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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책에 앞서 본 건 '몰락하는 자'라는 책이었는데, 글렌 굴드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구입했다. '몰락하는 자'라는 책 제목을 먼저 알았고,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작가는 그 다음이었다.
책에 소개된 몇가지 특이한 점 때문에 작가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건 유난히도 조국 오스트리아를 싫어하고 저주했던 그의 삶 때문이었다. 그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난 걸 어떻게 후회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 책 역시 스스로를 이야기 파괴자라고 말하는 작가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씌여진 책이라 읽기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같은 기법으로 씌여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릴케의 '말테의 수기' 같은 책들을 평생 모른척 하지 않으려면 먼저 익숙해 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고향 오스트리아를 떠나 로마에 살고 있는 학자이며 작가인 주인공 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어느날 고향 볼프스엑에서 전보를 받는다. 부모님과 형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내용의 전보였다. 전보를 받고 주인공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사진을 꺼내 보며 생각한다. 250페이지에 걸쳐.
전보를 받고, 로마의 자기 방에 앉아, 가족들의 사진을 펼쳐 놓고, 250 페이지에 걸쳐 그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역겹고 여동생들은 역겹고도 멍청하고 아버지는 나약하고 형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 바보이고 그들은 모두 멍청이지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무기로 삼았답니다. 그것은 파렴치한 짓이지만 어쩌면 양심의 가책을 덜어 줄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르죠.' [81]
무려 250페이지에 걸쳐 가족을, 특히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모욕하기만 하는 책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00 페이지쯤 보다가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함으로써 - 그것도 가족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 너무 집요하게 강요하는 게 부담스럽고, 또 지루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어린 목숨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켜켜이 쌓인 어른들의 잘못으로 물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에 며칠동안 그저 멍하게 있다가 문득 수없이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죽을때까지 조국에 대한 저주를 멈추지 않은 오스트리아 작가의 글을 마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읽으면 어쩌면 나도 내 조국을 향해 온갖 저주를 퍼부을 논리를 갖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게 뻔한 볼프스엑의 가족들을 처음에는 정신적 무능함에 대해 - 돈만 밝히면서 겉으로는 예술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척 하는 - 비판하다가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 대다수 국민들이 실제로는 자발적으로 나치에 공감하고 충성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심지어 그의 가족들은 겉으로는 미군 병사들에게 온갖 환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치의 고위 간부들을 수년간 숨겨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치를 잊지 못하며, 종전 이후에도 나치의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온갖 행사에 참여하는 비열한 민족이라고 밝힌다.
작가의 양심은 모든 걸 소멸시키기로 결심한다.
'마음속으로 벌써 정해 놓은 단 한 가지는 보고서의 제목을 소멸이라 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보고서는 보고서에 기록된 것, 즉 내가 볼프스엑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 볼프스엑을 의미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150]
부모와 형이 죽은 지금 볼프스엑의 모든 권한은 그에게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며 그는 결심한다. 장례를 마친 그는 볼프스엑의 막대한 모든 재산을 아무 조건없이 로마의 유대인 단체에 기부하고, 로마로 돌아와 보고서를 마무리한 후 1년뒤 사망한다.
그는 볼프스엑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이 남아있는 한 절대로 수치스러운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 악몽을 모두 기록한 후 없애 버려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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