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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오경석, 이상적, 홍세태, 가객 박효관, 출판인 장혼, 화가 최북 등 다른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던 인물도 있지만 처음 들어본 인물도 여럿이었다. 하지만‘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이 책에 등장한 중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재능, 실력이 모두 출중한 인물이라 하나같이 아까웠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신분제도와 성리학적 사고라는 이 두터운 벽 앞에 중인들은 그들이 가진 실력과 재능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을 걸 알기에 중인들이 받았을 차별에 그들이 얼마나 좌절했을지가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조선 말기 새로운 세계사적 흐름을 외면했던 사대부와는 달리 중인들은 그 새로운 흐름을 주목하고 받아 들였다. 만약 그들의 움직임이 조선사회에 수용됐다면 조선의 운명은 지금과 다른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중인들의 활동은 말기에 이른 조선 사회에 변화를 불러오는 시도로 이어졌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이후 조선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됐던 것이다. 중인들은 과거를 통해 선발됐다. 잡과에서 4과 즉 역(譯), 의(醫), 음양(陰陽), 률(律) 분야, 그리고 과거는 아니었지만 예조에서 취재를 통해 의학, 지리, 천문학, 지리학, 율학, 산학 등을 전공한 기술관과 화원, 악공, 등의 예능인을 선발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동시 통역사나 변호사 등에 해당하는 전문직에 문화예술 종사자라 가장 각광받고 선망하는 직종이겠지만 문을 숭상하고 기술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중인들의 기술과 재능은 사대부에 비해 차별받았고, 벼슬도 미관말직에 그쳤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중인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문자 해독 능력과 전문성, 안목을 갖춘 이들은 단조롭고 경직돼 있던 성리학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조선 문화에 다양하고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문화를 생산하는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중인들이 주로 살았던 인왕산이나 청계천 부근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시사(詩社)나 그들이 펴낸 중인들의 전기는 중인들의 문학적 실력을 발휘하게 해주었고, 또 조선 문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또 도화원 출신 화공이나 화가들의 등장으로 조선의 그림 역시 주제나 표현 면에서 다양해졌다. 사대부들의 그림과 이들이 그린 그림은 여러 모로 달랐다. 예술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최북 같은 인물도 있었고, 생계수단으로 그렸으니 교양을 닦기 위해 사대부들이 그렸던 문인화와 다른 그림이 탄생한 것은 당연했다. 바둑의 고수나, 출판인, 해시계를 만들고 고약을 만드는 등 다방면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그 중심에 중인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 결과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말이 전혀 과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직군의 중인들은 각 분야에서 활약을 벌였고, 작품과 업적을 쌓아갔다. 중인 부자들도 여럿 탄생했다.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중인들이 이재에도 수완을 보였던 것이다. 조선 말기로 갈수록 중인들의 시대 감각은 돋보였다. 특히 역관들이 인상적이었다.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 갑작스러운 외교 현안이 생기면 역관이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만큼 실질적으로 업무를 담당했고, 그 과정에서 실무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간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대접 받으며 실무 처리했던 이들은 국내에 들어오면 신분과 사회적 차별을 겪어야 하는 것에 불만이 싹텄을 것은 불문가지였을 것이다. 남보다 앞서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흡수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이 역관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역관들은 조선 사회의 기득권층이 아니었다. 그러니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없었다.
초창기 천주교를 받아 들이는 과정과 개화파의 한 흐름을 형성했던 신분이 중인, 특히나 역관들이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천주교 신자 가운데 평민이 많아 한문을 읽기 힘들었으므로 ,역관이 청나라에서 수입해온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 초창기 천주교 신자 중에는 중인들이 천주교 포교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오경석 등은 개화파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역관들은 실용적 사고와 외국에서 본 견문을 통해 조선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그 어느 계급보다도 앞서서, 외국의 문화와 문물에 대해 개방적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사대부와는 달리 중인들은 기득권층도 아니고, 실용적인 지식이 있었기에 역관을 비롯한 중인들은 개방적인 노선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화와 수구의 대립이 소용돌이 쳤던 조선 정국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역관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은 컸다. 역관 김범우가 예배장소를 제공하다 순교한 것을 비롯해서 개화파의 한 축을 형성했던 역관들 역시 갑신정변의 실패하자 그 활동이 현저하게 위축됐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조선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자 가장 빠른 적응력을 보였던 사람들이 바로 역관을 비롯한 중인들이었다. 19세기 말, 외국어를 배우고 새로운 전문직으로 진출해서 통역이나 세관직원, 선교사 서기로 취직한 이들도 대부분 중인이었다고 하니, 그만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나 변화의 흐름을 읽는 눈을 겸비했다는 의미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조선 중인들 중에 뛰어난 인물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이렇게 된 데에는 중인에 대한 자료가 부실했던 것에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조선사 연구가 왕이나 사대부 등 지배층에 많이 쏠렸던 탓이 아니었을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선 사회에서 중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에 따라 중인들은 중인허통을 요구하는 등 신분 상승을 시도했지만 서얼 허통은 어느 정도 허용해주면서도 중인들에 대해서는 허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선은 끝까지 사대부의 나라였던 것이다.
중인들은 의학이나 과학 등 실제적인 기술로 조선 백성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데 공헌했고, 때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 문화가 다양하고 풍성해지는 데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인들이 조선 사회에서 수행했던 역할이나 조선사회에 기여했던 것이 비해 우리는 그들에게 무심했다. 그래서 그들을 인색하게 대하고 평가했던 것에 반성하게 된다.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은 중인들이 조선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가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더불어 중인들이 꿈꿨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외침에도 귀 기울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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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르네상스 중인! 역사를 전공하고, 수많은 역사책을 읽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져 버린 게 있다면, ‘왕궁’중심의 사고 또는 시각이 아닐까? 그리고 저도 모르게 역사에서의 문화는 왕권이 강했을 때 꽃피워졌다는 식의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놀라곤 한다. 왕자나 공주도 아니면서 어찌 그리 왕조중심의 생각을 하는지. 『조선의 르네상스 중인』을 읽는 동안, 스스로도 웃긴다고 웃어넘겼던 생각들이 얼마나 큰 오류였는지를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역사나 문화를 이끈 주인공중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제 할 일 묵묵히 해낸 '중인'도 있다는 것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계층이 바로 중인이라는 것이 『조선의 르네상스 중인』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문학동인편, 화원이나 가객을 다룬 예술인편, 침술 등의 의학이나 천문인을 다룬 전문지식인편, 오늘날의 외교관에 해당하는 역관편 등 네 부분으로 나눠졌다. 21세기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이야말로 정신과 기술을 겸비한 최고의 전문인인 것이다. 먼저 ‘문학동인’편은 서울을 양반동네와 직업에 따라 군집을 이뤄 사는 동네가 어딘지를 세세히 밝히는 것부터 중인, 자신들만의 문학공동체를 이룬 ‘송석원시사’, ‘벽오사’ 등의 동인은 물론 유득공, 홍세태 등 문학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술인’편에서는 달마도로 유명한 김명국은 물론 최북, 변박, 조희룡 등의 화가와 골동 서화 수집가 오경석, 오세창, 국악의 대표적인물인 박효관, 군악대 이패두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문지식인’편에서는 침술의 대가 허임, 외과수술로 이름을 날린 백광현, 고약처방으로 종6품까지 오른 피재길, 마마에 걸린 숙종을 살린 유상 등의 명의에서부터 새로운 해시계를 만든 김영,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기자 오세창, 오늘날의 법관인 장지완, 청렴 강직한 호조아전 김수팽, 바둑을 잘 둔 유찬홍,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 김범우 등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으며, 역관 편에서는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파하고 들여온 역관 10여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400여 쪽에 걸쳐 서술된 조선시대의 중인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들의 삶과 작품이 가려지고 숨겨지고 없어져 버린데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그리고 책장 한 켠을 몽땅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 위인전의 위인들과 나란히, 이들의 전기가 쓰이고, 편찬되어 책장 한 켠을 나란히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기술과 지식인데, 이들 기술과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중인들은 기술과 지식 외에도 삶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지인 ‘정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들 ‘중인’들이야말로 21세기, 현재를 사는 우리가 본보기로 삼아야할 ‘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선의 르네상스 중인』에게서 교훈을 얻어야할 젊은 세대 혹은 어린 세대가 읽기에는 한자나 한문이 많아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외교관을 꿈꾸는 조카에게 읽어보라 권하기가 주저된다. 그래도 읽어보라 권유하러 간다. "조선시대 역관이 외교관인거 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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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지금이 어쩌면 중인이 꿈꾸던 시대였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동감이 간다. 실생활에 꼭 필요했지만 사회의 분위기와 관습처럼 굳어진 제도라는 미명아래 하찮게 여겨지던 것이 지금에 와서 사 자는 돌림직업으로서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 한때는 당시조선에 일어났던 사건 사건과 그 사건들을 처리하는 상황을 보면 거기까지가 생각의 한계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통신사 수행원중의 한사람인 화원에 대해 한중일 세 나라가 평가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지금까지 네가 품었던 생각은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성리학에 바탕을 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그들만의 현실안주의 편안함과 지배자하고자 하는 사고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관한 글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한류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국에서의 환대와는 다르게 고국에서는 천대받기 일수 였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떻겠는가? 아마 좌절하고 펜을 꺽어 버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묵묵히 하던 일을 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김명국의 경우처럼 자신의 그림솜씨를 추상적인 목표실현에 쓰기보다는 일본 행이라는 특별한 기회를 통하여 최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이용하였고 이에 반하여 왕실의 광대가 되기를 거부한 최북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떤 벼슬아치가 최북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구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를 위협하려고 했다.그러자 최북이 노하여 말했다. 남이 나를 저버리게 아니라,내눈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그러면서 곧바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 중인 후배인 조희룡이 애꾸가 된 최북의 사연을 기록한 글이다.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수 없는 세상에 제 분노를 자기에게 떠 뜨리고 있었다. 세상과 더 이상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의 행동에서 마음 한구석에 싸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김명국은 처세를 잘 하였고 최북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책 제목 중 르네상스인 중인 또한 좋게 말하면 르네상스인이였고 나쁘게 보면 이용만 당하는 불쌍한 사람이였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100년후의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우주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 같다. 지금 괄시받는 농업이 뜨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 이권에 손을 쓰고, 학생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과외를 하고 정치권에서는 누가 더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정치 투쟁을 한다고 생각해 글을 쓰면서도 이런 날이 올까 하는 헛웃음만 나오고 있다. 네게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인물이면 친숙하고, 아직 알지 못했던 인물들은 이런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한 생을 이어 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똑똑한 한사람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을 싫어한다.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사람은 이름 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중인이라는 신분으로 조선이라는 나라 속에 묵묵히 살아왔고 또 다른 미래의 중인들이 살아갈 것이다. 중인들에 대해 이제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책 내용 또한 신선했고 삽화들 또한 훌륭해서 이 당시에도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졌구나 하는 생각에 놀람움이 번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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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것을 탈피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 흔히 중세 르네상스를 일컫는 말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난 르네상스 예술은 당시로선 혁신적이며 파괴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많은 예술가들이 자유의 혼을 담은 창작에 몰두 했던 것 같다. 자신을 옭아맨 사회에 대한 반항, 자유로운 예술에 대한 염원, 배고픈 시절을 살다간 그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우린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을 만날 수 있다.
신분세습은 비단 조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종교적인 차별, 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21세기 역시 평등한 구조로 이루어진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생적 신분을 좌우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 어쩌면 인류의 극적인 모습을 만들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모든 결정권자는 왕이나 귀족이었지만 결국 필요한 상황을 연출하거나 방어막 혹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대다수의 노비나 천민 혹은 평민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하고 평등한 세계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 반란이란 죄목이 쓰인 가혹한 형벌이었다.
중인을 중심으로 한 문학이 형성되는 시기도 역시 르네상스 시대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비였던 장영실이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세종의 눈에 든 시기가 15세기다. 양반이 득세하던 조선에서 중인이 관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역관, 율관, 화원, 의관, 산관등이 되는 것이었으며 역시 신분이 세습되어 조선 최고의 골동 서화 수집가로 이름을 날린 오경석은 8대가 역관을 하였고 그의 손자는 조선의 마지막 역관이 되었다고 한다.
부가 사회적 기준이 되어 버린 요즘, 이름 있는 화가의 작품은 호당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말 그대로 희귀성이 있고 좋은 그림 한 점이 웬만한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시절이다. 조선시대 역시 이재에 눈에 뜨인 화가들이 있었다. 조선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화원이 있었는데 그들은 일본 통신사로 갈 때마다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그림에 대한 식견 부족과 중인을 무시하는 조선보다 이재에 밝은 일본이 화원들에겐 기회의 땅과 같았을 것이다. 특히 신필이라 불리던 김명국의 인기는 당대 최고였다고 한다. 김명국은 술을 마시고 붓을 잡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은 것을 보면 자신의 재주에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주에 비해 보잘것없는 현실에 자주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는 17세기 일본에 조선풍(한류)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어느 시대나 의사는 특별한 대접을 받아왔다. 비위생적인 과거엔 더욱 그들의 역량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유교적 학문에 치우친 사회 분위기는 중인이라는 신분으로 의원을 한정 지었다. 우리가 잘 아는 허준 역시 서얼이다. 가난한 노비의 아들로 눈대중으로 배운 침술로 왕의 병을 고친 허임은 그야말로 인생을 역전한 케이스다. 그는 허준이 고치지 못한 선조의 병을 고친 대가로 정3품의 벼슬을 받게 된다.
1894년 갑오경장은 중인들에게 새로운 사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문벌타파와 인재등용의 기회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회의 변화였기 때문이다. 특히 역관이라 불리던 이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들은 청, 일, 러 그리고 미 열강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후일 항일 운동과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지금 외교관을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사, 예술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꿈꾸어 온 세계가 바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예술로 시작된 서구 르네상스는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고 궁극적으로는 사상이나 이념에까지 깊숙한 영향력을 주었다. 조선시대 중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현실에 무릎 꿇지 않았다. 오히려 나 보란 듯이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휘해 나갔다. 결국 그들의 자존감은 간절히 원하던 세상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풍족한 사회 일수록 자신보단 남의 입을 쳐다보게 된다. 자의식이 미약해지고 욕망에 치중한 사회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는 배고픈 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세상에 대한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들은 진정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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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반쪽양반들인 중인! 그들의 전방위적 재능과 비범함은 놀랄만큼 대단했지만, 그럼에도 역사의 주변을 맴돌뿐인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 책은 기존의 <미쳐야 미친다>와 <조선의 프로페셔널>이 '벽과 치'로 대표되는 시대의 마이너들의 빼어난 소양에 대해서 격찬으로 일관한 것과는 달리,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문헌의 철저한 해석에 입각해서 중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어처구니 없이 왜곡되어 소개된 기존의 역사 인문서와 팩션들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야말로 진짜배기 역사 논픽션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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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생각했다. 나...둥근 얼굴에 푸근한 몸매, 부잣집 맏며느리같은 이미지이기 때문에 요즘의 미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미인도 같은 데에 그려질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다. 요즘은 바싹 마른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나오는데다가 온 국민이 다이어트 열풍에 가담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요즘 사람들의 미의 기준인 것이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중인, 그 계층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정말 요즘 태어났어야 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일찍 태어나서 사회적 부조리에 뜻도 능력도 펴지 못하고, 더 큰 꿈을 펼치지 못했을거란 생각에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바로 중인이 꿈꾸던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요즘같은 세상에 정말 필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좋은 재질의 책장에 컬러풀한 그림과 사진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움을 더해 준 이 책을 접하니 시대의 변화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중인이라고 힘들게 살던 옛날이 있었던 반면, 지금은 옛날과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어쩌면 나도 창조적인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지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는 다양한 중인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인왕산 굽이진 기슭에서 시처럼 산 문학동인, 세상의 우여곡절을 그리고 노래한 예술인, 계급의 질곡에 맞서 시대를 끌어안은 전문지식인,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신세계를 꿈꾼 역관, 이렇게 네 가지의 주제로 인물들을 분류해 이야기를 풀었다. 이 중 관심 분야인 전문지식인과 역관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긴 하지만 문학동인이나 예술인도 관심있게 보았다. 그리고 인상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로 표시 해두고 또 다시 펼쳐보기로 생각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다시 보면 의욕을 되찾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보면 색인이 있어서 찾아보기 쉽게 표시되어 있다. 또한 옛 사료들을 인용하여 한결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 느낌이다. 예전에 인기 있는 직업이라고 지금도 인기 있으라는 법은 없다. 또한 지금 인기 있는 직업이라고 다음 세대에게도 인기 있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작가의 말 대로 지금은 바로 중인이 꿈꾸던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들어본 이름에 대한 글은 보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었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글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신선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인정되는 그들의 능력이 공감되었다. 어쩌면 지금은 예전보다 참 좋은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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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의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사민총론」에서 우리나라 백성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었고, 모두 백성이었다. 백성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선비가 어질고 덕이 있으면 임금이 벼슬을 시켰고, 벼슬하지 못한 자는 농사를 짓거나 장인이 되거나, 장사꾼이 되었다.’ 즉 사․농․공․상 네 부류를 신분의 구분으로 보지 않고 직업으로 보아 벼슬하지 못한 선비는 농.공.상 중 하나를 택해 일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로 이중환이 말하고 있는 중인은 서얼과 장교, 역관, 산원, 의관 등 오늘날로 말하자면 전문직업인을 뜻하며 서얼은 양반이었지만 중앙 관료로의 진출에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저절로 중인과 한 부류가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인은 양반과 평민 사이의 글자 그대로 중간계층이다. 중인은 넓은 의미로는 양반과 상민의 중간 신분 계층을 뜻하고, 좁은 의미로는 기술관만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의 중인은 15세기부터 형성되어 조선후기에 이르러 하나의 독립된 신분층을 이루었고 중앙과 지방에 있는 관청의 서리와 향리 및 기술관은 지역을 세습하고 같은 신분 안에서 혼인하였으며 관청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였다. 서얼은 중인과 같은 신분적 처우를 받았으므로 중서라고도 불리었다. 이들은 문과에 응시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간혹 무반직에 등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정조가 말한 중인의 직업은 요즘으로 치자면 장교, 공인회계사, 의사, 외교관, 통역사, 천문학자, 변호사, 법관, 서예가, 화가, 공무원 등을 말하며 중인 외에 시정과 하천을 구분하여 세 계층을 아울러 위항인이라고도 불렀다. 이것은 사대부와 상민 사이의 중간계층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중인이라고 볼 수 있다. 위항인은 역관이나 의원 같은 중인뿐만 아니라 서리나 노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위항은 마을 가운데 꼬불꼬불한 작은 길이고 작은 집에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동네에 사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분명치 않았고, 조선 후기로 내려가면서 양반보다 부유한 중인이 많아져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비록 신분은 낮았지만 재산을 모은 이도 꽤있어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에게 일만냥을 빌려 준 한양 최고의 부자 변씨의 모델이 조선최고의 갑부 변승업이었던 것을 보면 그들은 졸부가 아닌 인재를 알아보고 큰 밑천을 대어 줄 정도로 인재를 볼 줄 아는 안목과 식견이 높았던 경륜을 갖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일본에 파견했던 조선통신사 같은 경우는 중인의 역할비중이 더욱 커 막부에서 요청하는 전문직이 별도로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인은 외국에 나가면 특별대접을 받고 기량을 맘껏 펼칠 수 있었지만 국내에서만은 신분과 사회적 차별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불만을 문학으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문학동인 ‘시사’였고,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중인의 전기를 편집하는 움직임도 다양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중인은 전문인으로 많은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신분차별 등으로 인한 불합리함 등 사회적 제도에 불만이 많다보니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마자 다른 계층보다 앞서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역관은 청나라에서 수입한 ‘성경’을 비롯하여 천주교 교리들을 한글로 일찍 번역 보급하는 결과를 가져와 중인의 활발한 종교활동 덕분에 우리 국민의 문맹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낮은 이유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분에 제한없이 실력에 따라 벼슬을 하게 해 달라는 상소를 몇 차례 조정에 올리긴 했지만 그것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투쟁적이진 않았다. 그러다보니 중인들은 신분의 극복보다 중인들의 시문집편찬 등에 주력해 사회변화의 주도적 역할보다는 그들만의 중인 문화를 향유하며 살았고 독특한 시문인 위항문학과 전문 기술지식을 보유한 행동이 민첩하고 이해관계도 밝았으며 대인관계도 능했다.
조선의 문예부흥기였던 정조대왕 시대도 그 뒤안길에는 중인이 르네상스인으로 활동하였기에 가능하였으며 19세기 말에 서양과 일본 세력이 밀려 들어오자 양반은 위정척사를 내세워 구제도를 지키려고 애썼지만, 중인은 양반보다 한 발 앞서 외국어를 배웠고, 새로운 전문직으로 전출하였다. 따라서 신분제도에 얽메이는 구체제에 반발하여 신분향상운동을 전개하였고 갑오개혁을 계기로 신분제도가 철폐되고 신분향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 전통문화의 해체와 근대화 과정으로 가면서 그들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처럼 당시 양반사회에서는 중인 계층을 천하게 여기면서도 경계하는 분위기였지만, 중인의 전문적인 식견과 재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문과 출신보다 각계의 프로페셔널한 전문가가 대접받는 이 시대가 중인이 꿈꾸었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처럼 역사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자신의 재능과 끼를 마음껏 넓히고 도약한 준비된 '전방위 지식인'이었던 중인들.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은 그런 점에서 인왕산 굽이진 기슭에서 시처럼 살다 간 송석원시사, 벽오사 동인, 인왕산 공동체 등의 문학동인들, 세상의 우여곡절을 예술로 풍자하고 승화시킨 김명국, 조희룡, 오세창, 박효관, 이패두 등의 예술인들의 삶, 관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탁월한 침술로 허준과 함께 선조의 주치의가 된 허임, 해시계를 만든 천문인 김영,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기자 오세창 등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비범한 능력과 의술을 지닌 전문인들, 시대를 앞선 실용적이고 전문통신사로의 신세계를 꿈꾼 역관들 이제껏 역사에 묻혀있던 전문지식인들이었던 중인의 삶을 그들의 행적을 차근차근 꼼꼼히 돌아보고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약하기를 꿈꾸는 이 시대의 중인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문교양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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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골목에서 시대의 큰 길을 연 사람들의 곡진한 이야기” 책 맨 앞 표지의 이 글귀는 저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의 두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중인과 이 글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책은 주로 조선시대 중기 이후 중인들의 업적과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소 중인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어서 이 책을 읽기 전 ‘중인’하면 떠올랐던 인물은 역관 홍순언 정도가 다였습니다. 거기에 TV사극에서 잠깐 잠깐 나오는 관청의 아전들. 드라마에서 그들의 대사는 “~ 나리, ~습니다, 예이~.” 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의 역할은 주로 양반들이 시키는 잡무 처리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군요. 요즘으로 하면 소위 잘 나가는 직업 군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의사, 법조인, 통역사, 예술가, 기사, 공무원 등. 일정한 교육을 받고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만 행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우선 두툼한 책 두께에 좀 놀랐습니다. ‘인명색인’ 부분까지 하면 거의 400쪽에 가까웠거든요. 처음엔 좀 의아했지만 읽어가면서 저자의 정성을 느꼈습니다. 같은 사람을 다양한 사건을 통해 소개하기도 하고, 참 많은 자료들과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잘 알지 못했던 인물들이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과 생각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인왕산 굽이진 기슭에서 시처럼 산 문학동인 *세상의 우여곡절을 그리고 노래한 예술인 *계급의 질곡에 맞서 시대를 끌어안은 전문 지식인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신세계를 꿈꾼 역관 의 4부분과 부록, 그리고 색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장 문학동인 부분에서는 위항시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와 그들이 모여 살던 곳, 그리고 유명한 ‘시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인들이 시를 읊고 함께 뜻을 모아 문집을 만들고, 또 소수는 양반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고 그래서 무척 놀랐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 구분이 엄격했었다고 해서 마치 인종 차별처럼 할 수 있는 것도 명확하게 구분되어있는 줄 알았거든요. 어쩌면 심리적인 차별과 구분이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 예로 부유한 중인들은 경제력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위 상승에는 한계가 있었고, 조수삼이라는 사람은 높은 학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3세가 되어서야 겨우 진사 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사회적인 불합리라고나 할까요? 예술인 편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았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주로 양반들의 글, 그림을 배웠고, 박물관에 가서 봐도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별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는데 이 책에서 예술가들의 전기와 일화를 소개해주면서 그들의 작품을 보여주니까 다 같은 그림이 아니더군요. 그제서야 작가들의 화풍과 필체가 달라 보이고 작품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3장 전문지식인 편에서는 여러 직업 군에서 활동했던 중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다양한 인물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당연히 양반들이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많은 임무들을 중인들이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또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천주교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의 첫 번째 순교자였던 ‘김범우’가 중인이었더군요. 그리고 다산 정약용 집안 사람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전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박해 받은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특히 윤지충과 권상연에 관련한 부분은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희 동네에 성당이 하나 있었는데 어릴 적에 그 곳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을 따라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성당 문은 닫혀있었고 문 틈으로 들여다 본 성당 안은 캄캄하면서도 뭔가 신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초등 고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 성당에 대해 잠깐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성당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요. 그 곳이 바로 이 책262쪽에 나오는 전동성당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성당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답니다.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책을 읽는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비록 학술적인 용어가 많고, 제 한자 실력이 짧아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과 정보가 가득 담겨있어서 귀한 보물을 캐내는 기분이었습니다. 몇 번 더 읽으면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곳을 다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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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이라는 신분의 낯설음이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양반과 평민, 그리고 천민으로 나뉘어진 조선의 신분계층만을 생각했다. 중인이라는 신분이 있었다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어떠한 곳에서 해왔는지 모르는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양반도 아니고 평민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계층. 그렇게 많지 않은 계층이어서 역사에서나 혹은 다른 분야에서 다루기가 조금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의료, 법률, 금융, 외교, 천문과학, 언론들의 전문지식인 층과 예술, 미술, 음악, 문학등의 예술에 이르기까지 분야에 종사하는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인들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충족하고 권력이나 명성까지도 가진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였다. 양반사회에서 신분의 차이로 인한 신분상승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면서 그 한계를 극복한 이도 있겠지만 어떤이들은 그 신분의 한계를 일찌감치 알고 포기해야 했던 어두운 모습도 간직하고 있었을것이다. 물론 그들 보다 더한 신분 상승의 제약을 받은 계층도 있었겠지만...
이 책은 조선의 중인에 관한 이야기를 50여편 가까이에 달하는 분량을 실었다. 몇몇은 들어보기도 했지만 생소한 인물이 많이 나왔다. 초,중,고등학교때에는 듣지 못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중인들에 관한 내용이 많은 분량 실려 있어서 조선의 중인들을 새롭게 볼수 있는 게기가 되었다. 또한 역사서에는 그렇게 많이 소개 되지 않았지만, 때로는 양반들 보다도 뛰어난 그들의 능력을 보면서 그들이 세상 전면에 나온 시기는 얼마되지 않으나 세상전면에 나오기 전에도 그들의 분야에서 뛰어난 자신들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 보면 실무자이기 때문에 양반들 보다도 실제적인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한 축을 담당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네부분으로 나누어 중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 인왕산 굽이진 기슭에서 시처럼 산 문학동인 2. 세상의 우여곡절을 그리고 노래한 예술인 3. 계급의 질곡에 맞서 시대를 끌어안은 전문지식인 4.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신세계를 꿈꾼 역관
인왕산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였고,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리가 되었다. 시문학동인인 송석원시사나 벽오사동인, 60년마다 선배들의 시선집을 간행한 위항시인들을 볼때 그들의 문학적 재능이나 능력이 양반에 못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송석원시사가 장안의 화제가 되자, 문인들은 이 모임에 초청받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조선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 역시도 중인들과 교류가 깊었다는 내용이 있는것을 보아 그 역시도 그들의 능력을 대단하지 않았나 싶다.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김명국의 모습이라던지 단지 돈을 위해서 그림을 그린것이 아니였고 또한 서평공자와의 내기 바둑에서의 일화와 높은 벼슬아치가 그림을 부탁을 안 들어주는 최북을 위협하자 자신의 눈을 찔러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조선후기의 신분사회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예술혼을 지키려는 의지와 자존심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침술의 대가 허임, 신의 백광현, 새로운 해시계를 만든 김영,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기자 오세창, 천재국수 유찬홍, 순교자 김병우등 그들이 활약한 분야가 한분야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거 그들의 능력을 발휘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역관시인 홍세태, 통신사 무예사절 마상재, 나라의 운명을 바꾼 홍순언, 사대부조차도 한두번 밖에 못 간 중국을 열두차례나 드나들었던 이상적, 미국 대학 졸엽생 변수, 개화기때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의 능력을 발휘했던 중인들..
저자가 말했듯이 21세기에 태어났어야 할 사람들이 20세기에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지금 그들이 태어나서 이 세상을 이끌었다면 조선시대 보다도 자신들의 능력을 더 발휘 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인들의 삶에 대한 많은 지식이 없었지만 이 책으로 인해서 중인의 신분과 그들의 역활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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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인 이야기다. 통역관, 의사, 기술 관료(?), 상인과 같은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학교 역사책에서는 중인에 대해 간단히 배우고 지나치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주목하지 않게 된다. 아마 그 이유는 역사를 지배층의 역사 또는 민중의 역사 라는 양 극단에서 공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인은 양 쪽 그 어디에도 끼지 않으면서 양 계층에 끼인 이름 없는 계층으로 인식해서인지도 모른다. 또, 마음 저 안쪽에는 이들 중인 계층을 언제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계층으로 인식하는 편견도 동시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말한다. 중인은 조선의 르네상스인이라고. 책을 읽으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조선 사회를 움직이는 실무적인 역할은 중인이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법률 지식을 중시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법률 지식에 대한 수요는 많았다. 양반이 이 역할을 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중인이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통역도 마찬가지다. 박지원 같은 사람들이 열하일기를 통해 북학에 대한 선각자적 혜안을 드러냈지만, 진정한 북학파는 중인 통역관들이라고 봐야 한다. 박지원이야 중국을 한 번 다녀오고 말았지만, 이상적 같은 역관은 열두 차례나 중국을 다녀왔다고 한다. 또, 조선 개항기 개화파의 중심은 중인 역관이었고, 초기 천주교 지도자의 60%는 중인 출신이었다. 이외에도 역사의 이면에서 실재로 역사를 돌아가게 한 이들의 실무적 역할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물론,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려고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배타적 세습을 했다는 면도 잊지는 말아야겠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문학동인, 화가, 기술관료, 역관. 이들의 역할을 통해 이들 중인들의 조선의 르네상스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 지 살펴볼 수 있다. 우리 회화사에서 연담 김명국이 없었다면, 우리 문학사에서 김효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중인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한계에서 오는 고뇌와 넘어설려는 노력을 역동적으로 잘 그리고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