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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계절탓일까, 아니면 나이 탓일까? 서른 한살에 바라보는 가을 하늘이 참 곱다, 참 곱다! 아니, 매해 이맘때쯤만 되면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지금처럼, '참 곱다'라고. 그러나 자연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같지 않은 감동을 준다는 것.
이 계절, 이 나이에 <목마른 우물의="" 날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였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시인에게, 또 이 책을 아무 생각 없이 뽑아들게 한 '우연'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 뿐이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만나기가 마음에 드는 벗 하나 사귀기보다 힘든 요즘, 이 시집이 내게로 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이 가을에 만나, 나를 푹 적신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은 가을이 아닌 봄을 노래하는 시집이다. 시집 곳곳에서 풍기는 봄꽃내음이 어찔할 정도로.
천둥 번개 지나간 곡우 아침
때아닌 우박과 꽃잎 사이//
(중략)//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설레설레 봄꽃은 번지네
-숨길1
시인은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설레설레' 피어날 수 밖에 없는 봄꽃으로 시작해, '마지막 꽃을/ 첫 꽃으로/ 전하여주'는 <꽃>이란 시로 시집의 문을 닫는다. 심지어 그에게는, 태어나 죽는 한 인생의 시작과 끝이 '눈 녹고 꽃 피었다/ 한 시절이 간다(-<하, 시절="">)'라고 노래될 정도였는데, 시집을 읽어나가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 하나는, 시인에게 봄, 아니, 정확히 말해 "꽃"은 어떤 의미일까?하는 의문이었다. '불에도 사는 꽃이 아니면/ 차라리 요절이다'이라고까지 말하는, 그 "꽃"이란 놈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통상적으로 봄, 그리고 꽃은 한 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봄, 그리고 꽃 한송이는 결국 잘 야문 가을의 열매를 위해 그 화려한 생을 내주어야 한다. 그렇다. 잘 여문 열매 하나는 꽃의 죽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였을까? 김수영의 '누이여,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를 변주한 김지하의 '누이여,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를, 이안은 '아내여/ 꽃이 아니면/ 요절이다'로 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꽃, 죽음, 그것도 안되면 '차라리 자살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안의 시에서 모든 '꽃'은 죽음을 깔고 피어난다.
오늘 낮 천만통은 족히 넘는
봄꽃의 부고를 받았네
- <흔해빠진 생=""> 중에서
사흘 낮밤 장대비에도 재수 없게 눈이 맞아
일찍 피어 먼저 진 꽃잎이여,
내 끊어진 길 사이를 흘러
나를 이어주고 죽은 꽃잎이여
- <꽃길> 중에서
조문하듯 꽃가에 간다
그대가 나를 몰라보는 게 당연하다면
나는 되었다
-<봄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 가장 아픈 죽음을 만나고 돌아오는 시인의 마음이 대단하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 모든 것을 안타깝고도 장하게 껴안는 시인의 마음이 참 장하다.
사실, 나는 이 가을이 지나는 것이 두렵다. 서른 한살의 나이가 아직은 여물지 못한 탓인지, 아직은 겨울과 추위와 죽음과 실패와 끝이 두렵다. 세상의 이목과 지탄과 좌절과 절망이 두렵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인 겨울을 앞둔 계절, 이 가을.... 복숭아벌레를 냉큼 집어먹고 철없이 웃는 돌배기 아들을 보며 '향기나는 집'으로 이사한 복숭아벌레의 안부를 묻는 (<복숭아 먹는="" 저녁="">) 시인의 마음을 생각한다; 죽음이 아닌, '향기나는 집'에서 배포 좋게 유영하고 있을 '복숭아벌레'의 모습을 생각한다....
지금, 나는, 이 좋은 계절 앞에서... 벌써부터 겨울이 두려운가? 그래서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다운가? 시인의 말로 내 자신에게 대답해본다. '그걸 안다면, 그것으로 나는 되었다'!복숭아>봄날>꽃길>흔해빠진>하,>꽃>목마른>목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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