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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병을 앓게 된 환자가 진단을 받는 순간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연구성과를 최초로 소개한 죽음학의 고전입니다. 죽음의 5단계는 그녀의 후속작을 통하여 알게 되었지만 죽음학 연구의 첫 번째 성과물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음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1965년 가을 시카고 신학교의 신학생 4명이 찾아와 자신들의 연구기획을 도와달라고 찾아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로스와 신학생들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그들의 심리상태와 욕구를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이 자신의 환자와 만나는 것을 반대하는 주치의들은 물론 간호사들을 설득하여 환자들로부터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루어낸 성과가 환자진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의료진들이 늘어나면서 면담모임은 규모가 확대되었고, 500여명의 환자를 면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환자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면서 로스가 이끄는 연구모임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환자들이 1단계에서는 충격을 받고서 “아니야.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라면서 진단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의사들을 통하여 진단이 바뀌지 않게 되면 2단계로 “왜 하필이면 나일까?”하는 분노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 환자는 분노와 광기, 시기, 원한의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다음 3단계에서는 환자는 죽음을 미루기 위하여 협상에 나섭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은 죽을 수 없으니 죽음을 미루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보이는 것입니다. 다음 4단계는 우울의 단계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두고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울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마지막 5단계에 이르면 우울마저도 뛰어넘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치의 병을 진단받은 환자가 5단계를 거쳐 죽음에 이른다고 설명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5단계 모두를 반드시 거치지 않거나 선후가 바뀌는 환자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연구진이 죽어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암을 치료하는 수단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개발되기 전이라서 많은 환자들이 암으로 진단되었을 때 이미 말기에 이른 경우가 많아서 ‘암’하면 곧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하여 갑상선암, 위장관암 등 건강검진을 통하여 암이 시작되기 이전인 전암상태를 진단하게 되거나 암이라고 하더라도 초기 상태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수술을 통하여 병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가 종료되기도 하고, 더 진행이 되었다 하더라고 항암제를 사용하거나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들을 사멸시킴으로 해서 완치에 이르도록 하는 치료법들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암질환을 불치의 병이라기보다는 만성질환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로스 연구진과 면담을 가진 환자들이 제기한 문제점 가운데 의료진들이 환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특히 환자에게 병에 대한 정보나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를 환자와 공유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말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환자와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62쪽)“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했을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수행하고 있는 환자경험평가를 통하여 의료진이 환자와 정보를 얼마나 공유하고 환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는지를 평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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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겪는 일이지만 그것에 대해 화제를 삼거나 하는 것은 사실 그동안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인간의 무의식에서는 항상 자기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의식 안에서는 죽음이란 자기 자신이 아닌 남에게 일어나는 일로 인식되고 있고, 사회에서는 죽음의 부정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여 내면의 평화를 얻게 하기 위하여 이 책이 쓰여졌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실제로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내용을 분석하여 설명을 한 것인데, 죽어가는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5가지 단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과 고립'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무의식 속에서 우리는 모두 불멸의 존재이기에, 자신이 얼마 안 있어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엑스레이가 바뀐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가장 괴로워하는 단계인 듯 하다.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까지 당해서 외로이 죽어간 환자의 케이스를 보고 참 가슴이 아팠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이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갑자기 삶이 그런 식으로 유린당하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간호사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터트려지게 되지만, 이런 환자들에게는 존중과 이해, 관심이 필요하다. 생뚱맞지만 이 장을 읽으면서 내가 '아직은' 큰 병에 걸리지 않았고 그래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먹고 걷고 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세 번째 단계는 '협상'이다. 고통이나 육체적 불편 없이 좀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망을 갖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가족, 친구들을 잃어야 하는 시한부 환자는 큰 슬픔과 우울에 시달리게 된다. 평화로운 수용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주변 가족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케이스에서 그것이 힘든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서로 바라는 것이 너무 다른 것 같았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이다. 모든 번민이 끝나고, 긴 여행을 끝나고 편안히 쉬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단계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충돌이 일어나는데, 환자는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데 가족들은 고통만 주고 억지로 생명을 약간 더 연장시켜 놓을 뿐인 수술을 하게 한다던지 하는 경우가 그렇다. 사실 가톨릭 신자로써의 나의 입장에서는 안락사(소극적 안락사를 포함한)에 찬성하면 안 되는데, 인간으로써의 품위도 유지하지 못하고 고통만 계속 받을 뿐인 환자를 각종 기계 등으로 억지로 생명을 약간 더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과 환자의 가족들의 경우, 환자들과의 인터뷰들이 나온다. 책의 대부분의 부분이 실제로 시한부 환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라 너무 딱딱하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잘 읽히는 편이었고 많은 케이스들을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또한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깊이 생각하고 고찰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하여 좀 더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한번은 겪을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래서 좀 더 의연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모습은 마치 별이 스러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그러한 죽음을 '선종(복된 죽음)'이라 한다. 나도 나중에, 몇십년 후에, 별이 스러지듯이 평화로이 선종하고 싶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야겠다.南に死にそうな人あれば, 行って こわがらなくてもいいといい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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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5단계> 부정과 고립 -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 심리학 시간(?),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 배웠던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질병이나 기타 원인에 의해서 시작된 죽음의 과정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도 가장 전형적인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을 고른다면 말기암 환자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내놓고 의견을 나누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죽음의 과정에 있는 사람과는 더더구나 피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도 제대로 모르고,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오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반응을 생각해 본다면,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분명 필요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주제였고, 아마도 그러한 편견이 그러한 과정을 겪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이나 임종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찌보면 자신의 벌거벗은 존재와 마주하며 두려움과 외로움, 분노 등을 가득히 담고 있을 이들이 바로 죽어가는 이들이고, 가장 많은 부분에서 이해와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죽어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저자는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주제를 너무 무겁거나 무서운 척하지 않고도 진지하게 다루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환자들에 대한 접근이 죽음 자체보다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결국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의미있고 평안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풀면서 살듯이 죽음이라는 좀 더 특이한 문제를 여러사람의 이해와 도움, 상호작용을 통해서 짐을 더 가볍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느 한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져 간다는 것이지만, 그러한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를 둘러싼 가족과 가정, 이웃들과 연관된 사건이라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책에 언급된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일반인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이나 임종의 순간, 또는 임종 직후의 모습을 대하는 것은 일생을 통하여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특별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수도 없이 그러한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겠지요. 의사나 간호사, 호스피스 종사자 등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으로 본다면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있는 환자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여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과의 열린 마음으로 나눈 대화들을 통해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겠지요....- 보여주고, 금기시 하던 영역에 대한 귀한 보석꾸러미를 엮어서 사람들에게 선사해 준 저자에게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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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이 지났다. 누군가를 떠나 보낸다는 것에 대해 준비도 없었다. 그리움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3년. 내 마음 다독이고자 읽기 시작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이다. 죽음으로 죽어감이 끝난다는 말. 나는 늘 삶만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너무나 소중한 두 분을 한 달사이로 떠나보냈다. 내 아픔에 허덕이던 그때에 세월호 사고가 났다. 그분들에 비해 내 아픔은 아프다 할 수도 없겠다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지난 3년, 나는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후회가 많았다. 진작에 내가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 그랬다면 암으로 고생하셨던 분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 보내지는 않았을 수도 있는데... 너무나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떠난 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여전히 금기시 되는 죽음이란 단어.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우리는 삶에 집착하느라 죽음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맘이 편안하다. 삶과 같은 선상에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젠 내가 되었던, 타인이 되었던 상실, 떠남에 대해 편안하게 받아 들여질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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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은 매우 커다란 숙제일 것이다. 풀고 싶지는 않으나 반드시 받게 되고야 마는 숙제,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는 숙제. 그러나 인간의 죽음 이후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어서 사람들은 이를 알고저 애를 쓴다. 때문에 죽음은 항상 뜨거운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여기서 그리 크게 자유롭지 않았다. 언젠가는 맞이해야할 죽음, 그러나 그것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와중에 오긴 온다는 그러한 막연함이 첫째로 답답했던 것 같다. 해서 죽음이란, 언젠가는 오지만 지금 손에 잡히지 않는, 그렇기 때문에 일단 현재는 잠시 잊는, 보지 않는 그런 것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죽음, 그 마지막 성장)과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인상적인 책들이었다. 앞의 책은 암에 걸린 저자의 투병기 속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뒤의 책은 스콧 니어링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관찰한 바를 기록한 것인데 그 과정을 보면서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두 책 모두 아쉬움은 있었다. 앞의 책과 뒤의 책 모두 나와 아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앞의 책은 너무 커다랗고, 뒤의 책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무엇을 간직하면서 지나가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죽음과 죽어감>은 그러한 거리감을 좁혀준 책이었다. 본인이 죽지는 않지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관찰해온 저자의 시선이 담긴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한 것이다. 저자가 구분한 단계들을 거쳐가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에게 매우 가깝게 다가왔다. 때로는 나의 상황을 그 단계에 적용시켜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하게 될지 가늠해볼 수도 있었다.
책에서 나타난 죽음을 '잘' 맞이하는 사람들은 첫째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둘째로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있는 지금을 살고 있었다. 어차피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르고, 그것이 다가와도 결국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그러한 미지의 것에 대해 가장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바로 현실을 충분하게 살아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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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살아있음을 잘 못느끼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건강하게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이를 간과하기 쉽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삶에 충실하고 죽음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지만 죽음은 항상 삶의 가까이 있기에 이를 삶의 한 부분처럼 느끼면서 지내는 것이 필요함을 이 책은 전하고 싶은 것 같다. 과거에는 가족 중 누군가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집에 모시면서 죽어가는 과정을 함께 나누었다. 당사자도 가족 구성원들도 그 과정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 공유했기 때문에 죽음을 지금처럼 어려워하지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당사자를 병원으로 내몰고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준비하기도 어려워졌다. 어린아이이건 어른이이건, 아픈 당사자이건 그 가족 구성원이건 죽음이란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워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 과정이 이루어져야 우리는 죽음의 정상적인 5단계를 거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첫 단계는 "부정"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의 몸은 완쾌될 수 없고 곧 목숨이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게되면 일단 인정하지 않으려고 믿지 않으려고 한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면서 몸 상태가 악화되면 이젠 조금씩 죽어감의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분노"를 느끼는 단계가 2단계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왜 하필 나인가'가 이 시기의 주요 모토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지 끊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인정하는 과정에서 "협상"의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는 짧은 단계이긴 하지만 병이 나아지기만 한다면 어떤 일이든 하겠노라는 하나님 아니면 그 어떤 절대자와의 약속이다.
3단계는 우울의 단계이다. 이 모든 것이 소용 없는 것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용의 단계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한 단계는 시한부 환자들의 관점에서 이야기 한 것이지만 환자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환자 가족들도 환자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환자 가족들이 환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해야하는 상황이나 환자의 관리가 필요한 경우에는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처음에 죽음의 단계를 들었을 떄에는 마지막에 환자가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이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는 순간을 알게된다고 하는데 그 막바지에도 살아날 가능성, 희망(신약이 개발될 것이라는 등의)을 놓치 않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세가 진정한 죽어감의 경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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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을 감명깊게 읽은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는데, 그 기대에 충분히 답해 주는 진지하면서도 생생한 이야기들이어서 더욱 감동이 컸다. 호스피스 운동을 개척한 사람이라고도 불리는 작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에게서 죽음의 의미, 그리고 죽어감이란 어떤 것인지 진지하고도 절박한, 그리고 솔직한 메시지들을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여과없이 죽어가는 이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죽음 앞에서 그토록 숭고하게 회자되는 삶, 생명에 대한 의미로움, 가치로움이 더 크게 와닿아 역시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바로 우리네 인생의 모습, 생생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불치병 환자들의 진솔한 고백들은 결국 어느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는 그들이기에 절실함과 솔직함이 담겨 있어 더 잔잔하고 애절하게 독자들의 마음에서 와서 박히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죽음을 목전에 두고 보다 앞서서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기에 더욱 지금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게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호스피스 활동은 그들의 아픔을 다독이는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또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있는 활동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또 그 기록을 가치롭게 남기는 일이니 어찌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말기의 환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죽음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절실함이 세계의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니 더욱 박수를 쳐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내용들을 한 마디로 간추려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는 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메시지에 그만 눈동자와 심장까지 멈추며 숭고함을 느끼는 듯했다. 제대로 산다는 것이 곧 죽음을 생각해보는 일과 같다는 메시지와도 통하면서 중요한 삶의 깨달음과 방향을 얻은 느낌이었다.
삶의 이면은 죽음, 또 죽음의 이면은 삶이라고 하듯이, 우리는 삶의 마무리에 죽음을 두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어감을 의미있게 맞이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염두에 두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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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왠지 금기시되고 있는 듯한 '죽음'에 관한 소재를 조금 더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죽음'을 어두운 것, 무거운 것, 입 밖에 함부러 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 힘들어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많은 환자들과 환자들의 가족을 만나 상담하면서 과연 '인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이며, '인간다운 죽음'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고 여가 생활을 즐긴다. 안정된 의식주를 바탕으로 하여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든지, 취미 생활을 한다든지 여러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 받는다. 사람들에게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저자가 말한대로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라 여기기 때문에 '인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와야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인간다운 죽음과 죽어감'을 생각한다 해도 실행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이런 소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환자에게 삶을 강요하고, 그것이 '윤리'인양 생각한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를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직업 윤리'에 매달려 있고, 환자의 가족은 환자를 떠나보내고 이 세상에 남아야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극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또는 환자의 죽음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윤리 때문에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인간답게' 죽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환자와 함께 나누고,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 시간만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아무런 삶의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복잡한 기계들을 온 몸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는 것이 과연 환자를 위하는 일인지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죽음으로서 안식을 얻고자 하는 환자는 자신에게 삶을 강요하는 가족과 의료진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환자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한대도 불구하고 적절한 의료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나, 우리가 금기시하는 '죽음'을 계속 금기시함으로써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책이 의미있는 이유는 터부시되는 소재를 과감하게 짚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수면 밖으로 끌어냄으로써 그것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들, 환자와 환자 가족들 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소재에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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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우 실질적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도 막연하고, 너무나도 먼 곳에 있지만, 실상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서 저마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겪게 될 필연이며, 이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과 상황이 매우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죽음이란 이 처럼 개인 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하지만, 이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공통분모로 삼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죽음의 5가지 단계와 각 단계 별 부정과 고립,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감정들을 살펴 보고 이를 체계화 시켜 나간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인생수업]의 저자로도 유명하며, 죽기 직전 까지 30년 이상 죽음을 연구하며 궁긍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밝히고자 노력 했다. 그녀는 말기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이 과정에서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며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심리적 변화 뿐 아니라, 그들의 주변을 지키는 가족들과 의사, 간호사, 성직자들과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심리 상태 까지도 철저하게 감정 이입을 통해 이해하려 노력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환자 당사자는 물론이요, 그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압박감과 정신적, 물질적인 부담의 요인들 까지도 모두 자연스럽게 해방하고, 이들의 내적 갈등과 심리적 모순들을 모두 인간적인 감정으로 너그러이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은 "혼자 왔다 혼자 떠나야 하는" 외로운 숙명을 타고난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을 어루만져 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듯 하다. 현대 의술의 발달은 어찌보면, 육체적인 병은 과거 보다 더 많이, 훨씬 더 능숙하게 치료해 주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적인 병에는 그다지 큰 개선의 효과가 없어 보인다. 가끔은 이런 의술의 발달이 지나치게 냉혹하고 차가워 보여 야속할 때도 많고, 오히려 마음의 병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반감마저 들 때가 많다. 제약회사와 의료장비 회사의 리베이트 관행으로 부풀려진 거액의 치료비는 점점 더 환자와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넓히며, 마음의 병을 키워가고 있다. 요즘 TV광고에서 유행 처럼 번지고 있는 상조회 선전 역시, 내 개인적으로는 매우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상처와 고독을 진정으로 어루 만지고, 행복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온기를 빼앗긴 채 편이성만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의 기계적 시스템 환경에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가끔은 공포 스럽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따스한 품에 둘러싸여 맞이했던 과거의 아날로그식 죽음의 장면이 아득하고 그리워 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반적으로 매우 느린 전개 속도를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이런 모습들을 통해 점점 더 옛스러운 죽음의 풍습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내 경우 일년에 한 번 건강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찾으며 매년 느끼는 거지만, 요즘의 초대형 최신식의 종합 병원에선,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접받기 보다는 마치 기계적인 검진 장치의 한 부분이 되어 비인간적으로 기계 부품 처럼 다루어지는 듯한 불쾌감과 왠지모를 두려움에 다시는 건강검진 따위는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의료진 모두 하나 같이 잘 훈련된 로봇 같은 느낌으로 그들의 일을 척척 진행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정한 배려와 따뜻함을 아쉬워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 까지 하다. 신체 건강한 나 조차도 현대적인 의료 시설의 세련된 외양과 그 속에서 지나치게 프로페셔널하여 기계적이기 까지한 전문직업인들의 모습에 오히려 심신이 피로를 느끼는데, 하물며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그로인해 정신력 까지 나약해진 환자들의 경우, 이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더 가혹하게 느껴질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저자도 이와 같은 염려를 이 책 곳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염려 분 아니라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도 보여준다. 우리가 위험을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위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도록 이 책을 통해 돕고 있다. 또한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 기도하는 대신, 그 고통을 이겨낼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진심어린 배려를 하고 있다. 단순히 삶의 저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선택하고 읽게된 나는 오히려,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 역시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인간 삶의 엄연한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