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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마레' 암스테르담의 아마레와 아마레의 뜻이 마주치는 것... 상반되는 이미지에 완전 다른 이질감,그리고 뭔지 모를 동질감... 아마레는 주인공 허인수가 암스테르담 출장에서 만남 상사가 데려간 곳,한마디로 충격이였다. 멤버쉽으로 운영하는 그 아마레는 세상에 존재하는 곳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곳이 존재한다고 할 지라도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환락과 쾌락속에서 그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는 것이나 아니면 완전히 잊어버리면서 무언가 회복하려는 그들을 보니 오히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언가 잘 난 자신들을 아인슈타인의 가면으로 더 강조하는 듯하기도 했다. 유혹을 상징하는 신화속의 세이렌을 보면서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아마레의 주인은 이런 클럽을 만들고 컨셉을 정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상상하면서 이상하게도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어서 좀더 색다르고 더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변명같이도 느껴졌다. 그 초록으로 상징되던 유명 커피전문점의 로고로도 유명한 그 세이렌,그리고 아마레 클럽을 벗어나자,정반대의 사랑을 만난다. 사람이 한가지 색상을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반대색의 잔상이 눈에 서리듯이 마치 환락적이고 퇴페적인 곳과 반대의 정서를 만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일기장,그 일기의 주인공인 한수명과 플로라의 사랑은 이제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런 것이였다. 무언가 잘 나야 되고 자신의 이익을 바라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세상속에서 겨우 존재하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역시도 주인공 허인수와 같이 그 짐은 무거웠을 것이다. 살아 남은 자들은 그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을 것이다. 루시아수녀님이나 김일영또한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허인수나 김일영의 저는 다리는 서로 다른 것같이 보였다.어느 누구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판단한다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기도 하지만 그 둘의 삶은 너무도 다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그 나약함이 어떻게 다가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잘 나고 못나고 관계없이 마음속에 저 밑바닥에 존재하는 깊은 슬픔이 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수명의 선택은 그들에게 오랜 시간동안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하는 질문을 남기게 만들고 남은 여러인생을 아프게 하였다.나역시도 플로라가 진정 사랑하는 플로라가 그것을 바라였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그리고 과연 그들은 그렇게도 바라는 대로 다시 만났을까 하고 궁금해지기고 했다. 두 일기가 만나는 것이 그리 큰 일이 아닌 듯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깊은 사랑이 어떤 것이고 그 간절함이 얼마나 절실하였다는 것은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진짜로 사랑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을 동반하는지 그래서 아마레의 의미는 또한 다시 생각하게도 하고 완전 다른 분위기의 아마레클럽이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한수명과 플로라의 사랑을 상징하는 보라색은 신비하고 기적을 떠올리고 있다면 클럽 아마레에서는 초록색을 연상시키며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컬하다는 생각이 들기고 했다. 한국을 떠나는 허인수는 모든 짐들을 정리하였다.과연 그는 정말로 이제는 다 정리하게 된 것일까? 그의 선배인 강선배는 또한 진짜 굿바이 아마레를 외치며 과연 어디로 떠났을까? 그의 이유가 더 궁금하기도 했다. 행복했었다는 한수명의 시가 가슴을 저려오게도 하였다... 그의 깊은 상실과 사랑이 그의 삶을 자치하고 있었으리란 생각을 오래 머문다. 보스의 딸 미레가 허인수의 몸을 조형물로 만든 그 작품을 연상하면서 그녀가 인용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감독의 말은 길게 남게 될 것 같다. "우리의 지혜는 우리의 광기보다 덜 현명하다.우리의 환상은 우리의 판단보다 더 가치 있다.진리는 방법 속에 있다."(Andrei Tarkovsky) p193 소설<굿바이 아마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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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렬 저의 『굿바이 아마레』 를 읽고 소설 작품은 참으로 우리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아니 현실의 모습에서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설가들이 사랑을 받고, 독자들로부터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나 같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창작사랑의 관능성을 동시에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해내어 이런 작품세계를 만들어 내는 창작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람들의 가장 이상향인 사랑의 순수성과 존재의 한계성에 저항하는 그래서 이 소설을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하루의 시간 중에서 가장 내 자신을 현실의 모습이 아닌 상상의 시간과 함께 더 힘찬 미래의 활력을 갖추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작품 전개 장소가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의 네델란드의 국제적인 도시 암스테르담이다. 금융전문가인 내가 보스의 지시에 따라 네델란드 현지 지사의 경영 상태를 감사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임무인 감사를 마치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 지사장에 의해 간 곳이‘아마레’라는 카페이다. 우리가 아는 카페가 아니라 나체 손님과 마리화나와 섹스가 난무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카페의 여주인이 바로 세이렌이다. 관능미에 넘치는 세이렌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십 년 전에 죽은 옛 친구이자 아는 한수명이 관능의 극치를 경험했던 카페의 이름이‘사랑 한다’의미와‘ 쓰디쓰다’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라틴어의‘아마레’란 것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한수명과 서인애의 기막힌 사연이 전개가 된다. 나의 고향 친구이면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수명이 사춘기 시절 성당 교리반에서 서인애를 알게 되자마자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나, 서인애에게는 악성골수종양이 발병한다. 그러자 그는 학교를 그만 두고 다시 신학대학으로 간다. 신부가 되어 신에게 자신을 바치면 서인애의 병을 낫게 해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그러나 서인애 병은 더 깊어만 간다. 그럴수록 신에게보다 서인애에게 더 기우는 자신의 모습을 환멸하며 신을 원망하기도 하며,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랑의 양 극단의 모습인 순수와 관능을 동시에 조망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묻고 있다. 참으로 우리 인생에서의 양 극단을 염두에 두고서 생활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를 최선으로 받아들이고서 상호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다하여 행복을 창조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사랑의 최고 모습으로 꽃피우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제목이 너무 멋지다. 굿바이‘아마레’! ‘사랑 한다’하나만을 가장 확실하게 실천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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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존재라는 단어는 태어남으로서 만들어지고 죽음으로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의 존재는 현존하게 되고, 죽음으로서 그를 지켜보던 누군가에 의해 다시 끄집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하게 되며, 자신은 살아있는 상태인지 죽어잇는 상태인지 돌아보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 허인수에게 있어서 '아미레'는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었으며, 그의 죽음 조차 그의 삶 깊숙한 곳에서 남아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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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로맨스 시리즈 [Roman Collection]의 여섯 번째 작품 <굿바이 아마레>. 앞서 나온 작품들 중 <미인도> 등 네 편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 책도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이유는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아마레’에 ‘비통하다, 쓰디쓰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어떤 사랑이든지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가 가슴 깊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 책에 다가갔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무언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몽환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상당히 퇴폐적인 장면 묘사에 굉장히 당황했다.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암스테르담 지사장인 강선배와 함께 ‘아마레’라는 카페에 간 허인수. 그가 경험하는 카페의 풍경은 상당히 외설적이다. 반면 강선배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카페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그 속에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생각이 담겨있다. 상반되는 듯한 말과 풍경이지만 묘하게도 이 둘이 결코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레에서의 풍경에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인수의 기억을 다시 따라갔다. 아마레. 그는 카페 ‘아마레’에 가기 전에 이미 이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낸다. 바로 그의 친구였던 한수명 유스토가 아마레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놀라운 것은 아마레의 의미를 알려준 한수명의 사랑이 바로 아마레에 담긴 뜻처럼 비통하고 쓰디쓴 사랑이었다는 점이다. 악성골수종양을 앓는 연인 서인애 플로라를 끝없이 사랑했던, 또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싶어 했던 한수명. 그 둘은 서로의 깊은 사랑만큼 커다란 아픔을 겪는다.
이 둘의 사랑이 안타까웠던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바란 기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들이 바란 기적이 과연 진정한 기적인 걸까? 왜 나는 그들이 서로 사랑한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 것일까? 나라면 결코 그들처럼 사랑할 수 없이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이 바라는 기적은 그들의 마지막처럼 결코 그들의 사랑에 별반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인가
모르겠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기에 말이다.
아마레, 그리고 굿바이 아마레.
머릿속을 뒤흔드는 이 말을 당분간 계속해서 곱씹어야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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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가 관능적인 사랑의 형식과 결합해 새롭게 구성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이 책의 구성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해는 나의 한계 밖이었다. 관능적인 경험이 과거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 개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연관시키지 않고 사랑의 두 극단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더 쉬울까? 이 소설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보여준 변화는 나에게 그만큼 낯설었다.
첫 시작을 여는 암스테르담 아마레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능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퇴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작가는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이 장면을 난해하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들을 읽을 때 난해하고 힘들었다. 얼마나 에로틱한 장면들이 나올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에로 소설 같은 장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순수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것도 고전적인 주제인 병자와의 사랑 이야기다.
암스테르담을 무대로 국제 금융과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귀국 비행기에서 열병을 앓으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10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오른 것이다. 플로라 서인애와 유스토 한수명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기장이다. 플로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인간의 힘으로 그 병을 나을 수 없다는 판단에 신의 도움으로 병을 낫고자 신학대학에 들어간 유스토의 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화자는 이 두 연인의 증인으로 이들이 만남이 있던 곳에 함께 있었다. 플로라의 병은 진통제가 없다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유스토를 만나기 위해 많은 양의 약을 먹고 온다. 그녀를 잠식하는 병의 무거움도, 두려움도 그와의 만남이 주는 행복을 막을 수 없다.
이 둘의 한계가 분명한 사랑 이야기는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이어진다. 신부가 되고자 신학 대학에 간 유스토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플로라의 사랑은 한시적이다. 물론 모든 사랑이 한시적이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그 순수함과 열정을 놓고 본다면 말이다. 이들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작가는 이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처리한다. 짧은 분량의 소설에서 이 부분을 깊이 있게 다루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면도 있다.
취향을 많이 탈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맞지 않다. 현학적인 글을 좋아하지만 살짝 겉만 맴돌다가 머문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플로라가 유스토에게 쓴 편지의 어투 등은 낡았다. 이 소설이 80년대에 나왔다면 그녀의 편지에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에 쓰기에는 너무 옛말투다. 미스터리로 풀어낼 수 있었던 플로라의 일기장에 대한 의문도 너무 쉽게 풀린 것도 약간 힘을 빠지게 한다. 현실적일 수 있지만 다른 장치들을 감안하면 설명이 부족하다. 특히 김일영의 이야기 부분에서. 쿼크의 여섯 가지 종류에서 따온 제목도 나의 이해를 넘어선다. 소설 속에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을 내가 놓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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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굿바이 아마레 책소개 글에 저자를 인간 존재와 구원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천착하며 시와 소설을 써온 작가라고 나와있는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작가가 쓴 글 같았다. 이 책은 읽다보면 삶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완벽함을 추구하고 사는 삶은 뭔지, 늙어가는 것은 뭔지, 순수한 사랑은 뭔지, 죽음은 뭔지, 사랑은 뭔지, 관능은 뭔지, 사람들은 겉으로는 어쩔 수없이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게 된다. 책은 처음부터 의문이 가득한 아마레라는 술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너무도 특이한 곳이기에 그곳에 대한 묘사가 책의 도입부에서 독자의 신선을 끄는 것 같다. 그러면서 소설의 내용은 그 독특하고 퇴폐적이라고 아마레라는 공간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느끼는지 주목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며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고 다리가 아파서 항상 그것에 열등감을 느껴던 자신이 어떤지를 생각한다. 마리화나를 흡입 하게 되고 환각증상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을 만나고 그곳에서 세상을 또 다르게 느낀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게 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대사들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보인다.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시적인 표현의 비유같기도 했던 것 같다. 이마레의 3개의 유리방은 각 라틴어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에 맞게 그 곳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느끼게 된다. 그저 현상들로만 보자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아마레는 음란파티를 즐기는 멤버쉽 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마레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의 내면 속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은 현실과 과거 그리고 보스의 딸과 있었던 일들 그리고 친구의 사랑 이야기까지 오가며 계속 이야기를 펼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는 있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작가는 수없는 고뇌 속에 시를 쓰듯 한편의 소설에 깊은 의미를 함축해 써 내려갔을 것 같다. 나같은 독자는 잘 이해하지 못 해 아쉬웠지만 이 책은 뭔가 많은 것을 내포한 그런 책이었다. 나보다 좀 더 깊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내용이다. 나는 좀 어려워서 아쉬웠다. 내가 그렇다고 책이 아쉬운 건 절대 아니니까 이 책에 대한 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 판단하기 바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나는 정확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인생의 길에서 내 삶은 어떤지 생각하게 만든 것은 확실했다. 시를 사랑하는 작가의 소설.. 왠지 나는 참 좋았다. 단지 내가 저자의 글을 깊이 다 이해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분의 책 또 찾아 읽어보고 싶어진다. 다음에는 시집을 읽어봐야 겠다. 저자 소개 문형렬 저자 문형렬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198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으며,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자전거』 『눈먼 사랑』 『연적』 『어느 이등병의 편지』 『굿바이 아마레』, 시집 『꿈에 보는 폭설』 『해가 지면 울고 싶다』 외 다수가 있다. 2012년 현진건 문학상을 받았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