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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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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라고 한줄만 쓰면 안 되려나? 책이라고 해서 모두가 좋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읽는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나한테는 재미있어도 다른 사람한테는 지루한 것일 수도 있다.(그 반대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읽어보고 확인하는 게 좋다고 본다. 여기에는 차별과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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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라고 한줄만 쓰면 안 되려나? 책이라고 해서 모두가 좋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읽는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나한테는 재미있어도 다른 사람한테는 지루한 것일 수도 있다.(그 반대도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읽어보고 확인하는 게 좋다고 본다. 여기에는 차별과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것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정과 정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차별과 따돌림은 아주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다.

시골에 살다가 센다이시 O구에 나와서 살게 된 가즈야는 무척 기대하지만 곧 실망한다. 그것은 낡고 다섯집이나 사는 공동주택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전학간 학교, 그것도 같은 반인 아이가 둘이나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뻤지만 히로유키, 나오미와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둘은 겉도는 듯이 보였다. 이웃인 누마쿠라 아저씨나 야스코 누나는 두사람과 친하게 지내라고 말한다. 가즈야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잘 안 됐다. 야스코 누나는 가즈야를 히로유키네 아빠가 하는 포장마차로 데리고 가서 히로유키, 나오미와 만나게 한다.(둘은 사촌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것은 센다이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차별에 대한 거였다. 지금은 신분제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에다 마을이었던 곳에 유키히로와 나오미의 조상이 살고 있었던 것 때문에 차별한다고. 예인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천민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그런 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던 거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말하며 ‘거기 사는 아이들과는 놀지 마’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것은 가즈야한테 별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유키, 나오미와 친해진 것이 기뻤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괴롭힐 수도 있으니까 히로유키와 나오미는 학교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다. 가즈야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말을 듣는다. 하지만 가즈야가 히로유키, 나오미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이 가즈야를 따돌리고 괴롭힌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그게 심해지자 히로유키는 다른 학교 친구 교스케와 가즈야를 괴롭히는 아이한테 겁을 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일은 누마쿠라 아저씨를 만나서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다음에 생각해 낸 것은 에다 마을 차별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 싣는 거였다. 좋은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이 신문에 실을 수 없다고 한다.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전단지를 만들고 학교에서 뿌린다. 초등학교 5학년이 이런 일을 하다니, 지금 생각하니 굉장한 일이다. 그런 일을 했다고 해서 뭔가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래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정의를 위해서…….

여름방학이 시작하고 얼마 뒤 가즈야네는 다시 시골로 이사가기로 한다. 아버지가 하던 학원이 망한 거였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살아가는 데는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을까?(이것은 그랬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다) 조금 웃겼던 것이 하나 있다. 뭐냐 하면, 가즈야는 히로유키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불량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옛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희선




☆마음에 남다

아마 사람들 마음속에서 차별의 유전자가 이런 식으로 증식해 갈 것이다.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와 분리되고 독립되어 있다고 하지만, 어른 사회의 거울 같은 부분도 있다. 무심하게 떠드는 어른들의 뒷이야기가 실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유전자가 되어 아이들 마음에 파고들어 은밀히 증식해 간다. (215쪽)

결국 우리의 정의가 이겼는지 졌는지는 모른다. 아니, 본래 정의는 승부가 아니라, 끝까지 정의를 지키려고 애썼느냐 못 했느냐가 문제일 뿐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전부라고도 생각한다.    (358쪽)

n***8 2010.04.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머릿속에만 있던 정의를 실천하기까지
"머릿속에만 있던 정의를 실천하기까지" 내용보기
'왕따'라는 단어가 내가 10대 였을 때 처음 만들어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당시엔 일본에 '이지메' 또한 큰 사회적 문제였다. 따돌림이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겠지만, 이런 말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오랜 기간동안 널리 쓰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군중 속엔 으레 왕따가 존재하는 것이 이젠 무척 자연스럽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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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는 단어가 내가 10대 였을 때 처음 만들어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당시엔 일본에 '이지메' 또한 큰 사회적 문제였다. 따돌림이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겠지만, 이런 말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오랜 기간동안 널리 쓰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군중 속엔 으레 왕따가 존재하는 것이 이젠 무척 자연스럽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학교생활을 해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 '왕따'가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얼굴을 1년 동안 봐야 하는 교실 안에서는 무리짓기에 대한 은근한 신경전이 존재하게 되고, 이 무리에서 제외된 몇은 겉돌고 그 몇을 제외한 나머지가 바로 '왕따'의 역할을 맡게 된다. 어린 나이의 학교생활에서 이런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았고, 환멸도 많이 느꼈다. 그리고 느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정의'는 공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채, 미움받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하기 힘든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장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의를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내게 이 책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적 '차별'에서 기인하여 자연스레 '왕따'를 도맡을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을 주인공 가즈야가 '정의'라는 신념하에 감싸주고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이 작가의 어렸을 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정말 허구적인 소설인지는 책 속에 나와있지 않지만, 잔잔함과 순수함 속에 깃든 감동에 오랜만에 읽은 일본문학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따돌림을 받는 누군가를 보며 사실 난 '정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 뿐이었고, 혹시라도 그 사람처럼 되지는 않을까하여 가슴 졸였으며, 따돌림을 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해보며 느낀 것은 획일화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 싶으면 왕따로 만들어버리고, 다양성에 대해서는 결코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몇몇 한국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도 그렇지만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정말 내가 어른이라면 더이상 숨어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리판단을 할 수 있을만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즉 '정의'를 그저 머릿속으로만 담아두지 않은 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내게 '정의의 실천'이라는 아주 중요한 과제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p******i 2009.12.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