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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 이상 겪었을 법한 경험.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님이 하루에 4개씩 한자를 외우게 했다. 천자문이었다. 첫날은 천지현황. 둘째 날은 우주홍황. 솔직히 나는 자신 있었고 암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이다. 우리 반은 마흔 명 남짓. 나를 제외한 마흔 명의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암기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 그들은 즐거울까.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난 원래 공부 못해]는 학교 교육의 획일성에 문제 제기를 한 장편 동화이다. 주인공은 공부는 죽어도 못하는 선우찬, 공부를 너무 잘하는 이진경―진경은 동화의 서술자이자 ‘나’로 나온다―그리고 생애 첫 발령을 받은 신출내기 교사인 정연희 담임선생님. 이렇게 세 명이다. 부임 첫날 담임선생님은 반 학생들에게 자신을 멋진 연희 샘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열정이 200% 충만한 그녀. 이때만 해도 아이들은 새로운 담임에 대한 기대와 호감이 아주 크다.
사건의 시작은 ‘오오오 작전’부터다. 영어 단어 다섯 개, 한자 다섯 개, 어려운 수학 문제 다섯 개를 매일 다 외우고 풀어야 한다. 공부 잘하고 책만 읽는 진경이에게는 문제도 아니지만 나머지 17명의 학생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반에서 1등 하는 미라도 낑낑댄다. 4학년인데도 구구단과 알파벳도 모르는 우찬에겐 넘을 수 없는 벽 그 자체다.
지쳐가는 아이들과 담임선생님. 참다 못한 진경은 선생님께 말한다. “아이들은 암기하는 로봇이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도 괜스레 시작한 일이 아닌 터. 그녀 역시 나름대로 의도와 생각이 있는 게 당연하다. “잘났다, 이진경! 다른 애들도 너만큼 똑똑해질 권리가 있다는 거 모르니? 난 선생님이야. 그리고 넌 학생이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 일이야. 너한테는 모르겠지만 다른 아이들한테는 내가 필요해.” 선생님의 대답.
선생님 말이 맞다. 사람은 누구나 똑똑해질 권리가 있다. 하지만 권리와 욕망은 다르다. 누구나 똑똑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박태환만큼 수영을 잘하고 박지성만큼 축구를 잘하고 김연아만큼 스케이트를 잘 탈 권리는 있을 터. 하지만 그러고 싶은 욕구는 딱히 없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리라. 그 어떤 권리는 있지만 그 모든 권리를 누리고 싶은지 어떤지는 각자 다르다.
다섯 개의 영어 단어와 한자와 수학 문제가 18명의 학생들에게 똑같은 무게와 깊이로 다가갈까. 어떤 아이는 축구를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데. 더구나 학과 공부와는 아무 연관도, 의미도 없는 단어와 한자에 아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보일지.
정연희 선생님이 가장 크게 간과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공부 잘할 권리가 있는 만큼 공부 못할 권리도 있다는 것. 어쩌면 공교육이란, 동일한 과제를 거쳐 모두 같은 결과물을 얻는 게 아니라 동일한 과제를 주되 서로 다른 결과를 모색하는 과정 혹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4학년 여학생의 시선으로 그려졌지만 한 사람의 의식의 흐름과 그 끝을 볼 수 있다. 깊이 있는 시선과 통찰, 꾸밈없이 솔직한 심리 묘사, 현실적인 사건 전개가 너무도 탁월하다. 정말이지 섬뜩할 정도다. 그만큼 진경의 서술이 날카롭고 묵직하다는 말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그랬다. 이 책이 딱 그 짝이다. 진경에게서 그리고 우찬에게서,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혹은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을 농밀하게 돌아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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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교에서 함께하는 우리반 아이들과 매일 집에서 아빠를 괴롭히는 인수, 서우를 생각나게 하였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산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행복을 얻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 공부라고 말한다. 그러면 공부 못하는 아이는 뭔가? 그들이 미래에 행복하고, 안 하고는 그들의 책임이라고 하자. 그러나 현재 그 아이들이 부딪혀야 하는 학교에서의 차별, 그리고 싫어하는 공부에 찌들어 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연희샘은 초임교사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우려는 열정이 많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연희샘의 오오오 작전에 의해서 금이 간다. 연희샘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똑똑한 아이를 만들고자 한다.
"멋진 연희 샘은 최대한 많은 관심을 여러분한테 쏟을 거야. 그래서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도시 아이들처럼 똑똑한 아이들이 되도록 할 거야." 똑똑한 아이들? 우리를 도시 아이들처럼 만들겠다는 거야? 좋은 말 같기는 한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행복, 학교, 아이들 - 이 책에 있는 중요한 말들이다. 동화는 사실과 다르다. 그래서 행복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은, 아니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어른들의 눈에 따라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현재 보이고 있는, 아니면 그들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의 재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행복해야되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20세기 근대적인 학교 - 대량 전달, 획일화 교육(어른들은 다양화, 창의적, 탐구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학교나 사회에서는 획일화와 성적에 의한 줄세우기를 강요하고 있다.)은 이제 사라질 때다. 진정한 미래의 인재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좋아서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찬이가 훌륭한 낙농가나 아님 수의사나, 동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것이 못 되도 할아버지의 농장을 이어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진경이도 자신의 배움을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눠 가지면서 사회를 빛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
난 원래 공부 못해. 그래도 나는 --는 잘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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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자면 공부 못하는 아이가 어찌어찌 해서 자신의 숨은 재능을 찾아내어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거나 공부하는 요령을 알았다거나 그도 아니면 친구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는, 뭐 그런 류의 동화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건 전혀 의외의 소재와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나간다. 마치 6,70년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그래서 임길택의 <들꽃 아이>와 오버랩되기도 했다.) 현대를 적나라하게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최대의 고민거리이자 문제는 무엇일까. 아니, 어쩌면 현대 뿐만 아니라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해당하는 질문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아이들마다 다르겠지만 부모들에게는 한 가지다. 바로 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친구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건 처음에만 그렇다. 아이가 학교 입학하면 가장 걱정되는 것이 친구문제다. 나도 그랬다.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까하는 문제가 가장 걱정인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친구도 사귀고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공부로.
이 책의 배경은 현대의 시골 학교다. 부모들은 아이들 공부에 신경을 못 쓰기 때문에 그 역할을 선생님이 대신 한다. 아니 하려고 한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선생님은 아이들과 재미있고 멋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겠다는 멋진 포부를 갖고 시작한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의 코드를 맞추려고 노력까지 하면서. 그러나 인생이란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예외라는 것이 있으니까.
도시에 있는 아이들처럼 영어와 한문도 가르치고자 열의를 가지고 아이들을 닥달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의 행복은 멀어진다. 그리고 '멋진 연희 샘'도 차차 사라진다. 다행인 것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공부를 못하고 숙제도 안 하고 구구단을 못 외워도 집에서 자신이 맡은일을 묵묵히 해내는 찬이를 보고 선생님은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진리는 연희 샘이 이 학교에 머물 때까지만일 것이다. 경쟁만이 남아 있는 도시의 어느 학교로 간다면 사라지겠지.
공부를 잘 하고 아는 것도 많지만 새침떼기인 진경이와 정반대인 찬이, 그리고 이 시대 어른의 전형인 선생님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아이들의 진짜 고민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새침하고 깍쟁이이자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진경이의 모습이 때론 얄밉다가도 찬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예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경이는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남을 이해해가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일 게다. 내 딸에게도 이런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듯 자신의 아이보다 공부 잘 하는 아이와 친구가 되길 바라는 부모들 마음은 다 비슷하겠지만 이상하게 진경이와 찬이의 우정에 자꾸 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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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그래."라는 말을 나는 무척 싫어한다. 누가 이 말을 하면 그를 심히 마뜩찮게 보며,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적어도 내 아이 입에서는 그 말이 안나오기를 바랐다. 이처럼 책임성 없고, 되는 대로 살겠다는 똥배짱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파렴치한 말이 어디 있나,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이 책은 그래서 내게 충격이었다. '<난 원래 공부 못해>라고? 누군 태어날 때부터 공부 잘하나? 열심히 공부해야 공부를 잘하지?' 이런 생각부터 확 들었다.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면 덩달아 "그 봐. 공부 못하면 공부 안해도 되잖아."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은 걱정까지 되었다.
문제의 원래 공부 못하는 아이가 누굴까 하고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바로 찬이였다. 찬이는 산기슭에서 할아버지와 살며 흑염소, 토끼를 키워 식당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식당에다 키우던 동물을 먹을거리로 팔기는 해도 찬이는 무척 마음이 따뜻하고, 동물을 사랑한다. 공부는 못해도 동물에 대해서는 척척박사이며, 동물을 돌보는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의욕적인 선생님이 찬이네 학교에 부임해온다. 젊은 여자 선생님(멋진 연희 샘)은 그야말로 좋은 뜻으로 아이들의 학업 향상 프로젝트를 실시하지만, 아이들은 힘들어 하고 특히 찬이는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급기야 찬이와 찬이 친구 진경이는 찬이가 "원래 공부 못한다."고 선생님께 이야기한다.
착한 연희 샘도 차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시골 아이들이 미처 누리지 못하는 공부 기회나 학업 향상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을 반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 섭섭하고 안타까워서다. 하지만 어느새 오기까지 생겨버린 연희 샘의 노력은 점점 더 아이들을 지치게 하고, 찬이는 그처럼 좋아하던 선생님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 이야기는 물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선생님이 찬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으로. 아이들의 공부도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물론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젊었던 시절, 정책도 사회도 불도저 식이어야만 했던 시절엔 '원래 그래.'라는 말은 그야말로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기."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찬이가 꼭 공부를 통해 행복을 성취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는, 그런 생각.
누구나 행복하자고 살아간다. 공부가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런 공부는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 산골의 찬이에게,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며 성과 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그야말로 헛수고이며 낭비일 수 있다. 인간은 천차만별이다. 남이 잘 하는 걸 내가 잘하란 법은 없다. 공부 잘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제로 들이미는 건 참 못할 짓일 수 있다.
오늘, 이 책으로 공부만 들먹이지 않는 그런 어머니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꿈꾸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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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도중에 자포자기하듯 '난 안돼, 못해' 라고 되뇌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안타깝게 생각해서 부추기듯 '해보면 정말 할 수 있다.'라는 암시와 다독임을 자꾸만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그러한 생각의 의지 트임을 하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정말로 안되는 것이 있구나 싶어 다른 것들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게 될 때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분명 공부도 하나의 목적이고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습에 따른 결과치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에 아쉬움과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는 것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알아가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가면서 바빠지게 되고 나름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면서 덩달아 힘겨워지는 것들이 많아지게 되어 아이와 선생님 모두가 묘안을 짜내느라 바쁘다.
의욕적인 초임 선생님과 마주한 18 명의 아이들은 아직까지는 순수하기만 하다. 그러나 멋진 연희 샘의 의지와 달리 아이들은 왜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하고 꼭 해야만 하는지 알기 보다는 그저 해야 하는 과제쯤으로만 생각했기에 버겁고 귀찮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찬이가 선생님의 관심에 부응하듯 나아지기 보다는 되뇌이듯 말하던 것처럼 원래 공부를 못하는 이유와 까닭 그리고 그 외의 것에 대한 파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기본적인 학습의 과정을 바르게 익혀야 한다는 강한 인식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욕심이 컸는지도 모른다. 아이마다의 특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조금 더 나아지게 이끌어야 함에도 전체적인 성과에만 치중했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지 싶다. 물론 지금의 아이들이 학교나 그 외의 곳에서 해가는 것들을 보면 그만큼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가를 할 수도 있지만 자발적이고 효율적인 이해가 없다면 어느 순간 모두를 놓아 버리는 결과가 있을 수 있기에...., 제대로 된 이해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돌아봄이 없이 앞으로만 내몰리는 아이들의 꿈과 생각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진정 그 아이들이 원하는 삶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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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찬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안다. 찬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청계 가든’에서 한 십오분 정도 산속으로 걸어 올라가면 찬이 할아버지 농장이 있다. 찬이는 할아버지와 흑염소와 토종닭과 같이 산다. 나랑은 병설유치원을 같이 다녔고 사 년째 초등학교마저 같이 다니고 있다. 그러니 모를 리가 없다. 찬이는 읽기는 잘한다. 하지만 쓰기는 잘 못한다. 맞춤법이 엉망이다.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글자가 반이다. 수학은 국어보다 더 답답하다. 기본적인 더하기 빼기는 하는데 곱하기 나누기는 아예 모른다. 찬이 할아버지가 부탁을 해서 구구단을 한번 가르쳐 보았는데 속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학습지 두 가지를 우편으로 받아 공부하고 어린이 잡지 세 가지를 정기 구독한다. 책은 당연히 많이 읽는다. 아빠가 책은 그만 읽고 말 좀 하라고 할 정도다. (30 - 31쪽)
찬이는 학교 수업 말고 다른 학습거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찬이는 진경이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문제라고 하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찬이는 도무지 공부에 관심이 없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아직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가끔 티격태격하는데 찬이는 아이들하고 싸우지도 않습니다.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까지 조금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찬이만 따로 혼난 적도 없습니다. 수학 시간에 문제를 풀 때는 진경이가 써 놓은 답을 베꼈고, 모둠별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아이들 것을 베끼면 되었으니까요. 숙제를 안 해 왔을 때는 다른 아이 한둘이 더 있어서 같이 묻어가면 되었습니다. 무난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학교생활에 활기가 없는 사람은 외려 이진경입니다. 삼학년 담임선생님에게 마음을 주고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선생님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시골학교를 떠났습니다. 마음이 닫힐 수밖에요.
새내기 교사 연희 샘이 사학년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처음 얼마 동안은 이전과 다름없는 진경이 학교생활입니다. 자신을 ‘멋진 연희 샘’이라고 부르라며 아이들에게 적극 다가서는 것이 새내기 교사가 만드는 활력이 넘치기까지 합니다. 그러던 것이 선생님이 ‘오오오 대작전’을 펼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오오오 대작전은 하루에 영어 단어 다섯 개 외우기, 수학 문제 다섯 개 풀기, 한자 다섯 개 외우기를 말하는 것으로,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도시 아이들처럼 똑똑한 아이들이 되도록 하겠다며 선생님이 고안한 공부법입니다. 진경이 같은 아이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찬이 같은 아이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갈등을 빚고 서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찬이가 할아버지랑 사는 농장에서 얼마나 의젓하게 어른 노릇을 하는지 선생님이 눈으로 직접 보게 되기까지는요. 결국 아이들이 하고 싶은 모든 게 공부라는 것을 선생님이 인정하고 나서야 교실은 활기를 되찾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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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을 보면, '공부란 과연 어떤 것인지' 묻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독자 스스로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을 되짚어보게 하는 문제작이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의문만 생깁니다.
열정적인 초보교사가 왜 무조건 암기식 교육을 들이대는지? 18명밖에 안 되는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왜 그리 오래 걸리는지? 시골 아이들에겐 하루에 '영단어 3개, 한자 3개, 수학문제 3개'가 감당 못할 숙제인지? 스스로 공부를 포기한 찬이에게는 정말 기초적인 학습의 가능성도 없는 건지? 시골에서 가축 키우고 농사 짓는 사람에겐 학교공부가 필요없다는 얘긴지?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할 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