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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었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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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지난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지도 어언 반 세기가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은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양국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독도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과거를 해석하는 각기 다른 시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청산. 어쩌면 우리에게 지난 날의 아픔이란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신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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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인 지난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지도 어언 반 세기가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곳곳은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양국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는 독도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과거를 해석하는 각기 다른 시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청산. 어쩌면 우리에게 지난 날의 아픔이란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신뢰할 수 없었노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애초부터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바라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으니, 그와 같은 감정은 왜곡된 역사 의식을 갖고 있는 몇몇 일본인들을 향한 것이기 보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창씨개명이라 하였을 때 우리는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간단히 인식할 뿐 그 이상을 알지 못한다. 교과서마저도 일제는 우리들의 이름마저도 일본식 성(姓)과 명(名)으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강요했다라는 식의 간략한 설명을 수록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허술한 설명만으로 창씨개명과 관련된 복잡한 견해에 대해선 알 길이 없음은 당연하다.   

 

유래 조선인에게는 혈족단체의 명칭으로 이나 박과 같은 성은 있지만, 일본 고래의 이에의 칭호인 씨라는 것이 없다. 그리하여 일가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각각 다른 성을 사용하는 등 우리나라 고래의 풍습과 일치하지 않는 바가 있다. 그래서 반도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혈통중심주의에서 탈각하여 국가 중심의 관념을 배양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체의 본의에 철저하도록 한다는 취지 아래, 금년 황기 2600년(1940)의 기원절을 계기로 하여 씨를 짓는 것을 허용하게 됐다.

-미나미 지로, [조선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킹}, 1940년 10월호  (p76-77)

 

창씨개명이라고 우리는 흔히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는 창씨개명이라는 독자적인 두 단어의 만남이다. 실제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취했던 정책 역시 씨를 새로 만드는 것[創氏]과 명을 바꾸는 것[改名]의 두 가지였다. 전자는 의무이고 신고를 해야만 했던 반면, 후자는 임의이고 허가를 받는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양자는 동일한 것일 수 없다. 실제로 이 책에 의하면 신고 기간 동안 씨를 신고한 경우는 약 80%였던 반면 이름을 바꾼 것은 10%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묶어 창씨개명이라 일컫는 것은 두 가지 모두가 일제의 제국주의 강화 책략이었기 때문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바로 창씨개명을 둘러싼 일제의 이중적(?)인 태도에 관한 기술이었다. 제국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면전을 앞두고 일제는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했다. 단순히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많다 하여 그 군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사지(死地)에서 혼신의 힘을 발휘해 제국주의의 기치를 수호할 수 있는, 이름의 변경은 통일된 군대를 만들기 위한 책략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일제는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일본인이고 조선인은 조선인이어야만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조선이 일본과 하나 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인은 여전히 조선인보다 높은 지위를 유지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생김새만 보아서는 완벽히 구분되기 힘든, 그렇기에 조선인은 완전히 일본인과 같은 형태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가부장적 질서를 천황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로 재편해야 했던, 그랬기에 창씨개명은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차원일 수가 없었다.

 

무엇이건 억지로 행하려 들면 되지 않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칼날을 앞세우고 사회의 가장 근간이라 볼 수 있는 가족제도에의 변화를 꾀했던 일제의 정책 역시 표면적으로는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기층에 완벽히 파고들지 못했다. 창씨개명을 한 이들 역시 자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을 막고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에 동참했던 경우도 있으니, 그들을 모두 싸잡아 친일파라 일컫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만, 이는 우리의 서글픈 역사를 대변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음에 틀림 없다. 이름을 잃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 우리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짓는다 하여 우리가 곧바로 미국 체제에 편입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조선을 잃고 일본의 귀퉁이마저도 되지 못한 그 당시 사람들의 공중에 붕 뜬 삶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사건보다도 큰 불행이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q*****2 2008.11.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