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F에서 괴테의 '파우스트'가 나왔다. '파우스트 한 작품을 위해 59년을 바친 괴테'. 천재라고 불리는 괴테가 반평생넘게 쓴 작품처럼 영원한 가치가 되겠다는 OO아파트 CF였다. CF속의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고전문학으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대작' 파우스트는 만만하게 읽을 수 없었다. 괴테가 활동한 시대의 문학적 특징일수도 있으나, 책의 내용자체가 연극상연을 목적으로 하는 듯한(연극대본과 같이 극중 인물의 행동묘사가 나와 있었다!) 책의 구성은 일반도서를 읽는 것과는 달라 낯설게 읽혔다. 사건이 극중 인물의 대화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대화내용의 이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였다. '파우스트'는 주인공 파우스트가 여행을 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바뀐다. 1부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계약'관계였다면 2부에서는 1부의 전개과 상관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즉,이름이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전혀다른 2개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개연성의 부족은 연극과 같은 상연위주의 공연에서는 내용이해에 치명적이다. 책을 다 읽었지만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줄거리조차 뒤죽박죽이니 책을 읽은 뒤의 감동(?)도 없었다. 결국 이기식 교수가 쓴 '파우스트' 해설을 읽고 이해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괴테의 '파우스트'가 문학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읽어야 하는 '고전'에 포함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다. '위대한 인물이 쓴 책은 위대할 것이다'라는 말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문학적 소양의 부족일 따름이다. 고전은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파우스트가 나에게 자신의 매력을 뽐낼 때까지 읽고 또 읽어야겠다. 다시 파우스트를 펼쳐 든다. |
|
#연말리뷰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신과 악마의 내기의 소재가 된 파우스트가 구원 받는 이야긴데 악마의 이름은 그 유명한 메피스토 펠레스다 악마가 소원을 들어주고 영혼을 거두어 간다는 부류의 이야기는 여럿 존재하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 괴테의 파우스트 아닐까 싶다 줄거리를 요약해볼까 했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세세히 풀어 쓸 필요는 없어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넘어갈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의 배경이되는 시공간 폭이 넓다면 정말 넓다 그 까닭에 등장인물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발푸르기스의 밤도 등장하고 언덕 위에서 마물들과 전투를 하는 모습 등등 현재 나오고 있는 여러 영화, 만화, 소설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설이 아닌 연극 대본이다보니 괄호가 쳐진 배경 설명이라거나 인물이 말하는 대사가 헛갈리지 않아서 색다른 느낌으로 읽을 수 있고 각 장면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심상화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연말리뷰 #괴테 |
|
파우스트는 내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쉬운 소설만 읽어왔던 나에게는 생각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며 읽는다는 것이 생소했다. 더군다나 희곡은 처음 접해보는 장르이기도 해서 말투나 전개방식이 익숙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쓰게 될 글의 양분이 될 책을 허투루 읽을 수 없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사, 신화, 과학, 신학 등 여러 분야의 배경지식들이 다양한 문학적 표현 기법 속에 녹아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기에,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는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명작을 두고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또한 괴테는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가진 천재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천재가 무려 36년에 걸쳐서 쓴 작품을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내가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여러번 읽고, 또 여러번 생각해 본 뒤에야 조심스럽게 리뷰를 적어본다.
파우스트는 비극 1부, 2부로 나뉘어있다. 대략의 줄거리로는 비극 1부의 앞부분인 천상의 서곡에서 메피스토펠레스와 주님은 내기를 한다. 그리고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모든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겠다고 꾀어내어 내기를 한다. 이에 파우스트는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라고 하면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기로 한다. 이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마르가레테)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녀를 임신시킨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의 오빠를 죽여 살인자가 되어버리고, 그레트헨은 절망에 빠져 아기를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아 감옥에 갇혀있다. 이 소식을 들은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구하려 하지만, 그레트헨은 이를 거절하며 죽는다. 그리고 그레트헨은 구원받는다.
2부의 내용은 파우스트가 잔디밭에서 깨어나 궁정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파우스트는 궁정으로 가 황제를 도와주며 신임을 얻게 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재촉해 헬레네와 파리스를 현실 세계로 데려오는데, 헬레네에게 반한 파우스트는 헬레네를 쫓다 열쇠를 파리스에게 갖다 대며 기절한다. 기절한 파우스트의 곁에는 비극1부에 나왔던 제자 바그너가 대학자가 되어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은 파우스트를 헬레나에게 데려가라고 한다. 그리스에 간 파우스트는 헬레네와 결혼을 하고, 곧 오이포리온이 태어나지만 죽게 되자 헬레네는 저승으로 되돌아간다. 이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보상받은 광대한 영토를 개간하여 행복한 나라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 중에 악령의 입김으로 파우스트의 눈이 멀게 되지만 개간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파우스트가 개간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제로 메피스토펠레스가 악령들을 모아 파우스트의 무덤을 파고 있었던 것으로 이를 모르는 파우스트는 개간 작업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고 “멈추어나, 넌 참 아름답구나.” 라고 외치며 쓰러져 죽는다. 이후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뺏으려 하자 천사들과 구원받은 그레트헨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구원한다.
이 줄거리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내기’이다. 하느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두 가지 내기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첫 번째 내기가 나오는 천상의 서곡에서 주님(하느님)이 인간이란 노력하고 있는 동안은 방황하는 존재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왜냐하면 이 언급을 통해 파우스트가 나중에 구원을 받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기에는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그레트헨을 임신시키고, 그녀의 오빠를 죽이고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그래놓고도 2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활동하며 땅을 개간할 때, 오두막에 살던 일가를 불에 태워 죽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행동들을 볼 때 건전한 상식 내에서는 파우스트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행동에 합당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파우스트가 그동안 행했던 나쁜 행동들을 그가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방황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와 자식을 죽였던 그레트헨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파우스트는 노력하는 인간이다. 파우스트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비극 1부 초반의 제자 바그너와의 대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반면 메피스토펠레스는 쾌락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허무주의이다. 파우스트가 죽고 난 후 지나간 것과 전혀 없다는 것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며, 영원한 공허가 좋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다른 두 주인공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노력하는 인간인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여러 가지 나쁜 행동을 저지르지만 결국 파우스트가 그렇게도 원하던 ‘신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이며 그 모든 방황들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널리 읽혀질 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 고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단박에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곁에 두고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며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
|
♣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 한 마디로 어렵다. 그 넓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도 없을 만큼 이 책은 심오하다. 얼마나 어려운지 읽으면서도 글자만 읽는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내가 읽은 책중에 가장 어려운 책으로 기억남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괴테는 <파우스트>를 21세때 집필하기 시작하여 그가 59세 되던 해에 완성했기 때문이다. 문학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작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우스트>는 괴테와 함께 역사한 작품이다. 36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집필해서 그런지 약간 내용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도 들고, 구성 자체가 복잡해서 그런지 쉽게 맥을 잡을 수 없어 책 읽기가 난해했다. 작품 해설에 의하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이에 따라 작가의 예술관 및 세계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1부는 질풍노도기에 쓰였고 2부는 고전주의 시기에 쓰였기 때문에 더욱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암튼 내가 읽은 <파우스트>는 너무 어려웠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괴테는 과연 천재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실존인물로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까지 독일 남부 지역에서 활동한 의사이면서 점성술사 및 마술사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갑자기 죽자 악마가 그를 데리고 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파우스트의 이런 재미있는 생애는 시대마다 작가들을 자극하여 문학으로 재탄생되어왔다. 괴테와 파우스트의 인연은 10살 때 인형극을 관람하면서 처음 파우스트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민중본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를 통해 책으로 읽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괴테는 21세가 되던 해에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지상에 사람들의 숭앙을 받고 신을 앙모하는 파우스트라는 박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천상에서 주님(성령)과 메피스토펠레스(악령)가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욥을 놓고 내기를 하듯 악마는 파우스트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책의 마지막을 예언하며 ‘착한 인간은 암흑의 충동에 쫓기더라도 결코 올바른 길을 잊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잠시 성경으로 돌아가 시험에 관련된 성구를 보면 <약1:12~15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의 가슴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산다. 아마 파우스트의 채워지지 않은 가슴도 욕심이 자라 생긴 허허벌판일 것이다. 파우스트의 그 많은 대지는(가슴은)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 행복이요, 채워도 채워지지 않은 무저갱이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본래 끝이 없는 법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런 파우스트의 황량한 대지에 꽃을 피우고 인생의 즐거움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피의 언약을 하고 세상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하지만 술과 향락으로 즐거움을 얻지 못한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그레트헨을 만나게 된다. 비록 가난한 집안의 딸이지만 그녀는 귀품이 넘치고 품행이 단정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앞에 순결을 버리고 한때의 정열을 선택하게 된다. 사랑의 즐거움도 잠시 그레트헨은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여 사형이 내려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레트헨의 오빠 발렌틴은 파우스트에게 복수하러 갔다 도리어 파우스트 칼에 목숨을 잃게 되고 인간의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파우스트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연인 그레트헨에게 도망치자고 제안하지만 그레트헨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에서 돌아오는 자는 심판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내리신다. 사실 1부까지는 다소 이해하기 쉬웠으나 문제는 2부 부터였다. 괴테 자신도 작품에 대하여 말하기를 “1부는 거의 모두 주관적이죠. 그리고 정열적인 개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2부는 전혀 주관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2부는 정열이 전혀 없는, 더 높고, 더 넓으며, 더 광범위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2부는 문장 하나하나를 더듬어 가며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책의 영역이 개인에서 세계로 이어지다 보니 이해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1부에서 사랑하는 여인 그레트헨을 잃은 충격으로 잠시 쓰려졌던 파우스트는 새로운 마음으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파우스트는 그곳에서 황제의 기쁨을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녀 헬레나와 미남 파리스를 현실 세계로 데려온다. 정작 파우스트는 모든 남자의 로망 헬레나를 보자마자 깊은 사랑에 빠져 병이 들고 만다. 그는 벌써 헬레나에게 몸도 마음도 사로잡혀 헬레나를 얻지 못하면 살수 없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자신이 이제까지 찾고 찾았던 인생의 공허함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부에서도 보았듯이 인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허무하단 말인가! 뜨거운 사랑이 활활 타올라 마지막 불꽃마저 꺼지고 나면 재만 남은 게 사랑인 것을 왜 인간은 마치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마치 처음 사랑하는 사람처럼 망각하고 마는가! 결국 파우스트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 헬레나를 얻었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처음에는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게 행복했고 사랑이 무르익어 아이가 태어나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사랑은 둘만의 소유가 아닌 아이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이 사라지자 사랑도 끝이 나고 말았다. 헬레나는 마지막으로 파우스트에게 “행복과 아름다움은 영원토록 맺어져 있지 않다는 그 옛말이 섭섭하게도 이 몸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생명의 줄도, 사랑의 줄도 끊어지고 말았어요. 그 양쪽을 서러워하면서 나는 애절하게 이별을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어두운 나라로 사라지고 만다. 파우스트는 세상의 온갖 나라와 그 영화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맛보았지만 도통 마음에 끌리는 것이 없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무저갱과 같다. 부귀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기에게 없는 것을 느낄 때 인간은 불행하다 말한다. 전쟁의 승리를 이끈 보답으로 황제에게 해안의 광대한 영토를 보상받아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낙원을 건설하려 한다. 어떤 쾌락이나 행복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맸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더불어 살 때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라고 말해도 좋다는 고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고백은 인생의 최고를 맛본 순간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 주어도 좋다는 말이다. 그는 비로소 지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김으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며 인생의 끝을 맞이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죽자 자신이 내기에서 이겼음을 기뻐하고 그의 영혼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그때 천상에서 천사가 내려와 꽃을 뿌리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하는 말이 ‘누구든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주님도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를 할때 인간이란 노력하고 있는 동안은 방황하는 존재라 말을 한다. 어쩌면 파우스트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에서 완전한 신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쩌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나기 위해 그러니까 나비의 완성을 위해 거쳐야하는 애벌레와 번데기 과정처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최고의 순간 즉 지상의 흔적을 남김으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드높은 행복을 예감했던 것처럼 노년의 완성한 이 작품을 통해 괴테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17세기에 존재한 인물을 우리가 여전히 만날 수 있는 이유 역시 괴테의 흔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