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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읽기로, 신정근 교수의 논어 관련 책으로는 네 번 째이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1』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이런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신교수의 책인 『공자의 인생강의』를 읽었다.
같은 논어를 토대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받는 느낌이 책마다 다르다. 그런데 이번 책, 역시 다르다. 논어를 기본 텍스트로 하는데도, 책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되니 신기한 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EBS의 <인문학 특강>이란 프로그램에서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것을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는 논어에서 인간의 길을 찾아내는데, 그 길의 종착지는 사람 인(人)이다.
그 종착지 인(人)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만 저자는 6가지로 제시한다.
바로 학(學), 정(政), 서(恕), 군자(君子), 예(禮), 신(信)이다.
학(學)은 수용이다.(219쪽)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공자가 물음 중심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또한 신과 인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신은 원하는 게 바로 현실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니, 그 이상과 현실간의 차이를 메우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배움(學)이라는 것이다.(25족)
정(政)은 공자가 주장하는 인(仁)이 나 자신이나 내 가족에게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벗어나서 나의 이웃 나의 지역, 나의 나라 천하 전체로 넓혀야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219쪽)
서(恕)는 용서라는 의미보다는 관용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한 것이며, 관용이란 ‘너와 내가 다를지라도 그것이 도덕적 기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91쪽)
군자(君子)는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는 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예(禮)는 우리가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취해야 하는 방식이다. (219쪽)
신(信)은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6개의 길을 거쳐 사람(人)이 살아가는 사회로 만들어나갈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
이 책을 읽고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공자성적도>라는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자성적도라는 게 있는데 이는 孔子聖蹟圖라는 말인데,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圖解)한 그림을 말한다.
저자가 인용한 몇 개의 그림을 살펴보면서 이 책을 읽어보니까 공자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예를 들어 <주소정묘>을 설명한 부분이다.
이 그림은 하나의 화면을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놓았다. (삽입된 그림 참조)
오른 쪽에 소정묘를 처형하는 그림이 있고 다른 세 개의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는데, 그렇게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화면에 그려진 세 개의 장면은 부도덕한 사회현상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소정묘를 처벌하지 않고서는 그림의 왼쪽에서 묘사한 세 가지 부도덕한 사회 현상, 타락한 면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려낸 것이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는 공자의 생애를 설명한 것이 있다는 것, 알게 되어 앞으로 『논어』를 읽어가면서 참고해 보려고 한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공자의 인생강의』라고 잡았다.
그래서 ‘인생강의’라는 말 속에 이 책의 의미가 들어있다 본다.
저자의 주장은 논어를 내 삶으로 가지고 들어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어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통해서 이 땅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논어 그 자체를 해설하는 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만들어가자는 사자후인 것이다.
사족 :확인하고 싶은 부분들
205쪽에 ‘종오소호(從吳所好)’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렇게 ‘종오소호(從吳所好)는 나로부터 잠시 떨어뜨릴 수 없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삶의 조건이 버겁고 힘들더라도 그것은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은 ‘從吳所好’했기 때문이다.>(205쪽)
여기서 ‘종오소호(從吳所好)는 어디서 온 말일까? ’종오소호(從吾所好)‘의 잘못이 아닐까
『논어』 <술이> 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저자도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자왈: "부이가구야,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저자가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갑자기 ‘종오소호(從吳所好)’라고 하고 있으니. 이는 ‘從吾所好’의 잘못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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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풀어쓴 신정근 교수의 ‘공자의 인생강의‘는 두 개의 은유와 두 개의 제안으로 독자를 맞는다. ’논어‘는 건너야 할 강이라는 은유, 저자는 독자들이 ’논어‘라는 강을 편안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드릴 뱃사공이라는 은유, ’논어‘와 우리의 눈높이를 같은 것으로 보고 공자와 대등한 자격으로 대화를 하는 읽기를 만들자는 제안, 이 읽기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도록 하자는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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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주어진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보면, 나 자신을 종종 잊어버릴 때가 많다. 잠자리에 들 때 잠시라도 잊어버렸던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피곤함에 젖어버린 몸이라면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나 자신이 마치 그림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히 함께 있으나 빛을 등져야만 순간 보이는 것처럼. 나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은 타인과의 대화 방법과 마찬가지로 질문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질문과 함께 나에게 요구되는 건 시간의 멈춤이다. 책을 읽는 것 또한 저자가 던진 질문들에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려는 나와 만나는 그런 시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은 '나는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란 질문과도 연결된다고 본다. ‘공자도 정답 중심의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던지는 물음 중심의 삶을 살며 전체를 만나는 길로 자신을 이끌어 갔기 때문에 학문적 성취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20p 아마도 앞서 던진 질문은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리라. 이 책의 주인공인 '공자'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를 끊임없이 물었다고 한다. 해답을 확실히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삶이었다. ‘여러분은 자신의 공유지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초대했나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 이외의 사람이 사람으로서 합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할 때, 내가 도와주기 위해 초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93p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공유지대로 몇 사람이나 초대했을까?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정말 혼자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손을 내민 적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조차 내가 도움을 준 적이 얼마나 될까? 역시 잘 생각나지 않는다. 슬며시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예는 상호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면 회원 사이와 사람 사이가 훨씬 부드럽고 편해지겠죠. 그래서 저는 예하면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윤활유가 떠오릅니다. 예는 불편한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편한 것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60~161p 저자는 ‘예’를 설명하면서 공감과 편안함에 대해 함께 말하고 있었는데, ‘예’가 편안함을 만들고 공감을 낳는다는 말이었다. ‘예’라는 것은 왠지 어렵고 복잡하고 격식을 갖추며 의식을 강조하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예’가 편안함과 공감을 낳는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글을 천천히 읽으며 생각해보니 어쩌면 ‘예’라는 것에 대해서 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실패했다고 내 의식의, 긴장의 끈을 다 풀어놓아 버리는 게 아니고, 늘 자기 실패를 끊임없이 되감았다는 거죠. 풀리면 다시 감고, 또 풀리면 다시 감으면서 늘 다시 출발하려고 했고, 그렇게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앞서 느끼지 못했던 의미와 뜻을 깨달으면서 결국 인생에, 자기에게 던진 문제를 자기 스스로 풀어냈다는 거죠. 213p 공자도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마치 실패라고는 거의 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 은연중에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공자를 나타내는 ‘성인’, ‘군자’, ‘위대함’이란 수식어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공자도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에 실패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공자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풀어진 실을 다시 실패에 실을 감듯이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했다. 난 그동안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패하는 순간 내 의식의 긴장을 끈을 다 풀어놓아버렸다. 다시 실패를 감으려고 하지 않았다. 감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하고 피해 버렸다. ‘공자는 자기 삶의 방침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설 수 있는 상생의 삶을 사는 것으로 정한 것이죠. 그래서 공자가 세운 삶의 가치 또는 사상의 핵심이 모든 사람이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유지대에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을 말하는 ‘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24p 공자가 말하는 ‘인’이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과 사랑은 모두 사람이라는 존재가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이란 것과 통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논어’에 대한 저자의 인터넷 강의를 재미있게 들었었다. 그래서인지 논어에 관한 저자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책은 저자가 논어에 관해 강의 했던 총 7개의 EBS 인문학 특강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시간이 되면 강의도 찾아서 한 번 보아야겠다.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논어 또한 단지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제대로 논어를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논어를 읽고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몸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공자처럼 실패해도 다시 실패를 감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나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저자의 표현대로 논어(모두 20편이다)의 후속편인 21편, 22편을 내 삶으로 써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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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고전과 경전은 고리타분한 게 아니다. 공자왈 맹자왈 하며 시작하는 내용이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생애를 말하는 꼰대의 설명이 지루한 것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훈장질하는 이들이 고전을 망치는 주범이고 그들의 학생은 죽은 교육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인문고전의 격을 하락시키는 공범으로 전락하게 된다. 고전을 꼰대들의 잔소리로 간주하거나 봉건적 유산으로 폄하하는 것은 뭘 모르는 이들의 허세에 불과하다. 저자 신정근은 이 책『공자의 인생 강의』(휴머니스트, 2016)에서 고전을 우리 삶에 적극 접목시키는 '생활고전'의 관점과 '씹어먹는 독서'의 방법, 이 두 가지를 강조한다. 생활고전의 관점이란 사서삼경과 같은 동양고전을 단순히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태도를 말한다. 즉 고전을 우리 삶의 과도기를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수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그리고 '씹어먹는 독서'의 방법론은 단순히 한 가지 정답을 찾는 자세가 아닌 다양한 차원의 '물음'을 구하는 방법으로 고전에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이라는 공자의 말처럼, 배움의 목적은 자기의 영혼을 돌보고 살찌우는 데 있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지난한 삶과 다양한 제자들의 '물음'을 통해서 '수기치인'의 길, 참다운 인간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저자는 學(학), 政(정), 恕(서), 君子(군자), 禮(예), 信(신), 人(인) 등 7개의 키워드로 공자 사상의 핵심을 정리한다. 또한 仁(인)을 중심으로, '인과 여러 덕목의 상관도'가 나오는데, 공자 사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개념지도'에 해당한다. 한편,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그림이 소개된다. 그림의 출처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자의 인생 역정을 소개한 '공자성적도'이고, 다른 하나는 명말청초의 화가 팔대산인의 그림 21점이다. 특별히 팔대산인의 그림을 수록한 이유는 공자의 인생과 겹치는 측면이 많아서라고 풀었지만, 막상 팔대산인의 생애에 대한 소개는 누락되어 있다. '공자성적도' 가운데는 '자로문진', '행단현가' 등이 소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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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EBS에서 2014년 5월부터 방영된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유학의 대가인 신정근 선생은 논어를 통해 인간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학(學), 정(政), 서(恕), 군자(君子), 예(禮), 신(信), 인(人) 등. 7개의 주제로서 우리들과 함께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일곱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자로서의 인(人)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218페이지를 보면 유교의 모범적인 인간상인 군자의 정신을 계승한 인간(人에서 仁로 진화)이 공자의 가르침인 학(學, 수용), 정(政, 확산), 서(恕, 공유), 군자(君子, 주체), 예(禮, 외화), 신(信, 연대), 덕(德, 확산), 의(義, 기준)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각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골라 옮겼다. 거기에 간단히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2. 학(學, 수용), 왜 배워야 하는가
25. 인간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거리가 있는 거죠. 그러므로 사람에게 남겨진 과제는 현실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상, 목표 사이의 거리를 어떤 식으로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인간은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서 자기가 바라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비밀이 바로 <논어>의 제일 첫머리인 '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학은 배움을 뜻한다. 인간은 왜 배워야 하는가? 자신이 품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신정근 선생은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에서 배움은 괴로운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남들의 '인정욕구'를 바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그러한 타인의 '인정욕구'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이 가야할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면 배움이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3. 정(政, 확산),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49.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가까이 있는 사람은 만족해서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동경해서 살러 오려고 하는 것이지요." (...) 즉 정치라는 것은 나의 주위로 사람이 모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이라는 거죠.
정치란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나라를 만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공자가 말하기를 첫째, 인구가 많아야 한다. 둘째, 넉넉하게 잘살게 해줘야 한다. 셋째,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조건으로 들었다. 신정근 선생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4. 서(恕, 공유), 다른 이를 받아들이다
99.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를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는 공유지대호 초대하는 것이죠. 나도 상대를 초대하고, 상대도 나를 초대하는 것, 이것이 '恕'이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恕'가 말하는 관용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개인은 내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면 된다. 그런데 내가 아닌 타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없다. 다양성도 있고, 그러한 다양성 중에 충돌도 발생한다. 그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공자는 타인을 다스리려 하기 이전에 먼저 관용을 베풀어 그들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타자와 공존이 가능하면, 사람이 서로 적대하지 않고 신뢰하는 사회의 밑바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5. 군자(君子, 주체), 스스로 삶을 설계하라
115.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은 흰색으로 가득 찬 사람도 없고, 검은 색으로만 가득 찬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경계를 어느 쪽으로 끌고 가느냐, 군자 쪽의 면적을 넓히느냐, 소인 쪽의 면적을 넓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신정근 선생이 말하기를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 싶으면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굳건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자를 목표로 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군자의 모델에 가깝게 갈고 닦는 것이며 그 다음에서야 범위를 넓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6. 예(禮, 외화),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길을 찾다.
137. 예는 오고가는 것이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으면 예가 아니다.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사람은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롭다. (...) 예라는 것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겁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죠.
신정근 선생은 예라는 것이 자신의 권위와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받아들여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허심탄회한 대회가 중요할 듯 싶다.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판단으로 예의 정도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예를 주고받아야 할 당사자와 긴밀히 대화를 해야 나중에 벌어질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예라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은 예이니 말이다.
7. 신(信, 연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182. 자하는 말했다. "군자는 신뢰가 쌓인 다음에 백성을 동원한다.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는데 동원한다면 자신들을 혹사시킨다고 생각한다. 또 신뢰가 쌓인다면 다음에 충고(반대 의견)을 한다.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는데 충고를 한다면 자신을 헐뜯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예를 행하기 전에 먼저 쌓아야 할 조건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쌓여야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수도 있을 것이고, 조언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며, 올바르게 배울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8. 인(人), 불가능하지만 시도하다.
213. 여러분이나 저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실패했다고 내 의식의, 긴장의 끈을 다 풀어놓아 버리는 게 아니고, 늘 자기 실패를 끊임없이 되감았다는 거죠. 풀리면 다시 감고, 또 풀리면 다시 감으면서 늘 다시 풀발하려고 했고, 그렇게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앞서 느끼지 못했던 의미와 뜻을 깨달으면서 결국 인생에, 자기에게 던진 문제를 자기 스스로 풀어냈다는 거죠.
공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인간을 소인에서 군자로 탈바꿈시키고자 한 평생을 계몽에 매달린 인간이자. 성인이지만, 그 역시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다른 성인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각기 다른 천성과 계급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을 군자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고, 공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공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야만이 모든 것이 각자 제 자리에서 충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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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집에 있었기에 한 번 읽은 기억이 난다. 워낙
고사성어도 논어에서 나온 내용이 있어 아예 모른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깊은 사상까지 이해하기에 어린 시절이었다. EBS 인문학 특강을 바탕으로
책으로 출간된 책 <<공자의 인생강의>>. 논어를 인문학적으로 다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잘못된 해석을 하기
보다는 이끌어 줄 저자의 강의 또한 기대가 됐다.
시작부터 많이 익숙한 논어의 구절이 나온다. 배움이 처음 나오는 것, 유일신 문화가 아닌 동아시아 인존사상에서 인간이 처한 조건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베우고, 다시는 그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에 마음이 뜨금한다. 배웠다고 했음에도 비슷한 실수를 또 경험한 때를 떠올려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배워서 남주자에 대한 부분도 눈에 보인다.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이들의 마음 가짐인지도 모르겠다. 수단으로 쓰기 보다는 함께 나눔으로 함께 성장 하는 것. 자격증이나 업무적으로 다가간다면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맞으나 지식의 나눔을 펼치는 이들을 본다면 배워서 남주는 것이 결코 무의미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를 통해 자신 또한 배우지 않는가에 대해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부분은 정치인들이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에 앞서 그런 정치인을 뽑는 우리 또한 알아야 반복되는 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 대해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럴싸한 말만 하고 지키지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권한을 맡기고 있진 않은지...그래서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된 것은 아닌지...위선 혹은 가식으로 헛된 말로 꿈을 부풀리고 다른 이들을 이용하는 이들. 결국 그 거짓이 자신에게 언제고 되돌아 올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이를 받아들이다'에서는 앞서 내가 책을 읽으며 생각한 부분이 이어진다. 다른 이를 받아들임에 대해 생각을 하면 낯가림이 있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분명 나와 잘 맞는 이도 있고, 잘 맞지 않는 이도 있다. 그에 따라 다른 태도로 대하는 편이다. 낯섦에서 친해진다면 낯가림은 사라지고 적극적인 교류를 하는 편이다. 공자는 제자들이 편견 없이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도한다. 대인배 다운 모습이다. 간혹 대인배처럼 굴지만 선을 긋는 이들을 볼 때도 있다. 타인에겐 정도를 걸으라 하지만 자신은 그와 달리 행하는 모습 결국은 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알게 되는 것을 너무 방관한다. 이 부분에서 나오는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시키지 마라'는 내 생각과 같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랄까? 군대시절에도 이 부분은 잘 지켜왔다. 그럴수도 있지에 대해서는 그 현실에서 벗어난 이후 이해를 하게 된다. 막상 그 상황에서 내가 그리 할 수 없는 것은 앞으로 쌓아가야 할 수련이 아닌가 싶다. '군자-스스로 삶을 설계하라' 군자라는 단어가 더 눈에 들어온다. 그림8을 보며 음양을 떠올린다. 이 안에는 음안에 양이 없고? 양안에 음이 없으나 결국 소인과 군자를 가름에 있어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상황에 따라 혹은 수련에 따라 백이나 흑, 군자나 소인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다른이에 대한 연민을 느껴 군자의 마음이 넓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뒷통수를 맞거나 지인이 전혀 날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 소인의 마음이 넓혀질 때도 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내 부족을 알 수 있음이리라. 그럴 때는 속편하게 다른 이에 대한 배려를 고려치 않고 행동하는 이들이 잠시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삶이 아니기에 부정하게 되고 멀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구와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 지대를 만들어가느냐, 내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한다는 부분을 다시 생각을 해본다. '예'에 대해서는 과거나 현재나 어려운 것 같다. 변화하기 때문에 맞추기도 어렵고, 개개인의 생각도 반영되기에 차이가 생기게 되는 부분도 있다. 얼마전 횡단보도 앞 흡연자와의 일화를 보며 규약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어떤 경우에는 맞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를 전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예에 어긋나기도 하니...씁쓸하다.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는 앞서 예를 지키면 어떻게 신뢰가 생기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곳에서는 다룬다. '서로 신뢰가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시작해 소정묘를 사형에 처하는 부분까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룬다. 신뢰가 쌓인 것에 대한 부분을 보며 간혹 서로의 입장차가 달라 문제가 생기거나 그를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위험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경계하고 싶다. 마지막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라는 것은 읽으며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선 모든 것이 결국은 '불가능하지만 시도한다'를 행하려는 것과 많이 연관이 있다. 공자가 말하는 인이라는 글자 또한 파자한 설명을 보며 공자의 인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무턱대고 논어를 달달 외기 보다는 제대로 이해할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너무 텍스트에 갖혀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하게 된다. 책장을 덮으니 책 뒷표지에 보이는 구절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 공자의 인생강의에서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나아감을 위해 포기 하지 않는 삶. 무덥고 힘든 여름을 나고 있는 지금의 내게 하는 공자의 말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논어를 더 잘 읽기 위해 도움을 주는 책이라 생각하다. 다시금 논어를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공자의 인생강의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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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인문학특강 예전에 정말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요즘은 "통찰" 로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포맷이 조금 바뀌었지요.
논어와 같은 동양철학, 동양고전에 관해서라면 신정근 교수는 방송을 통해 접한바 있기에
이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전혀 고민이 없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즉,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기에 너무나 좋은 통로이지요.
그래서 제가 인문학책들을 참 좋아하고
이런 인문학특강도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만나면 그냥 그 자리에서 스톱입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이 스승의 이야기를 전했던 <논어> 를 통해서
인간이 가고자 하는 그 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시간 가질 수 있는 좋은 책 만났어요.^^
총 7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내용들이구요.
일단 이 책은 가독성이 너무 좋습니다.
마침 제 앞에서 얘기하듯이 쓰여지는 스타일인데요.
앞서 얘기했듯이 EBS 인문학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이 신정근 교수가 출연해서
말로 풀었던 내용을 책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책 속에 내용중에는 그냥 말하듯 살짝 농담 같은 것도 섞여 있습니다.^^
읽기에 재밌고 그냥 술술 읽히는 스타일이어서
인문학 어려워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 추천하기에 무리가 없을거 같아요.
목차에 있는 내용들 중에서 제가 가장 궁금한 대목은
"다른 이를 받아들이다",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이 부분입니다.
恕 '용서할 서' 자이지만 이건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관용" 이었어요.
"용서"와 "관용"의 의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ㄴ다.
"용서"란 다른 사람이 한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거나 처벌하지 않는 것이죠.
이와 다르게 "관용"은 나와 다를지라도 그것이 도덕적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서로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세인데요.
공자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논어의 대목들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길을 묻고 그에 대한 현명한 대답이 무엇인지
신정근 교수님이 그 길을 조금씩 비춰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인생강의에 있어서 저는 위에 언급한 두 가지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꼭 저 내용과 일맥상통한 거 같아서
좀 더 집중해서 읽었던 챕터이기도 해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쉬워지고
너그럽게 품을 줄도 알텐데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혼자서 문을 닫아버리면
불통이 되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노릇입니까!!!
이 책좀 국민들이 다같이 읽었으면 싶네요.... ㅎㅎㅎ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군자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지요.
인상적인 문장이 있어요.
억지로 법으로 다스리려 한들 백성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군자의 움직임이 더 영향력이 크다는 걸 얘기하는데요.
"군자의 특성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특성은 풀과 같습니다.
풀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반드시 따라 눕게 됩니다."
이 얼마나 군자의 모습이 멋집니까!!!
힘으로 제압하려 하지 않고 덕으로 아우르려 하는 포용력, 관용....
이런 것들이 모여서 성인이 되는 것이고 그 본보기가 바로 공자이겠지요.
논어의 첫구절은 다들 아시다시피 學 으로 시작됩니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배움을 강조했던 공자의 가르침은 정말 제게는 마음 깊히 공감하는 부분인데요.
새로운 것들을 앎에 있어서 늘 즐겁기에 몸이 고단해도 여기저기 다니며 보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도 함께 다니면서 이런 앎의 즐거움, 배움의 욕구는 마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이 외에도 공자의 많은 가르침을 통해서 인문학책이 추구하는 자아성찰...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길 바래요.
그러기에 아주 좋은 책입니다. ㅎㅎㅎ
많은 사람들이 따르려 했고 대화라도 하고 싶어 공자를 찾아오면
무조건 따뜻하게 맞이하는 공자는 아니었다고 하지요.
무언가 그 사람, 또는 제자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올바른 길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일깨워줬다고 해요.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의 높은 위치를 신경써서 진심이 아닌 거짓으로 대하지 않고
모르면 물어서라도 예를 갖추려고 했던 성인, 공자.
그의 가르침을 논어를 통해 일화를 통해 접해보고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좀 더 현명하고 힘들지 않게 대처하는 방법까지도 팁을 얻을수 있으실 거예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소장하기만 해도 든든해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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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열풍이 풀기 시작할 때쯤에 우연히 다른 책안에서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이였다. 고전이 그렇듯 한 두장 읽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도 무언가에 홀린 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이였다. 중간에 포기하긴 했지만 필사하고 감명깊게 읽은 부분은 메모하여 싱크대의 곳곳에 붙이며 마음을 다스리곤 하였던 거 같다. 그렇지만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다음에 기회되면 논어의 그 느낌을 그대로 갖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은 늘 있었다. 고전,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논어였고, 독자로서 부족한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 오래 기억되는 책. 그리고 만난 ‘공자의 인생강의!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첫인상은 두껍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2014년 5월 29일부터 한 달동안 EBS의 <인문학 특강>을 통한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어렵지 않다. 맨 첫 페이지의 저자의 멘트가 인상적이였다. p13 <논어>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 흐름이 뒤섞여 있어서 가닥을 잘 찾지 못하면 생각이 옆길로 빠지거나 커다란 암초 앞에 멈춰서버립니다. 하지만 저와 함께 같은 배를 탄다면 <논어>의 강을 무사히 건너 더 의미 있고 흥미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논어>를 통해서 인간의 길을 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P14. <논어>를 읽을 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시각입니다. 하나는 ‘생활고전’이라는 관점이고, 또 하나는 ‘씹어 먹는 독서’의 관점입니다. <학>에 관한 공자의 시각을 본받고 싶다. 논어의 서두를 자리잡는 데도 그 의미가 크리라 생각한다. 현대의 인정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배움이 아닌 즐거움의 그 자체의 시각이 부럽고 그 경지를 경험하고 싶다. <정치> 부분에서 놀라운 부분은 복지에의 시각이 절묘하리만큼 정확한 데 놀라웠다. 무상급식? 보편적 복지? 라는 우리나라의 복지에 대해서 공자의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恕, 다른 이를 받아들이다.> 사람을 어떻게 대우할까 하는 문제에 공자의 대답이다.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먹먹했다. 아마 공자 제자의 자공(子貢)이 이 부분에 질문이 많은 게 닮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서 恕는 용서가 아닌 관용으로 해석한다. 늘 대인관계가 쉽지 않은 독자에게 시간을 머물게 한다. <君子, 스스로 삶을 설계하라> 논어에서 나오는 군자의 개념을 명쾌하게 볼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백미이다. P118의 ‘재진절량’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제자 ‘자로’의 질문에 “네가 떳떳하다면 걱정할 게 없다”라고 말하며 초연한 공자가 군자의 모습 그대로이지 않았을까?
역사적 배경과 적절한 그림의 첨부가 논어를 쉽고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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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도리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10대는 꿈과 세상을 향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쳤고 20대는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으로 살아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이제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내 나이는 서른하고도 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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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주 짧다고 할 수도 없는 기간 휴가를 알차게 다녀왔습니다. 며칠 쉬지도 않았는데 한참만에 리뷰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해외 여행도 아니고 국내 여행을 하고 왔는데, 새로운 길을 떠나 낯선 곳을 방문하면서 제가 아주 작은 세상만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같은 곳이려니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아름다운 경치도 실컷 감상했지만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마주하면서 제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글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래서 다들 여행을 떠나는 건가 봐요.
이번 책 <공자의 인생강의>는 신정근 교수가 EBS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한 "논어, 인간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강연한 것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신정근 교수는 현대인들이 취하고 피곤에 절어 살아서 혼과 백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으며, 산 사람마저 혼이 나간 상태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여행지 중 하나인 "강원랜@"에서 혼이 나간 사람들을 정말 수없이 보았죠. 미국의 카지@ 나 일본의 빠칭코를 가 보긴 했지만 그런 분위기는 정말 처음이라 충격적이었습니다. 게임기 앞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혼을 게임기에 넣고 버튼 누르는 기계가 된 것 같았습니다. 거기엔 돈에 흘린 땀도 돈의 가치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원랜@가 극단적인 장소이긴 하지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혼을 물질에 반납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죠. 혼백을 제대로 잡고 사는 법, <공자의 인생강의>를 통해서 배워봅시다.
신정근 교수는 자신을 <논어>라는 강을 편히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 뱃사공이라고 소개합니다. 배를 타려고 하는 의지는 바로 독자에게 있지만 노를 젓는 사람이 없으면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힘들죠. 논어의 첫 글자는 바로 배울 학(學)입니다. <논어>의 맨 앞 구절은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도대체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할까?
공부를 시작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갖는 생각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머리를 싸매며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공부하다가 마침내 펜을 책상에 내려치며 도달하는 질문이기도 하지요. 내가 왜 이렇게 따분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을까? 재미도 없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가장 큰 욕구는 바로 '인정'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선생님, 부모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죠.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란 끝이 없어서 남을 위한 공부를 하다가 결국 제가 먼저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공자도 알았던 것인지 다음과 같은 구절이 <논어>에 나와있습니다.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학문을 통해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돌보고자 했지만, 오늘날의 학자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이바지하고자 한다.)
<논어>에 따르면 "배움"은 내가 왜 살아가는지, 내 삶의 영혼이 무엇을 바라는지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고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활동입니다. 즉 '배움'은 자기에게 빛을 주는 행위인데 많은 사람들이 남을 돕고 남에게 서비스하는 활동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죠. 그 과정이 좀 괴로울지라도 "배움"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현명한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 판단력을 기를 수 있고 나 자신을 더욱 즐겁고 당당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공자의 인생강의>를 통해서 현대인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 '공부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하여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방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를 얻는 방법,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나아가는 삶 등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21세기 우리 시대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