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관계 고대사 그 바른 내역에 대해서는 워낙 기록이 불충분하게 남겨진 까닭에 누구라도 논쟁의 고비에 확언 정설을 내놓기 어렵습니다. 다만 역사학자 모두가 열린 마음 공정한 자세로 겸손되이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할 텐데요. 이런 학자적 양심을 기대하기에는, 근래 일본이 너무 막나가는 태도를 취하기에 뜻있는 이들의 우려가 매우 큽니다. 우리 겨레가 각별한 마음가짐으로 선조들의 노고와 유산을 재조명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본이 그 실상을 왜곡하며 막무가내로 우겨대던 건 심지어 고대사의 한 국면에서도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송 황실에 사신을 보내어, 자신들 왜국의 수장을 백제, 모한(=마한), 신라 등의 지배자로까지 책봉해 달라며 억지를 썼다는 거죠. 이런 주장은 당대인들, 혹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정치 단위 중 왜국인들 말고는 아무도 수긍하지 않는 망상이었습니다. 다만 한반도가 그들의 이런 방자한 태도에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건 그저 무시해 버릴 만한 망동이어서이기도 하겠으나,근본적으로는 삼국이 분열했던 정치적 취약성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겁니다. 조상들의 찬란한 위업을 돌아보며, 우리 후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본분을 다하는 중인지, 진지한 역사의식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됩니다. |
|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주목할 만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 역할을 했던 백제의 실체가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백제는 중국 남북조의 선진문화를 되새김해 신라와 가야는 물론 고대 일본의 아스카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백제는 한반도 항쟁의 역사에서 막강한 고구려에 필적할 수 있는 중심 세력이었고, 국제교류를 활발히 하여 동아시아에서 해상 강국, 문화 강국을 지향하던 큰 나라였던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일본 속의 백제 문화를 찾아 떠나다
이 책은 양기석, 노중국, 정재윤 교수 등 국내 백제학의 최고 권위자들이 일본 현지를 방문해서 직접 보고 느낀 사실들을 역사적 자료, 유적, 유물 등과 함께 소개하는 백제학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지금까지 일본 도처에 남아있는 백제의 실체를 규명하는 역사서술 방식의 새로운 시도이며 결과물이다.
공저자들은 백제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강조하면서 백제는 중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그들의 문화 수준을 높임과 동시에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까지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런 문화를 움켜쥐고 있는 폐쇄성에서 벗어나 주변의 여러 나라에 이를 전파해 주는 '문화외교'를 펼쳤음에 주목한다.
일본 땅에는 백제 문화의 흔적들이 많이 남겨져 잇다. 특히, 오사카 지역은 일본의 고대 시절 '가와치河內'라고 불리던 곳으로 백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 유적이나 설화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가와치 지역은 서쪽으로 오사카만에 접해 있어서 해상 교통의 관문인 셈이었다. 또 이 지역에는 나라분지에 못지 않는 대규모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가와치 지역에 대한 이해는 일본 고대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자 토대이며,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은 고대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서 이루어진 문화 교류의 모습을 짐작케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동시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왜인渡倭人들의 활동상과 삶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주, 부여,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 결정되었다. 이렇게 백제의 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백제거 고대 동아시아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 교류의 핵심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교류의 모습은 바로 가와치 지역 곳곳에 그 숨결이 아직도 살아있다.
백제는 역사적으로 왜국과 깊은 우호관계를 가졌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간의 항쟁 과정에서 백제는 정치적으로 고구려나 신라를 견제하는데 왜국을 우군으로 활용하였고, 반면 왜국은 백제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고대국가의 제대로 된 모습를 만드는데 적극 활용해 나갔다.
지금도 일본의 오사카 지역에 가면 '백제천百濟川', '백제촌百濟村', '백제역百濟驛' 등 백제 사람들이 남긴 역사적 흔적과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고대 일본은 백제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고대국가 수립과 고대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토대가 되었다. 백제가 일본열도에 마한계 토기류를 비롯하여 백제계 기와와 전돌, 부뚜막시설, 대벽건물, 장식대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위세품이나 장례용 의례품에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물을 전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물 이외에도 토목, 건축, 불교, 도교, 율령, 정치제도, 문자생활과 유교적 교양 및 예술 등 각종 선진기술과 고급의 정신문화를 일본열도에 전해주었다. 고대 일본에 있어서 백제에서 건너온 여러 가지의 새로운 기술과 문화의 수용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일본 내의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가히 혁명적이라 불릴 만큼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오사카 지역에 백제 도왜인들이 정착하다
긴키近畿 지역은 일본열도 4개 섬 중의 하나인 혼슈의 중심지로서 오늘날 오사카, 교토, 나라, 와카야마, 이세, 나고야, 고베 지역을 통칭하여 부르는 곳이다. 이곳은 서쪽으로 태평양과 접해 있으며, 세토 내해를 통해서 고대 중국과 한반도의 문화가 북큐슈 지역을 경유하여 전파된 일본 고대문화의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야마토(大和), 셋츠(攝津), 야마시로(山城), 가와치(河內), 이즈미(和泉) 등의 고대 지역 정치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지역 정치체들 중에는 나라분지에 위치한 야마토 정권이 가장 세력이 강해 후에 일본열도를 통합해 간 중심세력이었다.
오른 쪽에 고대 긴키 지역을 나타내는 그림이 보인다
그 가운데 백제 도왜인들이 개척하여 5세기의 기술혁명을 만개한 곳은 오사카 남부 연안의 가와치 지역이다. 이곳은 세토 내해를 통해 오사카에 진입하는 해로 교통상의 요지이자 기나이畿內 세력의 중심지였던 야마토 조정의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이곳은 그 북부에서 흘러드는 하천인 요도가와淀川와 야마토가와大和川 등이 오사카만에 유입되면서 그 주변 하구에 가와치 호수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 주위에 광대한 충적 저습지가 펼쳐져 있었다.
5세기 중반 이후 백제 도왜인들이 이곳 가와치 지역에 정착하면서 요도가와 평야와 그 주변의 저습지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나섰다. 하천의 제방을 쌓아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배후지를 논으로 개발하였다. 이 개척사업에는 백제에서 가지고 온 새로운 토목, 관개기술과 도구 및 많은 노동력을 투하하여 새로운 경제 기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로서 가와치 지역의 농업생산력은 급속히 향상되었으며, 주민들의 정착성도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 도왜인들이 가져온 새로운 생산기술과 문화는 고대 일본 사회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정도로 획기적인 충격이었다.
백제 도왜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들
현재 일본열도 곳곳에 가면 백제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들을 쉽게 찾을수 있다. 큐슈 지역을 비롯하여 동북 지역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특히 오사카 지역을 포함한 긴키 지역은 큐슈 지역과 함께 백제유적과 유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오사카와 그 주변 지역에는 백제 도왜인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었던 사실을 입증해 주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와치와 그 주변의 이즈미和泉, 야마토大和 등지에는 수에무라陶邑 유적, 모즈후루이치百舌鳥 고분군, 오가타大縣 유적, 와키다脇田 유적, 시토미야기타 유적, 이치스카一須賀 유적, 난고南鄕 유적 등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 가운데 오사카 남동부의 하비키노시(羽曳野市)에 곤지를 모신 아스카베 신사(飛鳥戶神社)가 있으며, 그 주변의 구릉에는 아스카베센즈카(飛鳥千塚)라는 백 여기의 고분군이 존재한다. 곤지는 백제의 개로왕과 문주왕의 동생으로 가와치 지역에 16년 동안 머무르면서 백제 도왜인들을 조직화하여 왜 정권이 친백제 노선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 왕족이었다.
그리고 하비키노시의 외곽을 흐르는 개천을 건너면 다카이다야마高井田山 횡혈식고분이 있다. 이 고분은 기나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횡혈식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횡혈식석실분의 채용은 백제 도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곧 일본 전통의 장송 관념을 뒤바꾸는 왜 사회 자체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하였다.
여기서 출토된 청동다리미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비교하면 그 크기나 형태 등에서 놀랄 만큼 유사하여 묻힌 사람을 인근 오가타유적에 거주한 백제계 기술자 도왜인들을 통솔한 백제 왕족급 인물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질토기인 스에키須惠器는 5세기 중반 경부터 기나이 지방에서 생산을 시작하였는데, 오사카의 수에무라 유적에서 그 생산이 개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발달된 금속공예 기술도 이 지역에 전해졌다. 기나이지역에서 발견되는 5~6세기 금속공예품으로는 귀걸이, 허리띠, 금동제 관모, 금동제 신발, 장식대도 등이 있다. 그밖에 기와 제작술과 생활유적인 대벽건물 등의 물질문화도 백제 도왜인들의 기나이 지역 정착과 함께 등장하고 있어 의식주를 포함한 왜의 생활문화 향상에 큰 변혁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일본 왕국은 백제의 또 다른 왕국(?)
소설가 최인호는 이미 일본을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백제의 후손들이 고대 일본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720년에 만들어진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한국과 관련한 많은 내용들이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 특히 백제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학자들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일본의 고대 천황체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고대 한일 관계를 왜곡하고 윤색한 케이스가 많다. 말하자면 역사의 진실을 조작한 것이다. 국내에는 한 달에 두번 모이는 "일본서기 윤독회"가 있다. 여기에는 문헌을 중심으로 백제사를 연구하는 교수들,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백제사를 연구하는 연구자, 대학원 석박사 과정생, 대학생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양국의 역사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일본학계에서는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왔다는 의미로 '도래인'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한국 사학계에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의미에서 '도왜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건너간 사유는 다양하다.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중에서 우리의 역사서에도 그 이름이 있으면서 일본 현지에도 관련 유적이 있는 인물로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후손인 백제왕 경복과 그가 세운 백제사百濟寺, 개로왕의 동생으로 왜에 사신으로 갔다가 문주왕 시대에 귀국해 활동하다 죽은 곤지와 그를 모신 아스카베 신사, 그리고 왜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준 왕인과 그의 묘 유적 등을 대표적으로 손꼽을 수 있다.
|
|
가와치는 오사카 남부 연안에 위치한다. 오사카,쿄토,나라,와카야마, 고베 등 긴키지역은 야마토,셋츠, 가와치 등 고대 일본의 지역 왕권들이 존재했던 지역으로 이중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를 통합했다고 한다. 백제의 유민들은 이곳 가와치 지역에 5세기경에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각종 건축 공예 등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음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4세기말부터 7세기백제가 망할 때까지 한반도의 정세에 따라서 일본에 많이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성씨를 기록한 [신찬성씨록]에 보면 가외치에는 전체 68씨족중에 70% 정도인 48개 씨족이 백제유민의 성씨이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백제천, 백제교, 백제촌 등의 명칭이 생겼음은 당연할 것이다. 책의 크게 2부로 제작되었는데 제1부는 양기석교수외 강유나 박윤우님 등이 백제왕씨의 자취와 사찰의 흔적, 무덤의 흔적과 무덤의 형식이 백제의 횡혈식석실문으로 이루어졌으며 능산리고분군을 닮은 쇼토쿠태자묘의 고분의 형태 그리고 치카츠아스카 박물관 등에 보이는 백제계 씨족들의 유물 등을 통해 백제와의 교류가 상당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책은 가와치의 백제 유적과문화를 거론하지만,, 도쿄도에서 八王子로 가던 길에 백제교, 백제천 등 명칭이 보이는 것을 보면서 동경 근교에도 백제의 어떤 문화가 전달되고 유민들이 도래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던 적이 있다.. 2부에 백제와 왜는 어떤 관계였나? 에서는 백제와 왜가 4세기경 처음 교류를 한 후에 고구려에대항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 왜에 원군을 요청하기도 했던 점, 그리고 백제가 왕족을 보내서 우호를 다진 것등을 상세히 밝히는데,, 때로는 소원했다가 볼모 형태의 귀족을 파견하여서 우호를 다졌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부분이었다. 볼모 형태라면 백제가 왜를 섬겼다는 것인가? 아니면 왜도 답례로 백제에 왜의 귀족을 보냈던 것인가? 가 우리 역사에 남아 있지 않으니 조금은 답답한 부분이기도 했다..신라에 의한 백제사 등이 안남아 있음은 정말 안타까움이다 2부는 양기석, 노종국,정재윤 교수 등이 논문 형태로 도왜인의 활동, 무덤, 불교유적 등을 개개인의 의견으로 엮어 냈지만 가와치 지역의 백제의 숨결들이 비숫한 내용을 엮어져 있다. 백제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한층 깊은 지식을 얻기에 충분한 내용이었으며 사학을 하는 이를 위할 만큼 깊이 있는 내용으로 보였다. |
|
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양기석, 노중국 외 / 주류성 刊
고대 일본은 곧 백제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간사이 지방, 오사카와 나라 일대
일본인은 역사 인식의 모순에서 허덕인다. 그들의 뿌리가 백제이고 아스카이며 궁극적 가와치는 오늘날의 오사카를 말함이다. 일본열도에는 백제의 문화 흔적이 도처에 산재
이미 공주, 부여, 익산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백제는 고대 동아시 |
|
세계는 지금 아시아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한류, 즉 한국 대중문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대회 당시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한류열풍’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다. 과연 한류 열풍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인기 있는 드라마 하나로 한류열풍이 일었다고 한다면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 문화를 너무 앝 잡아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드라마 ‘겨울연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연가’는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을 뿐, 한류 열풍의 원인은 다른 무엇인가 있을 것 같다. 진앙지가 있다는 말이다. <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이 책은 ‘일본 가와치(河內)’를 한류 열풍의 진앙지라 한다. 가와치는 오사카부 동쪽에 있던 일본 고대 국가로 아직도 이곳에는 백제와 관련 있는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 책은 충북대학교 양기석 명예교수와 계명대학교 노중국 명예교수 등 9명이 일본 오사카 지역에 남아 있는 백제 유적을 답사하면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소개한 책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은 우리에게 어떤 관계인가를 알려면 먼저 백제와 왜는 어떤 관계였을까?를 먼저 알아야할 것 같다. 일본 천황인 아키히토(明仁)는 자신의 예순여덟번째 생일에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캄무천황(桓武天皇)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어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이 세운 왕조가 오늘날 일본 왕실의 뿌리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어쨌든 백제가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서 일본 속의 백제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백제 왕씨의 자취가 생생한 히라카타시와 백제계 도왜인들의 생활 터전인 가시와라시, 백제계 고분 밀집 지역인 미나미가와치군과 백제계 씨족들의 중심 무대인 하비키노시 등 백제인의 후예 가와치 지역을 답사하면서 옛 백제인의 흔적을 통해 백제와 왜는 어떤 관계였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제2부에서는 백제와 왜는 어떤 관계였고 백제계 도왜인들이 건설했던 가와치 지역의 도왜인의 활동과 백제 문화와 관련 있는 고분과 건물터, 토기와 기와 등 백제와 깊은 연관을 갖는 유적이 남아있어 당시 백제인의 생활유물을 엿볼 수 있으며, 농경생활의 변천사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본사람을 ‘왜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키 작을 왜(矮)’와 ‘왜국의 왜(倭)’는 분명히 다르다. 어떻게 왜(倭)자를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역사적으로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해 줌으로서 백제인과 일본이 교류한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와치 지역에서 출토되고 확인된 백제의 유적과 유물이 일본이 백제와 문화교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다. 백제는 왜에 학술·기술 등 선진 문물을 제공하고 왜는 백제의 요청에 의해 고구려나 신라와 맞서는 군사 원조를 하는 형태로 교류하였다. <한류 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이 책은 백제와 일본은 어떤 관계인지, 백제인이 왜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은 백제 문화를 계승하여 어떻게 생활을 하고, 백제인의 후예가 오늘날 일본 왕실의 뿌리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자신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한일관계는 역사인식부터 왜곡하여 왔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민족감정 차원으로 발전하여 왔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정재윤 공주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 땅에 정착한 이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온 이들도 있을 터이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비장한 각오로 온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백제에서 건너와서 왜인들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우리는 이 때문에 이들을 백제계 도왜인이라 부른다.” - 161쪽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백제를 떠나 일본에서 살아야만 하는지?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백제인들의 애절한 심정이 이해가는 대목이다. 어쩌면 그들은 도와줄 친인척이라고는 하나 없는 곳에서 죽기 살기로 살아 왔을 것이다. 마치 약자와 강자가 우글거리는 맹수 같은 곳에서. 그들의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가와치 지역에서 발견된 역사적 유적과 유물은 백제의 실체를 규명하는 증표이자 우리가 일본과 우호 관계를 재정립하여야 할 이정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한일 두 나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한 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계승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
|
한류 열풍의 진앙지라고 하면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곳을 바로 예전 황도라고 불렸던 교토입니다. 지금도 교토에는 당시 진씨로 불렸던 하타씨가 교토의 주축을 이루고 고구려 계열이었던 야사카 씨가 그 뒤를 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백제는 헤이시 족 외에는 크게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신라 계열인 겐지 씨는 훗날 겐지 모노가타리의 이야기가 이루어 지는 성씨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토의 키요스미가 백제의 계보를 따르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령왕의 아들 곤지왕의 이야기도 교토의 문화해설사에게서 여담으로 들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백제라는 나라는 한반도 보다는 일본에서 힘을 많이 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최근 들어 백제가 재조명 되면서 예전 위, 촉, 오 삼국시대 당시의 동오의 영토와 비슷할 정도의 영토를 정복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양직공도에 따르면 (이 책은 본디 무령왕 당시에 지어진 글이라는 학설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 백제 성왕 시기에 지어진 글이라는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 듯합니다.)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를 공격하여 2군을 획득하고 진평군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규슈 지방 일부를 백제땅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백제도 한반도 내외에서 많은 활약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근초고왕 당시 대방 옛땅을 두고 고구려와 경쟁을 벌이던 중 고국원왕을 평양성에서 전사시킨 사건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가 되고 있을 정도로 백제도 기마무술에 있어서 뒤지지않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백제는 점점 쇠퇴했으며 무령왕 당시 일본으로 많이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가와치라는 곳이라고 이 책은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가와치 저도 사실은 이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지명입니다. 최근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일본편까지 만들어내어 유명해진 "교토" "오사카" 가 유명해졌는데 바로 그 가와치 국은 오사카의 관문인 율령국이었습니다. 훗날 가와치 국은 가와치 직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백제의 고토의 숨결은 아직까지 남아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교토를 자주 들리긴 합니다만 이번 기회에 가와치 국의 고토를 한번 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듯 했습니다. |
|
한류열풍의 진앙지 일본 가와치 이 책은 현재 일본에 남은 문화강국 백제의 발자취를 찾아, 지금까지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백제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 시도의 책이다. 문화강국. 백제는 개방성과 국제성이 강하였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당시 선진화된 문물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음은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일본을 비롯한 주변 나라에 전파해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에서는 이를 ‘문화외교’라 일컬었다. 그럼에도 역사 속의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하였다. 신라 문화로 이어진 우리나라의 역사적 발자취에 맞춰 백제 문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백제문화가 전파되었다 한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백제의 문화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열도에는 백제의 문화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 고대에 ‘가와치’라 부른 오늘날의 오사카 지역은 서쪽으로 오사카만에 접해 있어 해상 교통의 관문 역할을 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와 깊은 연관을 갖는 유적이나 설화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가와치 지역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유적, 유물들은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문화 교류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며, 더불어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왜인들의 활동과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도왜인들이 가와치 지역에 정착하여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척하고, 새로운 경제 기반을 만들어 낸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가와치 지역은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백제 도왜인들이 가져간 새로운 생산기술과 문화는 고대 일본 사회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것이다. 일본의 생활문화 향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 하다. |
|
누구에게 권할까
일본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백제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한일문화 교류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주류성은 백제가 부흥 운동을 펼쳤던 장소이다. 주류성 출판사에서 백제와 왜에 관한 역사서가 나왔다. 사학과 교수님과 학예사 등 여러명이 탐방대를 꾸려 일본 현지를 답사하고 각자 쓴 글을 묶어서 책으로 나왔다. 책은 백제의 도왜인들이 일본에 남긴 유적지를 살펴보며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와 백제의 문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백제 도왜인들이 개척하여 5세기의 기술혁명을 만개한 곳은 오사카 남부 연안의 가와치 지역이다. 이곳은 세토 내해를 통해 오사카에 진입하는 해로 교통상의 요이이자 기나이 세력의 중심지였던 야마토 종정의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5세기 중반 이후 백제 도왜인들이 이곳 가와치 지역에 정착하면서 요도가와 평야와 그 주변의 저습지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하였다. " 10쪽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인들은 특히 현재의 오사카, 교토, 나라 지역으로 많이 이주 하였다. 그곳은 현재 긴키 지역이라고 불리운다. 특히 오사카 남부의 가와치 지역에 집중적으로 백제의 유적이 남겨있어 이곳을 집중적으로 답사하였다. "현재 일본열도 곳곳에 가면 백제인들의 남긴 역사의 흔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큐슈 지역을 비롯하여 동북 지역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특히 오사카 지역을 포함한 긴키 지역은 큐슈 지역과 함께 백제유적과 유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10쪽 백제는 그 당시 고구려가 남쪽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왜와 정치적으로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며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이런 동맹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 많은 정치인, 학자, 기술자, 종교인을 일본으로 보냈고 그들은 백제의 많은 종교, 학문, 문화, 기술을 왜에 이식하였다. 이런 결과로 왜는 더 세련된 문화와 기술을 갖게 되었고 야마토 정권 성립의 밑바탕이 되었다. 백제는 왜와 교류를 통하여 왜의 군사력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국가가 망하게 되었고 많은 백제 왕족과 귀족들이 왜로 이주하는 결과를 나았다. 백제라는 나라가 망함으로서 그들이 남긴 많은 유적들이 패국으로서 많이 훼손되며 사라졌다. 또한 한국에서는 많은 외침으로 인한 전쟁으로 옛 유적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백제들이 남긴 사찰 등을 비롯하여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백제를 연구하려면 오히려 일본에 건너가 백제인이 남긴 유적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패망으로 많은 백제인들이 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하며 살았을 것이다. 백제인들이 남긴 유적을 보면 왠지 실향민의 한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함께 읽은면 좋은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3 교토의 역사>유홍준 http://blog.naver.com/goodkms108/220432259307 <이만큼 가까운 일본> 강태웅 http://blog.naver.com/goodkms108/220789211631
<일본 넷우익의 모순> 야스다 고이치 외
|
|
임나일본부설.그들은 왜 임나일본부설을 말하는 걸까.신라도 아닌,고구려도 아닌 가야와 백제를 자신이 지배했던 나라라고 말하면서 억지 주장을 하는지 말이다. 그건 신라가 백제의 역사와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천년고도 경주와 신라의 역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라가 지운 백제의 아픈 역사는 일본이 백제를 지배했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반면 일본은 오랜 세월 하나의 국가로 존재 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문화와 문화재 그리고 역사를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으며, 그안에 백제의 문화와 역사,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비록 일본은 내전으로 인하여 대화재가 발생했지만 신라에 의한 의도적인 역사지우기는 실체하지 않았다. |
|
우리와 일본은 역사적으로 많은 희노애락이 서려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중국 못지않게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았고, 때로는 서로가 경쟁하면서, 혹은 앞서 나가면서 많은 자극과 파급력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각의 폭을 넓혀 줄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 고대 문화의 발전상과 한반도에 존재했던 해상왕국 백제의 연관성을 다루면서 고대사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고 몰랐던 역사적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의 역사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야나 전문적, 시기적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왕국들이 있었지만 삼국시대는 저 세 나라를 의미합니다. 중국과의 역사 갈등으로 고구려에 대한 언급이 지금은 많이 자제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와 신라에 대한 사극이나 드라마, 이를 배경으로 각색된 문화컨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백제에 대한 언급과 다루어짐은 적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료나 부족하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배우는 한국사나 역사책에도 백재에 대한 언급은 특정 시기나 왕들을 중심으로 이어가고 있고, 확실하지 않고 부족한 사료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백재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기존의 틀에 박힌 역사보다는 조금 더, 넓고 크게 보려는 시도나 접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제사를 알수록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깝게만 느껴집니다. 고구려나 신라, 발해, 가야 등 여러 왕국들이 일본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백제만큼 유대가 끈끈하고 가까운 국가는 없었습니다. 일본의 고대사를 보더라도, 백제를 일본으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킵니다. 실제로 일본의 역사학자들이나 우리의 사학자들도 고대 일본 문화와 왕국의 건설, 발전 상을 보면서 백제가 큰 파급력을 줬다고 보고 있습니다. 백제의 멸망을 기점으로 이런 점이 두드러졌고,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고, 일본이 가지지 못했던 기술이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롭게 발전시켰고, 한 차원 더 끌어올렸습니다. 이 책은 그런 점들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왕이 매체를 통해 밝힌 사실도 화제였습니다. 자신의 출신이 백제의 후손이며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도 우리나라가 점점 발전하고, 한일 관계가 새롭게 재정립되면서 조금씩 자신의 신분이나 혈연, 출신에 대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이 크고, 특히 백제와 유대를 강조하면서 서로 같은 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을 우리가 만들었다, 혹은 일본은 백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며, 확대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드러나는 모습이나 모든 면에서 백제와 일본은 정말 가까웠고, 거의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실 겁니다. 지금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한류의 열풍을 타고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파급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 과 10년 전에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며 일본이 이미 경험했던 문화에 대한 점, 우리의 문화가 일본의 문화를 모방한 점 등 서로가 배우고 성장하면서 지금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역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 많습니다. 산업화, 근대화 이전의 일본은 우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많았고, 오히려 우리가 우수함을 펼치면서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부각될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연구의 가치가 높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가장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 이 책을 통해 우리 고대사와 일본의 고대사가 어떻게 닮아있고,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하는지 알아 보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쟁과 외환이 많았던 우리에 비해 일본의 문화나 유적지는 보존 상태도 매우 좋고, 많은 부분에서 우리 한국사를 새롭게 정립하거나 배우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