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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가 큰 인기를 끌던 그때 그 시절,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던 주윤발의 팬이라면 제목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영화 중에 대장부 일기란 작품이 있다. KBS 드라마 고교생 일기는 기억나도 대장부 일기란 영화 제목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분들을 위해 대장부 일기란 영화를 리뷰해볼까 싶다.
대장부란 그럴싸한 제목 때문에 남자다운 화끈한 액션, 사나이들의 우정 같은 것을 머리 속에 먼저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에서 주윤발이 보여준 의리있는 멋쟁이 킬러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서극이 제작하고 초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주윤발이 주정발이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로 등장, 엽천문과 왕조현 두 여인 사이에서 좌충우돌한다.
흑백으로 처리된 오프닝 장면을 살펴보면 이 영화의 성격에 대해 좀 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영웅본색 2편 초반, 1편에서 죽은 소마(주윤발)의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장면에서 살짝 등장한 주윤발의 어린 시절 사진이 주윤발 본인의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한다. 본인 입으로 내 이름은 주정발이라고 설명하더니 몸매는 엽천문, 얼굴은 왕조현을 닮은 여자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미국의 컴퓨터 갑부 빌 게이츠. 빌 게이츠만큼 세계적인 큰 부자가 되어서야 이룰 수가 있을, 허황된 꿈이란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선 그래서 지금까지 홀아비 신세라고 한탄한다. 홀아비는 아내를 잃고 홀로 사는 남자를 뜻하는 것으로 DVD의 한글 자막을 담당한 사람이 실수한 것임이 분명하지만, 홀아비란 단어의 다소 궁상 맞은 느낌이랑 촌티난 모습으로 무심히 앞을 바라보는 주윤발의 얼굴이 미묘하게 어울려 자막 번역 실수를 무심코 넘어갈 지경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홀아비가 아니라 노총각 신세라고 번역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영어 자막을 살펴보면 36 22 36 사이즈의 육체에 마돈나 같은 얼굴의 여자를 꿈꿨고 그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노라고 설명해놓고 있는데 영화 속 출연 여배우가 당대 홍콩의 인기 가수 겸 여배우 엽천문과 떠오르는 미녀스타 왕조현이고 그 이미지를 차용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영어 자막을 통한 감정 전달은 작품 본래의 센스와는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 영어 문화권에 어울리게 비유하면, 제시카 비엘의 몸매와 제시카 알바의 얼굴을 닮은 여자를 찾던 야구선수 데릭 지터가 우연한 기회에 제시카 비엘과 제시카 알바를 만나 사랑에 빠져 두 여인을 상대로 이중 연애를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엽천문과 왕조현을 이상형으로 꿈꾸며 살아가던 이 남자 주정발, 어느 비오는 저녁에 택시를 기다리던 중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 여인은 바로 스튜어디스 사리 캐릭터를 맡은 왕조현.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택시를 태워 보내고 연락처를 받은 주정발 앞에 의상실 여사장 주아 캐릭터를 맡은 엽천문이 등장한다. 이번에 택시를 타고 가는 쪽은 주정발(주윤발)이었고 주정발은 엽천문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건네준다.
지금의 우리로 비유하자면, 몸매는 글래머 여배우 김혜수를 닮고 얼굴은 첫사랑의 아이콘 수지를 닮은 여자를 꿈꾸며 서른 중반을 넘겨 노총각이 된 남자가 비오는 저녁에 택시를 기다리다가 김혜수를 빼닮은 여인과 수지랑 똑같이 생긴 아가씨를 차례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런 식으로 대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을 반으로 나눠 3일씩 두 여자를 만나며 이중 연애를 하던 주정발, 결혼 반지까지 준비해놓지만 누구에게 줘야할 지를 정하지 못한다. 엽천문과의 데이트 약속과 왕조현과의 데이트 약속이 헷갈려 실수를 계속 저지르지만 주정발은 끝내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데이트 장소로 향하던 주정발은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듣다가 주윤발이 올해 홍콩 최고 인기 연예인으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어디가나 그놈의 주윤발, 주윤발!이라면서 투덜거리던 주정발(주윤발)은 순간의 방심으로 접촉사고를 내고 만다. 하필 경찰의 차와 부딪힌 주정발은 대충 넘어가달라고 부탁하던 중에 마침 그곳에 도착한 다른 경찰이 타고 온 차랑의 차문과 부딪혀 기절해버린다.
기절해서 쓰러진 주정발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주정발이 잠시 기절한 사이 주정발의 옷에서 연락처를 찾아낸 경찰이 연락처 속의 여인 왕조현을 병원으로 불러낸다. 왕조현이 병원으로 오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주정발은 또다른 애인 엽천문에게 연락한다. 주정발을 면회하기 위해 병원에 급히 도착한 엽천문과 왕조현은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다. 양다리 연애를 꼼짝없이 들키게 된 주정발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시절 홍콩 느와르라고 불리던 영화 장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주윤발이지만 사실 그는 액션영화 외에도 로맨스물이나 코미디 영화와도 잘 어울리는 배우였었다. 장국영, 종초홍과 함께 출연했던 종횡사해에서도 영화를 마무리한 것은 주윤발의 코믹한 표정이었고, 한국팬들에겐 정전자란 이름이 더 낯익은 카지노무비 도신에서도 기억을 잃고 바보가 된 상태에서 초콜릿만을 연신 찾던 주윤발의 코믹 연기에서 그러한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기도 했었다.
이 영화 대장부 일기는 그러한 주윤발의 코믹한 이미지를 한껏 끄집어낸다. 영화 중간중간 독백 형식을 삽입하는가 하면 주윤발이 노래를 부르고 엽천문과 왕조현 등이 코러스를 맡는, 뮤지컬 장면을 끼워넣기도 한다. 이 여자와 저 여자, 이렇게 두 여자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거짓말까지 하는 바람둥이 주정발이건만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신사다운 매력남 역할을 많이 맡았던 주윤발인지라 크게 밉지만은 않게 보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병원 응급실에서부터 아슬아슬하던 이 남자 주정발, 결국 이중연애를 들키고 만다. 영웅본색 1편에서 주윤발을 옥상으로 데려가 쌍코피가 터질 정도로 모진 린치를 가했던 배신자 캐릭터를 맡았던 이자웅이 이 영화에선 주윤발이 연기하는 주정발의 회사동료로 나와서 주정발의 이중연애를 돕지만 그런 그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주정발의 이중연애는 더 이상 감추기 힘든 것이었다.
관객들은 주정발의 이중연애를 알고 있지만 연애의 당사지인 엽천문과 왕조현만은 모르고 있던 영화 속 상황은. 엽천문과 왕조현이 주정발의 이중연애 사실을 눈치챘지만 주정발 본인이 연애의 상대방인 두 여자가 사실을 눈치채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좌충우돌 요란법석 광둥식 코미디가 이어진다. 성냥개비를 물고 쌍권총을 쏘아대는 주윤발의 열혈남아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의 주윤발팬들에겐 이러한 연애 소동극이 익숙치 않겠지만 홍콩의 영화팬들에겐 주윤발의 능청스런 노래 장면에 주윤발의 출세작인 상해탄의 주제곡까지 등장시키며 코믹한 장면들이 이어지는 이 영화가 꽤나 재미있었을 것이다.
엽천문과 왕조현은, 자신들을 깜쪽같이 속였던 주정발을 술 취한 척 연기하며 두들겨 패기도 하고 주정발을 침대에 묶어놓고 가위를 들고 겁을 주더니, 나무에서 떨어지게 만들어 다리를 다치게도 한다. 이런저런 복수를 하지만 주정발을 향한 사랑 자체를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 얼굴에 점 하나를 찍고 돌아와 살벌한 복수를 한다든지 혼인빙자간음으로 거액의 소송을 신청한다든지 50억인지 10억인지 아무튼 큰 돈을 내놓아라고 협박한다든지 같은 한국식 복수 대신 주정발(주윤발)과의 사랑을 택한 두 여자. 그리고 그런 두 여자를 나란히 사랑한 주정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우연히 닥친 인질 강도 사건을 통해 주정발을 향한 자신들의 감정과 자신들을 향한 주정발의 감정을 확인한 엽천문과 왕조현.사랑을 잊기 위해 홍콩을 떠나려고 했던 여인들은 그렇게 다시 사랑을 확인한다. 주정발은 모든 것을 잊고 모르는 사람처럼 돌아가자고 말하며 돌아서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 그 저녁처럼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 속에서 세 사람은 잊지못할 사랑의 감정을 재확인하고 만다. 이별의 슬픔을 억지로 참으며 두 여자를 택시에 태워보내며 복잡했던 지난 날의 사랑을 잊으려고 했던 주정발, 그런 주정발에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혹자는 엽천문과 왕조현이란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한 남자의 사랑 얘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영국 내지 대만과 중국이란 두 체제를 눈 앞에 둔 채 어느 쪽 하나를 제대로 택하지 못한 홍콩의 속사정을 은유하고 있다고도 한다. 번지점프대에서 동반자살을 한다든지 하는 비극적 결말 대신 영국식 체제도 중국식 체제도 아닌 새로운 체제를 택해버린 엉뚱한 세 남녀. 일부다처제가 있는 이슬람 문화를 택한다는 다소 황당한 방식으로 두 여자와 한 남자 사이의 애정 문제는 극적으로 해결되고 사랑하는 두 여인을 다 잃을 뻔 했던 주정발은 주윤발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일본어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다이죠부(大丈夫), 다이죠부데스(大丈夫です: 괜찮습니다)가 이런 것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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