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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필자의 말을 옮기자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남과 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했던 라이벌이나 친우가 어떻게 엇갈려 남과 북을 선택했는지, 남과 북에서 어떻게 체제에 맞게 큰 활동을 했는지, 이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현대사를 엿보(217쪽)'는 것이다. 즉,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해방 이후의 군정기와 한국 전쟁, 한국 전쟁 이후의 근대화 시기까지를 모두 포함한 한국 현대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없다면 각 글들은 마치 하나의 퍼즐 조각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각 필자들이 이 시대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관점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점까지 감안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호기심을 갖게 된다면 독자들이 이 시대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찾아 읽게 될 수도 있겠지만, 대강의 배경 지식을 갖고 책을 읽는다면 훨씬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정치, 언어, 문학, 법, 과학, 역사, 영화, 무용이라는 여덟 가지 측면에서 각각 라이벌을 정하고 이들의 삶을 통하여 남과 북의 현대사를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인물로 보는 남북 현대사'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이 책을 가장 잘 압축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글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다. 여기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역사비평] 2008년 봄호에 실렸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논문 같다거나 현학적이지는 않다. [역사비평]을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글에서 얼마나 수정을 가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비전공자라도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뭐랄까?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에서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운명이, 한 개인을 억누르는 무지막지한 구조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운명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격동기나 절박한 상황에서는 선택이 강요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양자택일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중도'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예컨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처음에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했던 [태백산맥]의 김범우라는 인물이 역사라고 하는 거대한 무게감에 짓눌려 결국 한 쪽(그의 경우에는 '좌'였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민족 해방이라는 지상 과제 사이에서, 해방 이후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뇌해야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삶에 대한 일종의 연민이랄까?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의 역사와 인간의 생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삶 자체가 한반도의 역사이다. 가장 혼란한 시기에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하면서 각 체제 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다한 이들을 보면 남북한의 역사가 온전히 살아난다. 역사라는 거대한 이름이 아니라 개인의 생애를 보더라도, 파란만장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읽을 수 있다. 희로애락의 삶의 감정과 생로병사의 인생행로를 그들을 통해 느낄 수 있다(241쪽).'
솔직히 이런 책을 읽고 개인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게 참 어렵다. 뭐랄까? 할 말은 참 많은데 정작 할 말은 없다. 다만 이런 식으로 남과 북의 각 분야와 영역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단절되었던 서로의 역사를 잇고 회복하는 노력들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사회의 각 부분, 각 영역들에서 이루어질 때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에 하버마스가 한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독일의 통일을 경험했던 그는 그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하버마스도 1996년 봄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하던 중에 독일 통일의 명암을 반추하면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통일의 원칙이 공화주의적 윤리(ethos) 위에 서야 하는지 종족적 자기 정체성(ethnos) 위에 서야 하는지 물으면서 독일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전자의 입장을 옹호했다. 통일 자체가 지상 목표는 될 수 없고, 어떠한 내용의 통일이냐는 질문이 먼저 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도 과거보다는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일된 민족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민족통일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불러온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에서 '우리'는 확실히 사회적 의미와 함께 역사적인 의미의 '공동체'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송두율, 경계인의 사색, 122쪽)
이제는 구체적으로 통일을 생각하고 준비할 때이다. 그러나 하버마스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고 송두율씨가 주목하는 것처럼 어떤 통일을 할 것인지, 통일 이후의 공동체는 어떤 성격을 띨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고 역시 필요할 때이다. 해방 공간에서 '민족주의'가 매우 유의미한 개념이었고, 통일을 준비하는 현재에도 '민족'이라는 것은 선어말어미처럼 항상 따라붙는 것이지만,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시했던 모든 개념과 이념들을 돌아보고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힘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해방 이후 군정기 때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 역시 대내적 요인만큼이나 대외적 요인에 크게 좌지우지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들이 분단되지 않은 하나의 나라, 하나의 대한민국에서 함께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면 통일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내적인 문제들부터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깨닫게 된다. 이를 위해서 남과 북이 서로의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 선행 단계로서 서로 교류를 활성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 책과 같은 시도는 그러한 상호 이해와 교류의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과 북이 아닌 하나 된 우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진일보한 것이지만, 그 '우리'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까지를 고려한 실질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송두율씨의 다음과 지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인칭 복수'로 이해하는 '우리'라는 개념을 공화주의적 공동체라는 이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민족적 정체성까지 용해시킬 수 있는 그러한 '집단적 단수'로 이해할 때 종족주의적 편협성과 함께 탈민족주의라는 허위적 보편의식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이야기할 때 이 '우리'는 분명히 '우리 아닌 것'과의 구별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구별이 없는 '우리'는 성립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차이는 같음보다 논리적으로 먼저 온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긴장성에서 의식하는 '우리'는 항상 새롭게 나타나는 지평과 만나게 된다.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구별 자체를 파괴적이고 부정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통일 문제도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같은 것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민족통일의 지평은 동북아, 나아가 '지구촌'의 지평으로 연결된다." (송두율, 같은 책, 123-4쪽)
[덧붙임]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저자(혹은 역자)와 출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저자(혹은 역자)가 좋은 콘텐츠를 창작해야 하고, 출판사에서 이것을 잘 다듬고, 독자들이 접하기 쉽도록 잘 포장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책의 편집이나 디자인은 효과적으로 내용물을 매우 돋보이게 한다. 표지 역시 내용물을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래서 편집한 사람과 디자인한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봤다. 만약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콕 짚어' 이 분들과 작업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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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남북 정부 수립 60년 아니면 남북 분단 60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적대적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훨씬 더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자신들을 만들어나갔다. 적어도 조만간 비자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관계는 되어야 하고, 언젠가는 통일이라는 미래도 함께 만들었으면 하는 사이이지만 갈라져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인가 아직도 남과 북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런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드는 현재 상황에서 보게 된 이 책은 꽤 반가왔다.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의 부제는 '인물로 보는 남북현대사'이다. 정치, 언어, 문학, 법조, 과학, 역사학, 영화, 무용 등 8개 분야에서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들을 20-30 페이지의 짧은 글 속에서 비교를 한다.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길지 않은 분량의 글 속에서 두 인물들을 거칠게 비교하다 보니 어느 부분은 그 사람의 경력을 단순히 읊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종 어려운 전문적인 용어들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글의 흐름, 저자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역사의 이야기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를 알면 알수록 저자들이 말하는 바와 16명의 인물들과 삶과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지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책을 읽어가기는 어렵지가 않다. 또한 인물들의 비교를 통한 서술 방식은 일종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해방 이후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격렬하게 대립, 충돌하던 시기, 친구 또는 동향인이거나, 같은 학교, 같은 스승을 가졌거나, 같은 공간에서 활동했던 그들은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적극적으로 선택한 경우도 있고, 마지못해서 또는 순진한 이상 속에서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남과 북의 일부를 만들어냈다.
주시경의 제자로 남북한의 공통된 언어 체계를 만들어낸 최현배와 김두경, 이시이 바쿠의 제자였던 한국 근대춤의 선구자 조택원과 최승희, 경성제대 선후배로서 자신의 신념으로 남과 북의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와 최용달, 언제나 비판적 지성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염상섭과 한설야, 식민지 조선인으로 일본의 과학계의 중요 과학자가 되었던 이태규와 리승기 등의 인물들의 삶은 바로 식민지 조선과 외세에 의해 분단되어 대립해야만 했던 남과 북의 지난했던 역사 그 자체였다. 제목에서는 그들을 라이벌이라 칭했지만, 그들의 대립 구도는 개인적인 차원이기보다는 남과 북의 정치적 대결에서 연유한 바가 컸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하지만 '만약' 그들이 분단된 조국이 아니라 평화로운 곳에서 함께 했더라면 어떤 새로운 협력, 갈등이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해방 이후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북쪽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지는 무시와 나아가 증오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연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전문적인 연구 뿐 아니라 대중적인 저술도 많이 나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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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이 되는 인물로 보는 남북현대사는 어떻게 한 판 승부를 가리는 듯 펼쳐질까 기대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표지에서부터 각각의 테마를 가진 라이벌 인물들의 사진이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어 더욱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졌지요.
크게, 정치, 문화, 역사, 예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대결구도를 잡아주었는데, 각각은 그 분야의 전문가이신 분들의 서술이어서 더 흥미진진하고 깊이있게 대결할 만한 인물들인지 견주어보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진지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도 신났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더 명백하게 지지해주는 사진자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말그대로 선입견이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신나고 생동감 있게 당대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들과 함께 인물들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근대춤의 이란성 쌍생아'라는 재미있는 제목으로 남의 조택원 님과 북의 최승희 님이라는 무용가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장에서는 그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오히려 남과 북의 대표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그들의 삶의 여정과 그들이 왜 남과 북의 최고 무용수로 손꼽히는지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라이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네요.
이 책은 라이벌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제시하듯이, 각 라이벌 인물의 프로필을 바로 비교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각 장마다 구성해 두고 있어서 처음부터 보아야 하는 책이라는 압박이 없이 표지를 보고 목차를 보면서 살펴보고 싶은 라이벌 인물들을 골라가며 볼 수 있다는 장점도 대단한 책이랍니다.
만약 이 책의 성격이 어떠할 것이라고 미리 어림짐작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선입견을 거두라고 말하고 싶어요. 생생한 자료들과 깊은 연구 가운데 역사적 배경과 사회,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는 한편, 각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다루려고 노력하는 이 책의 서술을 보면 어느 재미있는 소설 못지 않아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이번 기회로 인해 남과 북의 인물들을 연관지어보면서 각 분야에서 시대의 산 증인과도 같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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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누구는 라이벌 관계라는 말을 많이 한다. 경쟁 상대가 있기에 더욱 노력했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라이벌로 지내는 상대와 평생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경우도 본다. 이제 새로운 라이벌들을 만난다. 남과 북으로 나뉜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역사가 만든 라이벌들이다. 쉽게 열기 어려운 문을 여는 새로운 시도이다. 벌써 다루었어야 할 사항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거론하지 못했던 내용들도 살펴 본다. 주목할만한 결과들이다. 정치, 언어, 문학, 법조, 과학, 역사, 영화, 무용 등의 분야에서 남과 북을 대표하는 이들을 선정해서 비교한다. 선정된 이들을 비교할 뿐 아니라 남과 북의 분단부터 현재까지 그 체제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왔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각각 처음부터 많은 차이를 보인 경우도 있고 매우 유사한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경우도 있다. 그들이 각 체제 하에서 보여주고 만들어 놓은 결과들이 지금도 각 체제의 바탕에 깔려 있다. 각 분야의 여러 인물들 중 한 사람씩 선정하여 라이벌로 비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아직도 여러 관계로 엮여 있는 이들이 생존하고 있기에 쉽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계의 학자들이 매우 신중하게 라이벌들을 선정하고 다루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활동, 해방 후 남과 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의 결정과 행동, 전쟁 후 각 체제 내에서의 활동 등을 살펴 본다. 어떤 상황이, 어떤 의식이 그들을 라이벌로 만들었고 지금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정치 분야에서는 박정희와 김일성을 라이벌로 보았다. 만주에서의 활동과 집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집권 후의 국가 경영까지 하나씩 비교한다.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박정희가 위기를 벗어나 권력의 중심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시각이 보인다. 서로 견제하면서 때로는 서로 이용하면서 각 체제를 확고히 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언어 분야에서는 주시경 학파에 뿌리를 둔 최현배와 김두봉을 언급한다. 이들은 서로의 이론을 받아 들이며 한글을 사용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들은 언어민족주의를 표방하고 한글 운동을 다른 민족 운동과 결합하였다. 문학 분야에서는 염상섭과 한설야를 비교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체제 속에 있었으나 그 체제 속의 권력에 융합하지 않고 항상 진지하게 민족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법조 분야에서는 남과 북의 기본 법률 체제를 만드는 역할을 한 유진오와 최영달을 말하고 과학 분야에서는 이태규와 리승기의 국제 과학과 실용 과학의 측면을 살펴 보며 역사에서는 이병도의 실증사학과 김석형의 주체사학을 비교한다. 영화 분야에서는 윤춘봉과 문예봉을 비교하는 데 대중들을 어느 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되는 모습을 본다. 무용에서는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조택원과 최승희를 본다. 다른 분야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더 느껴진다.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를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로 크게 나누어 볼 때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던 시기와 한 체제 하에서 활발히 주도적으로 활동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박정희와 김일성 체제 시대에 속한다. 따라서 첫 장인 박정희와 김일성을 비교한 부분을 잘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체제와 그 체제 속의 각 분야의 관계를 살펴볼 수도 있다. 체제 유지의 논리로, 체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거나 또한 체제에 의해 버림 받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라이벌이 만든 역사를 본다. 분야별 인물들의 정황이 현실을 만들고 현대사의 한 줄기를 이룬다. 이러한 줄기를 따라 그 뿌리를 찾고 아픔을 되새겨보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비교하는 이의 주관적인 비교에서 시작했으나 한국 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대결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가 걸어온 길을 인정하고 새로운 공통의 전망을 모색해보자는 의도에 맞는 방향을 보여 주고 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교류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거리가 있다. 제시된 라이벌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모두 시작점부터 엄청난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간 경우도 있다. 상황은 항상 변화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어느 한 편의 논리로 다른 편을 압도하려고 하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가지고 있는 아픔을 감싸고 보완하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보다 깊은 연구와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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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건조하다. 정치,언어,문학,법,과학,사학,영화,무용의 8분야에 걸쳐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남과 북을 선택, 활동한 16명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각 분야의 필자들은 제한된 지면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그것도 두 사람씩을 남북을 오가며 다루다 보니 건조하게 핵심서술위주로 글을 썼다.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기에 급급, 인물평이 미흡한 글도 있다. 또한 각 분야별로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는 물론 필진들의 잘못이 아니다. 책 한권도 넘을 각 분야의 내용을 30쪽도 안 되는 분량에 압축해 넣다보니 세부설명없이 거칠게 전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기획한 출판사의 문제도 아니다. 이런 비판이 나올 것을 감수하고 출판을 진행한 것이 분명하다. 왜?
왜냐하면 이 책은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 우리도 이 책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 표지를 보자. 왼쪽 편에서 책을 읽기 전에 알았던 인물의 수를 세어 보라. 이번에는 오른쪽 편의 인물을 세어보라. 비교해보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내 경우에는 오른쪽, 북측에서 알았던 인물은 김일성과 한설야, 최승희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읽은 후에는 달라졌다.
이 책의 의도는 이것이다. 미흡해도, 우선은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알게되고, 각 분야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기며, 이런 의도의 책이 더욱 많이 나올 것이며,,,남북의 이질성이 좁혀질 것이다.
여기 나온 인물들은 동시대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성장을 자극한 진정한 라이벌들은 아니다. 해방공간을 어떤 선택으로 보냈느냐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산 사람들의 대조일 뿐.
그러나 역사분야의 이병도와 김석형의 경우처럼 그저 자신의 분야에 열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각각 남북의 정치현실에 기여하는 활동을 한 셈이 되어버린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독자인 우리는 암울해진다.
하지만 언어의 최현배와 김두봉을 보라. 그들 덕분에 남북의 언어는 의사소통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기본적으로는 형태주의맞춤법과 한글쓰기와 가로쓰기라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다. 그 뿌리는 그들의 스승 주시경 덕분인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일제시대의 주시경의 업적 덕분에 남과북으로 갈라진 지금도 우리는 민족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후손이 더욱 쉽게 화합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으로 시작해야한다.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 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점을 강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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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지나도 강산이 변한다는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남북의 언어에는 큰 차이가 없을까? 그러나 왜 남과 북의 역사인식에는 큰 차이가 있을까? 짧지만 혼란스러웠던 우리 현대사를 공부하다보면 충분히 의문이 갈 수 있는 질문들이다.
리뷰어를 신청해 이 책을 받았다. 나는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인지라 시험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아 이 책을 전부를 깊게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다른 책의 내용을 엮어가며 읽었다.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파트는 정치와 언어, 법 그리고 역사이다. 모두 수능 사회탐구 과목이다.
역시 고교 수준에서 보는 역사와 일반인 또는 역사가가 보는 역사는 참 많이 다른가보다.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는 다른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를 많이 알게 되었다. 테마로 읽는 역사와 사실로서의 역사가 또 다르듯 인물로 보는 남북현대사는 단순 지식습득으로 배웠던 현대사와는 참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김두봉은 단순히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라는 무장독립세력의 수장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주시경의 애제자였으며 유명한 국어학자라는 것을 알게되고 놀랐다.
역사에선 우연적 인간관계들이 하나의 필연적인 인연이 되어 세월이 지난 후 상상도 못할 관계가 되었다. 마치 박정희와 김일성이 만주에서 세력을 얻은(비록 서로 알지는 못했지만) 인물이라고 생각해봤을 때, 이 두사람 후의 행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또, 이병도가 만든 진단학보에 김석형이 글을 실었던 것 역시 놀라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100년 전의 세상과 지금 세상의 크기에 큰 차이가 있을까. 100년 전 사람도 세상이 크다 하며 살았을 것이고, 지금이야 말도 할 것 없다. 미국에서 낮 동안 연구한 실험이 밤에는 인도에서 계속 진행되는 거대한 세상이다. 이렇게 큰 네트워크 속의 세상에서 인간은 서로 알든 모르든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계들이 어떻게 놀랍게 발전해서 앞으로 100년 후에 후대 역사가에 어떻게 평가될지 생각하면 짜릿하다.
박정희와 김일성, 김두봉과 최현배, 이병도와 김석형, 유진오와 최용달등 남한이나 북한에서 높게 평가 받는 두 특징적인 인물을 중점적으로 비교해가며 두 인물간 경험의 공통점과 행적의 차이점등을 비교해본 결과 한 사람의 한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새삼스레 깨닫게되었다. 염상섭이 카프를 부정하고 남을 선택했고, 한설야는 카프를 긍정하고 북한을 선택했듯이 말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교양서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역사지식이 없고서는 충분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현대사의 기본소양이 갖추어져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여러 연결고리들이 하나씩 엮어져가며 하나의 지류가 되고 그 지류가 역사의 큰 흐름으로 편승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극단적인 것에 관한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남과 북 너무 극단적인 두 세상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전쟁을 비롯해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라는 두 경제체제, 세계성과 지역성, 실증사학과 주체사학, 이데올로기를 뚜렷하게 드러낸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등 정치,경제,문화,역사,과학,법등 남한과 북한은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해 있다.
라이벌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궁극적으로는 서로 같이 성장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에서 그리는 라이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자의든 타의든 남과 북으로 대립된 세상에서 서로 엇갈린 선택을 한 대가(大家)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배우는 보천보 전투는 교과서에 단 세 줄이고, 북한에서는 책 세권이며, 우리가 높게 평가하는 근대 과학자 이태규는 북한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시대이다. 너무나 과장하는 것도 좋지 않고 너무나 과소평가를 하는 것도 좋지 않듯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중립성과 객관성이 중시되는 역사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이 아닐까 싶다.
[남기는말] 1.인물에 존칭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2.글솜씨가 많이 부족하므로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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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남북간의 월드컵 최종 예선이 상해에서 열렸다. 비싼 입장료로 텅빈 관중석만큼, 지금의 남북관계 역시 싸늘하다. 어쩌면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분단 60년을 넘어 각자 외면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양상은 계속 진행중이다.
이러한 때에 출간 된 [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은 의미심장하다. 8개 분야별로 해방공간속에서 남과 북을 선택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집필진도 전문적 지식을 가진 필자들이다. 내용에 따라 다소 전문적이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분석력도 돋보인다.
그동안 인물한국사는 이이화선생님이 줄곧 개척한 분야였다. 한길사에서 발행한 다섯권의 책이 그것이다. 다만 현대사 부분이 미진했었는데, 이번 책이 보충해주리라 본다. '인물로 보는 남북현대사'라는 부제처럼 해방공간속의 역사상 인물들을 비교해보는 점은 북한체제나 전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우리 세대나 후세대에게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때로는 혼란했던 시기에 남과 북을 선택한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 아무리 정교하게 비교한다고 해도 각각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동안 북한인물을 다루는 것이 금기시 되어왔고, 자료부족으로 그들의 심리와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념만으로 택한 것이 아니다
이념적 대립양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북한을 택한 인물들이 모두 이념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과학분야의 이태규와 리승기는 황무지와 같은 조국의 과학분야에서 기초과학의 뿌리를 내리려했지만, 실패하고 이태규는 미국으로, 리승기는 북을 선택한다. 이념보다 오직 과학발전을 위한 선택했다는 것이다. 무용분야의 최승희역시 일본 스승 이시이 바쿠로부터 근대 무용을 전수받고, 이념이 아닌 춤을 위해 북한을 선택한다.
또한 염상섭과 한설야로 대표되는 문학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이념적 대결이 심각했다. 그러나 염상섭은 북의 민주기지론을 비판하면서도 남의 분단 촉구에 반대했다. 한설야는 북쪽에 있으면서도 계급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민족문제에 앞장섰다. 특히 그동안 읽지못했던 이들의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언어분야의 최현배와 김두봉은 모두 주시경의 제자로 분단 조국에서도 언어의 동질성을 크게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한 인물들이다. 한글가로풀어쓰기를 주창했지만, 그들의 말년은 그렇게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최현배는 서울대학파에 밀리고, 김두봉은 김일성파에 의해 숙청된다.
김일성이 박정희의 복권과 남한 발전 토대를 제공했다
반면에 정치분야의 박정희와 김일성은 '만주'라는 체험 공간을 통해서 각각 최고의 지도자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쪽은 경제성장을, 다른 한쪽은 빈곤의 길을 걷고 있다. 왜 그랬을까? 박정희는 좌익에서 반공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세계정세에도 잘 적응한 반면에 김일성은 6.25전쟁으로 박정희의 복권과 남한 발전의 토대를 제공한 셈이 되었고, 중국과 소련의 갈등사이에 폐쇄적 자주노선과 유일독재체제로 이행으로 북한 근대화에 실패했다.
역사분야의 이병도와 김석형은 실증사학과 주체사학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일제의 철저한 청산없이 일정부분 수용한 측면이나,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의해 역사를 왜곡한 측면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가 근간을 다룬 헌법및 법제정 분야에서의 최용달은 자신의 소신에 의해 북에 투신했지만, 유진오는 나약한 지식인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부분에서는 전설의 문예봉이 친일, 친북활동 이야기도 다루어지고 있다.
지구상 유일상 분단국가, 남과 북은 통일된 조국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 한 민족간에 씻을 수 없는 전쟁도 했다. 그 혼란한 격동의 시대에 그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남과 북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도덕적 윤리적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에 쉽게 내릴 수도 없다. 다만 이번 책을 통해 그들 선택이 이념만이 아니라는 점과 이제는 남과 북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시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좀 더 많은 인물들을 발굴하고, 남북을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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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괜찮은 책을 만난것 같다....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책을 읽으면서..내내 가슴이 아프고
이렇게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된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같은 민족 같은 동포이면서도 이데올로기 인해 서로 갈라질수밖에 없는 현실이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 책이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어느 한쪽의 사상으로 빠지지않기 위해
굉장히 고심한 부분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남과 북...자유민주주의냐...사회민주주의냐...
이데올로기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던 우리 한민족...~~
어디를 선택을 했든 그 위치에서 글 길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수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최현배와 김두봉...이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다..~
최현배(남)...김두봉(북) 남과 북의 언어정책의 선두 주자였던 이들이
남과 북의 언어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 부분...
지금의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해스러운 결과인가...~~~
같은 민족끼리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불행을 자초할수 있는 일인가~~~~ㅠㅠ
인물로 보는 남북 현대사~~~어느 한쪽 사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고심을 많이
한 이책 ....꼭 한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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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현실 속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은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남과 북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때로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하고 때로는 ㅈ하절하고 순응하면서 각각의 체제 형성에 기여했다.(서문에서)
이 책은 계간 『역사비평』에 실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일종의 인물평론성격의 책이다. ‘건국’ 60주년이 아니라 ‘남북 정부 수립’ 60주년 특집이라는 『역사비평』 편집위원회의 당시 문제의식은 이 책 전체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즉, 남과 북은 역사적으로 반세기 이상 공존해온 두 개의 정치공동체이며, 서로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차분하게 공통의 전망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에게서 경쟁과 대립의 면모가 아닌 ‘서로 다른 삶의 병존’과 ‘민족에 대한 열망 혹은 상처’를 먼저 주목하게 된 바탕이었다.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근대춤의 두 양대산맥인 조택원과 최승희의 비교를 통해본 예술부문이었다.
한국전통무용에서 창작 무용에로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자의적이기보다는 타의적 즉 시국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융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1890년대부터 애국계몽운동과 1900년대의 자강운동을 통한 근대교육은 대중적 확산을 양상 시키고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점차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20년대부터 무성 활동사진에 간헐적으로 소개된 영화의 서양무용 장면이 알려지면서부터라 하겠다. 일제시대 최고의 스타성을 지녔던 무용가로서, 월북을 택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우리에게 ‘전설’처럼 전해져왔던 비운의 댄서인 최승희의 존재에 비해 조택원은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대무용의 선구자였던 이시이 바쿠(石井漠 석정막 1987~1962) 문하에서 함께 춤을 추며 같은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동료이자, 남과북에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근대춤의 전형을 만들어간 인물들이었다. 이 시대의 공연은 무대예술로서의 무용이 전무하던 시절 서양 무용을 한국에 소개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무희인 최승희를 발굴했다는 점, 또한 석정막이 자신의 작품에서 현실과 대결하는 저항의식과 계몽의식등의 무용정신이 최승희의 민족적 주체적 창작정신에 스승으로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을 것으로 이 공연의 계기는 실상 훗날 한국 창작무용에 중요한 공연으로 평가되어질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분단은 최승희와 조택원을 갈라놓고 한국 근대춤의 발전에 크나큰 장애물을 세웠지만, 미묘한 경쟁과 갈등관계의 두 사람에게 별도의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심리적 해방감을 안겨주었을지도 모른다.
한 인간을 평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평가의 대상은 많은 시간에 걸쳐서 관찰해야 접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 평가는 윤리와 도덕의 책임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기가 어렵거니와 더군다나 흑백 논리로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최승희를 정치적으로 평가하느냐, 예술가로 평가하느냐의 문제가 확실해야 한다. 최승희가 무용으로 세계적 인물이 되었지 정치가로서 세계적 인물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여자를 정치권에 집어넣어서 사상적 압박을 주는 평가를 한다면 그 예술의 본질과 특수성을 침해하게 되므로 이는 근본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최승희를 평가 할 때는 이데올로기 요소를 앞세우지 말고 그 예술가 노릇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 논리의 사고에 빠져 부분 진리를 전체 진리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