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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거미 여인의 키스 천사의 음부 조그만 입술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
# 읽고 나서. 이 특이한 제목의 책은 제목 만으로도 눈을 확 끄는데, 구성은 더 특이하다. 서른여섯 살의 미국인 래리와 일흔네 살의 아르헨티나 망명자 라미레스,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이야기 전반이 흘러가고, 뒤의 몇 편의 편지글을 통해 특정 결말을 암시하는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모호한 묘사 보다 확실한 대화체가 훨씬 상황을 파악하기에 훌륭한 형태다,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 대화글을 보고 있으니 설명과 묘사와 배경들이 얼마나 중요한 소설의 구성 요소였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미국인 래리는 시급을 받고 아르헨티나 망명자 라미레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산책을 시켜주는 일을 맡는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결국 서로의 취향과 과거를 묻는 질문들이 오가게 되고, 둘 다 자신에 대해서는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아 대화는 늘 산으로 간다. 둘의 대화를 통해 라미레스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아마도' 노동자의 입장에서 투쟁했던 그가 투옥되고, 그 사이 가족들마저 몰살되어 몸과 마음의 병을 얻고 인권위원회를 통해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우연히 라미레스가 옥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프랑스 소설책들을 본 래리. 마르크스 주의에 관심이 많은 그는 소설책 속에서 라미레스가 단어에 숫자를 매기는 방식으로 남긴 옥중 수기,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이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고 이 기록을 해독하고 발표하는데 관심을 보인다.
"이거 아나요..... 당신이 읽고 있던 메모라는 것은.... 나는 그 메모에 있는 그 어떤 단어도 믿지 않아요..... 그 단어들은 소설 같아요. 게다가 아주 오래된 거지요. 당신은 그 메모를 읽고 그 안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있어요..... 당신을 나무라는 말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의 노력에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난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책에 그렇게 쓰여 있던가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세기전에 사용하던 말로 적혀 있지만 말입니다." "조심해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에 관한 얘기를 조금 나누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분명해질 테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상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하고, 마지막 열린 결말은 책의 제목에 나와있는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든다. 한가지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은, 망명자 라미레스의 노트에서 발견한 메시지에 래리는 흥분했고, 그를 통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그의 행보는 둘 사이를 갈라놓았고, 래리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영원한 저주를… ‘이라고 시작하는 메시지에 걸맞은 엔딩을 맞았다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게 당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건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서로에 관해 알아가려고 그렇게 애쓰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과거를 감추려는데 애쓰는 두 사람. 그리고 마치 놀이 인양 역할 놀이를 하는 그들은 이상하다. 래리는 라미레스에게 기억하라고 부추기지만, 이미 메시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해석해 버린 그에게 라메레스의 '진짜 기억'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보고 싶은 데로 해석하고, 그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과 다를 바 없는 관계로 남아버린 그들의 모습은 저주받은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조금만 더 설명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지만, 덕분에 여러 번 뒤로 되돌아가 읽으며 곱씹을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했다.
'나름' 열린 결말인데, 내가 보고 싶은데로 해석해 버리면 독자도 저주를 받는걸까? ㅎ
** 밑줄 쳤던 내용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만일 당신이 내게 아들처럼 말하면, 나는 아버지로서 당신에게 물어볼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부모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묻는 쪽은 아이들이죠." "부모들은 답을 알고 있다..." "그래요, 적어도 항상 답을 주죠. 지시도 하고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아버지처럼 말할 수는 없겠군요."
"곧 내가 직접 고른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철학, 혹은 신학 서적이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 좋았습니다. 나는 특히 길고 복잡한 구절이, 다른 구절을 언급하는 구절을 다시 언급하는 구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기쁨을 선사하던 것은 문장의 이동과 그 논리, 그리고 그런 문장의 아름다움과 복잡한 구성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나의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모든 책을 빼앗았습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 '몸'이라는 제목이 붙은 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게 포르노 책이라고 생각하고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내가 기쁨을 느끼는 것은 모두 의심스러운 책이라고 여겼습니다."
"(...) 목표는 사라졌고, 원래의 행위는 잊혔지만, 죄는 마치 기름얼룩처럼 당신의 삶에 번져나갑니다."
"도시락 바구니에 있던 샌드위치 속에는 뭐가 들었죠?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속을 덮어놓은 겁니다." "당신은 그 속에 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창피한 일은 아니에요. 게다가 거짓말하면 안 돼요...속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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