 백성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 또한 엿 볼수 있었다. 1부에서는 아버지의 시대. 흥선대원군의 등장과 서원철폐의 과정과 경복궁 중건, 그리고 여러 열강들과의 조우, 신미양요에서 척화비까지. 전반적인 개항전 흥선대원군의 정치와 정책에 대해 다루었다. 흥선대원군의 척화정책이나 쇄국정책으로 인해서 조선의 근대화가 많이 느려졌고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일찍 서양의 근대화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 군사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한 일본의 무력앞에 무릎을 꿇고 식민지화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내정 간섭으로 인해서 조선의 왕인 고종의 입지가 좁아졌음은 물론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인물로 군주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당백전이나 원납전의 발행을 통해서 백성들의 고통은 말할수 없게 되었고, 무리한 정책들로 인해서 백성들도 왕실에 등을 돌리는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사실 흥선대원군이 조선의 암울한 상황이나 왕권강화를 위해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한 모습도 보인다. 삼정의 개혁과 세원을 확대해서 재정을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이나 서원철폐를 통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있던 서원들을 정리했다. 당쟁의 소굴이 되었고 세도정치의 정치적 힘을 얻어 왕권을 약하게 만든 서원 철폐를 하였다. 그의 지나친 내정정책때문에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에 결국 아들의 성장과 명성황후의 영도 아래 내려앉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2부 내가 조선의 주인이다. 흥선대원군의 정치 간섭에서 독립해서 조선의 왕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는 고종의 과정과 강화도 조약으로 굳게 닫혀있던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는 사건을 보여준다.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된 사회를 배우고자 수신사나 영선사를 파견하는 모습에서 근대화에 눈을 떠가는 과정이 나온다. 여기에서 조차도 명성황후의 치마폭에서 놀아나는 고종의 모습은 조금 안타깝다. 물론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이끌어갔을때 있던 기존의 세력이 너무나 거대하고 자신의 주위에는 오로지 명성황후와 그의 외척만이 조금 있을 뿐이여서 비록 조선의 왕이지만 그 세력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명성황후와 그 외척에 의한 정치를 한 것이 그의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했을것이다. 급작스런 근대화에 백성들은 더욱 힘들었을것이고 근대화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충동은 어찌 보면 불가피 했을지도 모르겠다.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와의 싸움 임오군란, 개화파의 반란 갑신정변,일련의 사건들로 인해서 조선을 노리던 일본과 여러 열강들이 들어와 조선의 이권을 속속 빼먹을 기회를 주고 만 것이 되었다. 어찌보면 내정불안으로 인한 외세의 침략이 더욱 거세게 불어온 결과를 낳았다. 3부 끓어오르는 땅에서는 망해가는 조선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해도 될 만큼 역사 교과서에서 들어보고 빨간펜으로 줄을 그어가면서 중요하다고 외우고 외우고 외워도 부족함이 없다고 들었을 굵직굵직한 사건이 연이여 나온다.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개혁, 공주전투, 여우사냥이라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사변, 을미개혁, 을미의병, 단발령에 이르기 까지 백성과 외세의 사이에서 급격히 무너저가는 전제군주제이고 고종의 나라 조선은 천천히 빛을 잃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4부 대한 제국의 꿈. 친정을 선언한 뒤에도 임오군란부터 아관파천에 이르기 까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으로 인해 독자적인 정책을 펴지 못했던 고종은 서구열강들을 끌여들여서 힘의 균형을 확립하여 근대화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아관파천을 하여 러시아 공관에서 치정을 하면서 조선을 다스리는 모습. 안정적인 왕정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로서의 새출발을 도모 할 수 있게 된다.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독립협회와의 마찰은 고종에게는 또다른 걸림돌이 되었다. 민중의 힘을 등에 업은 독립협회의 정치적 개입은 걸림돌일 수 밖에 없었다. 만인공동회를 통한 입헌군주제의 기초를 다지는 모습이나 최초의 시민운동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독립협회 내분으로 인해 고종은 자신의 개혁을 하게 된다. 대한국국제 발표로 인해 등국 후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를 할수 있게 된다. 군비증강과 경찰조직 개편 관제사업 토지조사사업과 지계발급사업, 국고은행 설립, 잠업회사 연초회사 설립등 근대 자본주의체제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철도와 광산개발을 통한 외국인들의 이권 침탈도 견제했다. 5부 대한독립만세. 막바지에 다른 조선과 대한제국의 모습,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로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게 다가왔다.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을사 조약을 강요하는 일본의 강요하지만 고종은 끝까지 인준하지 않았다. 허나 일본은 조약체결사실을 내외에 공표하고 대한제국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 하였지만 허사가 되어버렸다. 또한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인해 고종의 황제권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던 일본은 고종을 황위에서 내리게 된다. 이후 대한제국의 의병운동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사건등 일련의 과정들이 나온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결혼을 허락하고 상하이로 망명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고종은 1월21일 사망하였다. 독살설이라는 풍문을 남기고 고종을 험난했던 그리고 암울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역사에 기록될 가장 중요한 일을 증언한다. 광무황제는 일본에 항복한 적이 결코 없다. 굴종하여 신성한 국체를 더럽힌 적도 결코 없다. 휜 적은 있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의 협조를 구했으며 만국평화회의에 호소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유럽열강에 호소했지만 강제 퇴위되어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고립무원의 군주였다. 조선인 모두에게 고한다. 황제가 보이신 불멸의 충의를 영원히 기려라. 또한 미국인 외교고문 오웬 데니는 황제께서는 재위 내내 위대한 국가의 지배자다운 강건함과 낙천성과 인내심을 보여주었다.라고 고종을 평가했다. 역사는 승리자의 이야기 이다. 어쩌면 고종을 패배자다. 그래서 그에 대한 평가가 낮게 쓰여졌을지도 모른다. 고종이 죽은후에는 역사학자나 그 밖의 주요 자리를 친일 세력들에 의해서 다루어졌을것이다. 덕분에 고종에 대한 평가가 더욱 혹평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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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에 관해서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내용은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것같다.
하지만 여태까지 고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사로잡혀있었더라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고종, 그는 조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아 대한제국은 일제하에 들어가게 되지만...
망국의 책임을 당시 최고 권력자인 고종에게 지우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고종의 독립을 위한, 자주, 자강을 위한 노력까지 모욕하면 안된다.
그는 누구보다도 대한제국을 사랑하였고 또 그러기에 지키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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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읽는 역사책은 재미있는 이야기책이었다. 지금과 모든것이 다른 그시대가 재미있고 제도나 물건들이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는 그런것이었다. 나이들고 읽어가는 책이 늘어가면서 시대가 다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나라사정에 눈이 가면서부터 역사는 더이상 동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것이 됐다. 어려워지기 시작해서 조심조심 읽었고 이렇게 알던것이 실은 저런것이라더라 하는 주장도 접하게 됐다. 결국 역사라는 것이 내게 어떻게 정의되느냐의 문제가 생겨났고 이후로 그 어떤 책도 중립을 지키며 읽자고 다짐했다.
나는 그저 우리 조상님네들의 모든것을 좋아하고 애정이 있어 자꾸 알고싶어 읽지만 책을 내는사람은 사정이 다를것이다. 대부분의 책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인물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고있다. 이 책도 역시 그렇다. 대부분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고 여기는 고종에 대한 시선에 반박하고 있다. 고종이 왕에 즉위하던 당시의 사정부터 시작해 중요 사건과 주변 정세를 설명하는 책이다. 책에 의하면 고종은 명성황후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녀룰 신뢰하고 뜻이맞아 같은 선택을 한 것 뿐이다. 모든 면에서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 조선의 현상태를 정확히 읽어내 앞서서 나라의 문을 열고 발전을 꾀하던 왕이다. 죽을때까지 나라를 구하고 지킬 방도만을 고민하고 노력했던 왕이다.
당시의 정세나 조선의 사정을 볼때 사실 어떤 선택이라고 해도 나라가 온전히 지켜지기는 힘들었을것으로 보인다. 이민족에 대해선 항상 냉정하고 처절한 대우가 주어졌음은 역사 속 수많은 경우로 확인을 했다. 작가가 주장하는 고종의 마음과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고종의 치세에 성이 차지 않는 사람들의 불만 역시 이해됐다.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책을 한권 읽어도 내 시선엔 변화가 없다. 난 고종에 대해 쉽게 뭐라 말할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수준의 현실에서 애초에 다른 마음을 가진 다른 나라를 상대하는데 누가 이길수 있을까. 애써 피해온 것이 고종의 시대였다. 그저 슬펐다.
철저히 고종의 편에서 쓰인 책이니 그의 주장이나 설명을 이해한다. 하지만, 너무 주장을 강하게 펼친 탓인지 가끔 빠졌으면 하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현실감을 찾아볼수 없고 백성을 오염시켰다는 문구등이 그 예이다. 이 책 그래도 역사책 아닌가. 많이 흥분하셨나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라리 현대적인 어투로 가벼이 쓰는게 훨씬 낫다. 중간 이도 세종대왕을 건너뛴 내겐 무언가 변한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잘 읽은 책이다. 몇년전 드라마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몰입하기도 쉬웠던게 사실이다. 이 책의 주장과 반대인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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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하자마자 책장을 펼치는데 왠지 가슴이 짠하다. 책페이지마다 드문드문 실려있는 낡고 오래된 사진에서 사진의 세월만큼 그 세월이 바래져 보였다. 지금 세월이야 정치도 마약과 같다느니 하면서 한 번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영원히 그 세계에 빠져 산다고들 하지만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선거비용으로 대고 후에 챙긴다는 말이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100년 전만해도 세상이 이리 변할 줄 알기나 했을까? 이씨 왕조가 무너지고 왕이라는 호칭이 이미 생소해져 버린 지금, 사극에서나 임금을 만나고 옛시대상을 더듬어 볼 뿐이다.
이 책에서 만나는 임금은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경 고종황제이다. 조선 백성들에겐 돛대와 같았던 고종과 명성황후... 아버지, 시아버지의 기세에 눌러 움츠리고 있던 세월을 넘어서 그들의 시대가 왔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던 흥선대원군과는 다른 시각으로 정치를 하는 고종 강화도 조약이 세계와 소통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했지만 외교에 관한 한 일본의 고도의 술수에 먹힌 꼴이었다. 불평등조약에 합의를 하고 나서야 얼마나 국제정세에 어두운지를 깨달았다고 하니 그동안의 쇄국정치의 부작용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재가 부족했다는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굴욕외교니 뭐니 하는 기사가 뜰 때마다 참 속상하다. 몰라서인지 약소국의 비애인지... 이러한 불평등외교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조선말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는 듯 해 씁쓸하다. 고종의 경우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명성에 가려져 오히려 더 빛을 못 본 그런 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텔레비젼 사극을 통해 간간히 만나오긴 했지만 촛점이 고종이 아닌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에 맞춰지다 보니 진면목을 만날 기회는 적었던 듯 하다.
개화를 원하는 백성들의 돛대 역할을 했으나 일본과 청 , 진보적인 개화파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좀 더 강하게 밀고 나갔더라면 이 부분은 조금만 더 참고 지켜봤더라면 혹은 조금 더 일찍 강행했더라면 하는식의 아쉬움이 후세에 남겨진 기록을 읽는 사람들 입장에선 대부분 그럴 거라 본다. 그랬더라면 좀 더 현명한 왕이었다는 찬사와 우리나라 역사가 지금 어떤 길을 걸을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 시기에 어쩌면 시대를 잘못타고나 고생만 하고도 후세의 평가가 신랄한 왕이 되었지만 조선말의 시대상황을 보면 어느 왕이 집권을 했더라도 쉬운 시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으로써 백성을 지키기 위해 외교활동을 펼치고 명성황후 시해 후엔 쓸쓸한 말년을 보냈지만 백성들에게 고종을 바람 앞의 등불 같긴 했지만 밝은 빛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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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 속에서 조선만큼 오랜 세월을 보내고 또 후기에 많은 혼란을 겪은 시대가 있을까. 조선, 양반사회에서 변화에 변화를 겪으며 마지막 고종 황제에 이르기 까지 그 끝없는 역사는 항상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중 마지막 열강들의 조선을 향한 욕망과 싸우며 힘겨워했을 조선 후기는 시대적 배경부터 술렁술렁거리고 이를 지키는 국왕의 처참한 몸부림마저 안타까운 시간들이다.
고종, 연약함.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때 새우는 무슨 생각을 할까처럼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 등 호시탐탐 한반도 땅을 노리는 그들과 이를 지키려했던 황제의 입장이 지금까지는 나약함으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눈치보기의 절정이었을 상황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고종은 고종 나름대로 시대에 편류하여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정치를 하려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정보를 명성황후가 주었고 을미사변 이후 다시 인생의 반려자가 되었던 엄 귀비가 주었긴 하지만 결국 한 나라를 이끄는 결정은 고종이 했어야만 했다. 목숨이 하루살이 같았던 그 시기.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를 오가며 펼쳤던 그의 정치는 생존을 위한 긴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선 처음부터 조선 후기의 역사를 찬찬히 흩어준다. 대원군과 명성황후, 동학 혁명,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등 국사시간에 한번쯤 들었던 일들이 상황별로 드라마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후반부쯤에 이르면 고종이 본격적으로 자기 고민과 더불어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한 제국을 설립하고 헤이그 밀사를 보내는 등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로써 어떠한 노력을 보였는지 그대로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이 새로운 시각으로 이경 고종황제를 조명한 책이라곤 그 모습이 그렇게 뚜렷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더불어 한나라의 황제로써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고 할까. 어찌보면 고종이 가장 존경했다는 정조대왕처럼 그도 그렇게 어려운 시국을 맞이하여 상황에 맞게 움직이려 무척이나 애썼겠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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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는 중에 한없이 답답해져버리는 시기가 구한말의 시대이다. 야금야금 넘어 들어오는 일본을 앞에 두고도 약한 국력 탓에 청나라와 러시아에 의존했던 권력층이 있었고, 살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내던 농민들의 존재 또한 두드러지던 시절이었다. 왕실에서는 일본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서구와 미국에도 도움의 손길을 벌렸으나, 일본 위주의 정책을 펼쳤던 그들 나라들은 우리 말을 귀담아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미국 역사 속 두 명의 루즈벨트 대통령 중, 잘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박물관이 살아있다'란 영화에 인디언을 사랑하며 호탕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잠깐동안 그 이름을 볼 수가 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일본 위주의 외교를 폈으며, 조선의 도움 요청을 묵살한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주변 나라들 중 그 어떤 나라 중에서도 조선을 위한 우방은 없었다. 또한, 을사5적들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을사조약을 맺을 때뿐만이 아니라 이후 고종의 퇴위에도 관여할 정도로 반조국의 길을 걷는다.
고종황제는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고, 일본세력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정치를 하며 일본에 대한 반항을 꾸준히 전개한 왕이다. 퇴임 후에도 해외로 나가 망명정부를 만들려고 시도하다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챈 일본측에 의해 독극물이 든 음식을 드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 입관하자 시신이 녹아내렸다는 설이 있으며, 시신을 본 민영휘는 폭탄테러로 죽음을 맞았으니 누가 봐도 자연사라고 보기는 힘이 든다. 명성황후에 이어 고종황제까지 우리의 왕실 어른들을 외부세력들에 의해 잃었다는 것은 씁쓸하고도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종황제는 책에 나온대로 고종의 마지막 승부사였던 것일까? 적에 맞서기 위해 다른 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 이 시기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며 약한 국력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더라도, 고종은 국정을 주도하며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함으로써 유약한 왕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12살이란 어린 나이에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왕위에 등극하였으나 대원군으로부터 뚜렷한 황제 수업을 받지 못했던 고종이 후에 왕으로서의 역할과 통치기술을 스스로 쌓아 뭔가를 이루어보려는 의욕에 불탔을 때는 국제적 여건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책은 구한말 조선의 역사를 순서대로 설명해놓고 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대원군과 민비 사이에서 표류하던 무능한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는 일본 식민사관이 의도한 것이라 한다. 식민사관에서 탈피하여 고종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건국절과 광복절이 혼재하는 현 상황 속에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나, 책 속에서 고종의 승부사적이며 개혁적인 면모가 크게 부각되진 않은 느낌이다. 뚜렷한 성공을 거둔 시도가 없어서일까, 역사의 암울한 현실을 고종이 뒤집어써야만 해서였을까? 고종은 대한제국의 꺼져가는 역사를 대표하며 지금도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국수주의에 물든 과장도 경계해야 하긴 하지만, 고종의 업적에 좀더 중점을 두어 상세히 기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