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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인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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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토인비가 그랬던가? "내가 만일 중국에 태어날 수 있다면, 송나라 시기에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롭던 때였다.    흔히 송나라는 허약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요나라와 서하, 금나라 및 세계 최강대국인 몽골에 맞서 무려 313년 동안이나 버텨온 송나라의 역사를 본다면, 결코 나약하다고 말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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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놀드 토인비가 그랬던가? "내가 만일 중국에 태어날 수 있다면, 송나라 시기에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롭던 때였다.

 

 흔히 송나라는 허약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요나라와 서하, 금나라 및 세계 최강대국인 몽골에 맞서 무려 313년 동안이나 버텨온 송나라의 역사를 본다면, 결코 나약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송나라보다 더욱 넓은 영토를 지녔던 한나라의 인구는 6500만 내외였고 그보다 더 컸던 당나라의 인구도 5600만 정도에 머물렀던 것에 반해, 송나라의 인구는 무려 1억이 넘었다.

 

 더구나 산업 혁명 시기의 유럽보다 7백년이나 앞서서 석탄(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불타는 돌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동방견문록이 당시 중국 사회 내부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드러낸다)을 대량으로 사용했고, 철강 생산량과 조세의 수익 규모가 후대의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훨씬 높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내적인 발전에서 송나라는 역대 중국 봉건 왕조들 중에서 최고였다.

 

 이런 송나라의 특성은 불필요한 대외 군사 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대신 경제와 문화 발전에 국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송나라의 국정 운영 방향으로 인한 것이었다.

 

 <중국을 말한다> 시리즈 11권에서는 북송과 남송으로 나눠지는 송나라의 역사를 재미있고도 실감나게 들려주고 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당나라의 휘황찬란한 역사를 그린 9권과 10권보다 이 11권의 내용이 더욱 재미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환타지 소설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그의 작품인 <창룡전>에서 극찬했던 송나라의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x***2 2010.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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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중국을 말한다11—송(960년~1279년)
"[서평]중국을 말한다11—송(960년~1279년)" 내용보기
송나라 사람들은 문을 중시하고 무를 경시한 평화주의자다. 북송의 세계표는 태조 조광윤→태종 조광의→진종 조항→인종 조정→영종 조서→신종 조욱→철종 조후→휘종 조길→흠종 조환의 순이다. 남송의 세계표는 고종 조구→효종 조신→광종 조돈→영종 조학→이종 조윤→도종 조기→공제 조현→단종 조시→조병의 순이다. 왕안석의 변법과 송대 문학을 중점으로 정리해본다. 송의 문
"[서평]중국을 말한다11—송(960년~1279년)" 내용보기

송나라 사람들은 문을 중시하고 무를 경시한 평화주의자다. 북송의 세계표는 태조 조광윤→태종 조광의→진종 조항→인종 조정→영종 조서→신종 조욱→철종 조후→휘종 조길→흠종 조환의 순이다. 남송의 세계표는 고종 조구→효종 조신→광종 조돈→영종 조학→이종 조윤→도종 조기→공제 조현→단종 조시→조병의 순이다.

왕안석의 변법과 송대 문학을 중점으로 정리해본다. 송의 문화적 특색은 성리학과 선종禪宗의 대두, 산문과 사의 흥기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다. 산문으론 당송팔대가 가운데 여섯 명이 모두 북송사람으로 구양수(歐陽修, 1007년~1072년), 증공(曾鞏, 1019~1083), 왕안석(王安石, 1021~1086), 소순(蘇洵,1009년 ~ 1066년), 소식(蘇軾, 1037년~1101년), 소철(蘇轍,1039년 ~ 1112년)이 있다. 송시는 선종과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생에 대해 음미하는 철학적 성향이 강하고, 쓸데없는 수식이 없다. 섬세한 관찰과 개성적인 표현을 중시하였으며 내용은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두드러진다. 화려한 묘사의 당시에 비해 송시는 이지적이고 심원한 품격이 있다. 사로는 유영(柳永,990?~1050?)의 만사慢詞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구양수는 자가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 익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문운동의 영수이며 그의 고문은 명도치용明道致用론을 근거로 도통과 문통의 통일을 기했다. 송가와 함께 《신당서》를 편찬했고 독자적으로 《신오대사新五代史》를 편찬했다.

증공은 자가 자고子固로 강서성 남풍 출생이라서 남풍선생南豊先生이라 불린다. 그의 글은 전아하고 평실하다.

왕안석은 자는 개보介甫이고 호는 반산半山이다. 신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왕안석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15년간 희녕변법을 추진했다. 당시 정세를 보면 송은 요와 서하와의 군사적 대치로 인해 군비와 세비가 증가했고, 모병제가 확대되고 관리조직은 비대화되고, 정치기구간 서로 소통이 불량한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개혁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부패를 조장했다. 사마광, 구양수, 소순, 소동파를 비롯한 수많은 구당파 인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부국강병을 위한 왕안석의 개혁방안은 크게 네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농민에 대한 저리금융정책인 청묘법(춘궁기에 정부가 농민들에게 전곡을 빌려주면 농민들은 추수 후에 본전에 이자를 보태 갚는 제도)과 농전수리법이다. 둘째로 재정개선을 위한 방전균세법(전토를 정확히 측량해 공정한 조세 부담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이다. 셋째로 농촌 현실과 재정 상황을 감안한 균수법(수요에 적합하지 않은 지방의 실물진상을 금지하고 중앙의 재정관이 도성과 시장의 수요를 조사해 필수품을 매입하게 하는 방법), 시역법(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고 정부에서 발급하는 화폐를 쓰며, 물가를 조절하고 상인에게 대여해 준 정부의 돈을 갚지 못하면 그 사업을 몰수하는 등의 조치), 면행법(상점에 실물이나 인력을 징수하는 것을 중지하고 대신 면행전을 징수하는 방법), 모역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력 증강을 위한 치장법(장군의 임의적인 병사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시행되었던 기존의 경술법을 폐지한 제도), 보갑법(농가 열 집을 한 보保로, 열보를 한 개의 대보大保로, 열대보를 한 개의 도보都保로 조직해서 농한기에는 군사훈련을 받고 밤에는 치안을 유지하는 방법), 보마법(민간에서 군마를 기르게 하여 군마의 수효를 확대한 방법)이다.

소순은 자는 명윤明允이고 호는 노천이다. 그의 글은 고고하고 간경한 것이 특징이다.

소식은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 부른다. 지금의 사천성에서 태어났다. 유불선 모두 능통하고 우주와 인생의 심오한 이치를 터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소동파의 일생은 중국 독서인의 입세와 출세에 대한 전형을 보여준다. 입세入世란 벼슬길에 올라 관리가 되어 국가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고, 출세出世란 세속적인 공명의 삶을 떠나 은둔소요하는 재야의 삶을 사는 것이다.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귀거래사를 읊으며 귀향했던 도연명이 출세의 가장 대표적인 모범이 되고 소동파가 바로 그 뒤를 잇는다.

〈삼유동에 노닐며遊三遊洞/소식〉


진눈깨비 부슬부슬 반은 눈 되어 내리는데
노니는 사람의 신은 차고 푸른 벼랑은 미끄럽네.
기꺼이 이불 안고 가서 바위 밑에서 자려고 하니
동굴 어귀에 구름 짙어 밤에 달을 볼 수 없다네.

凍雨霏霏半成雪동우비비반성설
遊人屨冷蒼崖滑유인구랭창애활
不辭携被巖底眠불사휴피암저면
洞口雲深夜無月동구운심야무월

〈정풍파定風波/소식〉

숲을 지나며 나뭇잎 때리는 비바람소리 듣지 마라.
노래를 흥얼대며 천천히 간들 어떠하리.
죽장에 짚신이 말보다 경쾌한데
무엇이 두려우랴.
한평생의 비바람에도 도롱이 하나로 버티리라.
서늘한 봄바람에 취기가 가시니
조금 쌀쌀하구나.
산마루에 지는 땅거미 나를 반기고
고개 돌려 비바람 치던 곳을 바라본다.
집으로 돌아가세나.
비바람도 그치고 날도 어스레하니.

莫聽穿林打葉聲,
何妨吟嘯且徐行。
竹杖芒鞋輕勝馬,
誰怕?
一蓑煙雨任平生。
料峭春風吹酒醒,
微冷,
山頭斜照卻相迎。
回首向來蕭瑟處,
歸去,
也無風雨也無晴。

소철은 자는 자유子由, 호는 영빈이다. 소순의 아들이며 소식의 아우이다. 그는 정의를 사랑하고, 언제나 남의 의견을 존중하였으며, 고문학자로서도 이름을 널리 떨쳤다. 그는 불교의 영향이 짙은 작품을 썼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은일시인으로 임포(林逋, 967~1028)가 있다. 그의 자는 군복君復이고 시호는 화정선생和靖先生으로 매화와 학을 사랑해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불렸다.

송나라는 중국역사에서 조판인쇄가 흥성한 시대로 찍어낸 책의 양과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북송시대 4대 도서로 500권의 《태평광기》 (소설류), 1000권의 《태평어람》 (백과전서류), 1000권의 《문원영화》 (문학총집), 1000권의 《책부원구》 (역사류)가 있다. 모두 송 태종과 진종 시대 조신들이 편찬한 방대한 분량의 도서들이다.

z***a 2009.06.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