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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예쁜 루스 베네딕트.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이 여자 너무 예쁘다고 생각을 했었었다. 늙었을때 사진을 본게 아니었으니,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부시절 어찌어찌 그녀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 관심의 대상은 문화 인류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녀의 글보다는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거였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세월이 흐르고, 내 나이가 들어서 인지, 이 책이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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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저자, 루스 베네딕트라는 한 여성의 삶에 매료되어서였다.
34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에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하여 당시 인류학연구 방법이었던 일명 안락의자 연구가 아닌 생생한 현지답사와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자연인류학(문화진화론)과 대비되는 문화인류학이라는 새지평을 열었고 이를 통해 현대 인류학 연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녀의 명성이 이 책을 통하여 다시한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녀의 남다른 인류학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문화상대성이라는 인식의 틀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두말할 여지가 없다. 비단 이것은 문화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회적 일상들에 대한 가치의 상대성을 제공하고 있는 고마운, 또한 현대의 지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녀는 편안한 연구방법을 과감히 탈피하고 현지, 그것도 서구문명의 손길이 비교적 덜 뻗친 원시 미개사회 부족들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 그들과 오랜시간 동고동락하며 원시문명에서 나타나고 있는 독특한 패턴들을 정리해냈다.
원시부족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대함에 있어서도 객관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이 책에 나타나 있는 주니족, 도부족, 콰키우틀족등 다수 부족들의 사례를 서로 비교 연구하여 이들 부족사회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통하여 개인과 문화의 패턴을 종합했다.
물론 문화의 패턴의 출간되기까지 베네딕트 삶의 에피소드 또한 지나칠 수 없는 이 저작을 이해하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당시 사회로서는 용납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양성애자라는 성정체성으로 인하여 그녀가 오랜 방황과 번민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고 그러한 번민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이 책을 통하여 보여지는 원시부족들의 삶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것이 아닌 현대 우리의 삶과는 약간의 다름이 있을 뿐이다. 이 다름이 문화라는 것이고 이 문화적 조건화에 의해서 사회속의 개인은 보편성에 충실한 삶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시작한 연구이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인류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리라..
이 훌륭한 저서를 통하여 현대 소위 초강대국이라 자칭하는 서구열강의 역사를 재고해보고 인류 문화에 대하여 아집과 편견을 배제한 공평의 잣대로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성숙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지구촌 시민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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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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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국화와 칼>의 저자로 유명한 루스 베네딕트가 1930년대 중반에 발표하여 문화인류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책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다양한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사회진화론’적 관점으로서, 발달한 우수한 문화가 다른 후진적인 문화를 물리치면서 퍼져간다는 이론이다. 또 다른 관점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으로서, 모든 문화는 각자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관점은 ‘문화상대주의’적이다. 문화는 본래 매우 넓은 범위를 갖는 스펙트럼인데, 각 문화는 그 스펙트럼의 각각 다른 일부분을 발달시킨 결과이다. 무지개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이 색깔은 다르지만 우열을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각각의 문화도 다를 뿐 우열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문화의 특이성은 ‘관습’으로 표현된다. 어떤 공동체에서 태어난 개인은 그 공동체의 관습의 영향을 받고 자라면서 그 관습에 동화되어 그것이 자연스럽게 개인의 습관이 되고, 그것을 렌즈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일을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문화의 치우침에 대해서는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공동체의 문화는 ‘정상’이지만 다른 문화를 보면 그것을 ‘비정상적’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만나면 먼저 두려움을 갖고 그 두려움이 분노로 변하여 그 다른 존재에게 악의적으로 대하게 된다. 이것은 전 인류에게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인데, 대표적인 예로 자신의 종족의 이름으로 삼는 단어가 실은 대부분 ‘사람’을 뜻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종족 외의 인간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도 공동체의 일원이지만 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이질적으로 여기고 배척하게 된다. 하지만 그 ‘비정상적’ 사람도 만일 다른 문화에서 본다면 매우 유능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주 황홀경에 빠지고 환각을 느끼는 사람을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여기지만, 북아메리카 평원 인디언 사회에서는 매우 유능한 예언자, 의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 가지 문화를 예시하고 있다. 공동체의 조화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를 가진 주니족과 악의와 배신을 미덕으로 여기는 도부족, 과대망상적인 과시욕을 가진 콰키우틀 부족, 이렇게 세 문화는 매우 극단적이어서 우리 사회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넓게 펼쳐진 문화 스펙트럼에서는 그들 문화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 문화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즉 그들 문화만의 절대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과 그 독자성을 인정한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뿐만 아니라 개별적 인간의 다양성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와 국제결혼이 많아지면서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비율이 전에 없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대부분 단일한 민족으로 이루어 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그리 깊지 못한 편이다. 이로 인해 다인종 사회를 맞이해서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많고 사회적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저자의 주장처럼 문화의 다양성과 특이성을 인정하고 타자를 나와 동등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그러한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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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문화란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이나 재배였는데, 나중에 교양 ·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란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생활방식 중 유전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사회, 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으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다.
인류의 학습이나 사회적 전달은 언어를 주요 수단으로 하여 사고를 추상화하고 체계화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는 다른 생물과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언어는 음성을 자의적으로 끼워맞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음성을 특정한 배열에 따라 짜맞추어 인류 스스로가 그 집단에 통용되는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다음, 이를 상징으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싹이 유인원에게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학설이 갈라지는데, 인류의 문화는 언어와 함께 시작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패턴』에서는 언어학이 무수하게 많은 소리들 중 어떤 것들을 선택하여 활용 음소로 삼는 것처럼, 문화도 인간의 연령대, 자연환경, 인간의 활동 등 다양한 관심사들로 이루어진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여 패턴을 형성한다. 이렇게 혼인과 가족, 친족, 사회조직, 경제체계, 정치와 법, 종교, 개인의 인성, 언어, 예술, 환경 등 강조점이 다르게 놓이는 다양한 분야인 문화는 어떤 것에 집중하여 문화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 패턴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은 문화가 인간의 생활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선언한 문화인류학 입문서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문화인류학의 이론 외에 종교 행위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아폴로 패턴의 주니 족, 의심과 배신의 거래를 강조하는 편집증적 패턴의 도부 족, 재산과 부의 이용과 관련하여 과대망상적인 디오니소스 패턴의 콰키우틀 족으로 상징되는 원시부족들 등의 민족지학 자료가 3장에 걸쳐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소개되어 있어 근대 서구 문명과의 관련성과, 관습과 전통이 인간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니 문화의 경우 종교 행위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아폴로 패턴으로 달관을, 도부 족은 의심과 배신의 거래를 강조하는 편집병적 패턴으로, 콰키우틀 족은 재산과 부의 이용과 관련하여 과시적인 과대망상적인 디오니소스의 패턴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이 세 부족에 대해 각각 독립된 문화의 패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셋이면서 하나로 종합되어 있는 이것은 현대인은 어떤 때는 의심에 빠지고, 어떤 때는 과시를 어떤 때는 달관의 태도를 보이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로 만약 자신이 의심을 많이 하는 현대인이라고 생각된다면 베네딕트의 가르침대로 그렇게 의심이 많게 된 것은 본인의 성격이라기보다 문화적 조건화에 의한 것이므로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베네딕트는 주장한다.
문화인류학의 연구 목적은 인류의 역사를 복원하고 문화의 원리를 발견하고 인종 편견을 소멸시키고, 원시부족을 개화시키고, 문명 민족 내의 야만적 풍습을 제거하고, 같은 나라 안에서 사는 여러 민족을 동화시키는 것이다. 문화는 무기물이 아니다.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그 전체가 개성을 지닌다. 또한 문화에는 가치라는 면이 있으며, 이것이 통합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문화에 초유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를 통합형태라 부르며, 개별문화에는 패턴이라든지 주제가 있다고 한다. 이는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 특유한 성격을 띠는데, 지역적 분포상으로 보아 비슷한 문화패턴을 지닌 것을 문화영역 또는 문화권이라 부른다. 이러한 패턴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 민족성이나 국민성이며, 그 밖에도 범위를 잡기에 따라 통속적으로 무수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같이 이질성 ·독자성을 전제로 하는 복수의 패턴은 저마다 장기간에 걸쳐 그 통합성을 유지하며,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의 여러 문화요소가 지닌 상관적 관련에 어떤 모순이 생기고 확대되면, 그 통합성이 무너져 변화하게 되며 다른 통합형태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민족성과 국민성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는 변모한다. 문화의 패턴이 변하기 어렵다고는 해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여러 문화요소는, 그 바탕이나 배경에 존재하여 지각될 수 없으나 그 문화의 담당자에게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인식되는 여러 문화요소(숨은 문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변하기 쉽다.
베네딕트는 도부족과 콰키우틀 족의 문화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의학에서 <편집증>과 <과대망상증>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는 니체나 정신의학에 대한 베네딕트의 깊은 관심을 보여 준 사례로 그녀는 문화가 특정 인성을 강조하는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기 위해 세 부족의 자료를 선정한 것으로 이 세 부족의 문화는 인간성이라는 어떤 한 부분만 강조한 것으로 각각의 역사적 문화는 해당 지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진행되어 온 짝짓기, 선별하기, 적응하기의 과정이고 그 문화는 다시 그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선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패턴이 어떤 고정된 타입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쁜 문화 패턴을 의식한다면 좋은 패턴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현대 미국 내에 남아 있는 야만적 문화의 관습도 이런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루스 베네딕트가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관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21세기인 지금에도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사람들을 실제로 함께 묶어놓는 것은 그들의 문화, 즉 그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상과 기준이다. 사회적 생각을 하려면 문화적 형태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인데 『문화의 패턴』은 그러한 문화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문화를 논의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은 다양한 문화적 형태를 확보하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문화에 따른 인간의 적응 상황(문화)과, 인간의 내부에 공통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필연적인 사항(본능)을 서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사회만 관찰 혹은 검토해서는 인간이 본능적 행동, 즉 기질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행동을 발견하지 못한다.
베네딕트 박사는 문화의 통합형태가 곧 문화의 특징이라고 진단한다. 그것은 문화의 특징을 깊게 통찰할 수 있어야 하며 개인의 행동과 단체의 행동을 통제하는 태도들에 대하여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 부족의 사례에서 잘 예증하고 있다.
문화는 개인과 마찬가지로 생각과 행동의 패턴에 어떤 지속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각 문화 내에서 발생하는 어떤 특징적 목적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반드시 다른 타입의 사회에 의해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목적들에 순응하면서 각 부족은 점점 더 그들의 경험을 통합하게 되는데, 이런 움직임의 강도에 따라 이질적 행동 양태는 점점 더 일관된 꼴을 갖추게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도 잘 통합된 문화에 의해 흡수가 되면 아주 특별한 목적을 가진 특징이 되고, 때때로 평소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변화까지도 수반하는 것이다.
어릴 때에는 조울증을 앓았고 성 정체성 등으로 큰 고통과 갈등을 겪어 결혼생활 또한 편탄치 않았던 루스 베네딕트. 베네딕트는 평생 일탈자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남성중심 대학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와 성적 정체성 때문에 심한 제약을 받았던 불리한 상황아래 그녀는 자신의 독립적 태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인류학 연구를 선택했고 이렇게 베네딕트의 일생은 문화가 사회 내의 '비정상적'개인을 규정한다고 진단하면서 자신의 개성은 그저 개성일 뿐 비정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확신하고 본인 자신은 말하지 않았지만 페미니스트의 한평생이었던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의 패턴』에서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스토리텔링에 의존하여 어떤 객관적인 인간의 행동들을 제시하고 자연스럽게 이론을 도출했다.
모든 문화가 주도적 특성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행동을 추동하는 문화적 드라이브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알수록 정서의 통제, 행동의 이상 등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입장에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태도들을 잘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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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기 전에 저자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닌 듯 싶다.이 책은 1980년대에 한번 출간 된 적이 있다한다.(인터넷 서점에서 확인 해 보았다),원작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저자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 전해 들으며,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이 매우 다양하게 반영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온전히 변역자의 변역에 나의 정신을 삼투압시켜 가며 읽어 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였다.
우리사회는 매우 가부장적인 가족체계 속에서 모계의 일방적인 사랑의 헌신으로 가족이 존재해 왔다.이 또한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지는 사적인 가족의 모습이고,일반적인 사회의 투영이였지만,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함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문화의 주체를 작게 보면 부모형제,사회,국가 국제관계로 넓혀 볼 수 있으며 오늘날엔 문화란 인간이 가지는 고유의 개성처럼 지역,인종,사회 속에서 각기 다르게 소유하고 있는 컨텐츠로 더욱 각광 받으면서,더욱 큰 힘을 부여 받고 있다.
하지만,작은 소우주라 불리우는 가족 안에서도,문화적 차이는 연령과 사회경험,그리고 정신적인 성장과 교육의 수준에 따라 매우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목소리를 찾아 볼 수 있다.그 안에서 나와 다른 입장을 구사하는 나 아닌 너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 해 줄 수 있을 때,우리의 사회는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된다.이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매일 매일 잘못을 저지르며,나의 고립된 생각이 자라면서 배어져 나온 문화?라는 고차원적인 간섭으로 인해 선과 악을 구분 짓고,좋고 나쁨을 선택하며,나의 힘을 괴시하기를 즐겨하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평범하지 않은 삶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갔다는 인상 또한 삶은 평범해야만 한다는 편안 안일 주의의 나의 가족관념 때문에 더욱 그녀가 살아 온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저자의 생애를 이야기 할 때 상처부터 들추어야 했던 것은 아마도 남다른 그녀의 사생활이 그녀를 인류학에 빠져들게 하였음을 강조하듯 그리고,그러한 상처가 인류학이라는 학문을 만나면서 공존하기 위한 치유의 일환으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그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책의 집필의 의도를 주제는 문화적 통합(패턴)이고,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챕터가 나온다,그리고,문화가 주변 환경을 다르게 활용함으로써 다른 문화가 생겨나고,그런 문화 흔적의 해석이 문화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는 내용이다.그 다음은 문화의 통합이다.문화를 하나의 페턴으로 연구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p15쪽 요약
그리고,여러 원시 부족의 예를 들어 고립되어 다른 문화가 투입되지 않은 상태의 원시 문화를 통해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적 과시욕을 다시 점검해 보게 된다.
인류학은 크게 4가지 학문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하는데,문화 인류학(Cultural anthropology),고고학 (Archaeology),언어학 (Linguistic)인간구조학( Physical Anthropology)이 있다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천대받는 학문 중에 하나라고 얼마 전 뉴스에서도 한 차례 보도 된 바 있던 그 인문학의 터를 닦았다는 루스 베네딕스의 책은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 것 자체가 더딘 만큼 생각하며 읽어나가야 할 부분이 참으로 많다.여러 부족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숨소리까지 세세히 묘사하여 영사기를 돌려 보여 주듯 상상을 부축인다.
절묘한 표현과 비교,분석을 통하여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쉽지 않은 전문용어를 통하여 상황을 가려보고,나 스스로도 비교,분석을 하며 읽게 되는 과정은 사실 녹녹ㅎ지 않았다.절대적인 문화의 특징 속에서 생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현재 우리의 문제를 들추어 보게 되고,나,가족,이웃,사회,국가,국제 문제까지 넓게 예견해 보게 되는 예지력을 키워주는 느낌을 받았다.
아폴론적인 부족인 주니족과 악의와 배신을 미덕으로 여기는 도부족,디오니소스적인 콰키우틀 족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떤 전통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이고,나와 다른 문화를 차별하고,다른 인종을 멸시하는 모습조차도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도부족의 모든 일상적인 면들,디오니소스적인 식인회등 )
두려움이 없다면,용기도 없고,두려움이 없다면 극복할 수 있는 저력도 없으며,두려움이 없다면 사랑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두려움 때문에 종교가 생겨나고,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하게 되고,두려움 때문에 사람을 의심하고,두려움 때문에 문화라는 집단 이기주의가 생겨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비법을 마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치있는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인간이 무엇인지..너와 나의 구별방법에 따라 수용과 차별이 이루어지는 현상 앞에서 인간은 선택을 하게 된다.그 기준은 나의 경험,다시 말해 문화적 가치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절대 악과 절대 선이 없다는 말 처럼 우리 인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고,느끼고.생각하고,감사한다.그리고,자신들이 원치 않는 것은 버리고,지우고,대립하게 된다는 것인데..어떤 삶이 진정 올바른 삶일까?그 것 또한 어떤 상황 어떤 배경,어떤 이유인지를 살펴보게 되면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화가 어떤 배경으로 생겨났던지..문화를 통해 우리들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경험하게 되고,문화를 통해 집단 결속력을 기를 수 있으며,문화를 통해 스스로를 빛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도 한다.문화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집단 의식이 얼마나 건전한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다.
원시부족들의 상식의 선을 넘어선 행동을 보면서,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음을 느꼈던 것은 내게는 너무도 생소한 느낌이였다.너무도 다른 부족들의 문화를 나의 경험에 비추어 선을 긋는 자체가 모순된 생각이라는 것이다.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그 사람의 생각,느낌,그리고 그가 살아온 문화의 특징까지도 모두 받아들일 때 이해 할 수 있음은,나와 다른 의견이나 생각으로 대립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그 사람을 인정 해 줄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새로운 것 속에서 옛것을 다시 발견해야 하고,새로운 유연성 속에서 오래된 확신과 안정성을 찾아야 한다고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그 가치가 반드시 절대주의 철학과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396
너무도 단순한 삶의 진리인데 때때론,보편적인 상식의 선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왜 그리도,힘든 것인지 그것이 나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으며 그녀의 일생을 잠시 회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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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거릿미드의 소개로 알게 되었던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루스 베네딕트』, 연암서가, 2008년)와 문화인류학에 대한 자세는 그녀가 수행한 연구 결과 속에도 그대로 응축되어 있었다. 늦은 나이에 문화인류학에 입문하여 개인적인 아픔과 어려움, 사회적인 차별의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고, 자신의 원칙을 당당히 주장했다. 이번에 읽은 『문화의 패턴』(연암서가, 2008년)은 그러한 결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그러하기에 70년이 지나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고,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것이리라.
문화상대주의가 아닌 문화차별주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루스 베네딕트의 말을 아직도 십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메리카의 수많은 부족들이 미개인으로 취급받으며 무참히 학살당한 역사와 동방예의지국이라고까지 불렸던 조선이 서구 열강의 대포에 무조건 항복하고 그들처럼 똑같이 취급당한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의 현실로만 보았을 때, 우리는 서구문명이 더 낫다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차별을 받으면서도 한쪽으로는 서구의 것을 무조건 추종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나 아직 물질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업신여기려 든다.
루스베네딕트는 어떤 사회의 문화적 특징들을 ‘문화적 패턴’을 통해 고찰하려 한다. 그 이전의 연구자들은 민족지학적 관점에서 관찰했고, 그러했기에 그 사회를 관통하는 어떠한 특징을 발견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양태들을 위주로 기록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루스베네딕트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과제는 살아 있는 문화를 연구하면서 그 사고방식, 기능, 제도를 살펴보는 것이다.”(93~94쪽)라고 말하며 한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그 사회의 제도나 관습 등 문화의 일면만을 고찰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일정한 “문화의 패턴”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은 한 사회의 특징을 전체 사회의 특징으로 일반화시키려는 경향에도 일침을 가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대표적인 세 부족 -푸에블로 부족, 도부 족, 콰키우틀 족-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푸에블로 부족 중 하나인 주니 문화의 경우 종교 행위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아폴로 패턴으로, 도부 족은 의심과 배신의 거래를 강조하는 편집병적 패턴으로, 콰키우틀 족은 재산과 부의 이용과 관련하여 과대망상적인 디오니소스의 패턴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활, 혼인, 전쟁, 신의 예배 등과 관련된 사소한 행동들이, 그 문화 내에서 발달된 선택의 무의식적 기준에 힘입어, 어떤 지속적 패턴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91쪽)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그녀가 수행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세 부족은 많은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식인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있고, 선입견과는 달리 아폴로적인 것을 중시하여 극도로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있다. 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그들의 환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만약 연구 결과가 이전처럼 그 사회의 특징들만 나열하는 식의 기록이 되었다면 그 어떤 문화의 패턴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훗날 문명에 대한 분석을 하고자 했다. 아직도 문화인류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녀의 이러한 생각들은 이후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가 태평양 전쟁 당시 수행했던 연구방법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녀가 문화의 다양성에 가졌던 생각들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서로 다른 문화와, 서로 다른 사람과 부딪혀 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물질화되어 가는 사회에 부족한 무언가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8년 9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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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이라는 분야가 아직 제대로 된 학문으로 정립하기 이전인 1919년에 인류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입문하게 된다. 베네딕트의 제자이기도 한 마거릿 미드가 쓴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그녀가 인류학을 선택하게 된에는 여러가지 개인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여러가지 주변 환경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화의 조각들을 발견해 가면서 조금씩 인류학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문화적 가치의 상대성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첫 단행본으로 문화적 통합형태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원시문화든 현대문화든 문화연구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는 범위 자체를 넘어서는 중요한 주제임을 알려주는 그녀의 대표작 <문화의 패턴>은 탄생하게 된다.
이 책 <문화의 패턴>은 세 개의 원시부족의 문화와 생활상의 전반적인 고찰을 통해 문화의 상대성과 문화가 개인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문화의 다양성과 함께 그러한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이해함으로서 당시 팽배하던 민족주의와 인종 우월주의를 비판하며 보다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추진하자는 노력의 시작이기도 하다. 실제 이 책이 쓰여졌던 1934년은 1차 세계대전이후 강대국들의 민족주의가 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그녀는 제도화된 문화의 특성들이 그 문화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그를 위해서 베네딕트는 인성의 확대(personality writ large)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것은 문화라는 자체가 여러 세대를 거쳐오면서 각 문화별로 이용 가능한 형태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한 버리기도 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개조하여 왔기에 그것은 지금 현재의 문화에서도 현재 그 문화속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문화는 진행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살아있는 문화를 연구하면서 그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기능 그리고 제도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녀는 원시부족을 연구하게 된 계기로 "단순한 문화의 객관적 사실들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파악하기 까다롭고 잘 증명되지 않는 사회적 사실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명사회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복잡한 원시 사회라는 인구집단내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 문명 사회를 분석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게 선정된 세 개의 부족이 주니족, 도부족, 콰키우틀족이다. 이미 침입자들에 의해 대부분의 부족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잃어버렸지만 푸에블로의 주니족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인디언들과는 달리 아주 오래된 동질성의 역사를 갖고 있다. 모든 것을 그들 사회내의 제도화된 형태에 헌신하며 개인의 개성조차도 제도속에 복종시키는 그들의 관습은 서양문명의 시각으로는 분명 이해 하기 힘든 요소였을 것이다. 뉴기니의 도부족은 서로에게 적대적이며 언제나 배신이 난무하고 합법성이라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아메리카 북서 해안의 콰키우틀족은 경쟁자보다 자신이 우월해야 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모든 서로간의 관계와 종교 심지어 불행한 사건까지도 재산의 분배와 파괴를 통해 이루어지는 우월성의 과시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문화자체가 결정되는 시스템을 가졌다.
세 부족의 생생한 문화에 대한 베네딕트의 서술은 요즈음 우리가 TV화면에서 만나는 다큐멘터리와는 또다른 신비감과 흥미를 안겨다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안에 여실히 보여지는 인간의 심리는 원시사회로 그저 치부할 수 만은 없는 내용들이기도 했다. 그러한 문화적 패턴들을 통해 인간의 잠재적 목적과 동기들을 그녀는 유추해 나간다.
문화를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어떠한 문화적 상황에 있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탕에 어떠한 요인들이 있으며, 그것은 그동안 어떠한 지역적이고 인공적인 수많은 요소들이 더해져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좀더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화와 그 울타리가 되는 사회와 함께 우리 개인이 떨어질 수 없는 실체라는 것 역시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어떠한 개인이라도 자신이 속해있는 문화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떠한 문화라도 역시 개개인의 공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은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조금은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 베네딕트가 다룬 세 부족의 이야기로 인해 인해 책은 넘치는 생명력을 얻는다. 발간된지 70여년 이상이 지난 책이지만 사회속의 개개인이 그저 단순히 혼자가 아닌 사회속에서 문화를 진행시키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주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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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와 분석은 인류가 행하는 과학적인 일의 방법론중의 가장 정수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분류하는 일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시작과 끝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분류하는 작업은 일종의 종교적인 면모를 띄고 있다. 루스베네딕트의 작업은 문화인류학적으로 큰 의미를 남긴것으로 보인다. 지리학이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를 지나고, 지배된 식민지들에 대한 원활한 이해를 통해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여길수도 있고, 부자들의 놀음으로 여길수도 있고, 오히려 그들의 정체성의 지표를 만들어 줄수도 있는 인문학의 탄생은 그러한 제국주의적인 발상들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만들어진것으로 보인다. 루스베네딕트의 입장은 시간의 축에서 어떠한 문화의 발달이 다른문화의 발달보다 빠르다고 해서 그들이 문화적으로 열등한것이 아닌, 분리된 발전상태에서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동등성을 부여해주고, 각 민족 및 인종들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이론이라고 할수 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소수의 입장을 취하면서 살아와서 그런 연구쪽으로 방향이 이어진 것일수도 있다. 그녀의 스승의 현장답사를 기반으로 둔, 탄탄한 이론과 검증과정들을 통하여 기존의 인류학의 과정들에서 지속해온, 부자들의 환심속에서 환상의 그 무엇인가를 찾는 것, 오늘날 우리들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접하기 힘든 사진들을 보면서, 이질적인 공간에 대한 동경을 키워가는 그러한 것보다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 과정들을 보여준다. 기존의 문화진화론의 인종차별적이고, 특정 인종을 원하는 방향으로 우월성을 주장할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경제력에 구속된 학문이였던 이 영역을, 그녀와 그녀의 스승의 방법으로 좀더 인류에게 공평하게 서로를 바라볼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연구과정 및 결과를 바라볼때, 최대한의 편견과 아집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학에 대해여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인문학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할수 있는 학문임을 알고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러한 작업이 경이롭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시각은 아직 수십년이 지나도록 우리에게 다가와 있지는 않다. 기존의 문화 진화론적인 시각들이 열강의 의도에 의해, 전세계에 지배적인 상황이다. 인간적인 이러한 결과가 더욱 확대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