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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유물은 고류사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 불상에 대해서 “진실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최대의 찬사를 보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고류사 내유기(內由記)>에는 이 반가사유상이 “603년 백제에서 쇼토쿠 태자에게 전해준 불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최고 국보인 이 불상은 백제에서 만든 것인가? 대한민국 국보 83호인 ‘금동 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의 형태와 양식은 매우 유사하여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집단에서 제작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16년 신라가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623년에도 신라에서 불상과 금탑, 사리를 보냈다는 내용도 있다. 이때 보낸 불상이 ‘반가사유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고류사 내유기>의 기록과 <일본서기>의 기록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 즉 ‘반가사유상’은 백제에서 온 것인지 신라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는 일단 ‘반가사유상’의 목재 재질에 있다. 반가사유상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적송’이었다. 적송은 주로 강원도와 경북 북부 일대, 그리고 백두산에서 서식한다. 강원도와 경북 북부 일대라면 신라의 영역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책 <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삼인,2008년)의 저자인 홍성화는 경북 봉화에서 발견된 밑동만 남은 석조 반가사유상에 주목한다. 이 석조 반가사유상은 백제 반가사유상이나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과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한다. 이 유물 역시 신라가 반가사유상을 일본으로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부분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고류사로 간다. 도래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그곳에는 저자는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동해안에 있는 울진의 봉평비를 찾는다. 이 비문 글자 중에 ‘파단(波旦)’이란 단어에서 그는 무언가 실마리를 찾는다. 단(旦)은 차(且)로도 볼 수 있다. 파단은 일본어로 발음하면 ‘하타’라고 읽으며, ‘하타’는 백제계로서 일본에 건너간 사람집단을 말한다. 이렇게 문헌 연구를 하면 부족한 부분은 직접 현지 답사를 하며 저자는 고대사의 진실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하타씨족이 강원도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면, 필시 백제에서부터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백제인이 만든 반가사유상의 기법이 울진과 봉화지역에 전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통합하면서 이들 백제인이 신라인으로 둔갑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일본 반가사유상의 고향을 백제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에는 영산강 유역의 고분 형태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인 것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고 있으며. 일본에 한자를 건네준 왕인의 숨은 이야기 속에 후대에 왕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한 일 양국 사람들의 추한 모습도 담아내고 있다. 또 무령왕과 일본의 관계, 임나일본부 등 고대사에 있어서 의문의 중심에 있는 부분들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우리나라 여러 곳과 일본을 종횡무진 돌아다닌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한국 고대사를 알려주는 한국의 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거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권의 책이 고대사의 모든 부분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지 않다. 고려시대에 쓰인 책이다 보니 그때까지 존재했던 삼국시대의 문헌의 내용을 기초로 해서 쓰여 졌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공백이 있다. 그래서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중국의 사서나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를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에 그 한계가 내재되어 있다. 즉 어느 사서이든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서기>는 거의 소설 수준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보다 훨씬 이전에 쓰인 책이다 보니 한국고대사를 해석해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책이다. 그래도 문헌만 가지고는 연구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고 유물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역사 연구에 있어 답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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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완성하고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새로운 정책을 펼침으로써 근대로 가는 기틀을 다진 일본의 메이지 유신, 그 메이지 유신의 초기에 일본 통치자들이 내세운 정책은 한국을 정벌한다는 ‘정한론’이다. 정한론은 일본이 대륙으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고 대륙을 식민지 삼으려는 침략의 정책일 뿐 아니라 일본 국내의 정치적 문제를 안정시키려는 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서양의 개방 압력을 받아들인 일본은 서양 여러 나라들의 식민지 정책을 참고하여 조선을 침공하여 자신들의 구미열강과 맺고 있는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는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 세력을 국외 전쟁으로 보내어 불만을 무마하고,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하며, 조선의 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목적도 있었다. 저자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근대의 일제 침략과 정한론을 공부하다가 정한론의 뿌리가 고대사까지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대 한일 정치외교사’를 연구하게 되었다. 기존의 한국과 일본 고대사의 틀, 전혀 상반되는 두 나라 역사학자들의 틀을 비판하고 철저한 현장 답사에 의해서 진실을 밝히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말한다. 기록이나, 유물도 거의 없고, 시간으로도 너무나 오래전의 일, 흔적조차 뚜렷하지 않은 고대사와 관련된 유물을 찾아 저자는 영산강 유역으로 시작한 한반도 와 일본열도의 관련 유적을 두루 답사한 노력 끝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빼곡한 글자와 사진의 엄청난 자료를 남겼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 왕인 이야기, 고대에 백제가 일본을 점령 했다는 설, 일본의 천황족은 백제나 가야의 왕족과 같다는 우리의 일본에 대한 역사 인식이나 또 그와 반대로 일본이 고대 삼한을 정복했고,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으며, 고대 한반도 남쪽 지역을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는 설 등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인식은 극과 극을 이루고 있다. 고대사를 뒷받침하는 양국의 기록물인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도 그 내용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는 주로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 과거 한반도의 영토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며 시비를 걸면 우리는 거기에 맞서 항변하는 듯한 인상이다. 그런데 왜 자꾸 일본이 고대사를 들추며 한국에 시비를 거는 것일까? 지속적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우위권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외교적인 제스츄어일까? 한국 식민지 지배와 2차 세계대전을 이끈 주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일까? 또 다른 정복 전쟁을 위한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튼 그들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과 역사 인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성적과 관련해서 할 수 없이 교과서를 읽어보는 정도로는 절대로 역사의 중요성을 알 수 없다. 그때 있었던 그런 일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를 배우는 역사 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이 책은 철저한 유적지와 유물 답사로 한일 고대사를 상세히 파헤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역사를 상세하게 공부한 적이 없는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딱딱하고 힘겨운 책인 것 같다. 사람이든 책이든, 딱딱하고 어려우면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게 마련이다. 아주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더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