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허만하/최측의농간/시적 감성이 빛나는 보석 같은 에세이~~
1932년에 태어난 병리학 박사 허만화의 수필을 읽으며 최측의농간 출판사의 재출간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었어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산업발전의 격동기를 함께 한 의사의 수필에는 문학적 감성과 인문학적 지식이 맛깔나게 어루러져 깊은 향미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시를 쓰는 과정에 쓴 에세이들을 모은 30년의 결과물들을 다듬고 추린 저자의 정성도 느낄 수 있었고 최측의농간이 16년 만에 재발간한 연유도 감지할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문학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이의 문학과 전문 문인들의 글이 깊이에서 다르다는 오해와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글들.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대한 일화들, 이중섭의 은지화를 직접 본 감상, 이인성의 경주 그림을 보며 직접 그림 그렸던 장소를 찾던 여행 일화, 동서양의 문학과 고전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과 사유 등 모든 문장들이 보석처럼 빛나기에 읽으며 음미하기를 반복하고 있답니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는 제목처럼 의사이지만 시인이기도 했던 저자에겐 십리 밖 풍경이 주는 설렘조차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시처럼 그려놓았기에 오랜만에 문장 하나하나에 매료되었답니다.
시의 근거는 체험이다. 고유한 그리고 단 한 번뿐인 그리고 가멸적인 목숨의 가장 개성적인 경험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것이다. 다 같은 경험 소재라도 경험하는 사람의 정신의 간섭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가장 특수한 것을 통해 가장 일반적인 것에 이르는 길을 시는 걷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과학의 방법론으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시의 형태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18쪽
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추석일 수도 있고 먼 고향일 수도 있고 또 밀물 썰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허상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인 인식은 가르쳐주고 있다. (중략) 과학적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저 가을 벌레 소리도 어떤 값의 차장으로 환원시켰다. 달밤을 날아가는 목이 긴 청새의 비상을 역학이란 방정식으로 분해해버렸다. 숨져가는 동생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나를 무수한 분자와 원자로 해체시켰다. -229쪽
과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현실과 이상을 분해하고 사유를 했던 무수한 시간들에 대한 단상, 세잔이 그린 고향 그림, 이인성의 경주 그림, 신라 기와에서 읽어낸 명주의 길을 오간 희랍 흔적들, 하루살이에 대한 동서양의 놀랍도록 공통된 견해,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일상 등이 명문장으로 다듬어졌기에 소중하게 다루며 읽은 책입니다.
특히 풍경화는 시적 특질을 갖고 있다는 말과 살면서 마음에 담은 풍경이 시인으로, 화가로 자라게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저자 역시 문학, 예술, 여행 등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모든 것을 매력적인 풍경화로 그려냈기에 더욱 보고또보게 되는 에세이였어요. 이렇게 좋은 문장을 만나게 한 저자와 출판사에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애장도서 목록을 올려야겠어요.
|
|
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는 아득한 시의 길을 조용히 생각하겠다는, 창조적 정신의 불씨를 지키는 새로운 사색이 필요하다는, 시의 결을 가지는 문체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말로 치열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인의 근황을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를 존재와 언어 사이의 틈을 메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저자는 시인을 그렇게 섬세한 감각을 가진 낙타에 비유한다.
|
|
“나는 프루스트를 다시 읽기 시작해본다. 늦더위와 피로 때문에 잘 나가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뻔했던 하찮은 일들이 흐르는 개울물 아래 어른어른하는 차돌같이 떠오른다. 그 맑은 시간 안에서 나는 프루스트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난다.
어린 나의 둘레에 호롱불을 비치는 세계처럼, 눈을 뜨면 세계와 어린 나 사이에 있었던 교섭을 추체험한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 모두 처음부터 있었던 것뿐이다. 프루스트는 이미 스스로의 안에 있었던 작품을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선사한 것이다.
죽은 사물에 목숨을 부여하는 눈. 죽은 기억(무의식의 세계를 포함해서)에 생리적인 비린내를 부여하는 눈. (중략)
그것은 그렇고 – 시인에게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58~59쪽)
허만하 시인은 경북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으로 1957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이 산문집은 2000년 솔에서 동명으로 나왔던 것을 다시 복간한 것이다. 문장이 단아하고 맛깔스러워 앉은 자리에서 내리읽었다. |
|
책읽기 삶읽기 266 십 리 밖 나락 냄새를 맡는 한가을에 ―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6.8.12. 12000원 한낮에 돌담을 타고 올라가서 무화과를 땁니다. 큰아이가 아버지 뒤에 서서 소쿠리를 들고 기다립니다. 말벌이 웅웅거리면서 무화과 단물을 핥고 무화과 속살을 파먹습니다. 말벌 날갯짓 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통통한 무화과를 땁니다. 한손에 두 알씩 따서 큰아이한테 건네고, 소쿠리가 그득하게 차는구나 싶으면 그만 땁니다. 새롭게 접어든 구월에 무화과를 따면서 즐겁습니다. 철마다 다른 열매를 땅에서 얻고, 달마다 새로운 열매와 남새를 흙에서 얻습니다. 큼큼 달달한 냄새를 맡으면서 즐거운 선물을 얻습니다. 구월이 깊어지고 시월로 넘어설 즈음에는 온 들판을 채우는 나락 냄새가 고소해요. 이런 나락 냄새는 집에서도 맡습니다. 마을논에서도 나락 냄새가 퍼지고, 먼 들판에서도 바람에 실려 나락 냄새가 흩어집니다. 한가을에는 아마 십 리뿐 아니라 백 리까지도 샛노란 나락 냄새가 두루 퍼지리라 느낍니다. 사막을 가는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이것은 작년 폐암으로 이 세상을 하직한 한 병리학자의 말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아름다운 말이다. (19쪽) 돌아오면서 시란 이름 없는 일상 속에서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사라지는 삶의 번득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7쪽) 병리학 박사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허만하(1932년에 태어남) 님이 쓴 산문책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최측의농간,2016)를 읽습니다. 이 산문책은 2000년에 한 번 나온 적이 있으나 널리 읽히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최측의농간 출판사는 이 살가우면서 애틋한 산문책이 새롭게 읽힐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새롭게 펴냈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사랑스러운 손길을 널리 받지 못했어도 이제부터는 사랑스러운 손길을 널리 받을 수 있기를 꿈꾸면서 기쁘게 펴냈다고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날개를 단 천사가 하늘을 나는 쪽이 당연하다. 그러나 어깨에 날개를 달아야만 날 수 있다는 빽빽한 이야기는 정확하기는 하나 자연스럽지는 않다. (139쪽) 정년퇴직은 나에게 나의 시간을 찾아 주었다. 미친 듯이 책을 읽어야지. (194쪽) 사막에서 낙타가 맡는 물 냄새를 헤아려 봅니다. 온통 모래만 보일 법한 사막이지만, 그 사막에서 낙타는 온몸을 곤두세워서 물 냄새를 좇으려 하겠지요. 숲에서는 숲짐승이 저마다 먹이를 찾으려고 무척 먼 데 떨어진 냄새를 좇으려 할 테고요. 새끼를 낳은 짐승이라면 제 새끼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새끼 냄새를 맡으리라 생각해요.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먼 데 있어도 어버이는 아이들 마음을 읽지 싶어요. 아이들도 저희 어버이가 아무리 먼 데를 다녀오더라도 어버이 마음을 읽지 싶고요. 떨어진 자리는 그저 떨어질 자리일 뿐일 테니까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사랑하는 숨결이 같아요. 가까이에 있기에 더 사랑스럽지 않고, 멀리 있기에 덜 사랑스럽지 않아요.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으로 아끼거나 보살필 수 있기에 비로소 사랑이지 싶습니다. 낙타가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바탕도 물 한 모금을 온몸으로 바라는 애틋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그리고 아이가 어버이를 그리는 숨결도 서로 살가이 어우러지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그리고 이러한 사랑처럼 ‘조용히 사라진 책 한 권’을 새롭게 옷을 입혀 되살리려고 하는 책마을 일꾼 손길이 있어서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구나 싶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인이 탄생한 것은 인간이 최초로 개념을 발견한 그 순간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개념을 발견한 그때가 곧 말이 꿈을 읽기 시작한 그 순간이고, 또 그 순간부터 말은 꿈과 개념이 하나였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숙명의 에너지를 지니게 된 것이라고. (232쪽) 그가 찾아 헤매었던 것은 살며 숨쉬며 있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시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250쪽) 병리학 박사이자 시인인 허만하 님은 ‘산문’을 쓰면서 ‘시’를 노래하려 합니다. 사람들 삶을 밝히는 시 한 줄을 산문 한 줄로 찬찬히 되새기면서 말넋을 헤아리려 합니다. 먼발치에 있는 듯하지만 늘 가까이에 있고, 가까이에 있구나 싶더니 저 먼 데에서 어렴풋하게 번지는 가느다란 물 냄새 같은 시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옹알옹알 말을 새로 익히는 아기는 배냇짓으로 시를 그립니다. 두 다리로 서고, 두 발로 걸으며, 두 팔로 춤추고 뛰노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시를 씁니다. 머리통이 굵고 조잘조잘 떠들 줄 알며 글을 익혀서 혼자 책까지 읽어내는 어린이는 맑은 눈빛과 환한 웃음으로 시를 들려줍니다. 어버이는 밥 한 그릇을 차리는 손길로 시를 보여줍니다. 어버이는 옷 한 벌을 짓거나 손질하거나 빨래하는 손길로 시를 보여줍니다. 어버이는 집살림을 건사하고 집일을 보듬는 손길로 시를 보여줍니다. 호미를 쥐어 밭을 일구는 손길도 시쓰기입니다. 괭이를 쥐어 땅을 갈아엎는 손길도 시쓰기입니다. 마늘을 뽑고 씨감자를 묻으며 고구마싹을 놓는 손길도 시쓰기입니다. 깨를 털고 콩을 훑는 손길도 모두 시쓰기예요. 솔바람 소리가 묻어 있지 않은 순수한 모래 쓸림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구에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바다를 생각했다. 시의 탄생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것이 번득이는 일순의 계시인지 풀잎에 맺히는 이슬 같은 증류작용의 결과인지는 알 길 없으나, 시는 말을 재료로 하는 끊임없는 새로운 현실 만들기다. (341∼342쪽) 십 리 밖 나락 냄새를 맡는 한가을에 《낙타는 십 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를 읽으면서 시를 생각합니다. 삶을 밝히는 말 한 마디로 짓는 시 한 줄은 우리 가슴을 어떻게 촉촉히 적시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는 때때로 이슬이 되고 구름이 되며 바람이 됩니다. 시는 때로는 해님이 되고 달님이 되며 별님이 됩니다. 시는 곧잘 꽃이 되고 나무가 되며 풀이 됩니다. 그리고 시는 이 모두가 되어 우리 곁에서 아름다운 말 한 마디로 피어납니다. 시인이기에 시를 노래합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사랑합니다. 시인이기에 시 한 줄을 씁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시 한 줄을 읽습니다. 시인이기에 시집 한 권을 곁에 둡니다. 시인이 아니어도 온마음으로 말넋을 가꾸어 시처럼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가을바람이 싱그럽습니다. 2016.9.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