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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을 꼼꼼하게 독파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무수한 인물, 사건 그리고 인문학적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풍성한 즐거움이 있다. 승자와 패자, 간신과 영웅이 서로 얽히며 등장하고, 전란병란의 고통이나 정물에 빗대어 개인의 심사를 노래한 고풍스런 시의도가 눈길을 끈다. 마치 부시맨이 콜라병 구경하는 듯한 신기함과 유쾌함마저 깃든다. 역사는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고 문학은 사람을 인간답게 만들고 철학은 사람을 실천하게 만든다. 《중국을 말한다》는 중국의 문학/역사/철학을 좋아하는 이가 읽어볼 만한 백과사전이다. 거의 멸종될 위기에 처해있던 백과전서파로 대변되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인터넷상의 유동하는 대중지식인들에 의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백과사전에 대한 탐독이 어쩌면 이 시대에 부합하는 유행모드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 소개하는 《중국을 말한다 10: 변화 속의 천지》는 당 후기와 5대10국을 논한다. 당 후기는 12대 대종부터 시작한다. 대종 이예→덕종 이괄→순종 이송→헌종 이순→목종 이항→경종 이담→문종 이앙→무종 이염→선종 이침→의종 이최→희종 이현→소종 이엽→애제 이축의 순이다. 당 멸망의 원인으로 절도사의 발호와 번진할거, 농민봉기 (왕선지와 황소의 난), 환관의 권력독점과 횡포, 우이당쟁 등을 꼽을 수 있다. 907년 당나라를 대체한 주온朱溫이 후량을 세우고 조광윤이 북송을 세우기까지 50여년간 북방 황하 유역은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5개 왕조를 거쳐왔는데 이를 역사상 5대라고 한다. 이 시기 진령과 회하 이남 지역에서는 전촉前蜀˙오吳˙민閩˙오월吳越˙초楚˙남한南漢˙남평南平˙후촉後蜀˙남당南唐 등 9개의 할거 정권이 출현했고, 지금의 산서 일대에 있던 북한北漢까지 합치면 10국이 된다. 이를 합쳐 5대10국이라 한다. 백과사전을 읽는 여러 독법이 있겠지만 나는 문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려 한다. 우선 중당의 대표적 문인을 소개해본다. 먼저 한류韓柳로 병칭되는 한유(韓愈,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773~819)은 고문운동의 창도자다. 고문운동은 도주문말道主文末이나 인문입도因文入道를 주장하며 당시 수사와 장식에만 치중한 변문을 비판한다. 한유는 자가 퇴지退之이고 이부시랑吏部侍郎을 지냈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으로 당송팔대가의 일인자이다.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 사람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맹현 서쪽 사람이다. 811년에 〈진학해進學解〉를 발표하여 명성이 드높았다. 이 글은 학자의 자세로 학업에 정진함과 꾸준한 덕행에 힘 써야 하는 것을 강조하며, 정치적으로는 불우한 생을 보냈던 성인인 맹자와 순자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처지를 묵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훗날 송대 문인 소식은 한문공을 이렇게 평했다. 「그의 문장은 8대에 걸쳐 쇠퇴한 산문을 중흥시켰고文起八代之衰, 그의 치도는 천하의 탐닉을 구제했고而道濟天下之溺, 충심은 군왕의 노여움을 샀고忠犯人主之怒, 용맹은 삼군의 원수에 필적했다而勇奪三軍之帥.」 유종원은 자가 자후子厚이고 하동 하현, 지금의 산서성 운성 사람으로 사람들은 그를 유하동柳河東이라 불렀다. 유우석(772~842)과 함께 왕숙문 집단에 참여하여 환관과 번진 할거세력을 반대했다. 실패한 뒤 영주사마로 좌천되어 10년이나 머물게 되었다. 이 때 우계愚溪정원을 짓고 어리석을 우愚자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팔우시八愚詩〉와 〈우계대愚溪對〉를 지어 자기가 영원히 투기하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음을 비유했다. 그리고 유명한 유람기 《영주팔기永州八記》를 펴냈는데, 809년에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고무담기鈷鉧潭記》《고무담서소구기鈷鉧潭西小丘記》《소석담기小石潭記》를, 812년에 《원가갈기袁家渴記》《석거기石渠記》《석간기石澗記》《소석성산기小石城山記》를 썼다. 늙은 어부라는 유명한 고체시 〈어옹漁翁〉과 고고한 성격을 드러낸 〈강설江雪〉도 우계에서 생활할 때 지은 시다. 〈어옹/유종원〉 어옹은 지난밤 서산의 바위 밑에서 잠을 자고 날이 밝자 상강湘江의 물을 길어 초나라 대나무로 밥을 짓네. 연기 가시고 해가 떴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노 젓는 소리 속에 산수는 더욱 푸르구나. 강물 따라 고기배 타고 되돌아보니 기암 위의 구름송이 무심하게 뒤따르네. 漁翁夜傍西巖宿 어옹야방서암숙 曉汲淸湘燃楚竹 효급청상연초죽 燃銷日出不見人 연소일출불견인 欸乃一聲山水綠 애내일성산수록 回看天際下中流 회간천제하중류 巖上無心雲相逐 암상무심운상축 〈강설/유종원〉 첩첩산중에는 나는 새의 모습 사라지고 갈래갈래 오솔길에는 행인의 종적이 끊겼는데 외딴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노옹이 눈 내리는 강물 위로 홀로 낚싯줄 드리웠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萬徑人踪滅 망경인종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원백元白으로 병칭되는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원진(元稹, 779~831)은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의 제창자다. 이들은 민중언어에 가까운 평이한 표현으로 시대의 폐단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현실주의적 시풍을 선보였다. 백거이는 자가 낙천樂天이고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과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상규上邽, 지금의 섬서성 위남 사람이다. 현존하는 작품 수는 3800여 수로 당대 최고의 다작을 자랑한다. 그의 시학 정신은 〈여원구서與元九書〉에서 잘 드러나는데 「문장은 시대에 부합되게 쓰고文章合爲時而著, 시가는 현실에 부합되게 지어야 한다歌詩合爲事而作」고 주장했다. 대표작은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과 이별을 노래한 칠언고체시 〈장한가長恨歌〉와 정신적 박해를 받고 능욕을 당하는 가기歌妓를 빌려 자신의 심사를 대변한 〈비파행琵琶行〉이다. 당시 집집마다 읊은 〈장한가〉의 명구는 바로 마지막 구절이다. 「헤어질 즈음 은밀히 간곡히 다시 건네는 두 마음만이 아는 그 맹세의 말.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천지가 영원타 해도 다할 때가 있지만 이 기나긴 한 끊을 날은 없으리.」 臨別殷勤重寄詞 임별은근중기사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아울러 삼척동자도 아는 〈비파행〉의 명구도 소개해본다. 바로 동시천애윤락인同是天涯淪落人, 상봉하필증상식相逢何必曾相識으로, 「모두 다 하늘가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 만남에서 어찌 알던 사람 모르던 사람을 따지리오」란 뜻이다. 원진은 자가 미지微之이며 하내河內, 지금의 하남성 낙양 부근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60년 전쟁으로 고통받는 농가(農家)의 한을 쓴 〈전가사田家詞〉와 백거이의 장한가에 필적하는 장편 서사시 〈연창궁사連昌宮詞〉 등이 있다. 그는 애정전기 《앵앵전鶯鶯傳》의 저자로도 유명한데 최앵앵崔鶯鶯과 장생張生이 서로 사모하다 여비의 중매로 미래를 약속하는 이야기다. 「천하의 모든 연인들이 서로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원대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는 바로 《앵앵전》에서 그 소재를 빌린 것이다. 이제 만당으로 넘어오자. 만당의 대표적인 유미주의 시인으로는 작은 이백과 작은 두보란 의미로 소이두小李杜라 불린 이상은(李商隱, 812~858)과 두목(杜牧, 803~852)이 있다. 이상은은 자가 의산義山이고 호는 옥계생玉谿生이다. 회주 하내河內, 지금의 하남성 심양 사람으로 애정시를 잘 썼다. 만당 때의 당쟁은 개인원한과 문호투쟁의 범위를 벗어나 조정의 정사를 어지럽혔다. 당시 이덕유(李德裕, 787~580)의 이당李黨과 우승유(牛僧孺, 779~847)의 우당牛黨간에 권력투쟁이 치열했는데 이상은도 그만 우이당쟁에 휘말린다. 젊은 때 우당에 속한 천평군 절도사 영호초令狐楚의 눈에 들어 진사가 되었지만 나중에 이당에 속하는 경원 절도사 왕무원王茂元의 사위가 되었다. 우당 인사들은 이상은을 배은망덕한 자라고 간주하였다. 「작은 태종」이라 불리는 17대 선종이 즉위하여 영호초의 둘째 아들 영호도를 재상으로 승진시킨다. 우당이 재집권하자 이상은은 당쟁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데, 훗날 〈안정성루安定城樓〉에서 자기와 동병상련인 양한의 가의賈誼와 왕찬王粲을 떠올리며 소인배를 조롱하고 유랑 중인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다. 〈안정성루/이상은〉 아득히 높은 백 척 높이의 성루에 오르니 푸른 백양나무 너머 모래밭이 내려다보이네. 젊은 가의는 헛되이 눈물을 흘렸고 왕찬은 봄이 왔어도 더 멀리 떠돌았네 강호를 항상 그려 돌아오니 머리만 희어지고 천하에 다시 돌아오려 쪽배에 몸을 싣네 너희야 썩은 쥐를 맛스레 먹을지 모르지만 봉황이 빼앗지 않을까 의심이 그치지 않네. 迢遞高城百尺樓 초처고성백척루, 綠楊枝外盡汀洲 녹양지외진정주 賈生年少虛垂淚 가생년소허수루, 王粲春來更遠游 왕찬춘래갱원유 永憶江湖歸白發 영억강호귀백발, 欲回天地入扁舟 욕회천지입편주 不知腐鼠成滋味 부지부수성자미, 猜意鴛雛竟未休 시의원추경미휴 두목은 자가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樊川으로 경조京兆 만년萬年, 지금의 섬서성 서안 사람이다. 그의 칠언율시가 두보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리우며 칠언절구에도 뛰어났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산행山行〉, 〈박진회泊秦淮〉등이 있다. 책은 〈금곡원金谷園〉과 〈양주 한작판관에 보냄〉과 〈적벽赤壁〉도 소개하고 있다. 〈산행/두목〉 먼 가을 산 비탈진 돌길을 오르니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네. 수레를 세우고 앉아 해 저무는 단풍 숲을 바라보니 서리 맞은 잎이 이월 꽃보다 더 붉구나.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박진회/두목〉 안개가 차가운 강물을 뒤덮고 달빛이 모래톱을 뒤덮고 늦은 밤 진회강에 배를 대니 술집이 지척이네 술 파는 여인은 망국의 한을 모르는 듯 강 건너에서 여전히 「후원의 꽃」을 노래하네 煙籠寒水月籠沙 연롱한수월롱사, 夜泊秦淮近酒家. 야박진회근주가 商女不知亡國恨,상여부지망국한, 隔江猶唱後庭花. 격강유창후정화 권불십년權不十年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대변하듯, 무너지지 않는 불사의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907년 주전충은 후량 정권을 세우고, 차례로 중원지역에 5대(양당진한주)와 서촉강남영남하동에 10개 정권으로 분립되었고 이를 합쳐 5대10국이라 한다. 5대10국 시기의 문학자로는 칠언고시 〈진부음秦婦吟〉과 〈보살만菩薩蠻〉으로 유명한 위장을 비롯한 화간사인花間詞人이 유명하다. 후촉 문인 조승조가 편찬하고 구양형歐陽炯이 서문을 지은 《화간집花間集》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만당부터 5대에 이르는 시기의 온정균(溫庭筠, 812?~870)˙위장(韋莊, 836~910)˙황보송皇甫松 ˙우교牛峭 ˙손광헌(孫光憲, 900~968) 등 18명의 500여 작품을 수록했다. 내용은 주로 풍화설월의 남녀 애정이야기이고 여성의 말씨로 서정을 표현했는데 대체로 유연하고 아름답다. 〈보살만/위장〉 사람마다 강남이 좋다 하는데 나그네는 오직 강남에서 늙어야 하리. 봄물은 하늘보다 푸르고 꽃배는 비소리를 들으며 잠드네. 술집 사람은 달덩이 같고 흰 팔목은 눈서리 엉긴듯. 늙기 전엔 고향에 돌아가지 마소, 고향 가면 구곡간장 다 끊기리. 人人盡說江南好 인인진설강남호, 遊人只合江南老 유인지합강남로. 春水碧於天 춘수벽어천, 畫船聽雨眠 화선청우면. 壚邊人似月노변인사월, 皓腕凝霜雪 호완응상설. 未老莫還鄉 미로막환향, 還鄉須斷腸 환향수단장. 온정균 이후 사詞를 쓰는 문인이 많아져 5대10국 시대에는 절정을 이루었다. 〈우미인虞美人〉으로 유명한 남당 후주 이욱(李煜, 937~978)이 특히 유명하다. 남당 이경李璟의 여섯번째 아들로, 자가 중광重光, 호는 종은鍾隱이다. 군주로서 치국에는 무능했지만 서예, 회화, 시문에 능했다. 특히 사에 뛰어나 후세 문인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작품이 《남당이주사南唐二主詞》에 실려있다. 송나라에 투항한 후 송 태종 조광의에게 독살당했는데 이 시기에 지은 〈우미인〉은 망국의 애통함과 죄수의 고통을 진정성있게 표현했다. 〈우미인/이욱〉 봄 꽃과 가을 달은 언제면 지려나 옛일은 얼마나 기억하는가 어젯밤 작은 누각에 동풍이 또 불었건만 밝은 달 아래 고국 쪽 바라보기 민망쿠나 화려한 난간과 옥 섬돌은 여전하겠지 변한 건 다만 그대 얼굴뿐 묻노니 그대 시름은 얼마나 되는가 동쪽으로 흐르는 봄 강물만큼 되는가. 春花秋月何時了 춘화추월하시료 往事知多少 왕사지다소 小樓昨夜又東風 소루작야우동풍 故國不堪回首月明中 고국불감회수월명중 雕欄玉砌應猶在 조란옥체응유재 只是朱顔改 지시주안개 問君能有幾多愁 문군능유기다수 恰是一江春水向東流 흡시일강춘수향동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