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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동냥그릇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삶에 대한 고찰과 성찰로 가득한 소중한 이야기거리들을 묶어서 저자의 충고 한마디가 씨앗부터 뿌리에서 꽃을 피우는 봉오리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말해주고 있다. 욕망의 삶은 끝이 없음을 우린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그 인간 본래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현대인의 사회는 너무 거칠고 험난하며 온갖 폭풍우에 미칠듯하다. '마지막 사치'라는 이야기의 수도자처럼 시기하는 사람을 만나야지만 우리는 내가 잘났다고, 내가 모든것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완벽한 인생일까.. 또 우리는 남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는가? 내 잣대로만 판단해 버리는 '편견'을 너무나 쉽게 움켜쥐고 있는 것인가? 청소부에게는 더러운 오물의 냄새가 '향기'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청소부를 내가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은 자신의 산물이다. 내가 어떻게 나를 만드느냐는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냥 부끄러워지는것은 왜일까.. 난 너무 나약하게만 생각해버리고 내 잣대로만 세상을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 많았던 무수한 열정들과 욕심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는가.. 인상적인 부분은 '남과 여'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서로'라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 말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한쪽만의 사랑인가? 그것은 가능한가?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이해는 과정에서 불꽃을 튀고, 별이 빛날 수 있다는 것, 한쪽만 병들게 해서는 이룰 수 없는 '미망'인것을... 더욱 더 느끼게 해주었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인생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 하나하나가 아주 작지만 예쁘게 적혀있다. 읽으면서 가벼이 넘겨지는 책장보다 삶의 무게는 더욱 더 날아갈 것 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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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그릇
동냥그릇이라니......
걸인 예찬론 책인가....?
책을 펼치면서 빠져드는 무소유 무욕망의 자유로움
고독한 현대인들
아침을 햇살 처럼 축복으로 느끼며
눈을 뜨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학업으로
직장으로
해 내야 하는 많은 일들로
무거운 짐들 어깨에 가득 싣고
터덜터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잠시 멈추라 말한다.
잠시 멈춰서서 바라보라 말한다.
내 삶을
내 생각을
다시금 멈춰 서서 바라보고
나를 찾고
나를 인식한 후
다시금 시작하라 말을 한다.
"인생 쉼표"가 있는 책은 참 휴식이 있어 좋다.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욕망에 의해 눈이 멀고, 편견으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며, 명분을 움켜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조금 더 읽다 보면 고요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또한 만날 수 있다. 풍자와 해학, 상징이 아등바등하는 우리 삶의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를 보고,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좋은 글들이 여기 모여 있다." 이 책을 통해 내면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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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그릇, 제목이 왜 그럴까 싶었는데, 내용 중에 동냥그릇 제목으로 내용이 있더군요.. 표지도 이쁘고, 내용 안 삽화도 넘 매력적이었어요. 한편의 편지글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누가 나라고 생각하며 동경하고 있는가.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할 수 있으며 내가 누구를 대신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 나와 타인은 다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하자. 내가 상대방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질투하고 스스로 고통당하고, 앙갚음하지는 말자. 신념을 갖고 혼자 다르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외로움은 마음먹기에 따라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의 나약함, 잔인함,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허깨비같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 용기있고 담대한 자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스승을 만났느냐 아니냐는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자기의 잠재력은 자신에 의해서 일깨워질 뿐이므로. 때로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이가 있다.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릇 사람은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르칠 힘이 없는 지식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 먼저 배우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라.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따라하는 모방이란, 모두 함께 자멸하는 짓이다. 결점과 모자람을 인정하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그것을 채울 길도 알게 될 것이다.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은 최소한의 노력 없이는 잘될 수 없는 것이고, 세상의 모든 일은 제각기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법.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찍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은 언제나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자기 자신이 애도할 수 없으므로 타인의 죽음을 대신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권위를 떠받드는 사람들에게 진실이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에게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란 번거로운 일일 뿐이다.
한 때의 아름다움은 그것으로서 가치 있는 것. 그래서 허망한 삶을 누군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라고.
읽으면서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생각을 되새김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어떤 부분에선...한번 읽어서는 선뜻 다가오지 않는 그런 부분에 엮은이의 설명이 감칠맛나게 표현을 해주고 있다. 삶의 여유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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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편안하게 책을 읽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힘들어 하는지 너무나 세상살이가 힘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련이나 삶이 싫어진다고 느낄 때 이 책을 읽으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많은 진실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 때나 남을 말에 귀를 기울이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할 수가 있을 것 이라고 말을 한다.. 이 책은 에세이이다.. 하지만 에세이보단 사람의 마음을 읽는 그런 자기 개발서 같기도 하다.. 수도승들의 이야기의 내용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다.. 그리고 이 책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각각의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알게 해준다.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기를 원하는지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욕망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욕망이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제목의 동냥그릇처럼 왕의 욕망이 어떻게 망하게 되어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믿는가. 나는 약속을 철저이 지킬 인간이라고 믿는가. 입을 다물면 손가락이 수다를 떠는 법이다. 위대한 스승은 알았다. 인간에게 호기심을 억누르기란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 짧은 글이지만 이 책의 끝나는 부분에서 우리가 알고 있으면 너무나 좋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내용들을 읽는 재미도 정말 솔 솔 하다. 그리고 이 책의 표지는 정말 스님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편안하며 누구나 손에 넣고 읽어 보라고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책 표지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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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휩쓰는 명성이나 권위는 벌거벗겨 놓고 보면 허망하기 그지 없다. 자기이름 그대로 피어있는 꽃 한송이만 못하니 말이다-p164.
얼마전에 한 책을 접하면서 플라시보(placebo)시리즈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만족시키는', '즐겁게 한다'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실제로는 생리작용이 없는 위약(僞藥), 전혀 약효가 없는 플라시보를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투여 했을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한다.
「동냥그릇」을 읽으면서 갑자기 '플라시보'가 생각났다. 구도자의 올바른 가르침을 적어놓은 글들인데, 왜 이말이 생각이 났을까?.. 아마도 '참'에 대한 많은 갈망이 이글을 읽으면서 "그래, 그래"..하는 내 끄덕임 때문이었을까.. 풍자나 해학에 관한 많은 책들중에서, 동냥그릇은 성경의 잠언같았다. 들어가는 글이 넘 좋아 (개인적으로 옛글귀를 좋아하는 편) 뒷장을 넘기지 않고 한참이나 죽림칠현의 <방대안도>를 소개하는 글귀에 빠져 있었다.
--눈이 내리는 깊은밤,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어두운밤, 깊은 산중에 은거하는 작자는 문득 친구가 그리워 배를 끌어내 강을 한참내려 가다가 아침이 되니 다시 배를 돌려 올라온다. 친구를 찾아 배를 저어가면서 이미 그 흥취를 다 맛보았으니 친구를 만난것과 다를바 없다는 내용--
글들은 5부로 나뉘어져 제각각의 부제를 가지고, 그리고 다시 소제목으로 인해 글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내용에 의문을 가지게 하지 않았다. (제목과 다른 글들이 있는 책들이 간혹있어, 진위를 파악하려고 책을 한참 뒤적인 경험이 있음 ^^) 그리고 소제목의 내용끝에 친절하게도 명언이나 글에 대한 '해석'글이 다른 색의 글로 쓰여 있다. 글의 내용은 풍자나 해학 그리고 사회상, 인간들의 욕망에 관한 글들이 스승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행위나 물음으로 펼쳐져 있는데 반해, 이 해석글들은 글들의 내용을 더 압축시켜서 확실하게 알게 한다. '책임'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자 .
스승과 함께 여행을 떠난 제자가 날이 저물어 쉬기를 하면서, 낙타를 돌봐야 함에도 그냥 놔두고 신에게 기도만 하였다. "신이여, 낙타를 돌봐주소서."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낙타가 없어진 것을 알고 스승이 물었다. "얘야, 낙타는 어디 있느냐?" 제자가 말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낙타를 잘 돌봐 주십사하고 신께 맡기고 잠이 들었어요. 신에게 맡겼기 때문에 제 책임은 아니거 같은 데요. 스승님께서 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고, 전 그저 신을 믿었을 뿐이에요." 스승이 말했다. "신을 믿되, 우선 낙타를 잘 묶어둬야 했잖니. 신은 그대와는 달라, 손이 없잖아."
밑에 쓰여진 해석글이다.
신에겐 손이 없다. 발도 없다. 그래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모르는게 없으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놀리고, 발로 걷고, 머리를 쓰고, 가슴을 울려야 한다. 그것이 신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닌가? p246.
한장 한장 넘길때 마다, 내용과 동일시 하게 펼쳐지는 총 천연색의 속지는, 꼭 옛날에 유행한 예쁜 편지지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 넘기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책은 눈으로 읽는다 그리고 마음으로 느낀다. 동냥그릇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왜? ..좀만 차면 주인 (거지)이 비워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을 확~~꿰 찬다. 인간은 늘 무언가가 자신을 채워주기를 끊임없이 바라며 꿈꾸고 애쓴다. 그 그릇이 금새 비워져 버리는 줄도 모르고..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들은 또 다른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 지는 것이 아닐까? 난 이 책에서 희망을 읽으려 애썼다. 그래서 시작되려는 가을과 함께 넉넉해 지는 맘을 준비해 본다. 내 '동냥 그릇'이 채워지기를 꿈꾸듯, 많은 이들 또한 이 책에서 비워지고 채워지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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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그릇 - 구도자를 위한 묵상집
나는 누구이며, 인생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자들에게 ‘동냥그릇’은 길동무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여년전도 더 전에 보았던 라즈니쉬의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너무나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내용은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미지는 동냥그릇과 거의 흡사하다.
현대인들은(사실은 동서고금의 모든 인류는) 부질없는 욕심과 철저한 이기심, 뿌리칠 수 없는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기의 욕심이 자기의 온 생애를 갈아먹고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달콤한 유혹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동냥그릇’은 동양적 구도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 아래에서(혹은 인도철학) 발전한 구도적 자세는 끊임없이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추구한다.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삶의 모습은 모든 것을 내어던지고 자연 속으로 회귀하거나 혹은 자연의 순리에 합일하라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동냥그릇’으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부질없는 인간의 욕심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자기계발서’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자기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라,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이 정말 바른 길인가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거나 감명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선입견인지 몰라도,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 이 책에 큰 감명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저 감명에 그치고 삶 속에서 적용하기 힘들 것이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너무나 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도의 길은 쉽사리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리도록 우리를 몰아세우고 있는 이 사회의 거대한 압력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들에게 이 책은 더 없는 안식처와 말동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인생이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와 소통할 기회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해 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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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문이 훤히 열려있던 시절에 동냥은 그리 어려운 일도 자신을 낮추는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진 것은 부족해도 서로 나눌 줄 아는 넉넉한 인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끼니를 때우기 어려웠던 시절, 어찌 생각하면 동냥이란 두 글자엔 인간의 심성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배고픈 자와 나누려는 자가 만나는 세상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린 세상을 살아가면서 항상 배고픈 자가 되기도 하고 나누려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배고픈 자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는 욕심으로 만든 동냥그릇을 마음에 지닌 채 말입니다.
대화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협상하는 과정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중심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화를 주도하려 합니다. 하지만 상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협상이나 대화가 서로 양보하는 수준에서 정해지기 보다는 입장표명이라는 논지만 남게 됩니다. 대화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지시나 명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말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흥분된 말을 자제하는 것, 결국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당나귀는 배가고파 풀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개는 풀 같은 것은 먹을 것이 아니라 고기나 뼈다귀가 역시 좋은 먹을 것이라 빈정댑니다. 화가 난 당나귀는 개를 힘껏 차버립니다. 개와 당나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어느 나그네의 이야기는 개와 당나귀의 서로 다른 언어가 결국은 같은 목적을 말하고 있음에도 소통과 이해의 부족으로 파행으로 치닫는 결과를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서로의 가치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자기중심적인 편견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린 이와 같은 사고에 극히 익숙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특히 자기얼굴에 묻은 더러움은 참을 수 있으면서 유독 상대의 얼굴에 묻은 티끌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편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아이가 빛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얘야 그빛을 어디서 가지고 왔니?” 아이가 빛을 후욱 불어서 끄더니 말했다. “지금 그게 어디로 갔죠?”
빛은 우리의 인생 혹은 간절한 소망 혹은 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은 결국 형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 자체가 그러한 형상을 쫒아가는 순간적인 존재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대적인 인생보다는 상호적인 인생의 소중함을 아는 것,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이유일 것입니다. 나는 네가 있음에 존재하는 하나의 형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너 때문에 고민이 많으십니까? 나를 먼저 세우는 일에 충실한 시간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엔 무척 흔한 게 동냥 그릇이었습니다. 바리 메고 불쑥 문턱을 넘어선 스님들에게 동냥그릇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그릇인 동시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생명의 그릇이었을 것입니다. 그땐 참으로 인심이 후덕했던 것 같습니다. 세끼 먹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스님에게 고분히 동냥을 해주셨습니다. 아마도 마음의 보살을 찾아 나선 스님의 모습에 기도를 하고 가족의 무사안녕을 빌며 스님 또한 보시를 통해 세상을 깨닫는 첫걸음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부족했지만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느끼고자 했던 소박한 마음에 동냥 그릇이 가교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족한 지금 동냥그릇은 사라져 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바로 보는 동냥그릇이 필요한 시기인데도 우린 보다 큰 양푼그릇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려 합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부족한 게 욕심과 욕망이라 합니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가는 길엔 언제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간 느끼지 못했던 전혀 다른 자연의 선물을 만날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의 조그만 그릇에 대해 무척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간장 종지 그릇만도 안 되는 마음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게 가능한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역시 세상은 하나의 길만을 열어 놓은 것은 아닌것 같다란 속 좁은 의견을 피력해봅니다. |
삶을 살면서 마음공부가 필요할 때를 많이 느낀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괴로울 때 특히나 나를 다스려야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자칫하면 엄청난 독단으로 나를 망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기도 쉬운게 사람의 마음가짐..
생각- 생각이 모여서 하나의 습관을 만들고 습관- 습관이 모여서 나의 행동을 만든다 행동- 일초일초의 행동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나...
생각해본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에는 늘 고민할 내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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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짧막한 여러 우화들로 엮여 있다. 반 장에서 한 두장 정도의 글이 5단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냥그릇이라는 책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느낌은 내속에 있는 불순물들을 깨끗하게 비우고 정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표지와 제목에서 느껴지는 인상과 비슷하게 인간의 욕심과 지위,편견 등을 없애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2부 욕망의 화살을 타고 달리는 그대여 단락에서 동냥그릇이란 제목의 우화가 나온다. 왕이 산책을 나가 한 거지를 만나 원하는게 뭔지 물었다. 뭐든 다 들어줄 것 같은 왕의 대답에 거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자신이 왕이라 들어주지 못할 게 뭐가 있냐고 왕은 말하고 거지는 왕에게 동냥그릇을 채워줄 것을 요구한다. 왕은 금은보화를 그 그릇에 채우지만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동냥그릇은 즉각 비워져 채우지 못한다. 왕의 보물창고가 다 비워질때까지 채우지 못했다. 왕은 거지에게 이 그릇이 대체 뭘로 만들어졌길래 채울수 없는지 묻는다. 거지는 사람의 마음,사람의 욕망으로 만들어진거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지위가 높은 곳에 있어서 하찮은 거지 따위에겐 뭐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왕은 사소한 것 하나 채우지 못했다. 인간은 동등하고 같은 인격체를 가진 사람이다. 자신이 높으면 얼마나 높고 낮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낮을 수 있나. 모든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두개를 가지고 싶고, 두개를 가지고 있으면 3개를 가지고 싶은... 하지만 반면에 하나를 가지고 있어도 반을 나워줄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욕심이 너무 과하면 망하기 쉽고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게 된다. 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편견을 없애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좋은 스승을 만났느냐 아니냐는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 결정될 뿐이다. 자기의 잠재력은 자신에 의해서 일깨워질 뿐이므로 스승은 이처럼 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뿐인 것이다.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는 것, 그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