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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시작과 함께 다시 만난 조정래 선생의 <한강>.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사뭇 다름에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전 10권 중 한 권 한 권의 리뷰로 생각을 갈무리할까 하다가... 8권을 다 읽은 지금 시점에 일단락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크게 세 가지다.
소설이기 전에 역사의 기록이다 6.25 전후에서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지난한 현대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근 30년의 가파른 세월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는 <한강>은 한홍구 님의 <대한민국사>의 체혐판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사>가 암흑, 공백기에 있던 현대사 연구의 불을 지핀 의미있는 역사적 기록이라면, <한강>은 그 기록의 면면에 피와 살을 더하는 민중의 삶이 들어있다. 워낙 굵직굵직한 정치, 사회적 변동이 많은 탓에 수시로 검색을 해가며, 나름의 주석을 달았다.
대하소설이자 팩션인 소설에서 주인공은 월북 아버지를 둔 유일민, 유일표 형제를 축으로 모든 인물 군상이 얽혀있다. 따로 일민, 일표 형제의 관점에서의 감상이 필요할 것 같다. 가난과 폭력보다 더 무서운 연좌제의 천형을 짊어진 형제의 지난한 삶은 보는 내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들이 목도하고, 핍박받았던 순간순간을 모으며 기층의 피눈물나는 역사의 총합이 완성된다. 하여 소설이기전에 역사서로 읽힌다. 그것도 핏빛으로 얼룩진 넝마주이의 그것처럼.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 단순한 논리인 것 같지만, 확실한 건 소설 속에 그려진 사회상은 지금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피어올리기 시작한 이념 논쟁은 <한강>에서 반대 급부를 죄다 빨갱이로 몰아붙여 욕망을 충족했던 박정희와 강기수의 모습과 하등 차이가 없다. 죄의식 없는 한탕주의에, 어떻게든 줄을 동원해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했던 기업가들은 물론, 언제나 착취와 핍박의 대상이었던 농민과 하층 노동자의 삶도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친일세력의 득세는 지금의 새누리당에 이르기까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고, 권력과 결탁한 대기업 총수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피고름을 짜내며 배를 채우기 바쁘다. 수많은 사연을 품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은 알고 있던 걸까?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대물림되고, 가진 자의 탐욕은 끝없이 키를 높이기만 하는 빌딩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철저한 반성이다. 자기 성찰이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반성 없는 삶은 또 다시 불구의 역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강>에 등장하는 정치인, 기업가, 군인, 판검사, 언론인... 그리고 반대편에 서있는 피흘리는 민중,을 보며 다시금 2012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바라본다.
강원도의 힘? 전라도의 한? 요 몇 일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전라도 사투리가 불쑥 튀어나오기 떄문이다. 나 또한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유년을 보내고, 경상도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전학도 많이 다니고, 가족보다는 혼자 지낸 시간이 더 많다. 어쩌면 내 몸은 각 지역의 특징적인 유전자에 거부감 없는 항체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한강>에서는 천두만 아저씨를 통해 궁극의 남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구성지고, 찰방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피맺히게 울려대는 한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사에 있어 호남지역만큼 핍박 받은 곳이 또 있을까? 강원도가 분단의 상처를 품고 있다면, 남도는 대한민국사의 층층이 덧난 상처들을 수북하게 안고 있다. 지금도 호남은 신음하며, 그 유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연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서이자, 민중들의 삶을 촘촘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내 경우는 모두 2번씩 읽었는데, 시간적 간극을 두다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감동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급적 주위 중고등학생들에게 널리 읽히고 싶은 마음이다. 이만한 국사(한국근현대사) 텍스트가 있을까 싶다. 10권을 마저 재독하고, 유일민, 유일표 형제의 눈으로 바라본 <한강>,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바라본 <한강> 등으로 주제별로 리뷰를 정리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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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을 한 편 읽고 나면 굉장히 뿌듯하고 기쁜 느낌이 든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 10권을 다 읽었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치 살 속에 박힌 가시를 빼는 듯 후련한 느낌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 책을 쓴 저자는 책을 다 썼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10권을 다 읽기도 힘든데, 그 많은 내용을 다 썼을 때, 얼마나 짜릿한 기분이 들까? 뭔가 이루어 냈다는 포만감이 가득하지 않을까? 그에 비추어 조정래라는 작가는 그런 대하소설을 무려 3편이나 썼으니 뛰어난 소설가임에 분명하다. 그 세 편을 다 쓰는 기간이 무려 20년이었다고 하니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이번에 읽은 한강은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이은 세 번째 책이다. 다른 책을 겸해서 읽어서인지 몰라도 전부 읽는대만 한 달이 걸렸다. 책이 지닌 시대적 배경은 이승만 말기부터 전두환 초기 광주민주화운동 초까지 이어진다. 책의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유일민과 유일표라는 형제다. 이들을 중심으로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 속에 일반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서술해 나간다. 사실 이 두 형제를 주인공이라 말하기에도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워낙에 다양한 인물이 나오고 이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재들이 세세히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모두가 주인공이라 말해도 될 듯싶다. 아버지 때문에 인생의 꽃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두 형제, 부푼 꿈을 시골에서 상경해 고생만 하는 농사꾼, 하루 열네 시간 씩 중노동에 시달리는 공순이, 공돌이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기자,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업가 그리고 정치인 기타 등등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각 자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난 인간의 삶이 무엇이고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바라보는 입장에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끊임없는 충돌과 고뇌, 읽는 이에 따라 이쪽 편에도 혹은 저쪽 편에도 설 수 있는, 도대체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를 향해 질문을 해댄다. 그 독자의 한 사람인 나는 끊임없이 답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아니, 헤맨 다기 보다는 이미 나와 있는 답 앞에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충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말했고 용기 없는 나는 아직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조정래씨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조정래씨 소설의 문학적 뛰어남도 뛰어나지만 비단 이뿐 아니라, 난 항상 조정래씨 소설에서 역사의 냄새를 맡는다. 태백산맥도 그렇고 아리랑도 그렇고 이 한강도 마찬가지다. 일반 역사책들이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조정래씨 소설은 비주류들에 대한 역사를 서술해 놓고 있다. 당시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 일반민의 삶이 마치 눈앞에 그려지듯 나타난다. 워낙에 역사서를 좋아해서 그런 쪽에 연관을 갖고 읽어서 그런지는 몰아도 조정래씨 소설을 읽으면 역사의 균형을 잡을 수 있어서 배울 점이 아주 많다. 특히 한강에서는 6,70년대 모습을 보다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난 그 당시를 떠올리면 급격한 경제발전만 생각했지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는지 쉽게 관심 갖기가 어려웠다. 물론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당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살고 힘겹게 살았는지 실제 피부로 와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꼈다. 또 위에서 말했던 고민과는 별개로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은 시대의 투쟁 앞에 과연 나란 사람은 어떻게 대체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무리 내 의식이 깨어있고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보다 더 강력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 사회 속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저 열심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 역할을 충실히 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강의 저자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이런 글을 썼던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과거 선배들이 노력했던 것처럼 무단히도 싸워 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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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처음으로 올리는 책이다. 한강은 조정래라는 작가님의 책으로, 아리랑과 태백산맥이라는 책과 연결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울로 올라오는 야간 열차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책은 등장인물이 한 30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 모든 주인공들은 서로서로 얽혀 있다. 등장인물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농촌에서 올라와 잘 살기 위해 고등고시를 공부하는 학생, 선거 공약은 지키지도 않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국회의원들, 서독(독일)에 가는 광부와 간호원, 공장에 취직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 직공 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 전쟁 이후 이다. 총 10권인데, 격랑시대, 유형시대, 불신시대라는 총 3개의 시대로 분류되어 있으며, 거친 파도라는 뜻의 격랑시대에는 정권이 진짜 파도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다.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과 그 다음해에 일어난 5.16군사정변이 이때 일어났다. 유형시대의 뜻은 아마 유배, 형무소같은 뜻일 것이다. 이 때는 박정희 정부의 시대였는데, 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그래서 생긴 뜻인 것 같다. 중앙정보부도 이때 제일 무서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불신시대는 말 그대로 믿지못한다는 뜻인데, 내 생각에는 사람들을 믿지 못할 정도로 세상이 무섭지 않았나 싶다. 이 때의 역사는 마산에서 3.15 운동이 일어난 뒤에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라는 사람한테 총살 당하고, 포철이 완공되며,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한 기자가 광주 5.18의 현장으로 내려가면서 끝난다. 내가 이렇게 긴 소설을 잃은 것은 해리포터나, 삼국지, 초한지 정도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 책이 재밌다는 것이다. 한강을 읽고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이 시대 서민들의 삶이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가난했다지만 매우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고, 그에 비해서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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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머리 팔 다리 그리고 몸속에 있는 여러 가지 장기들이다. 그 중에서 심장은 나의 거대한 몸이 일어나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혈액과 에너지를 전달해 주는 중요한 기관이다. 한 번의 심장박동 때문에 내가 살아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장의 멈춤은 내 신체의 정지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럼 왜 나는 심장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와 여러 장기를 가지고 있는가? 누구나 여기에 대한 답은 안다. 팔 다리가 없으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며, 다른 소화 장기가 없다면 몸속에 일단 들어온 어떤 음식물도 소화시켜 에너지로 그리고 혈액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럼 당연히 내가 움직이고 살아있는 것은 심장 하나의 기능이 아닌 몸 전체의 균형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다. 내 몸의 어느 한 것도 쓸모없거나 없어도 그만인 부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 기업이나 국가 안에는 한 명의 대표나 지도자가 존재한다. 그 사람에 의해 삼성, LG와 같은 거대 기업이 창출되었을 것이고, 그 사람에 의해 하나의 나라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그는 마치 내 몸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 혼자서 기업이든 나라를 경영하고 운영해 나갈 수 있는가? 손과 발 역할을 하는 기업의 노동자 그리고 국가의 국민이 없다면 기업과 나라를 운영할 공급원을 찾을 수 없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도 노동자와 국민이 필요하고, 그들도 위의 높은 사람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위의 고하는 있을 수 있지만 중요성의 높고 낮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는 경제발전이 우선이라는 미명아래 노동자와 국민의 당연한 권리가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고 무시되어왔다. “당신도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좀 넓게 봐...... 저 사람 입에서 한탕이란 말이 괜히 나왔어? 부동산 투기로 한탕, 권력과 짜고 한탕, 부정부패로 세상이 자꾸 썩어가면서 그놈의 한탕이 예사가 된 결과 아니겠어? ..... 그 문젠 총리가 벌써 말했잖아요. 아직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다, 좀 더 참고 기다려라 하고 말예요..... 일국의 총리가 국민을 향해서 명령을 하듯이 그런 일방적인 소리를 해도 되느냐 그거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2차를 거쳐 3차에 들어섰고, 국민의 대다수는 근근이 살아가며 지난 12년동안 참아왔거든. 그런데 그동안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서민들로서는 잘살 가망이 없는데 막연히 기다리라니 그건 제삿날 잘 먹자고 석 달 열흘 굶으라는 것과 뭐가 달라. 한강 7권, p.253-254" 60-70년대의 고난을 이기고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말씀하신다. 박통이 있을 때가 좋았다고.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만큼 살아가고 있다고.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하나는 살맛나게 만들었구나 라고 잘못 생각해 왔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경제를 이끈 그의 노력이 한국 경제사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지도자와 서민의 관계는 심장과 수족의 관계와 같다. 그 당시 외화를 벌기 위해 베트남전쟁으로 간 우리의 형제들.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로 나간 친구와 누나들 그리고 중동으로까지 진출한 우리의 아버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는 것이다. 박통 덕분이 아니라 배고픔과 서러움 그리고 억울함을 참고 견디어 온 우리 서민들의 힘이다. 서민이자 노동자인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보릿고개라는 말을 이겨왔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으며 IT중심국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와 서민의 이런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노동자와 기업의 사장, 서민과 지도자,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을, 다시 말해 약자로 존재한다.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우리의 근대를 다룬 이 소설은 과거이면서도 현재에서도 존재하는 우리 서민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다. 경제적 수치는 증가하면서 살기 좋아졌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피부로 느끼는 을들의 삶은 여전히 빡빡하고 권리는 갑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 묻혀있다. 1960-7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우리 아버지의 삶 속에서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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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5월 18일로 '한강'을 마쳤다. 도서실에서 빌려 본 터라 조금은 더디게 읽기는 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했다.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조정래씨가 더없이 부러웠다. 유일민이라는 청년이 겪었을 '연좌제'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다루어져 왔는지 몰랐고, 스테인레스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의 손이 잘려나갔었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집에도 스테인레스 밥공기를 계를 들어서 샀으면서도... 언제 사라졌더라 싶었던 차장 언니들의 사연과 가발공장의 성행 또한 생소한 이야기들... 베트남 파병에 관한 이야기는 어렴풋이 아버지도 가려고 했었다는 뒷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 몰랐고,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4번씩이나 다녀온 아버지의 생생한 증언은 책을 남다르게 느끼게 했다. 4.19로 시작해서 5.18로 끝나는 '한강'의 흐름은 그야말로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신문으로 접했고, 텔레비전으로 들었던 정치적인 사건들이 역사서처럼 씌여지지는 않았다. 굵직한 사건들을 기준으로 하층민들의 혹은 지방 강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나갔는지에 대한 모습들과 생활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준 이야기이다.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알았던 것도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가슴 아프게 보고 느껴야 했던 이유는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고, 느껴야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에 좀더 감동이 있었던 것같다. 많은 사람이 등장했지만 유일민, 유일표, 천두만, 한인곤의 삶은 들여달 볼 수록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일민, 유일표 형제가 살아야 했던 삶은 그야말로 어둠이었을 것같다. 학교도, 생활도 모든 사상문제에 걸려서 무엇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는게 안타까웠다. 실은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없어서 막연하게 느꼈을 뿐이다. 천두만은 전라도 출신의 젊었을 적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나도 은연중에 전라도 출신을 욕하면 심한 반감을 갖곤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부모의 고향이 전라도냐고 물어봤던 면접관의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 회사에서 떨어졌지만 떨어진 이유가 어머니는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서' 떨어 뜨렸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는게 낫다는 이유로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지방 색깔이 없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아직도 지방색을 느끼고 있다. '전라도새끼들은 빨갱이가 많아'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쨌든 천두만은 지게꾼, 똥지게, 가발 장수, 쌀집 종업원... 결국 낙향해서 농사를 짓지만, 가장 안타까운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천두만의 큰 딸이 죽었을 때는 많이 울었다. 독립 운동을 했었고, 군인이었고,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한인곤의 삶도 그닥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처우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안이하게 다루어졌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사는 지나간 일들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고 들었다. 자식들에게 좀더 역사의식을 바로 알려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도 읽었으면 싶어서 10권을 구매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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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분단 후 이승만의 장기집권, 4.19혁명, 5.16쿠데타, 박정희의 독재, 그리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까지의 한국의 현대사 30년을 다룬 대하소설이다. 분단국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발전에 온 국가력을 모았던 그 시절, 눈부시게 발전하던 대한민국의 양지와 음지까지 작가는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이 본 진실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그 치열하고 잔인했던 30년을 저자는 많은 인물을 통해 그 시절을 살아냈던, 내 부모의 이야기 일 수도 있으며, 친구, 이웃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그 시절을 말하고 있다.
유일민, 유일표 형제는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좌제에 의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 최고의 대학을 나왔어도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그 형제가 갈 수 있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 시시때때로 검사를 당해야 했고,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사회진출도 차단되고 돈을 벌러 외국으로 나갈 수 가 없는, 보이지 않은 사슬에 묶여 국가의 감시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전쟁과 '빨갱이'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기에 그 형제들은 감히 큰소리로 부당함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형제로 인해 그 당시 정부가 반공사상으로 얼마나 험악하게 사람들을 다루었는지, 또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여러 간첩사건들이 권력에 의해 날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법고시 합격만이 최선이라는 생각 아래, 이규백, 김선오는 사법고시에 투신한다. 그래서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지만 돈많은 집 사위가 된 이규백은 돈의 권력아래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며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나 김선오는 그 빽(?)을 활용해 승승장구한다. 이렇듯 [한강]에는 많은 인간상들이 등장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자와, 권력에 기생해 자신의 욕심을 내세우는 자들이 등장한다. 살벌한 권력의 비호 아래 권력을 가진자는 더 가질려고 하고 그 가진자들에게 기생을 하는 자들이 있고, 그와 반대로 가진자들에게 피박을 받는 자들과 그들의 부당함을 항변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근로자로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그냥 이루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한강]을 읽으면서 알게 된 큰 수확이였다. 사업주들의 입장과 근로자들의 입장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고, 그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몸을 불태운 '전태일'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근로환경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이런저런 선택을 전혀 할 수 없는 자들도 등장한다. 바로 '천두만'으로 대변되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자식과 처를 먹일 수가 없어서 서울로 상경해 지게꾼, 부두 하역부, 똥을 푸기도 하는 배운것이 없어서 착취만 당하는 이 인물은 [한강]에 등장하는 진정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우여곡절끝에 큰 아들을 취직시키고 결국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떠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곤 했다. '인간이 인갑답게'라니...그런것이 어디 있겠는가. 밥만 안 굶고 살면 다행인 것을...그 시절을 살아냈던 많은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단지 하루 세끼 밥을 굶지 않는 것이였을 것이다. 예전에 친할머니가 왜 그렇게 밥 굶지말고 살라고 했는지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한강]은 박대통력이 갑작스럽게 서거하고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4일 지나서야 신문을 통해 '폭도진압'이라는 기사로 서서히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계엄군에 의해 '폭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광주의 시민들...이상재, 유일표, 원병균은 진실을 알기 위해 광주로 떠나면서 막이 내린다.
독자는 소설이 나오면 그냥 읽으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가만히 앉아서 이 좋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니...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한강]을 읽으면서도 작가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었는지 몰랐었다. [한강]의 10권 말미에 작가의 글을 보니 작가의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글을 보니 [한강]이후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감히 하기 어렵겠다.
조정래의 3부작[아리랑],[태백산맥],[한강]을 읽으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얼마나 내가 무지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강을 읽으면서도 특정사건과, 특정인물은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자유가 그냥 이루어진것이 아닌, 민족들의 피땀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비해 햇빛은 더 많은 곳을 비추고 있지만, 아직도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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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막연하게 알고 있던 60/70년대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조금은 공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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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과 '아리랑'이 준 감동이 아직도 기억에 있는 건 아니다.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니까. 역사에서 평범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청춘시절에 읽었던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단순히 나만을 위해 열심히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지막 시리즈라는 '한강'을 읽었다. 늘 새해엔 한 질의 대하소설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실행을 못했다. 올해엔 다른 모든 책을 제쳐두고 우선 한강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읽혔다. 하루에 한 권 읽을 때도 있어서 보름만에 10권을 다 읽었다. 그만큼 조정래 작가의 역량은 대단했다. 다시 한번 큰 작가구나 싶었고 절로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어졌다.
독서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한강'이 확실히 쉬웠다. 일단 내가 보아왔던 시절같았다. 1950~60년대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70~80년대와 비슷하다. 가난한 농촌집안이었던 우리 집은 언니들이 어렸을 때부터 그야말로 입 하나 덜기 위해 서울로 가야 했었으니까. 미싱을 돌리던 나윤자가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눈물을 쏟아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엇비슷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분명 있다. 그들에겐 '한강' 이야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한강'을 쓰던 당시 선생님이 생각하던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연좌제가 그렇다. 1980년도 이후엔 없어졌다고 사전엔 나오나 지금도 특정 직업군에선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아직도 유일민과 유일표 형제들이 있을 수 있다. '한강'의 실질적 주인공인 이들 형제의 아버지는 월북한 정치가다. 이들 형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그래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플라스틱 공장을 하고 야학을 하며 재활용품을 쓰레기에서 분리해 내는 일을 했다. 그들이 행복한 가정을 갖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작가가 가진 애정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채옥과 일민의 일로 오래 속을 끓였다. 잘되길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게 되서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다.
둘째, 친일파 처단 문제다. 해방후 가장 잘못한 문제가 바로 친일파 처단 문제라고 한다. 어떻게 독립군 잡던 놈들이 다시 경찰서, 군인 상부조직에서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군들 자손은 혜택 받기도 어렵고 친일파들은 대대손손 잘 살고 있다. 이래서 후손들에게 정의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나라가 위험하면 너 살 궁리나 해라 라고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니 목숨 내놓고 나라 위해 싸워봤자 손해 보는 건 너와 네 가족이다. 라고 할 수 밖에 없질 않은가.
셋째, 경제민주화 문제다. 군사정권에 뒤이어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왔다. 분명 어느정도 정치적인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꼼수가 여전히 방송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게 새삼 발전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한강'에선 야당 대통령 후보 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고문하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가야할 목적지는 아직 멀었다. 자유나 민주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앞으로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고 하니까. 허나 경제민주화는 아직 너무 멀리 있다. 여전히 돈이 돈을 버는 나라고 나라에서 받은 특혜는 생각지도 않고 오직 자기들 잇속만 뻔뻔히 챙긴다. 참신한 아이디어나 부지런한 노동만으로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일민에 이어 내가 두번째로 애정을 가졌던 인물이 천두만이다. 천두만은 농지가 없어 농민의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로 홀로 올라와 지게꾼을 하다 석탄을 훔치기도 하고, 인천 항만부두에서 하역과 선적 작업을 하기도 하고, 똥을 푸기도 하고, 깨진 연탄을 수리해 주는 일을 한다. 그야말로 몸뚱아리 하나로 자신과 가족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그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서동철의 소개로 그 아우가 하는 쌀집에서 쌀배달을 하면서 겨우 먹고 살게 된다. 근데 쌀집 사장이 고객을 속이는 걸 보고 자기도 쌀을 훔친다. 인정 많은 그가 남을 속이고 해꼬지 하는 걸 지독히 싫어했던 그도 부정한 짓을 보고 부정을 배운다. 어른도 그런다.
현대사의 정치, 경제 뿐 아니라 생활사까지 알 수 있게 한 소설이다. 역사는 개인이 살아내는 삶의 총합인 것 같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역사가 고대사가 아니다. 조선시대 왕 이름 외우는 것을 배워야 할 게 아닌 것 같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을 읽으면 우리의 근 현대사를 뼛속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읽고 반대되는 입장의 역사책을 읽어보면 균형을 잡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어서 1월이 뿌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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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파란만장했던 근 현대사는 조정래의 역사 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된 총 32권으로 이루어진 이 대하소설 3부작에는 조정래의 일생과 역사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정래의 역사소설을 처음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제 식민지, 남북 분단, 군사정권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몸부림 등은 단지 우리나라의 한 맺힌 역사의 여러 페이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정래의 작품을 접한 뒤 이것들은 단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삶의 일부였고, 현재 우리나라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이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통해 근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상태에서, 나는 그들의 후속 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한강’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총 10권으로 이루어진 ‘한강’은 그 방대한 양에 걸맞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6.25 전쟁 이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빈곤한 시골에서의 삶을 등지고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며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게 된 유일민, 유일표 형제는 이 소설의 핵심인물이며, 그들의 이야기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이후로 차근차근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법고시 합격을 꿈꾸는 이규백과 김선오, 이들을 이끌고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국회의원 강기수와 그의 딸 강숙자, 그리고 유일민과 힘든 사랑을 이어나가는 임채옥 등이 그들 중 일부이다. ‘한강’은 이들을 중심으로 1950~80대의 불안한 정치경제적 사회 속에서 평범한 민초들이 어떻게 부대끼고 흔들리며 상처받고 살아왔는지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서사적으로 풀어나간다. 무엇보다도 ‘한강’은 1900년 중 후반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서민들이 겪었던 시련과 그들의 이념적 갈등을 잘 표현해냈다. 빨갱이의 자식으로 낙인 찍혀 사회 진출을 하지 못하는 유일민, 유일표 형제를 통해 남북분단 후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고,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이후 광주사태까지 이어지는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 쳤던 사회적 약자 계층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드러내었다. 그 중에서 4.19혁명을 맞닥뜨리는 두 부류 인물들 사이의 엇갈린 태도와 그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진실과 정의를 구현하고자 이승만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해 용감하게 시위에 참여하는 유일표 쪽의 사람들과 정의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시위에서 슬쩍 빠졌던 김선오 쪽의 사람들이 그들인데, 이후 이 두 부류 사람들의 삶의 방향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실제로 유일표는 후에 노동운동가와 야학선생으로 활동하지만, 대조적으로 김선오는 후에 검사로 활동하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부류의 삶이 옳고, 혹은 그르다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려고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그 당시 우리나라 현실을 십분 반영한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권력과 계급 구조를 결정하는 근본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는 그 당시 대부분의 서민들은 노동자 인권을 위해,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사회적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희생했다는 점을 알리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실제로, 최근에 앞으로 개정될 새 역사교과서에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과 5.18민주화 운동 부분이 빠진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이러한 심각한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해결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느꼈다. 정리하자면, 기존 ‘아리랑’, ‘태백산맥’을 잇는 조정래 문학의 절정에 해당하는 ‘한강’은 1950년대부터 80년대 후반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들의 숭고한 노력과 희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190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은 이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겠지만, 조정래의 ‘한강’ 속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 시대를 몸소 겪어보지 않은 나를 포함한 현 시대의 젊은이들은 ‘한강’과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발전에 이바지한 과거 1900년 중후반 우리나라의 숭고한 역사를 바르게 알고 또한 올바르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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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책인데 너무너무 좋습니다.
예전 한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습니다. 꼭 한 번씩 읽어보세요~
격동의 시대에 한국의 모습을 느껴보세요~ 느끼는게 참으로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아! 마침 책장에 있는데 읽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