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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결산][밤의 화학식]
"[2016 결산][밤의 화학식]" 내용보기
2017. 1. 7. 토. 처음으로 만나는 1966년생 성윤석 시인의 독특한 시집을 만났다.화학기호에서 시가 나오다니, 화학식에서 삶의 신산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다니...이 세상 모든 것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다 시가 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시집이다.삶의 고단함을, 사랑의 쓸쓸함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들을, 결국은 세상 모든 것이 심지어 사람까지도 마모되고 소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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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7. 토.

 

처음으로 만나는 1966년생 성윤석 시인의 독특한 시집을 만났다.

화학기호에서 시가 나오다니, 화학식에서 삶의 신산함이 절절하게 묻어나다니...

이 세상 모든 것이 시인의 눈으로 보면 다 시가 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시집이다.

삶의 고단함을, 사랑의 쓸쓸함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들을, 결국은 세상 모든 것이 심지어 사람까지도 마모되고 소멸되어 가는 존재라는 것을 화학식을 통해서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다.

또한 시인은 화학식을 해체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의 풍경도 해체하고, 인간의 감정도 해체하고, 과거와 미래의 삶도 해체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찬미도 시가 되고,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이 초긍정일 때도 시가 되고,

억울하고 아픈 감정의 넋두리도 시가 되고, 불편하고 부당한 일에 대한 울부짖음도 시가 되고,

절망에 빠져서 한 움큼의 희망을 잡기 위한 몸부림도 시가 된다.

그런데, 시는 아름다운 시보다는 이상하게 안타깝고 애절한 시가 가슴에 더 와닿는다.

분명 예쁘고 우아한 시도 좋긴한데, 그런 일 보다는 왜 안타깝고 애절한 상황이 더 와닿을까.

우리들의 삶이 마치 편을 가르고 사는 것처럼 부자편과 빈자편, 강자편과 약자편으로 되어서 뭔가 부조화를 이루며 억지로 끼워맞추듯 살고 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 빛이 없는 곳에서 한숨 짓는 사람, 다양하게 섞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 자신만이 옳다며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등등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맞출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감정은 함부로 던져서는 안된다. 시<염소Cl>에 나와 있는 것처럼 내가 녹거나 다른 이를 녹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화학적 거세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이 텍스트의 목적이다.

 

한 무제가 사마천에게 물었다.

목이 잘릴래,

돈을 낼래,

거시기를 잘릴래?

 

사마천이 대답했다.

……거시기.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굴욕을 참았다.

명예로운 죽음은, 웃기는 얘기라며.

 

그대여,

나는 봄을 맞아 새벽마다 괴로워

여성호르몬을 분비한다. 자가발전이다.

시도 그런 것.

잘랐지만, 뇌가 섹시해지는 봄

 

이 봄에

 

사내의 뼈 중 마지막으로 썩는 게 골반뼈다.

일생을 덜렁거리는

생식기를 달고 다녀서다.

 

"명예로운 죽음은,웃기는 얘기" 라는 말이 허를 찌른다. 흔히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택하는 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치욕적으로 사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게 훨씬 괜찮은 거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시인은 치욕적인 궁형을 받고도 [사기]를 완성해서 후대에 이름을 날린 중국 한나라때의 사마천의 예를 들어서 삶의 의미에 무게를 실어준다. 살아 남았기에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겼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시기"를 내주고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을 생각하면, 우리도 무언가 대단한 것을 원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무언가를 내주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일까. 뭐든 세상에서 공짜는 없다고, 비슷한 가치의 대가를 치러야만 그만큼 얻을 수 있다는 만고의 진리... "잘랐지만, 뇌가 섹시해지는 봄"이라니... 섹시한 뇌로 방대한 양의 역작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이 혹시 지하에서 듣는다면 껄껄껄 웃을 것 같다.

 

 

 

 

텅스텐W

 

                                                  - 유럽에서는 텅스텐을 '늑대의 입거품'이라고 한다.

                                                  - 백열구 속 필라멘트는 항상 텅스텐으로 만들지.

 

 

마산 항구 선창에 줄줄이 걸려있는

저 백열구들은 해무에 잘 반응한다.

중합반응이다. 요즘은 아무도 백열

구에 관해 놀라워하지 않지만 나는

백열구에 의자를 집어넣고, 많이 기

대고 살았다. 백열구로 달을 가리기

도 했다. 달을 대신하기도 했다. 요

즈음은 아무도 백열구에 관해 얘기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빛들이여. 백열구만 한 빛이 있긴,

있었던가. 뒤로는 어둠을 제압하고,

앞에서는 우는 사람을 안고 있던

백열구 하나.

 

캄캄한 밤, 항구 선창에 줄줄이 걸린 백열등이 보이는 듯 그려진다. "뒤로는 어둠을 제압하고 / 앞에서는 우는 사람을 안고 있"는 백열구의 따뜻함. 영화나 소설 속에서 떠나간 님을 그리며 항구에서 하염없이 앉아있는 사람이 밤이 깊어도 꼼짝하지 않을 때, 하얀 백열등은 그 사람을 비추는 게 마치 어루만지는 듯 느껴진다. 예전에는 가정에서도 백열등을 많이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형광등을 지나서 다들 LED 전등을 쓰는 세상이 됐으니, 전등까지도 시대가 바뀌니 변하나보다. 훨씬 밝고 수명도 오래 가는데, 왜 백열등의 따스함을 따라잡지는 못할까. 어린 시절 희뿌연 백열등 아래서 필라멘트 끊어진 백열등에 양말을 씌워서 깁던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백열등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다. "뒤로는 어둠을 제압하고 / 앞에서는 우는 사람을 안고 있"기에 이보다 더한 위안은 없을 것 같은 백열구. 사람의 인정이 메말라 가는 요즈음, 백열구 같은 사람, 백열구 같은 사랑이 점점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금 Au

 

도요마을 강 끝

 

물이 비늘을 얻는다.

물비늘을 반짝이며

사금을 실어 나르며, 반짝이며

강은 흘러간다.

 

저 큰 물고기는 어디로 가나.

어어, 라는 물고기야. 내가 어느새

어어, 하는 사이 가버리는 물고기야.

물이 길을 얻어, 물길을 가리킨다.

 

저녁이다.

노을이 떴는데도 자신의 금을 드러내지 못하는

저 물의 배앓이처럼

내가 나에게 말려보고 사정하고 해보는

 

저녁이다.

 

"사금을 실어 나르며, 반짝이며 / 강은 흘러"가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반짝이며 이 삶을 살아갈까. 금이 숨어 있는 강은 물비늘을 반짝이며 흐른다. 우리들의 삶이 초라하거나 힘에 겨워서 포기하고 싶더라도, 우리의 삶에 숨어 있는 금을 안다면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강물 속에 사금이 있듯이, 우리들의 삶의 물결 속에는 지금이 있다. 가장 소중한 금, 지금. "금을 드러내지 못하는 / 저 물의 배앓이"처럼 우리도 드러나지 않은 금 때문에 삶이 뒤틀리는 아픔이 있지만, 저 강물처럼 기다리면 저절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에는 인고의 세월 끝에 건질 수 있는 빛나는 열매가 있을 것이다.

 

 

 

산소 O

 

한 호흡

 

이즈음의, 이즈음의 한 호흡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길고 긴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생의 과정들을 죽 늘어놓고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 가는 것

 

한 호흡

 

이 오후의 한 호흡

 

크게 눈밭에 뱉어놓고

 

슬어놓고

(거미가 알을 슬어놓듯이)

 

고 김현 선생 추모하러 가는 길

 

목포역 도착 전 일로역

 

一老驛이라, 큰 호흡은 반드시 가빠지는 것

 

하아, 하아,

 

네가 무엇을 생각하든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있을 것이야

 

하아, 하아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라는 행에서 삶의 미래는 곧 죽음이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아무리 갓태어난 아기라도 결국은 죽는 것, 힘에 세도, 돈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이 모든 생명의 끝인 것을. 영원히 살 것처럼 큰소리치고 욕심을 부리지만, 결국에 결말은 다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한 호흡 / 이 오후의 한 호흡"을 "크게 눈밭에 뱉어놓고"서 "네가 무엇을 생각하든 /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있을 것이야 / 하아, 하아"라고 큰소리를 친다. 뒤에 거친 숨소리 "하아, 하아"를 붙임으로써 원하는 대로 있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은, 생명은 원하는 대로 있고 싶고, 원하는 대로 하고 싶기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또 죽어가기 위해서 산소는 꼭 필요한 것이고.

 

 

 

염소Cl

 

 

나트륨Na이 소금NaCl이 되기 위해서는 염소Cl을 가져와야 한다.

그 염소가 염산HCl이 되기 전에.

 

나트륨이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염천의 염전

바다가 마르면서 생기는 독을 품듯, 염소를 가져와야 한다.

염소가 염산으로 숨기 전에.

 

나트륨이 염소를 가진다.

가지면 버려야 하는 법,

잡은 매미를 풀어주듯이.

 

소금과 염산은 사람에게 뿌리지도 던지지도 말라.

 

소금은 제가 녹고, 염산은 제 아닌 다른 이를 녹인다.

 

염소가 수소와 만나면 염산이 되고, 나트륨과 만나면 소금이 되는 현상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시다. "가지면 버려야 하는 법, / 잡은 매미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우리는 가지면 더 가지려고 하고, 잡은 매미는 채집통 속에 가둬버린다. 뭐든 가지려고 하고, 더 가지려는 데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염소가 염산으로 숨기 전에" 가져와야 하고, "소금과 염산은 사람에게 뿌리지도 던지지도 말라."에서 큰 울림을 준다. 흔히 재수없는 일이 있을 때, 사람에게나 대문 밖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한다. 또한 어떠한 일에 복수를 한답시고 사람에게 염산을 뿌려서 화상을 입히는 경우가 간혹가다가 뉴스에 나온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제가 녹아서 부패를 막고 간을 맞춰주는 소금은 귀한 것이니 던지거나 뿌려서 안되고, 다른 것을 녹이고 태우는 성질의 염산 또한 위험한 것이니 던지거나 뿌려서는 절대 안된다는 가르침. 염소가 소금이 되거나 염산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을 만나서 결합하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소금이 될 지, 염산이 될 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먼지의 화학식3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없는 자신을

꿈꾸지. 살지.

수상한 기체들이 한 번씩 몰려왔다 희미해지는

해안선 왼쪽을 가방에 쑤셔 넣고

어떤 글귀들에 대한 망설임을

휴대용 교반기에 넣고 돌리지.

어떻게 될까.

미세먼지로 만든 사막 같은 당신, 이라고 쓸까.

딱히 여기,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에 늘 와요. 라고 낯선 이에게 말하고 싶은

생이 터져 나가

 

꽃그늘 아래 서 있네.

 

내 그리운 꽃잎 근처 내 그리운 꽃잎 근처

내리러 가요. 앉으러 가요. 비는 내리고

떠나와 여름이 흘러내리는데도

꽃은 지고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자신의 정부와 통신과 전력이 모두

사라지고 끊기고 있는

거기. 바로 여기. 라고 가리킬 순 없지만

여기에 늘 와요. 라고 하려다 그만두는

 

생이 또 간이역 건널목에 서 있네.

여긴 어딘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나와 가까운가.

 

묻고 싶은 어떤 생이

그런데 아까부터 이 물컹거림은 뭐지?

먼지와 계속되는 질투 사이

나는 오늘도 실험 노트를 쓰네.

 

그때마다

세상은 속수무책이지. 아무것도 모르고말고.

 

"미세먼지로 만든 사막같은 당신,", "생이 또 간이역 건널목에 서 있네.", "세상은 속수무책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말고."라는 표현 속에서, 시 <먼지의 화학식3>은 우리 생의 무의미함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먼지와 같음을, 이런저런 삶이 있고, 가끔 꽃 그늘도 있고, 사막도 있지만, 결국은 다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거라는 것을 예고하는 듯 하다. "세상은 속수무책"이라니,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에 대항해 봤자 소용없다는 뜻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고라도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우리들의 생. 그래서 우리는 늘 "여긴 어딘가. /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 나와 가까운가."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사는가보다.

 

 

 

꽃잎의 화학식

 

 

수만의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 새끼들 중 맨 나중 몇 마리를 위해서

그 드넓은 해안 백사장이 낭비되었듯이

 

나, 라는 별 쓸모없는 인간 하나를 내보내기 위하여

수만의 정자와 수만의 난자가 낭비되었듯이

 

밤차 타고 한번 휙 쳐다보는 벚꽃 밤 벚꽃을 위하여

기차와 무한광변의 밤하늘과 별들이 낭비되었듯이

 

꽃잎의 화학식. 이것만은 아무리 수소와 탄소 분자를 낭비해도

 

세울 수가 없다네, 친구여.

 

다만 수많은 세포들과 함께하는 붉음과 노랑,

 

연두의 색에 대한 화학식만 복기한 채

 

한 장의 꽃잎에 있는 무한의 분자와 원자들 사이

 

주머니처럼 달려 있는 공기의 산란을,

 

그 행동들의 몇 가지 방향만을

 

나는 또 생각하고 있는 것이네.

 

다시 오롯이 새겨지고 있는 흰 잎 위의 붉음 하나.

 

그것이 이 무참한 날을 다시 맞이해야 하는 이유였더군.

 

이 시에서는 백사장이 낭비되고, 정자와 난자들이 낭비되고, 밤하늘과 별들이 낭비되었기에 하나의 탄생을 이루었다는 기막힌 싯구가 등장한다. 바꿔서 말하면 낭비라기보다는 성공한 건강한 개체들이 탄생에 까지 이른 거라고 하고 싶은데, 시인의 마음에는 안들 것 같다. "아무리 수소와 탄소 분자를 낭비해도 / 세울 수 없"는 꽃잎의 화학식을 세워보려고 시인은 애를 쓰고 있다.  "다만 수많은 세포들과 함께 하는 붉음과 노랑 / 연두의 색에 대한 화학식"위에 "공기의 산란"까지 더해 보지만 세울 수 없는 꽃잎의 화학식. 마침내 "흰 잎 위의 붉음 하나."를 보면서 부끄럽고 쑥스러운 "무참한 날을 다시 맞이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고야 마는 시인. 시인의 눈으로 볼 때 많은 것을 낭비하고 태어난 생명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낭비된 것들에게 무참해 진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 <꽃잎의 화학식>은 무참한 날을 다시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한다.

 

 

 

C2H5OH

 

 

수많은 예의 태도로,

 

부연하자면 이렇다.

저녁에 내게 필요한 건

저 에틸알코올의 화학식이다

 

오늘은 산소인 나와 수소인 그녀가 포옹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탄소인 한 사내가 들어왔다.

탄소인 한 사내는 우리가 포옹하고 있는 광경에 눈이 뒤집혀,

자아가 두 개로 분리되고

그녀는, 그대로 있었는데 그녀의 자아가 다섯 개로 늘어나

탄소인 그 사내의 주위에 늘어섰다.

 

술의, 술의 화학식

술잔에 늘 녹아 있는 이야기

 

수많은 실수의 태도로,

 

알콜의 화학식을 정말 재미있게 풀어낸 3연은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산소와 수소와 탄소를 나와 그녀와 한 사내로 표현되어 그들은 포옹도 하고 눈도 뒤집히고 자아가 분리도 되고 늘어서기도 한다. 이처럼 재미있는 술의 화학식... 저녁마다 알콜을 필요로 하는 많은 애주가들에게 이 시를 선물해 주면 머리 아프다며 오히려 한 잔을 더 하려나? 아님, 재미있다고 한 잔을 사주려나? ㅎㅎㅎ  

 

 

 

밤의 화학식

 

 

밤이 온다. 밤이 어둠을 받아 온다.

당신의 밤엔 무엇이 많은가.

그러니 모든 이들이여, 대답하라.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것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밤의 화학식은 저렇게 그리는 걸까? 위의 그림은 성윤석 시인이 도식을 구상하고 장우희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것 저것 섞여 있는 밤을 화학식으로 그려낸 그림은 여느 화학식 못지않게 난해하다. "당신의 밤엔 무엇이 많은가."라고 시인이 물었다. 글쎄, 사색, 독서, 대화, 야식, 잠, 꿈, 사랑... 하나를 콕 집어서 어떤 게 많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살이 있기 위한 거센 몸부림이 설령 "미친 짓"으로 보일지라도, 어쩔 수 없고, "여기서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기를 쓴다 할지라도 나갈 수는 없다. 나간다는 것은 아마도 시 <산소>에서 표현했듯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 것이고 소멸로 가는 것일 테니까.

맨 위에 인용한 시 <화학적 거세>에서 굴욕을 이겨내고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처럼, 평범한 우리는 밤처럼 캄캄한 인생을 이겨내서 살아내야 하겠고, 시인은 또한 거르고 걸러서 반짝이는 시 한 수를 건져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시 같다. 모두가 소멸을 향해 가지만, 소멸하지 않는 그 무엇을 남김으로써 결국 영원히 소멸하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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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석 시인은 본래 문학을 전공한 분인데, 아버지의 가업 바이오벤처기업을 물려받아 운영하며 화학실험을 하고, 신물질을 개발해서 특허까지 냈었던 기업가이다. 물론 자금부족으로 기업은 엎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후 마산어시장에서 인부들과 똑같이 일하며 힘들었던 노동의 결과로 [멍게]라는 시집을 냈었고, 그 이후 문학에 열중하면서 마음 속에 품었던 화학에 관한 시집을 내게 되었다. 시들이 모두 본인의 몸으로 겪은 체험을 통해서 우러나온 것이니 한 편 한 편이 거저 나온 싯구는 없다. 다음에는 전작 시집 [멍게]를 꼭 읽어보고 싶다.     

화학식에서 시를 건지는 시인, 화학식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시인, 우리의 인생을 화학식으로 풀어보려는 시인의 시집 [밤의 화학식]은 독특하고 낯설고 새롭다. 메마른 삶의 풍경 속에서 건지는 눈물 한 방울, 슬픔 한 조각, 꿈 한 귀퉁이를 화학식으로 풀어 놓음으로써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찾는 삶의 궁극은 사금처럼 강물에 묻혀서 발견되지 않은 채 흘러갈 수도 있고,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금이나 은처럼 닳아져서 마모될 수도 있고, 알콜처럼 휘발되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삶의 고달프고 쓸쓸한 풍경 속에서 어느 날, 멋진 분자와 날렵한 원자들의 결합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화학식 하나쯤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화학식으로 빛나는 시 한 편 건져낼 수 있기를... 내심 기대해 보는 시간이다.   

 

 

 

c*****p 2017.01.07. 신고 공감 7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