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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한 자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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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도 4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열기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무릇 축구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경합(국가 단위의 전쟁이 되었건, 개인들 차원의 점심내기 가위바위보가 되었건..)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축구의 예에서도 여실히 확인되는 것은 승자는 왜 이겼는지(그들이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패자는 왜 졌는지(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약점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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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도 4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열기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무릇 축구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경합(국가 단위의 전쟁이 되었건, 개인들 차원의 점심내기 가위바위보가 되었건..)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축구의 예에서도 여실히 확인되는 것은 승자는 왜 이겼는지(그들이 어떠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패자는 왜 졌는지(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약점은 무엇인지) 매우 정교하고 친절한 분석이 항상 뒤따른다는 것. 그런데 대개의 그런 분석은 매우 '결과론'적인 것이다. 승자에게도 약점과 잘못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패자에게도 강점과 잘한 부분이 당연히 있을진대.. 보통 그런 이야기들은 잘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우리나라의 축구를 평가하면서 '우리축구는 최근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보였다. 이제 조금만 노력하면 축구강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인다' 정도가 많이 미흡한 반례 정도일 수 있겠다.

 

왜 승자에게는 모두가 지나치게 관대하고 또, 패자에게는 냉정해야 하는지.. 이유를 새삼 들먹일 필요는 없을거 같다. 'Winner Takes All' 이라는 모 스포츠의류 광고가 아주 쉽고 명료하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으니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과거 오랜동안 역사는 그것을 꾸준히 증명해주었고, 그런 역사에 길들여진 우리들역시 '결과의 도덕성'에 은연 중 물들어 있음을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이 책 「승자학」의 원제는 「전사정치학(Warrior Politics)」이다. 얼핏 제목만으로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법을 다룬 처세술 책 같은 냄새가 나지만.. 그런 내용과는 매우 거리가 먼 약간의 사이비(?) 정치서적이다.

 

이 책은 영국의 17세기 철학자 홉스의 사상을 현대적 감각으로 옮겨 쓴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한 책이다. 홉스는 일찌기 당시의 혼란한 사회적 상황과 그러한 혼돈 속에서 본디 악한 마음을 허영과 자만심으로 포장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맹목 하에 세상을 어지럽게하는지를 실감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전제국가가 '리바이어던(Leviathan: 성서에 나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영생의 바다괴물)' 역할을 하여 공포로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정치철학자다. 홉스 이전의 마키아벨리나 이후의 여러 정치철학자들이 비슷한 주장을 하였고, 잘은 모르겠으나 현재에 있어서도 이러한 견해의 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과거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한나라 등과 같이 당시 세계적 패권을 쥐고 비교적 장기간 흔들어댔던 나라들이 가졌던 공통점을 뽑아 연구한 여러 책들이 보인 그 '결과론'적인 견해는 마치 '연구해보니.. 역사적으로 위대한 통치자들은 모두 눈이 두개에 입이 하나였다'라는 말처럼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세계의 패권국으로 대놓고 인정한 상태에서 미국만이 가진 다양한 장점을 나열하는 형태로 이 시대의 승리자를 예찬하고 있으며, 그런 미국 중심의 글로벌 힘의 균형의 혜택을 조심스레 들먹거린다.

 

냉전시대 종식 후 세계는 강대국들간의 힘의 균형이 아닌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나 인권유린 현장에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글로벌 치안권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우리시대의 '리바이어던'으로 가장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집단은 미국 밖에 없다는 것.

 

일견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그 승리자에 대한 예찬은 '변명'에 가깝게 들릴 정도로 일방적이며.. 그래서 속이 뒤틀릴 정도로 매우 언짢다. 어린 시절 미국은 '착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로 착각했을 정도로 미국이 전세계를 누비며 벌리는 다양한 행보는 참으로 그럴싸하게 미화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러한 이면에 숨어있는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이기주의와 자본주의적인 이윤추구 논리는 그 어떤 분장을 하더라도 엄연히 실재하는 것.

 

미국 주도하의 힘의 균형이 전 세계 약한 고리들의 지정학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그 안정이 주는 혜택이 일부 승리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다면,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채 그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종을 강요당하는 이들의 마음 속 깊은 슬픔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이 책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승리자로서 화려하고 자신에 찬 모습과 그 승리자의 뛰어는 점에 대한 '우상화' 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치 힘있는자가 한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힘없는자의 답답함과 억울함 비슷한 감상만 남게하는 정말 '놀라운(?)' 책이다.

 



p***i 2010.07.05.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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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국을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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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성탄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그토록 받고 싶어하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전직 이라크 대통령이 감금된 사진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로 변신해 종전을 선언한 깜짝쇼 이후, 늘어만 가는 미군 사망자와 국내외 반전여론으로 인해 절반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졌던 그에게 내년 대선에서의 재선가능성은 후세인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미 군의관의 검사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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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성탄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그토록 받고 싶어하던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전직 이라크 대통령이 감금된 사진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로 변신해 종전을 선언한 깜짝쇼 이후, 늘어만 가는 미군 사망자와 국내외 반전여론으로 인해 절반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졌던 그에게 내년 대선에서의 재선가능성은 후세인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미 군의관의 검사를 받고 있는 사진이 전세계로 전파됨에 따라 높아만 가고 있다. 9․11테러와 아프간전쟁,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침공에 대한 반대와 미국 주도하의 세계 전략에 반론을 제기한 책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미국학자부터 이라크의 살람 팍스라는 블로그 운영자까지, 이들의 반전운동은 치열했다. 이들의 주장은 물론 옳다.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중동의 석유와 중국의 견제 및 미국 내 유대인 파워까지 연계한 이들의 분석과 반전 주장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질서가 항상 옳게 흘러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부터 중부유럽의 아르메니아, 발칸반도 등을 특파원으로 25년이 넘게 취재한 로버트 카플란의 저서들은 읽기가 참으로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그가 진실을 가감없이 까발리되 미국인 기자의 시각으로 그것을 전하는데 있다. 국제관계의 혼란과 테러의 끊임없는 발생원인에서 미국은 한 몫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미국이 없다면, 미국이 손뗀다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고. 예를 들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외계의 생물체들이 자신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지구라는, 가장 생명체가 서식하기 쉬운 곳으로 대량이주(혹은 침공)을 해 온다고 가정하자. 외계인 사령관이 위성으로 지구에 “너희들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과연 누가 지구대표로 나가서 외계인과 담판을 할까? EU의장? UN사무총장? 아니면 우리의 노짱? 경호상의 문제나 돌발사태의 가능성에 대비해 Face to face로 회담하진 않더라도 지구의 대표자는 백악관에서 나올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크다. 150년 전이라면 영국의 버킹엄궁전이었겠지만. 그리고 카플란은 이러한 의식을 바탕에 깔고 이 책을 썼다.(개인적으로는 “승자학”이라는 경영처세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보단, 원저 그대로 “전사정치학(Warrior Politics)"이라는 제목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저자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알기 위해선 눈을 먼 곳으로 돌려 고대의 역사와 전쟁을 차분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및 이를 재해석한 마키아벨리와 토마스 홉스의 저서들을 설명한 카플란이 내린 결론은 ”결과의 도덕성과 효율성이 곧 미덕“이며, ”세계의 리바이어던이 되어야 하는 미국“이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공화국과 제국의 양면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200여쪽이 조금 넘는 본저를 묵직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한니발 전쟁』,『군주론』,『리바이어던』같은 정치․역사의 고전들이다. 또한 결론에서 저자가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역할모델(Role Model)로 제시한 로마제국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 ― 집권당시 비대중적 정책을 시행해 인기는 최저였고, 그 냉정함과 잔인함으로 그가 죽었을 때 로마군중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칼리굴라․네로 등의 ‘포악한 황제’들의 연이은 집권에도 불구하고 신생제국 로마가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티베리우스가 행한 그 “인기없고 잔인하기까지했던” 일련의 정책들 때문이라고 후대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를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볼 때, 책 안 읽기로 유명한 부시 대통령이 로버트 카플란의 책들은 열심히 읽는다는 외신의 보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부분의 독서행위는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파괴하기 위한 쪽보다는 오히려 굳건히 하는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문제로 넘어오자. 우리에게 미국은 좋든싫든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나처럼 한국전쟁 얘기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의 엘프와 인간연합군 대 사우론의 싸움처럼 들리는 전후세대들에게는, 할아버지뻘의 늙으신 분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는 광적인 친밀감과 복종심리는 여전히 이해는 되지만, 공감하기는 힘든 것들이다. 지금 미국은 국제뉴스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중에 한국의 위치를 지도에서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얼마일까?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미국은 워낙 세계 여러 곳곳에 오입질을 많이 하고 다니니까, 예전에 한 번 크게 건드린 한국(혹은 남한)이란 여인은 그다지 신경쓰고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미국이 우리를 보는 시각은 우리가 스리랑카를 보는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방한한 스리랑카의 노동부장관이 한국 기업의 ‘나쁜 짓’ 들을 까발리면서 우리가 그 나라에 대해 잠시 관심을 두게 된 것처럼, 1년 전에는 효순․미선이 사건이 미국인들에게 똑같이 비춰졌을 것이다. 어떡할 건가? 우리 세대가 사는 세상은 분명히 Pax Americana의 시대이다. 잔뜩 찌푸린 얼굴표정으로 독자를 바라보고 있는 카플란은 스스로를 ‘건설적인 비관론자’라고 부른다. 반전데모에 환호하고, 부시와 블레어의 희화화, 인형불태우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기분이 좀 나아질 수는 있지만, 문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당사자인 미국의 정책은 반전여론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수행된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티베리우스 황제” 때문인가?
g******a 2003.12.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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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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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정녕 새로운 세기인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야말로 세계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세계제국'이라고 칭했었다. 그러나 카플란은 여기에서 더나아가 세계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어떻게 세계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리를 현실주의 관점에서 제공하고 있다. 카플란은 '과거는 미래의 것이지만 미래는 우리의 뒤에 있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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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정녕 새로운 세기인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야말로 세계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세계제국'이라고 칭했었다. 그러나 카플란은 여기에서 더나아가 세계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어떻게 세계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리를 현실주의 관점에서 제공하고 있다. 카플란은 '과거는 미래의 것이지만 미래는 우리의 뒤에 있다'고 얘기한다. 즉 미래의 교훈은 과거의 역사와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과거의 역사는 안정된 역사와 이상의 철학이 아니라 국제질서가 혼동기에 젖어 있을 때, 즉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시기, 중국 전국시대, 2차 대전시기와 같은 시대들이다. 또한 철학적으로는 투키디데스, 홉스, 맬더스적인 비관론을 바탕으로 한다. 즉 카플란은 사회의 본질은 홉스적 의미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이며 인간이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권리의 일부를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게 위임하고 자유를 찾듯이, 혼돈의 국제질서에서는 세계제국(지금의 경우에는 미국)에 각국은 권리의 일부를 양도하고 세계제국의 질서속에서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카플란은 미국이라는 세계제국은 이상과 원칙에 의한 국제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익과 무엇이 최악의 혼란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인가라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국제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방법, 절대다수의 모든 안정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효과적인 안정. 그것은 곧 개입자이자 때로는 비도덕적인 중개자, 테러에 대한 테러로서의 응징자로서의 미국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것이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지라도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은 분명하다. 이 책 '승자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는 차치해 두더라도 21세기 국제정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미국과 그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의 좌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한번 던지게끔 하는 책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상깊은구절]
거의 모든 국제문제에는 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종종 거기에는 해답이 없으며,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혼란과 불만족스런 선택뿐이다... 미래의 위기들이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며 들이닥칠 때, 세계라는 것은 '현대'도 아니며 더 나아가 '탈현대'도 아니며 '고대'의 연속에 지나지 않음을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 세계는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최고 철학자들이 잘 대처했던 바로 그 세계인 것이다.
h*****g 2002.10.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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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주의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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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재수없다. 무슨 처세술 책 같다. 하지만 사람을 보면서 얼굴만 봤다가는 큰 코 다치는 것처럼, 책도 제목만 허술히 봤다가는 진면목을 못보는 수가 있다. 일단 원제가 의미 심장하다. , 번역하자면 전사의 정치학이랄까. 그러나 내용인즉슨 전쟁광의 정치학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국제정치학 서적이다. 기조는 현실주의. 말인즉슨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정치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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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재수없다. 무슨 처세술 책 같다. 하지만 사람을 보면서 얼굴만 봤다가는 큰 코 다치는 것처럼, 책도 제목만 허술히 봤다가는 진면목을 못보는 수가 있다. 일단 원제가 의미 심장하다. , 번역하자면 전사의 정치학이랄까. 그러나 내용인즉슨 전쟁광의 정치학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국제정치학 서적이다. 기조는 현실주의. 말인즉슨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정치는 정부라는 제도가 들어서기 이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도 같은 상태라는 인식을 깔고, 미국이 세계 정부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냥 여기까지이기만 하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가치가 없겠으나, 끌어다 붙이는 논리나 예시가 볼만하다. 견강부회란, 아전인수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적어도 직접 인용구를 끌어다 붙이는 박학함에만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원전을 읽지 않고서 직접 인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논거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괜찮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 <한니발 전쟁="">을 쓴 리비우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 <리바이어던>의 홉스, <인구론>의 맬더스, 그리고 나로서는(대부분 사람들도 그러할) 처음 들어보는 책인 <강의 전쟁="">을 남긴 윈스텀 처칠까지. 여기에 어줍잖게 손자를 인용하는가 하면, 어울리지 않게 칸트까지 동원한다. 저마다 역사책에 이름 한줄씩 걸친 사람들이다. 가장 기초적인 고등학교 교과서에조차.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현실주의 정치학을 주창한 사람들이라는 점.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전쟁으로 점절된 시대였다는 점. 마지막 공통점은 예외가 몇 있는데, 대부분 시대의 실패자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를 살아갔기에,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 투쟁에서 좌절을 겪었기에, 그들은 그 투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대개 비열한 것이다. 좀 멋있게 표현하자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천년 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손자의 이데옹로기 대신에 공자의 이데올로기가 바아들여진 까닭은 무엇인가. 절대왕정을 옹호한 홉스의 이론 대신에 로크의 3권 분립론이 뿌리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끝나면, 그 누구도 더이상 피도 눈물도 없는 삶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바랄 뿐이다. 결국 그들의 주장이 이 시대에 받아들여진다면, 전제가 깔려야 한다. 이 시대가 그들이 살던 때만큼이나 야만적이라는 인식에 동의해야 한다. 먼저 지은이 로버트 카플란의 인식이다. 국제사회에는 정부가 없다. 안정을 위해서는 리바이어던, 곧 정부가 필요하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그들만의 관료집단으로서 그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뿐 정부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강대국이 허용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리바이어던의 위치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적이 꼭 타국 정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후세인과 같은 정부도 있지만, 빈 라덴과 같은 인물도 있다. 미국은 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해야 한다. 즉 미국이 공화국이자 동시에 제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나의 인식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리바이어던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카플란은 분명히 말한다. "시에라리온이나 소말리아와 같은 지역을 보라. 어설픈 민주정부보다 독재정부 하에서 훨씬 더 질서가 지켜진다.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주적 정통성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나는 다시 묻는다. 과연 무엇을 위한 가치인가? 스스로 존재하는 가치를 저버리고 스스로의 권력을 확대한다면, 그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은 어떤 근거로 특정 국가를 지목해서 무장해제를 요구할 수 있는가.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그들의 국민은 누구인가. 다시 질문 하나. 서울에 폭탄이 설치돼 있는데, 용의자가 검거됐다.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용의자를 고문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인구 1000만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용의자 한 사람을 고문하는 순간, 1000만명의 인권은 유명무실해진다. 지난 수십년동안 우리네 삶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국민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있는게 아니다.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정부다. 세계 정부도 그러할 것이다.
k****9 2002.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