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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이화님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1.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2.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3. 조선인은 조선의 시를 쓰라)
남다른 역사관을 지닌 이이화님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배우게 된다. 같은 역사적 인물이라도 그가 조사하고 연구하는 인물은 친서민적이다. 왕조 체제에서 글로 남겨진 인물들은 친여당 인물들이다. 사관들도 기록하기를 왕조 체제에 순응한 인물을 중심으로 실록에 채워 넣었다고 볼 수 있다. 변방에 위치한 실력 있는 이들은 한양 도성에 까지 소문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따라서 이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과 함께 어울렸던 이들을 살펴 보는 일이고 그들이 남긴 저작물들을 조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작가 이이화님은 한국의 아웃사이더라고 불리는 이들을 연구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세상을 위한 학문을 하라>이다.
차례를 보면 작가가 어떤 성향의 역사학자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독창적인 기철학의 세계를 연 거인 서경덕, 당쟁에 희쟁된 성리학의 거두 이언적, 현실개혁사상을 편 기철학의 대가 최한기 등 지금까지 언급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분적인 제약 때문에 실력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공적이 폄하된 학자들을 발굴하여 대중들에게 자랑스럽게 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당리당략으로 희생된 인물들 중에 대표적으로 언급한 인물들이 있다. 정약용, 김정희, 김정호. 이들에 관해서는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작가 이이화님은 다른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정약용의 위대성은 모두가 다 아는 바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자신을 해할려고 했던 정적에 관해서도 관용을 베풀고 적으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서술을 작가는 애써 하고 있다. 천재들은 교만하거나 자기 외에는 다른 이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정약용, 김정희, 김정호를 이야기하면서 이유 없이 핍박을 받으면서도 결코 다른 이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인간됨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를 펴냈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물을 발굴해서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을 고집스럽게 해 왔다고 한다. 그가 역사 속에서 건져낸 인물들을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왕을 중심으로 한 역사 기록이나 위인으로 대두되는 특정 인물 중심의 역사 흐름보다는 이제는 개혁성향의 인물들, 왕조 체제를 저항했던 인물, 서민들의 아픔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인물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시대적 아픔을 지니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고뇌하는 과정을 거치고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형의 한국사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대중들도 읽기 쉽게 편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시중에는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도록 만화로 제작되어 나와 있다고 한다. 역사는 알면 알수록 새롭다.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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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과 일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시대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름과 그들의 저서만을 짝직기해서 외웠던 선비들의 간략한 인생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반가웠다. 또한 내가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도 많이 소개되었다. 최한기, 홍만선, 위백규, 우정규, 김평묵
국사에 관심있는 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연려실기술'을 쓴 이긍익의 아버지가 원교 이광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찰답사를 다니다보면 사찰의 현판에 이광사의 글씨가 많이 남아 있다. 얼마 전에 간 남해 대흥사에도 그의 글씨가 있었다.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4대 명필 중의 한 명이다. 그 이광사가 이긍익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학문에 열중했던 학자들의 일생을 읽자면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대인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조선 후기 나라가 점점 어려워질 때 현실적 개혁 위치에 있지 많은 많은 선비들이 나름대로 해법을 적은 책들을 많이 썼다. 최한기 같은 사람은 생전에 쓴 글을 남에게 보여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쓴 책이 얼마나 읽히느냐는 대부분 후손들이나 제자들의 역량에 달린 것 같다.)
그럼 남에게 보여 주지 않을 책을 왜 썼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선비들의 일생'이란 그들의 생물학적 일생과는 별개로 사후 명성에 더 신경쓰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금 인정받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 줄 날이 올 것이다라는 신념이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일생을 살아있는 짧은 시간에 한정하지 않고 기나긴 역사의 한부분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또는 '내 임기 안에' 모든 것을 마치려하는 현대 한국인들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달랐던 것 같다.
조선은 세계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임금이 외적의 침입을 피해 다른 나라로 가려고 했던 임진왜란과 다른 나라의 황제 앞에서 피가 쏟아지도록 머리를 찧었던 호란을 겪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선비들은 비록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 두 전쟁을 겪고도 망하지 않았던 조선이기에 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인정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백년이 지나지 않아 500년 간의 찬란한 문화는 사장되어 버리고 그들은 잊혀졌다. 다만 요즘 지자체에서 관광산업 부흥정책에 따라 그들의 자취가 다시 복원되고 있을 뿐....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다시 현대 한국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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