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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단편집 한 권을 위해 10년을 허비했다. 만 10년 동안 시민들이 먹는 것과 같은 산뜻한 아침을 먹지 못했다. 나는 이 한 권을 위해 몸 둘 곳을 잃어버린 채 끊임없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세상의 세찬 찬바람을 맞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다자이가 말하는 자신의 첫 단편집 <만년>에 대한 글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의 인생이자, 가장 다자이 다운 단편집. 많은 이들이 만년을 읽고 힘든 청춘의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노라고 한다. 그의 소설에는 젊은 청춘남녀가 등장해 뜨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꿈을 향해 전진하는 젊은이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다수의 청춘은 그의 소설을 통해 구원받았다. 그의 글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지.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년에 수록된 단편은 총 15편. 다자이의 글이 읽기 어려운 편을 감안하면, 상당히 더디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단편집이다. 옮긴이 송태욱씨는 만년의 마지막 부분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다자이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며, 그의 인생사를 짧게나마 기술하는데, 각각의 소설이 작가의 어떤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 졌는지 알 수 있어 상당히 유익했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 질 수 있는 소설의 의문점을 해결해주는 느낌이라 끝 까지 깔끔하고 적잖은 여운을 남긴 채 독서를 마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가장 마음에 든 단편은 <역행>이다. 다자이의 유작, <굿바이>에도 실려 있는 단편이다.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을 죽기 전부터 차례차례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구조인지라, 마치 다자이의 인생살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아 더 애착이 가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부끄러운 과거를 죽기 전에 되짚는 것이, 마치 자살 직전의 기분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본인 스스로 말하길, 이 소설을 위해 태어났다 하니. 그 작품성은 정말 의심할 여지없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일본 현지 뿐 아니라, 타국인 한국에서도 널리 이름을 알린 소설이니 만큼, 그 재미. 아니, 재미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만의 매력이 농후하게 깃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재미가 아닌 다른 것이 더욱 돋보이는 책이니만큼, 쉽사리 추천하긴 힘드나. 지금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이 읽기엔 충분히 나쁘지 않을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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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20대 이전에 읽어야 할 작가들이 있다. 그것도 조심스레 읽어야 할 위험한 작가들이다. 때를 놓치면 그런 작가들의 예리함과 영악함이 그만 빛을 바래고 만다. 한국에선 이상을 들 수 있고, 일본에선 다자이 오사무를 그런 작가로 꼽을 수 있겠다. 이상이나 다자이나 모두 전후의 어두운 사회 분위기에 기생하는 패배주의와 퇴폐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사소설로 유명하다. 다자이가 일본의 무뢰파라면 이상은 한국의 무뢰파인 셈이다.
무뢰파의 이야기는 언제나 현실도피적인 혐의가 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지독한 상실감과 병적인 허무감으로 인해 타나토스의 욕망을 위험하게 부둥켜 안은 파멸형 작가들, 그들의 이름이 바로 무뢰파다. 이들은 모두 일종의 자학어린 시선으로 세기말의 공허함과 데카당한 허무감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소설의 형식을 통해 자신의 지인들과 자기 치부를 드러내는 솔직한 용기와 자학에 가까울 정도의 자기부정과 자기풍자는 여전히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기기에 충분하다. 다자이가 '일본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불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1936년에 출간된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처녀작 [만년](서커스, 2008)은 15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이다. 책제목 '만년'에 해당하는 단편은 없다. 이 점이 바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이다. 풍자인가 과장인가 아니면 작가의 지극히 감상적인 허세인가. 아무리 감수성이 예민한 이십대 초반의 천재 작가라 해도 만년의 예술적 양식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허세의 느낌이 있다. 당시엔 삼십을 넘기지 않고 죽겠다는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 정도 허세를 부리는 기질이 농후한 것도 사실이다. 다자이는 <역행>이란 단편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름으로써 문단에 데뷔한다.
다자이의 모든 글은 자전적이다. <추억>과 <어릿광대의 꽃>을 보면 '다자이 오사무 자서전'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가 쓴 모든 사소설이 작가 자신의 일생을 압축한 자서전이다. 다자이 소설의 인물들은 저자 자신의 분신들로 생의 무거움과 귀족주의적 순수성의 타락을 애도한다. 속물적인 인간성에 깊은 혐오감을 보이며 자유의지로 결단을 내리기에는 우유부단한 성격이고 그저 무욕구, 무감동의 폐인의 삶을 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다자이는 자살을 전제로 유서와 같은 소설을 쓴 작가라는 점이다. 약물중독과 네 번의 자살 미수 사건을 일으킨 작가가 처녀작에 '만년'이라는 제목을 붙였기에 이 첫 단편집이 작가의 가장 리얼한 유서라고 보면 된다. 다자이는 글을 쓰는 순간부터 세상과 자신이라는 존재와 불화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단편 <잎>에 나오는 베를렌의 시구 "선택되었다는/ 황홀과 불안/ 이 둘 내게 있나니"가 다자이 작품세계의 만트라라 할 수 있다.
다자이의 여인들은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와 관련이 깊다. 아내 이시하라 미치코(石原美知子)를 제외하면, 게이샤 출신의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 긴자 카페의 호스테스, 야마자키 도미에 등이 모두 다자이와의 동반자살에 참여했다. 입바른 숙모가 주인공에게 들려준 말이 잔인하게 들린다. "넌 못생겼으니까 애교라도 있어야 해. 넌 몸이 약하니까 마음이라도 착해야 해. 넌 거짓말을 잘 하니까 행실이라도 발라야 해."(16쪽)
다자이의 주변인물들이 모두 병약하고 문제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연극을 전공한 다자이의 큰형은 건강한 마인드의 소유자 같다. "소설이 하찮은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 나한테는 그저 좀 답답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고 싶은 듯한데 백페이지씩이나 분위기를 잡는단 말이지."(9쪽) 다자이는 집안사람들에게 냉대를 받던 둘째형과 더 친했고 잘생긴 셋째형과는 서로 반목했다고 고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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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겹겹의 가면이 붙어 있었으므로 어느 게 어떻게 슬픈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1. 줄거리 。。。。。。。
작가가 쓴 여러 개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 있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민담들, 또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평생 네 번에 걸친 자살을 시도했다는 작가가 쓴 첫 소설집. 첫 소설집인데 제목은 마치 수십 년 작가 생활을 마무리 할 때나 어울릴 것 같은 ‘만년’이다. 꽤나 복잡한 작가라는 느낌이 팍 든다.
책의 전면에 삽입되어 있는 일본식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흑백사진(아마도 작가 자신인 듯)에서 느껴지는 포스와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모든 청춘들을 위한 영혼의 바이블’이라는 멋들어진 카피문구는 책을 펴기 전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도록 만들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느껴지는 건 실망감에 가까운 느낌.
문제는 역시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저자의 복잡한 심경 때문이라고 할까. 작품 전체에 그런 사색과 개인적인 방황이 짙게 묻어난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우리나라 근대초기 소설류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과 유사하다. 지나친 심리주의나 낭만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면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다락방 냄새랑 비슷하다고 할까.
아무튼 현대의 독자들 중에는 썩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나도 그 중 하나)이다. 읽는 데 참 힘들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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