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5%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17%
  • 리뷰 총점4 8%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8.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100년전 북해의 개잡이 공선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100년전 북해의 개잡이 공선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용보기
1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일본근대문학사조의 변천과정을 짧게 요약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민중예술은 다이쇼 시대(1912~1926년)의 중반에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적 시대사조의 영향으로 대두되었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적 불안으로 노동문학이 일어났고, 이어서 1920년대들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발전했다가 군국주의 성향이 강화되면서 정치
"100년전 북해의 개잡이 공선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용보기

1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일본근대문학사조의 변천과정을 짧게 요약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민중예술은 다이쇼 시대(1912~1926년)의 중반에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적 시대사조의 영향으로 대두되었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적 불안으로 노동문학이 일어났고, 이어서 1920년대들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발전했다가 군국주의 성향이 강화되면서 정치권력의 탄압으로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가니코센(蟹 公船)은 게잡이 공선인데 문파랑에서는 게 공선으로 제목을 삼은 것은 조금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양선단은 통상적으로 어획을 하는 조업선과 조업선이 잡은 해산물을 현장에서 가공하는 작업선으로 구성이 되는데, 가니코센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선은 작업선으로 조업선을 싣고 가서 조업현장에서 바다에 내려놓아 조업을 하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원양어선단은 지금도 장기간 바다에 머물고 작업시간이 불규칙하고 작업강도도 높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근무기강이 엄하다고 합니다. 하물며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하던 근대 일본에서는 노동현장의 분위기가 끔찍할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바야시 다키지(小林 多喜二)의 『가니 코센(蟹工船, 게잡이 공선, 1929년)』은 1926년 홋카이도의 게잡이 공선 하쿠아이마루(博愛丸)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작품에서는 게잡이 공선에서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 집단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을 탄압하는 주체는 회사에서 파견된 아사카와 감독과 그 수하들이다. 이들은 조업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을 통제합니다. 바다에서는 조난당한 배를 구조하는 일은 요청을 받는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이 기본인데 감독은 선장을 욱박질러 조난당한 배를 버리고 조업현장으로 직행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게잡이 공선에 탑승한 다양한 노동자들과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설명하는데, 승선인원이 남녀노소로 다양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도호쿠지방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어 흘러든 사람들로 핍박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피해의식에 절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사카와 감독의 강압에 저항하지 못하던 노동자들은 조업선에 탔다가 조난을 당해 러시아에 상륙했던 어부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바뀌어 있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게잡이 공산의 노동자들과 공유하면서 노동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조업과 작업에서 태업을 벌이는데 성공을 하게 되고, 결국 노동자들이 감독의 핍박에 저항하여 거사를 하게 됩니다. 잠시 몸을 숨겼던 감독은 해군 함정이 다가와 수병들이 승선하여 선상반란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을 잡아가면서 반란은 간단하게 수습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어두컴컴할 때부터 일터로 내몰렸다. 그리고 곡괭이 끝이 힐끗힐끗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주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감옥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조선인은 심장들에게도, 같은 동료 인부(일본인)들에게고, ‘짓밟히는’ 대우를 받았다.(83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는 노동자들의 인권에 무게를 두었을 뿐인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두고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Working Poor)…… 혹시 이 현상이 『게 공선』 아닌가요?’라고 변죽을 울리고 있습니다만,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조차 되어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군국주의가 횡행하던 100년 전의 일본사회의 노동현장을 현재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y*****2 2025.05.29.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도 '게 공선'에 탑승해 있는 건 아닌가?
"나도 '게 공선'에 탑승해 있는 건 아닌가?" 내용보기
명작스캔들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보고 강렬하게 끌렸던 그림이 있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가 지난 2000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는데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86번째로 꼽혔다. 흔히 서구인들 일색인 그런 발표에서 일본인, 그것도 에도시대 화가가 말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이 작품,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
"나도 '게 공선'에 탑승해 있는 건 아닌가?" 내용보기

 

명작스캔들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보고 강렬하게 끌렸던 그림이 있다.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가 지난 2000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는데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86번째로 꼽혔다. 흔히 서구인들 일색인 그런 발표에서 일본인, 그것도 에도시대 화가가 말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이 작품,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그린 작가이다. 그의 목판화 사진첩은 19세기 말부터 유럽에 큰 유행으로 번졌던 ‘자포니즘’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그의 그림첩은 유럽의 인상파작가들에게는 필수교본으로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이 그림은 에도 말기 성난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서구 문명에 침몰할 듯 휘청거리는 일본의 위태로움을 큰 파도와 배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백미는 한 중간에 작게 그려진 ‘후지산’이다. 

이 그림은 그의 대표 연작 목판화 [후가쿠 36경] 중 하나인데, 삼킬 듯 몰아치는 서구의 파도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후지산을 보며 일본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호쿠사이의 목판화는 유럽 대표 인상파 작가인 모네, 반 고흐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 「게 공선」의 표지는 조금 다르다.




 

그림을 보면 왼쪽의 파도는 그대로 인데 어부들이 타고 있는 조그만 배와 중간의 후지산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게 공선’으로 둔갑해 버렸다.

표지 그림만 봐서는 대(大) 작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모방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를 내포한 것도 같다.

 

「게 공선」표지의 파도는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에서 시사 하는 서양문물이 아닌 덮칠 듯 몰아치는 자본주의체제이다.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미 쓰나미처럼 덮친 자본주의체제에서 양산된 자연스런 계급구조의 공고화, 그것으로 인한 계급 갈등의 한 복판에 있던 일본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해공선(蟹工船)이라 읽어야 맞다. ‘蟹’ 자는 ‘게 해’ 자인데, 왜 해공선이라 하지 않고 게공선이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삐딱한 양반이다. ㅋㅋ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p.6)

 


당시 일본은 전쟁 중이었다. 안팎으로 혼란과 혼돈의 시기였다. 서양문물에 대한 개방과 전쟁, 자본주의 체제의 쓰나미 등은 모든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을 바꿔놓았다. 계급구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일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각지에 생겨나는 공장과 탄광 등의 산업시설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발을 못 붙여 마지막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 바로 게공선이었던 것이다.

 


“나도 말이지, 이번엔 절대로 배를 타지 않으려고 했다구.” (p.13)

 


홋카이도 북부, 오호츠크해 남쪽 연안의 게 어장으로 가는 공선(工船)에 오른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꾼 것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게공선의 탑승을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게공선에는 선장과 선원, 300여명의 어업노동자, 잡일꾼, 기술자, 그리고 어업노동자들을 감독하는 감독이 탑승했다.



“이건 뭐야, 두들겨 패서라도 깨우겠다! 아무리 천하다고 해도 이 일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인 만큼, 전쟁과 똑같다. 죽을 각오로 일해! 멍청한 놈.” (p.95)

“너희 한두 명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어선 한 척이라도 없어졌단 봐라, 가만두지 않겠다.” (p.28)

 


홋카이도로 향하는 항해도 고역이었다. 찜통 같은 선실을 어업노동자들은 ‘똥통’이라 불렀다. 배를 삼킬 듯한 파도에도 8척의 똑딱선을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갑판으로 나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어업노동자가 물에 빠지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들이 기적적으로 러시아 선박에 의해 구조되고 그들에게 ‘공산주의’를 듣게 되고 그것에 빠져들게 된다. 너무 맞는 말이니까. 자신들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위로해주니까.



“노동자, 제일 위대하다. 노동자 없으면. 모두, 빵 없다. 모두 죽는다. 알아?” (p.65)

 


같은 노동자이지만 자신들의 현실과는 다른 러시아 노동자들을 보며 각성을 한다. 결국 다시 게 공선으로 돌아와 다른 어업노동자들에게 자본가와 자본가의 개 노릇을 하는 감독에게 저항하고 대항할 것을 독려한다.

그러나, 감독 또한 멀리 본사 빌딩에서 양복입고 근무하는 중역에게는 한 명의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런 식으로 ‘태업’을 거듭했다. 수장(水葬)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욱 행동이 통일되어갔다. 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p.138)

 


‘태업’을 하고 결국 감독의 폭압적인 지시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반란을 일으키지만 직전에 어업노동자들의 동태를 눈치 채고 있던 감독은 일본 군함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게 공선의 혁명은 끝이 났다.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

“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 (p.175)


 

자신들의 혁명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의 군함은 중무장을 하고 게 공선에 올라 감독의 입장에서는 ‘반란’의 주동자들을 체포해 데려간다. 노동자의 편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론은 비관적이지 않다. ‘아무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각성하고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적인 각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감독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더 은밀하게 혁명을 도모하고 군함에 미리 연락하지 못하게 감시하며 게 공선의 작업이 모두 끝나 하선한 후에는 다양한 노동 계층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게 공선에서 이룩했던 ‘조직’, ‘투쟁’의 대단한 경험들을 전파하게 된다.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결론이다.

 



이 작품이 최근 일본에서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갑자기 불어난 「게 공선」의 판매부수에 대해 역자는 일본사회의 현재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 소개한다. 늘 불안한 노동자일 뿐인 수많은 비정규직들과 아무리 일해도 도무지 삶이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들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일본보다 더욱 심각하리라 확신하는 국내의 비정규직 실상과 아무리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빚더미와 씨름하는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게 공선>에서 보여준 그 당시의 권력 관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여전히 현실에서 그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p.189)

 


저자인 고바야시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를 일깨우고 비정상적인 계급구조를 타파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각성해 들고 일어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8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 「게 공선」에서 지옥을 경험하던 어업노동자들의 삶과 지금의 노동자들의 삶의 양태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책의 내용이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아주 예전 얘기라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각광을 받고 많이 읽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뭔가 바뀌기를 나아지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작품 속 어업노동자들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책에서는 「게 공선」의 지옥을 벗어나 새로운 노동 현장으로 뛰어드는 각성한 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힘찬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이 책을 읽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80년 전 그들처럼 다시 ‘공산주의’를 부르짖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난해부터 봇물 터지듯 출간되는 ‘~해라, ~하자’ 유의 책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대안을 제시한다. 짱돌을 들라, 분노하라, 아프니까 청춘인 거다, 쫄지마라, 닥치고 투표해라 등등 너무 많아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자본주의 말기 현상일지 모를 신자유주의는 모두를 점으로 나눴다. 각자 자기 앞가림하기도 버겁게 만든 것이다. 한 움큼 쥔 모래가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듯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일은 너무 어렵게 됐다. 그래서 분석이 쉽지 않고 예측은 더욱 어려워졌다.

점성이 있는 점들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구체적 대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출간된 지 80년이나 지난「게 공선」이 다시금 읽히고 나라는 사람까지 읽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보다 나은 사회와 개인적 삶을 위해 준비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밤이다.

 

호쿠사이의 그림에서, 고바야시의 책 표지에서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는 나를 덮칠 수도 있으니까.

 



l****h 2012.05.23.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내용보기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6쪽) 소설은 이미 지옥을 암시하며 게 공선의 정체를 알리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만을 품은 채 승선한 게 공선은 그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채워주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존심마저 짓밟은 지옥이었다. 무엇을 위해 육지를 떠나 왔던가. 버러지 같은 대접을 받느니 배를 타면 그나마 낫겠다던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가스 폭발로 죽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내용보기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6쪽)

소설은 이미 지옥을 암시하며 게 공선의 정체를 알리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희망만을 품은 채 승선한 게 공선은 그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채워주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존심마저 짓밟은 지옥이었다. 무엇을 위해 육지를 떠나 왔던가. 버러지 같은 대접을 받느니 배를 타면 그나마 낫겠다던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 가스 폭발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광부 출신 사내의 말에 대한 “글쎄, 여기도 그다지 다르지 않는데.”(16쪽)라는 젊은 노동자의 넋두리는 그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며,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 현실을 대변한다.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문파랑, 2008년). 192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이 최근 암울한 경제현실을 반영하듯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거센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일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88만원세대’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대변하고 있듯 일본 또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탓에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워킹 푸어’가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비정규직 문제는 하루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 계약직이라는 굴레 탓에 항의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열악한 조건을 따라야하는 비정규직은 <게 공선>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눈 많은 훗카이도에서 해를 넘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코딱지만큼 적은 돈에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내내 반복해도 됨됨이가 좋지 않은 아이처럼, 다음해에 또다시 태연하게(!)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17쪽)

 

소설은 게를 잡는 어선인 게 공선에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의지할 곳 없는 노동자들과 학교에 가야 할 나이의 어린 소년들은 쥐꼬리만한 돈에 그들의 몸을 판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다. 일을 해야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몸이 아파도 쉬고 싶어도 딴 청을 피울 수가 없다. 감독 아사카와의 성화와 인간적인 모욕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변변한 밥을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다. 그들의 삶은 완전 시궁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 공선은 배가 아니었다. 그들은 게 공선을 ‘공장’으로 표현한다.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공장이다. 그래서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오로지 ‘우리나라(일본)를 위해서’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사람 목숨은 파리보다도 못하고 인간 대여섯 마리보다 똑딱선 하나가 그들보다 소중한 존재다. 결국 어차피 죽을 목숨임을 각오한 그들은 태업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보기 좋게 감독을 물 먹인다.

 

어업노동자들의 처참한 생활상과 태업의 과정을 지켜보니 황석영의 <객지>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용직 노동자로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이었지만, 회사의 횡포의 식당의 갈취를 그들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이 분노를 머금고 일어섰듯 게 공선의 노동자들도 태업을 감행했다. 혼자서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러나 마음과 행동을 모으니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8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 지금의 현실과 비교하니 또 씁쓸하다. 게 공선의 선주였던 국회의원 출마자나 노동자들을 억압하며 제 잇속을 차리는 기생충 같은 감독, 뇌물을 받고 게 공선을 보호한 구축함의 장교들,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며 낮은 임금으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던 어업노동자들은 단지 소설 속에, 과거에만 존재했던 인물들이 아니지 않는가. 시대만 바뀌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다.

 

문명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삶이 나아지리라 보고 있으나 그것은 허울 좋은 가면에 불과하다. 진보된 문명의 혜택은 극소수만이 누리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금 편리해진 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권의 문제는 보다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돈’이라는 굴레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의 자존심은 쉽사리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다. 여전히 우리가 게 공선의 현실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25일

 

 

* 좋은 글귀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6쪽)

 

“그들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눈 많은 훗카이도에서 해를 넘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코딱지만큼 적은 돈에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내내 반복해도 됨됨이가 좋지 않은 아이처럼, 다음해에 또다시 태연하게(!)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17쪽)

 

“게 공선은 배가 아닌 순수한 ‘공장’이었다. 하지만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40쪽)

“사람 목숨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람 목숨?”

“그래.”

“그런데, 아사카와는 애당초 너희를 사람이라고 생각 안했어.” (51쪽)

 

“인간 대여섯 마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똑딱선은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54쪽)

 

“‘참치’회 같은 노동자의 고깃덩어리가, 갱도 벽에 몇 겹이고 거듭거듭 쌓여서 단단해져갔다.” (85쪽)

l*******g 2009.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게공선] 떠먹여주는 밥으로는 배부를 수가 없다
"[게공선] 떠먹여주는 밥으로는 배부를 수가 없다" 내용보기
1929년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가 한참 주목받던 시절, 프롤레타리아 계몽을 위해 쓰여진 소위 프롤레테리아 문학 중 하나인 게공선입니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이 책을 쓴 뒤 2년 후인 1931년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고, 33년 공안에 체포되어 3시간만에 고문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30살때의 일이었지요. 뭐, 작가는 글로써 이야기하니까, 작품 이야기를 하도록
"[게공선] 떠먹여주는 밥으로는 배부를 수가 없다" 내용보기

1929년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가 한참 주목받던 시절, 프롤레타리아 계몽을 위해 쓰여진 소위 프롤레테리아 문학 중 하나인 게공선입니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이 책을 쓴 뒤 2년 후인 1931년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고, 33년 공안에 체포되어 3시간만에 고문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30살때의 일이었지요. 


뭐, 작가는 글로써 이야기하니까, 작품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기, 사람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던 시기.. (오늘날도 마찬가지네요..) 그 시절, 막장에 들어가는 광부보다 더 못한 노동자의 삶이 있었으니, 바로 게공선(게를 잡아서 통조림을 만드는 배)의 인부였습니다. 


이 곳은, 공장이 아니라,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도 않고, 배도 아니기에 항해법의 적용을 받지도 않습니다. 


즉, 이곳의 인부들은 치외법권에서 오직 선주의 대리인인 감독관의 지배를 받을 뿐입니다. 


감독은 인부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것도 언제라도 대체할 수 있는, 소중히 다룰 필요가 없는 그런 소모품으로 다룹니다. 


한두명 죽는다고 해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설령 돈으로 보상을 한다고 해도, 그 죽은 사람의 목숨 값이, 사람을 죽임으로서 얻는 비용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인부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조금씩 깎아 나가면서, 하루 하루 버티며, 다시금 육지로 되돌아가기를 바라지만, 사실 육지에서 그들을 반기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가족이 있다고 해도, 뿔뿔이 흩어져, 어떤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느라, 다른 가족을 신경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인생의 밑바닥에서 쓰레기처럼 취급을 받아도, 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봅니다. 


옆에서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동료를 보면서, "나는 저정도는 아니니까", 혹은 "내가 아니라 쟤가 다쳐서 다행이야" 라면서, 자신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적응해, 자신보다 못한 동료를 보며 위안을 받고, 그렇게 하루 하루, 죽음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찾아오던 죽음의 기운이 배를 덥쳤을 때, 사람들이 더이상 "나만은 아직 살 수 있어" 라는 희망을 놓쳤을 때, 그들은 힘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감독관에게 대항합니다. 


그리고 찾아온 군대... 


정부군은 선상 반란이 일어난 배에 들어와, 감독관의 손을 들어주고, 반란의 주동자들을 모두 잡아가버립니다. 


왜냐하면, 인부들은 감독관을 붙잡았을 때, "이쯤 하면 될꺼야, 이 정도라면, 나는 아직 발을 뺄 수 있어.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내 숟가락을 놓을 수 있을꺼야" 라면서, 슬금 슬금 발을 뺏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단결의 힘이 사라지자, 그들의 대표자들은 힘없이 기득권에게 붙잡혀 사라지고, 남은 자들은 더욱더 고난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소설은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이 게공선의 후기는, 다시금 사람들이 힘을 모아 두번째 반란을 일으키고, 이번에는 끝까지 투쟁해서 혁명을 성공한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책이 나온지 80년 후의 우리들은, 그들의 혁명이 결코 성공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혁명은 누군가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잘난척하는 인텔리가 사회정의를 부르짓으며 우리 대신 총대를 매고 기득권층과 싸워 이긴 뒤, 자신의 전리품을 우리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누군가가 대신 이뤄준 결과는 결코 자신의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주인이 바뀌는 것 뿐입니다.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자유를 자신의 정의를 자신의 손으로 쟁취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쟁취는 개개인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단결만이 바로 그 혁명의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짦은 이야기이고 80년 전의 빨갱이 선전 책자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지 않게 읽히는 까닭은, 초기 순수 자본주의의 오류를 수정하려했던 케인즈가 결국은 외면당하고, 명백한 공산주의의 패배 이후, 적을 잃은 자본주의가 다시금 그 예전의 괴물로 되돌아가버렸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l*****6 2013.10.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동자라면 꼭 읽어야할 책
"노동자라면 꼭 읽어야할 책" 내용보기
책 <게공선>은 선상에서 어업노동자 학대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게공선은 게잡이 배이다. 이 배에는 가공공장도 있어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장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선박이기 때문이다. 구 소련 캄차카 해역에서 게잡이 배 즉 게공선은 한마디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 배에 있는 4백명의 어부, 잡부, 보일러공 등은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인권마
"노동자라면 꼭 읽어야할 책" 내용보기

 

 

 
 책 <게공선>은 선상에서 어업노동자 학대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게공선은 게잡이 배이다. 이 배에는 가공공장도 있어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장법을 받는 것도 아니다. 선박이기 때문이다. 구 소련 캄차카 해역에서 게잡이 배 즉 게공선은 한마디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 배에 있는 4백명의 어부, 잡부, 보일러공 등은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인권마저 유린당한다. 이와 벼룩이 들끓는 곳에서 쪽잠을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 한 채 노동에 지쳐간다. 이들을 부려먹는 감독은 권총으로 위협까지 한다. 참다 못한 노동자들은 단합한다. 이른바 선상 쿠데타가 일어나는데…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국제적으로 알린 인물로 꼽힌다. 노동자 계급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파헤치려는 작가였다. 그는 1933년 29살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도쿄의 한 경찰서에서 가혹한 고문으로 사망했다. 이 책 <게공선>은 1929년 발표 당시 발매금지를 당했다.

 

이 책은 2백페이지도 안되지만 내용이 충실하다. 사실 중반까지는 지루했다. 별다른 사건 없이 노동 착취의 사실만 나열된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한 인부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뭉친 노동자는 감독 즉 지배계급을 몰락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조직적인 노동 단체가 아니다. 저자는 노동자를 억압하는 지배계급에 맞서기 위해 뭉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자를 뭉치게 한다는 것이다. '노동 집단'을 강조하게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을 내세우지 않았다. 주인공이 없고, 등장 인물들의 이름도 없다. '기관사'나 '어부' 등 직함만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묘사도 제한적이다. 

 

일본 소설이지만 국내 노동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언제 해고통지를 받을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으면서도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현장에 박혀 있어야 하는 현실 말이다. 오랜만에 심도 있는 생각에 빠지게 한 책을 만났다.

b*****m 2010.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게 공선은 정말 없어졌을까?
"게 공선은 정말 없어졌을까?" 내용보기
사실 출간되고 얼마 안돼 우연한 기회에 책을 구했다. '게공선?' 제목조차 쉽게 이해하지 못한 채 책장 한 켠에 꽂아놓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굿바이MB(변상욱)'을 읽다 책 말미에 인용된 부분을 보고 다시 집어 들었다.     '게 공선' 먼바다에 나가 게를 잡고 가공하는 요즘으로 치자면 원양어선쯤 될 거다. 배지만 가공을 하는 '공장선'이어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으
"게 공선은 정말 없어졌을까?" 내용보기

  사실 출간되고 얼마 안돼 우연한 기회에 책을 구했다. '게공선?' 제목조차 쉽게 이해하지 못한 채 책장 한 켠에 꽂아놓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굿바이MB(변상욱)'을 읽다 책 말미에 인용된 부분을 보고 다시 집어 들었다.

 

  '게 공선' 먼바다에 나가 게를 잡고 가공하는 요즘으로 치자면 원양어선쯤 될 거다. 배지만 가공을 하는 '공장선'이어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으면서도 바다에 나가 있어서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았다. 망망대해에 낡디 낡은 배는 위험천만했고 착취는 극에 달했다. 아, '명불허전'. 거의 90년 전에 씌인 소설이다. 

자본주의가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에, 그 폐해를 꿰뚫어 보는 소름끼치는 직관. 압권이다. 

 

  "......들어봐, 가령 부자가 돈을 내서 만든 배가 있다고 치자구. 선원과 보일러공이 없으면 배가 움직일까? 게가 바다 속에 수억 있다고 하자. 만약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일하지 않는다면, 부자가 제아무리 돈을 냈다고 해도 게가 한 마리라도 부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겠어? ......(중략)

......더욱 힘을 내자구. 갈 데까지 가면, 거짓말이 아니야. 저들이 우리를 더 무서워한단 말이야. 벌벌 떨지 마. 선원과 보일러공이 없었으면 배는 움직이지 않아. 노동자가 일하지 않으면 동전 한 푼도 부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수 없어. 배를 사거나 도구를 준비하는 돈도, 마찬가지로 다른 노동자가 피를 짜서 벌어준 거야. 우리한테서 착취해간 돈이야......" 

 

  인상에 남는 게 또 있다. 이 책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여럿이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프로렐타리아 문학의 정수라고도 하지만 그런 선입관 없이도 기존의 틀을 벗어난 문학적 완성도를 만끽할 수 있다. 

 

  영광의 역사든 암흑의 역사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 '게 공선'은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21세기를 항해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그런 장래의 가망성 따윈 아무래도 좋아. 왜냐하면 이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야." "응 그래, 다시 한 번 더!" 그리고 그들은 들고 일어섰다. 다시 한 번 더!

 

 

 



d*****o 2012.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게공선의 비참한 노동자들
"우리는 게공선의 비참한 노동자들" 내용보기
자본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 노동자의 삶이란 비참함 그 자체였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많은 빈곤국의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은 채 힘든 노동의 현장으로 몰리고 있듯, 과거 산업혁명 당시에도 다수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은 힘든 노동에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루에 14~16시간을 일하면서 그들은 값 싼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견디며 힘든
"우리는 게공선의 비참한 노동자들" 내용보기
 

 자본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 노동자의 삶이란 비참함 자체였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많은 빈곤국의 아이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은 힘든 노동의 현장으로 몰리고 있듯, 과거 산업혁명 당시에도 다수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은 힘든 노동에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루에 14~16시간을 일하면서 그들은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견디며 힘든 노동을 해도 그들에게는 그런 비참한 생활을 벗어날 희망이 없었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 어린이의 평균 수명이 17세였을 정도로 그들은 삶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죽음을 위한 노동으로 몰렸다. 그런 비참함에 분개한 많은 지식인들은 모든 노동자가 인간으로써 제대로 살아가기를 열망하며, 자본에 대항해왔고, 그런 과정과 많은 희생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는 형식적으로나마 법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인간다운 권리를 당연하게 주장할 있는 환경을 얻었다.

 

 하지만, 자본은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과거 만큼은 드러내 놓고 악랄함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와 힘을 강화시켜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천명했던 것을 기억해본다면 자본의 막대한 힘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쉽게 이해할 있다. 뿐만 아니라, 2mb정권의 통치백서가 전경련에서 만든 전경련 백서라는 사실을 본다면, 자본권력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있다. 그렇게 시나브로 자본은 사회의 모든 권력과 의식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장악하기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배려보다는 시장과 자본의 원리가 사회와 인간관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자본에 의해서 삶의 터전을 잃고, 누군가가 자본에 의해서 목숨을 잃어도, 우리는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자본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를 들이대면서 "객관적"라는 말을 쉽게 가져다 붙인다. 사실 "객관적"이라는 말이 마치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숭상하지만, 이면에는 내가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라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라는 말일 뿐이다. 제삼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마치 자기가 심판이나 판단자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균형을 가지고 판단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사실 착각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균형을 가질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균형을 가지고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려 노력할 수는 있어도, 쉽게 관점을 가질 없는 존재들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에 숨겨진 다른 의미는, 이미 개인들은 너무 파편화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하며, 결국에 자신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시장과 자본의 원리, 경쟁의 원리 이면에는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다른 논리가 숨어있다. 논리는 노동자나 시민의 모두가 소비자이기 때문에 마치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 개인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논리일 뿐이다. 자기는 것을 사고, 자기는 좋은 것을 사고 싶다는 이상의 논리는 숨어 있지 않다.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시민과 노동자는 파편화되면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쓰러지고, 사라져도 자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본척한다.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이기심의 발로로, 사회의 빈곤층이 늘어나고 중산층에 탈락한 사람이 늘어나고, 빈부의 격차가 커져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자본은 파편화된 개인을 하나하나 공격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사회 안정망이라고 불리우는 법과 복지제도 그리고 노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비정규직의 확대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이 고용은 줄어들고 값싸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있는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금의 비정규직을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어린이와 여성 노동자에 비유한다면 과할까? 물론 그들과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 하지만, 정규직과 자본가들의 처지와 비교해본다면 비정규직은 21세기 새로운 노예제도라는 말에 이의를 달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보호해야 정부 그리고 노동부는 해고대란설을 흘리면서 비정규직법을 개악하려고 발버둥까지 쳤다. 노동부 장관이라는 작자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원장이라는 작자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에 대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만 헌법에 노동권이 명시되지 않았을 , 많은 선진국들은 노동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면서. 하지만,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공격에 그렇게 개인은 점점 파편화 되어감은 물론이고 자본에 종속되어 간다. 삶은 점점 팍팍해지면서도 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자본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젊은 세대마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보호막이 없는 상태이기에 처음부터 자본의 공격에 무참히 당할 밖에 없고, 당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의 중심에 그들이 있고, 비정규직의 중심에 그들이 있음에도 그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쳐놓은 그물 안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일본에서는 그런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1920년대에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 소설 "게공선"이라는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화까지 만들어져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될까지 되었을 정도였으니, 소설 "게공선" 대한 열풍은 상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이 책을 그렇게 주목 받게 만들었을까? 읽어보면 문학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기존의 일본 소설과 달리 문체도 상당히 건조하고,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아니라 딱딱한 느낌까지 드는 ""임에도 불구하고.

 

  책에 묘사된 노동자들의 삶이나 환경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지독하게 묘사되어 있다. 생지옥이랄까? 현실의 환경과 비교해서 봐도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런 묘사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현실의 모습이 비록 조금은 다르기는 해도 자본의 폭력과 잔인함은 차이가 없음을 보여줌이 아닐까? 부자가 되겠다는 열망과 사랑으로 자본을 향해 쓰였던 콩깍지가 이제 벗겨지면서 보게 자본의 실체를 책을 통해서 제대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저항하기 위해서 조금씩 변해가고 몸부림 치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자본의 실체를 보게 과정과 같음에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자신들의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과 속의 노동자들이 변해가는 과정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과정을 차례로 따라가보면, 425명의 사람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구조 신호에도 생산량의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구조를 포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장면 이후에 "자본주의는 마땅히 이윤에 관한 일이라면 금리가 내려 돈이 넘쳐나기만 한다면, ' 그대로' 무슨 짓이라도 한다."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배의 구조에는 무심했던 배가 풍랑으로 잃어버린 6명의 선원을 태운 자신의 똑딱선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 있는데 이유는 "인간 대여섯 마리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똑딱선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돈벌이' 위해 하나도 남김없이 파헤쳐졌다. 더군다나 그것을 교묘하게 '국가적'으로 부강해질 있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결부시켜서 감쪽같이 합리화했다. 빈틈이라곤 없었다. '국가' 위해서, 노동자는 '뱃가죽이 등에 붙어''맞아 죽어'나갔다."라는 문장은 아직도 애국이라는 말에 환상이 위선임을 꼬집어 준다.

 

 바로 위의 문장도 마음에 들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특히 마음에 드는 설명이나 묘사는 어선 노동자들 자신들을 구원해 것이라고 믿었던 해군선박이 결국에는 게공선 감독관과 선장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거기서 노동자들은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우리 군함 좋아하네, 허풍이나 떠는 부자들의 앞잡이잖아. 국민들과 한편? 웃기고 자빠졌네, 엿이나 먹어라!"라고 하는데, 국가가 국민을 위한다는 환상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린다. 아직도 이런 환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만을 보고 있지만, 결국에 국가라는 존재는 힘이 있는 존재를 위해서 움직인다. 지금 힘은 자본이라는 것을.

 

 이러한 내용들은 쉽게 공감이 가는 것은 저자의 상상력과 묘사실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자본의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자본은 행패는 모습을 달리할 결코 인간이라는 존재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은 자본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다. 책이 8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도 바로 때문이다. 아직도 자본에 콩깍지가 쓰여서 열열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여전히 게공선의 노동자로 현실을 뿐이다.

h*******k 2009.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게공선
"게공선" 내용보기
게공선 _ 고바야시 다키지 뉴스에서는 대공항 이후, 아니 대공항 그 이상의 경제위기가 온다고 연일 시끄럽다. 빈 채널 속 잡음만큼이나 이러한 소식은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굳이 되풀이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을 재삼 듣는 데 우리도 지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밥을 먹고 살아야 하고 경제 행위를 하고 살아야 만하는 ‘이코노미쿠스’의 운명이거늘. 2008년 위기
"게공선" 내용보기
 

게공선 _ 고바야시 다키지


뉴스에서는 대공항 이후, 아니 대공항 그 이상의 경제위기가 온다고 연일 시끄럽다. 빈 채널 속 잡음만큼이나 이러한 소식은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굳이 되풀이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을 재삼 듣는 데 우리도 지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밥을 먹고 살아야 하고 경제 행위를 하고 살아야 만하는 ‘이코노미쿠스’의 운명이거늘.


2008년 위기 속에서 히트를 친 상품이 있다. 사회과학 책 ‘88만원 세대’이다. 혹자들은 이 세태를 보고 “세대론은 보수주의 담론이다.” 또는 “너희가 88만원 세대면 노인들은 50만원 세대다.”라고 비아냥 거릴 줄 모른다. 그러나 경제 위기가 닥치면 립스틱이 많이 팔리고 리필 제품, 중고 제품들이 인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 사회를 다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데 있어 분명 의의가 있다.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이웃 국가인 일본에서도 눈여겨 볼 만한 책이 있다. 일본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수로 인정받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이다.


작품을 소개하자면, 캄차카 영해에서 게를 잡아 가공해서 통조림을 만드는 게공선 ‘하카타마루’에서는 여러 부류의 인간들이 모인다. 학생을 비롯해서 광부, 잡일꾼 등은 생명을 걸고 일하지만, 자본가(작품 속 감독)에게 착취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게 된다. 이에 분노한 이들은 태업과 파업을 도모하지만, 믿었던 군함의 수병들에 의해 저지당한다. 자본가와 야합한 공권력에 의해 묵살당하는 것이다. 이후 자본가의 분노가 더해지고, 반작용으로 노동자들 또  한번 들고 일어선다.


2008년은 일본에게 있어서 어느 해보다 우울한 소식이 많았던 한 해였다.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격차사회라는 종양이 터져 나올 것을 예고했고, 엔고화에 따른 경제위기는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에게 감산과 구조조정이라는 방법을 택하게 했다.


사실 일본사회는 88만원 세대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연공서열과 평생직장이 인정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난 고이즈미 정권을 시작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노동 여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알바, 즉 ‘프리타’만 확대재생산 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젊은층의 불만은 날로 커지게 되었고, 이러한 불만과 분노가 80년이 지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법한 소설을 다시 불러오게 했다.


“어이, 지옥에 가는 거다!”라는 대사로 게공선은 시작한다. 거친 이 대사만큼이나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은, 아니 한참 동안 사회로 ‘발령대기’ 중인 젊은이들을 공감하게 만드는 말이 있을까. 나라는 고용을 늘린다고 하지만 대부분 산업현장의 일용직 잡부이거나, 사전 착취의 현장인 인턴사원만 대폭 늘리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개탄스런운 일인가.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 차상위 계층 모두에게 이 나라는 마치 지옥으로 가는 게공선과 다를지 않을 테다.


끝내기에 앞서, 책에 대해 한번 더 고민을 했다. 많은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에서 굳이 이 ‘게공선’이 재주목 받고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소설의 배경이 아닐까 싶다. 게 공선은 ‘공장선’으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공장법을 적용받는 것‘ 아니다. 작자는 ’나만 열심히, 착하게 살면 되겠지‘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암시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디케의 저울처럼 언제나 공정한 심판을 내리지 않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88만원 세대와 다르지 않다. 짱돌을 던지듯 출구없는 선박 속에서 힘을 합치고 “다시 한 번 더!”를 외치는 길이다.


h*********y 2009.01.14.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지금의 노동현실을 비교하며 봐도...공감대가 형성된다..
"지금의 노동현실을 비교하며 봐도...공감대가 형성된다.." 내용보기
SAMSUNG 이니, LG니... 솔직히 말해보자, 이병철, 이건희 회장이 잘해서 굴지의 기업이 된걸까? 구씨 일가족들의 뛰어난 경영으로 이룩된 회사인가.. 직원들이 창조적인 기획과 노동으로 이뤄진 회사는.. 항상 모순적이게도, 직원들은 그들이 이뤄논 큰 파이에서 월급이라는 부스러기 일부를 얻어먹고 대부분의 창출된 이윤은 회사의 소유주가 가져갈 뿐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지금의 노동현실을 비교하며 봐도...공감대가 형성된다.." 내용보기

SAMSUNG 이니, LG니...

솔직히 말해보자, 이병철, 이건희 회장이 잘해서 굴지의 기업이 된걸까?

구씨 일가족들의 뛰어난 경영으로 이룩된 회사인가..

직원들이 창조적인 기획과 노동으로 이뤄진 회사는..

항상 모순적이게도, 직원들은 그들이 이뤄논 큰 파이에서 월급이라는 부스러기 일부를 얻어먹고 대부분의 창출된 이윤은 회사의 소유주가 가져갈 뿐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삼백산업으로 밀가루에 사카린을 섞어 때돈을 벌었던 그들의 추악한 과거를.

나는 계급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허상들이나 추상적인 관념을 논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창출된 이윤이 돌아가지 못하고 기업의 소유주에게 거의 대부분이 돌아가고,

조금 경기불안이 닥치면 실질 물가인상률보다도 낮거나 삭감된 급료를 제시하거나,

회사의 직원들부터 정리해고하는..(그렇다고 경제 호황기때, 이들이 언제 불경기때 삭감된 몫을 보상해주던가? ...)

그리고 일련의 이런과정속에서 경제에서 소비의 주체인 가정의 소비가 위축되고,

소비의 위축은 기업의 이윤감소를 .또다시 기업은 이를 구실로 손쉽게 정리해고를 감행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항상 정유회사들의 유가는 오르긴 해도, 국제 유가가 급락해도 절대 담합된 국내 유가는 내려가질 않는 것처럼,

힘이 드는 불경기때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노동자나 직원들에게 감수케 하지만, 이윤 창출이 늘어나도 그 달콤함은 회사소유주들만이 가져가는 것이 이땅의 대기업 일가들의 현실아니던가...

 

정당한 자기 노력의 몫을 공정하게 가져갈수 없는 사회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부의 축적을 가져오고,

그만큼 또다른 한쪽은 일방적인 가난의 굴레가 축적된다.

 

결국 소비의 중심이자,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서민층이 껴안는 경제적 고난은

소비의 위축을 가져와, 그사회의 기업이 먹고사는 이윤창출의 터전 밭을 줄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오는것임을 모른다면, 

 이책에서 드러나는 또하나의 큰 <게공선> 적인 사회 모습이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추구된 <그들만을 위한 세상> 은....

 결국 <그들조차도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기 쉽다..

이책에서는 사실 해피엔딩이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 걱정되는건 작은 게공선이 아니라 큰 사회 시스템조차도 지탱하기 힘든 이런 현실의 불합리성이 계속 누적되는데는...시간도 훨씬 더걸리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 아닐까..

 

지나친 계급주의적인 색채를 감안하고 중립적으로 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f********4 2009.06.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920년대 일본, 프롤레타리아들의 비참한 삶과 저항
"1920년대 일본, 프롤레타리아들의 비참한 삶과 저항" 내용보기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 금방 읽어버렸는데 1920년대에 일본의 빈곤층들이 광산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다가 어선을 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게 공선이라는 것은, 게를 잡아서 배 안에서 바로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종의 바다 위의 공장 같은 개념이다. 노동자들은 배 안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
"1920년대 일본, 프롤레타리아들의 비참한 삶과 저항" 내용보기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공선>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 금방 읽어버렸는데 1920년대에 일본의 빈곤층들이 광산이나 공장 등에서 일하다가 어선을 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게 공선이라는 것은, 게를 잡아서 배 안에서 바로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종의 바다 위의 공장 같은 개념이다. 노동자들은 배 안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얻어맞고, 이와 벼룩이 들끓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된다. 캄차카 반도의 거칠고 추운 바다에서 그들은 간신히 버텨나간다...
 

이러한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을 필자는 자주 읽는다. 어쩌면 스스로가 이러한 입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러한 상황에 있는 자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항상 가슴에 그 어떤 것을 새겨 두기 위해서가 아닐까.

 

조세희 작가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경애는 나는 몰랐다고 항변하고 윤호는 그것이 바로 죄라고 역설한다. 역시 이러한 것을 모른 채, 호의호식하며 몽블랑 만년필로 갈겨쓰고, 문학을 논하며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필자는 죄인일지도 모르겠다...캄차카 반도의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j******m 2010.0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