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을 읽고 식상해서 추리소설에 손을 댔던 나는 이제 SF에 대해서도 좀 읽어 볼까 하다가 여러 분들의 말씀을 듣고 잡은 것이 이 어술러 크로버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이다. 이 책은 예전 SF시리즈 그리폰 북스로 발매되었던 책이다 그러나 그리폰 북스는 절판되고 말았고,이런 걸작은 결국 묻히 게 되었는데 여러 분들의 성화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개정판 <어둠의 왼손>이다 내용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그래서야 이건 스포일러성 글밖에 는 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 나는 감동받았다. 이 글은 지구인 남성 겐리 아이가 행성 '겨울'을 우주연합 '에큐멘'에 가입시키려고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빛의 전달자 엔보이(사절) 겐리 아이가 도착한 행성 '겨울'은 '양성 종족' 게센인들이 살고 있는 곳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위대한 작가 르 귄이 의도한 바가 나타난다. 우리는 타인을 볼 때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본다. 지구인인 겐리 아이의 눈에도 양성인들인 게센인들의 모습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의 세계관은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양성인이라는 존재를 우리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겐리 아이는 에스트라벤에게 사랑을 느끼고 당황한다. 양성인인 에스트라벤에게 사랑이 가능한 것인가? 여기서 <어둠의 왼손>은 '문학성'을 띈다. 문학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할수는 없다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되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며 여운을 남겨야 한다. 적어도 읽고 나서 '정말 멋진 작품을 읽었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 그것이 문학이라고. 이 작품은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갖추는, 그야말로 '멋진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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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이 책을 손에 든 이유는, 역시 그 무시무시한 제목 때문이었다. 이런 제목을 보고나면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지. 사실 다자의 오사무도 우연히 들른 도서관에서 '인간 실격'이란 제목에 뜩, 걸려버려 지금까지 팬이 된 경우거든. '어둠의 왼손'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던거야. 줄을 딱 땡기는 순간 어부의 뇌리에 꽂히는 월척의 느낌이랄까? 이 제목이 웬지 모르게 느낌 있는 이유는 제목을 듣는 순간 그 형상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과 왼손이라니, 평소엔 가깝게 지낼래야 도무지 그럴 수 없는 두 단어지, 게다가 어둠이란 걸 떠올리는 순간 머리 속은 그야말로 어둠으로 가득차게 되버려, 왼손은 이미 이 어둠 속에 사로잡혀 형체도 없어 사라지 버린다구. 하지만 형체를 떠올리지 못해도 다가오는 느낌이라는 건 있다. 발 뒤꿈치에 달라 붙은 그림자가 어느새 슬금슬금 다가와 쿡! 등뒤를 찌를 것만 같은 공포, 스릴러, 서스펜스. 아마도 이 제목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스릴러라고 생각할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둠의 왼손'은 SF다. 그것도 무섭지 않은 SF. 작자는 어슐러 르귄이라는, 'SF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라고 평가받는 대문호다. 직전에 읽은 책이 바로 같은 SF 장르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무미건조한 문장에 마음이 바짝 말라 있었던 터라 르귄의 문장이 더더욱 가슴 깊이 스며들었던 것이겠지만, 이 책 '어둠의 왼손'은 펑펑 눈이 내리는 겨울 행성 '게센'을 그리고 있음에도 문장 하나하나가 오히려 포근하고 보드라웠다. 아, 과연 대 문호라 불릴 만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적어도 한 페이지 건너 한 번씩은 가슴을 쑥 파고 들어왔다. 배경은 눈과 얼음의 행성 '게센', 이곳의 주민들은 한 몸에 남녀 양성을 모두 갖고 있다. 26일마다 돌아오는 '케머기'에 남자 혹은 여자의 성을 스스로 선택해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갖는다. 주인공 겐리 아이는 일종의 우주 연합이라고 볼 수 있는 에큐멘의 대사로서(지구인) 게센과 교역 협정을 맺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다. 게센인들이 겐리 아이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그 비참한 최후를 눈에 새긴 듯이 기억하는 우리인지라 에큐멘을 대하는 게센인들의 신중함과 머뭇거림을 답답하게 여길수도 있겠으나, 어디 신문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스르르 스며들 수 있는 것이겠는가? 모름지기 생명이란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저항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저항은 점차 두 가지로 분화된다. 하나는 자극, 또 하나는 적대다. 자극을 택한 집단은 그것을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는 반면 적대를 택한 집단은 그것을 자기 생명의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사회고 이 두가지 의견이 충돌하기 마련인데 후자로 중론이 모아진 사회치고 그 끝이 아름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에큐멘은 제국주의 시대의 선진국처럼 무력으로 강화를 요구하는 집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점잖음이 오히려 자신의 대사 겐리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 겐리 아이는 다가온 새 시대가 자기 자리를 지켜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던 정치인들의 음모로 강제 노동 수요소로 보내진다. 행성 게센의 두 나라 '카르하이드'와 '오르고린'에 대한 묘사가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을 닮아 있다는 점, 그리고 이 둘의 대립이 결국 겐리 아이라는 '제3의 길'에 의해 봉합된다는 점, 마지막으로 게센인들이 양성을 모두 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생명체라는 점에서 '어둠의 왼손'은 단순한 SF를 넘어 풍부한 의미와 해석을 지닌 소설로 나아간다. 그 의미는 부질없는 이념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고 지독할만큼 고착되버린 남녀 성역할에 대한 재고의 촉구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의미의 경중에 따라 소설의 위대함을 측정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읽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의 가슴에 또렷한 흔적을 남기는 소설이야말로 진정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함박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밭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순결한 발자국처럼 말이다.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된 겐리 아이는 지구인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게센의 겨울에 생명을 바쳐 견디고 있었다. 죽음이 목전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카르하이드'의 옛 재상 에스트라벤에 의해 구출된다. 에스트라벤은 국가의 이익보다 평화를, 게센인보다 전 인류를 더 사랑했다는 이유로 카르하이드에서 추방된 정치인이었다. 겐리 아이는 처음에 에스트라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진 얼음길, 빙하 위로 우뚝 솟은 두 개의 화산, 휘몰아치는 눈보라, 그 위에 간신히 뿌리 내린 한 움큼의 텐트 안에서 두 외계인은 서로의 입장과, 생각과 그리고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자기 손바닥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이제 그 둘은 서로에게 완전히 의지해 걸어나간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두 사람은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와 한 발짝 한 발짝 고귀한 발자국을 남기고, 나는 두 사람이 어깨에 맨 것이 사실은 침낭과 텐트와 식량이 든 가방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역사였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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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딱 한 사람만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의 고독의 깊이는 어느정도일까? 외계인을 향한 인류의 갈망은 어찌보면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과 같은 심정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 10억년을 가도 끝에 닿을 수 없는 광활한 우주. 이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시공간 안에 지적인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쿵 내려앉을 정도의 고독감을 느끼곤 한다.
어슐러 르 귄은 영미권에서 'SF의 3대 거장' 이라 불리우는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 바로 뒤에 위치하는 작가이다. 당대의 SF소설들은 철저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미래의 세계관을 풀어내는데 집중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슐러 르 귄은 단지 지구와 지구의 미래 뿐 아닌 완벽한 '외계' 그 자체에 집중했다. 지구와 다른 환경, 다른 모습, 다른 역사를 가진 사회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지, 그 안에 사는 지성체들은 어떠한 사고방식과 외모를 갖고 있을지에 집중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놀라운 상상력과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무척 뛰어난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렇듯 어슐러 르 귄은 당시 SF장르를 지배하던 남성들이 만들어낸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역행하며 수많은 작품들을 끊임없이 발표했고, 그녀의 작품들이 내포하고 있는 인문학, 사회학적 통찰력은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그녀의 노력과 재능은 SF는 물론 판타지 장르를 통해서도 가감없이 발휘되며, SF 쪽에서는 '헤인 시리즈' 라 불리는 장편 연작으로, 판타지 쪽에서는 '어스시 시리즈' 라 불리는 장편 연작으로 결실을 맺으며 장르를 초월해 문학사 자체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당시 남성중심 사회에서도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별로써, 작품 전반에 페미니즘적인 성격도 짙게 묻어있다. 그녀의 페미니즘은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직시하고, 사회적인 불평등, 부조리함을 인지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남녀 평등을 추구했다.
[ "같은 종족이긴 합니다만 그 차이는 매우 크지요. 저는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남자로 태어났는지 여자로 태어났는지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평등은 보편적인 규칙이 아닌가요? 아니면 여자들은 정신적으로 열등한가요?" "(...)여자들의 지성이 모자란 것은 아닙니다. 몸도 근육질은 아니지만 남자보다 인내력은 강하지요.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그는 난로의 불꽃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하스, 여자에 대해서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왠지 여자란 존재가 당신보다 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군요. 당신은 어쨌든 나와 같은 성이고..."] p. 299~300. 지구인 겐리와 게센의 원주민인 세렘의 대화.
[어둠의 왼손] 은 196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Sf-판타지 문학상의 양대산맥인 네뷸러와 휴고 상을 동시에 휩쓴 작품이다. 어슐러 르 귄의 대표적인 연작 시리즈물 '헤인 연대기' 에 속하는 작품으로 83개의 행성과 3000개의 국가가 맺고있는 일종의 상호협력기구인 '에큐멘' 에서 지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 '게센' 을 새로 발견하여 일종의 사자로 파견한 '겐리 아이' 라는 인물이 겪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게센은 에큐멘에서 '행성 겨울' 로 불리우는 극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지만, 지구인과 거의 비슷한 외모를 가진 원주민들이 독창적인 사회체제를 갖고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이 행성에는 특이하게도 게센인들 외에는 다른 종의 동물이 거의 없었고, 자연 환경상 날짐승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도 게센인들은 양성兩性이었다. 이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케머' 라고 불리우는 기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일종의 임신가능기로써 게센인들은 바로 이 기간동안에만 상대에게 성욕을 느끼게 된다. 에큐멘에 속해있는 인간 종족 가운데서도 양성을 가진 종족은 게센인이 유일했기에, 겐리 아이는 게센의 사회에서 뜻밖의 상황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작품은 타자他者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이야기인 동시에,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설명해주는 이야기이다. 나아가, 인류의 사회구조와, 문명 그 자체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얼마나 근원적인 문제를 유발하는지에 관해 깊이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작품은 놀라운 스토리 텔링을 통해 게센인들의 삶과 사상을 보여준다. 성욕이 담보되지 않은 사람과 사람간의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경계, 지극히 지구인적인 관점에서 동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자유롭고도 미묘한 연인관계, 가족관계, 그리고 역시 그로 인해 파생되는 독특한 정치구조와 국가 구조, 그와 함께 게센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통찰력으로 인해 탄생한 종교 등 경이로운 상상력들이 깊이있는 통찰과 안목을 통해 생물-인문학적인 개연성을 끊임없이 획득해간다.
게센인과 그들의 사회에 관한 이야기도 참으로 흥미로웠지만, '에큐멘' 이라는 범 우주적인 협력기구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행성을 묶어주는 네트워크이지만, 구속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순수하게 행성간의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협력기구인 동시에 체제로써 고도로 성숙된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자를 파견할 때 단 한명이 행성으로 내려간다는 사실도 파격적이고도 놀라웠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연락용 위성을 행성 궤도에 띄워놓고, 11명의 선원이 수면대기중인 우주선이 위성궤도에 체류중이지만, 행성에 내려가 동맹임무를 수행하는 사자는 단 한 명. 그것은 상대 문명에 대한 지극한 존중이자 배려로써 에큐멘이 '진정한' 협력기구라는 점을 증명한다. 88개의 행성에 3000개의 국가가 가입해 있는 초 거대 단체이지만, 상대 행성을 굴복시켜 억지로 가입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협력' 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겐리 아이는 자신의 진심. 에큐멘의 진심을 게센인들에게 보여주며 동맹 가입을 설득하려 한다. 그가 타고 내려온 우주선은 아낌없이 게센인들에게 내어주어 분해하게 하고, 가지고 있는 첨단 기술들을 대가없이 나눠주려한다. 사실, 양성인이 등장하는 외계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 안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 에큐멘이라는 협력단체였다.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에큐멘은 협력단체이며 협력기구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체제이고, 88개의 행성과 3000여개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평화에 대한 거대한 갈망이다. 이런 단체가 정말 가능할까?? 상식적으로 기능적인 면에서 불가능에 가까울터다. 좀 더 생각해보면, 에큐멘에는 이미 충분한 행성들과 충분한 인간들이 있다. 단체 자체가 충분히 성숙될 만큼 성숙되어 있는 상태이다. 무려 88개의 행성이다. 게센과 같은 외딴 행성의 자원이나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전쟁은 공멸이지만, 교류는 공생이다. 88개의 행성과 3000여개의 국가가 가입되는 동안 분쟁이나 전쟁이 없었을 리 없다. 무수한 전쟁과 숱한 희생 속에서 당연한 진리를 깨우쳤을 것이고, 그로 인해 생겨난 여러가지 체계가 성숙될 만큼 성숙된 협력체계가 바로 '에큐멘' 인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에큐멘' 은 어슐러 르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협력기구이며, 가장 갈망하는 협력체계이자 평화에 대한 갈망이 구현된 것으로 '헤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어슐러 르귄의 희망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에큐멘의 입장에서 지적인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외딴 게센 행성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로써 빨리 이 친구를 우리 무리 안에 편입시켜서, 수많은 다른 친구들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네 종족은 이 세계에서 소름 끼칠 만큼 외로운 동물입니다. 다른 포유동물도 없고 양성을 가진 다른 동물도 없으니까요. 심지어 애완동물로 기를 만한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도 없지요(...)철학적으로, 정서적으로 보면 당신들은 너무도 고독하고 적의에 찬 세계 속에 살고 있어요 " p. 297.
[어둠의 왼손]은 여러번 읽은 책이다. 어슐러 르귄의 소설은 너무나 다양한 안목과 놀라운 통찰력들이 깃들어 있어서 한두번 읽어서는 그 맛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다.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양성인 게센인들이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두번 읽을땐 게센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구조의 논리적 개연성, 게센의 자연환경으로 인한 게센인의 생활 양식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 구조, 정치구조, 그리고 중간중간 들어있는 게센의 전설과 종교들 등 매 번 놀랍고 새로운 발상들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는 지극한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은 혼자이면서도 실은 혼자가 아니군요. 아마도 당신은 우리가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는 것 못지않게 전체성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역시 이원론자입니다. 이원론은 본질적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 와 '타자' 가 있는 한 말입니다." "나와 당신... 그렇군요. 그 편이 성性보다는 더 넓은 범주이겠군요." p.298~299
인간은 스스로를 자각하는 존재이다. 이 말은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품의 제목인 [어둠의 왼손]은 작품 내에 등장하는 게센인의 노래에서 유래한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 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p.298
즉, 이 책의 제목인 '빛' 인 것이다.
어둠과 빛, 삶과 죽음, 목적과 과정.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나와 당신. 어쩌면 인류와 지구, 외로움마저도. 함께 누워 있다. |
| 1960년대 SF계에 불어닥친 "뉴 웨이브" 이후, 기존의 SF소설보다 훨씬 더 문학적으로 수준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뉴웨이브는 그전까지 우리식으로 말하면 거의 "무협지" 수준으로 천대받던 SF소설이 질적인 면에서 획기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르 귄의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이다. 행성 "겨울"의 주민들은 양성인이다. 한달 중 며칠을 제외한 기간에는 전혀 성적인 특징이 없다가, 발정기인 며칠 동안만 남녀의 성적 특징을 띠게 된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남녀의 구분에 기반을 둔 우리의 이원론적 사고방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책의 주제는 "두 존재의 소통과 관계맺음"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두 세계에서 자란 "보통" 인간과 양성인, 사고방식도 성적으로도 전혀 다른 두 존재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게 되는 과정이 작품 도처에 깔려 있는 은유와 상징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SF소설이 아직도 어린이용 오락물 정도로 취급받는 국내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문학적으로도 수준있는 좋은 작품이 절판된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언제쯤에나 국내에도 탄탄한 SF 독자층과 작가층이 형성될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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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꼭 땡땡소설로 분류되어져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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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의 저자 어슐러 K. 르귄은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하나의 사고실험이라 생각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그 사고실험은 독특하고 기발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스위스의 미치광이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괴물인간을 창조해낸다면 어떻게 될까. 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가정 속에서 현실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둠의 왼손>에서 그런 가정의 무대는 남녀 구별이 없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외계행성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혀 있기 때문에 지구인들이 '겨울'이라고 부르는 행성이다.
이곳에는 인간보다 약간 작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살고 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이들은 평소에 중성 또는 남녀 양성이라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다만 '발정기'가 되면 스스로 남자 또는 여자의 성을 선택해서 몸을 변화시킨다. 그 기간동안 성행위를 통해서 임신을 할 수 있다. 이 발정기는 약 26일을 주기로 돌아오지만 며칠 유지되지 않는다. 이들은 1년 중 6분의 5 기간 동안 중성으로 살아간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번 발정기에 남자를 선택했다가 다음 발정기에는 여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성별을 바꿔가면서 성행위를 거듭한 결과로, 한 개인이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동시에 다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한 아기가 태어나면 주변에서는 '아들이야? 딸이야?'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질문 자체가 이 행성에서는 필요가 없다. 정말 재미있지만 혼란스러운 곳이다.
남녀 양성의 행성을 방문한 지구인
이런 행성에 지구인 '남성'이 혼자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도 처음에는 혼란을 겪을 테지만 자신과 이 행성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행성인들의 눈에는 1년 내내 발정기인 지구인이 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외눈박이 원숭이들의 섬에 간 두눈박이 원숭이처럼.
겨울 행성을 방문한 지구인 겐리 아이는 우연히 이곳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인류연합의 사절로 이 행성을 방문한 것이다. 인류연합은 우주 곳곳에 83개의 거주 행성을 가지고 있다. 그 행성들에는 약 3000개의 국가와 종족들이 있다. 그 국가들 또는 행성들 사이의 불필요한 전쟁과 약탈을 방지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인류 연합이다.
겐리 아이는 겨울 행성의 왕국들에게 인류연합과의 동맹을 권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겨울 행성의 사람들은 우주에 자신들 외의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다. 겐리 아이의 외모가 자신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를 거짓말쟁이 또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겐리 아이가 겨울 행성에 올때 타고 왔던 우주선을 보여주고 그 왕국의 과학자들이 우주선을 정밀하게 검사하고 난 뒤에도 크게 태도변화가 없다. 왕국의 지도자는 '왜 괴물 같은 3000개의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냐?'라고 반문한다. 동맹을 통해서 왕국의 문화와 경제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 겐리 아이의 모험이 시작된다. 겐리 아이는 겨울 행성의 왕국들을 오가며 지도자들을 만나지만 일은 풀리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한다. 눈과 얼음 투성이인 설원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기도 한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겐리 아이는 어떻게 이들과의 동맹을 이끌어 낼까?
동맹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려는 주인공
인류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다른 SF와는 달리, <어둠의 왼손>에서 인류는 나름대로 평화롭게 조화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겨울 행성을 한차례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구의 모습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주인공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따르면, 인류는 200년 전의 재앙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 있단다.
그 재앙이란 것은 핵전쟁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런 재난을 통해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과거의 기술과 사상을 재건하려하고, 외계행성을 개척한 다른 인류들과 손을 잡고 문화와 과학을 교류하려고 한다. 서로 동맹을 맺고 평화적인 교류를 하는 것만이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작가는 '과학소설의 무대는 미래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작품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남녀 양성의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긴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의 시간적배경이 언제인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독자들은 소설의 내용이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의 모든 말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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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소설은 SF이긴 하지만 과학적인 설정이나 사이버 세계에 대한 묘사는 별로 없다. 대신에 헤인시리즈는 마치 거대한 인류학적 실험장과도 같은 느낌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소통을 위한 노력''이 헤인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중에서도 ''어둠의 왼손''은 특히 서정성이 뛰어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다. 혹자는 페미니즘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100& 동의하기는 좀 그렇다. 페미니즘은 사회학적 테마이고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봐도 결국 그것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의 이야기가 되는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물론 게센인에 대한 독특한 설정이, 남성이냐 여성이냐를 따지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상대를 대하자는 주장이라고 해석하여 페미니즘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제시한 성적 역할을 그동안 고민없이 수용해 살아왔던 독자라면 신선한 발제가 될 수도 있겠다. 단지 내가 제안하는 건 이런저런 담론없이 그냥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가며 소설을 즐겨보자는 것이다.
그걸 뭐라고 부르면 좋을 것인가.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빼앗긴 자들>에 나오는 동료애라고 부르기엔 오로지 둘 만의 감정이라 좀 핀트가 어긋나는 것 같고 고독한 두 인간의 동병상련? 게센인인 에스트라벤의 마음은 소설 후반부를 보면 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남자와 여자가 나뉘어진 사회에서 살아온 겐리의 마음은 뭐라 규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름 붙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작가 역시 그것을 굳이 애써 규정하려 들거나 이름붙이려 하지 않는다. ''어둠의 왼손''이라는 제목은 이름붙임에 대한 작가의 회의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더우기 이 작품의 전작인 ''환영의 도시''가 도덕경을 테마로 한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름이 없는 상태로도 소중한 어떤 마음''이 이 책의 주제가 될 듯 싶다. 동성애에 대한 특별하 선입관이 없는 나로서는(물론 동성애라 하기에도 좀 이상하지만) 좀 더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를 부각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잔잔한 여운으로 남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에스트라벤이 가진 애국심에 대한 것이다. 학살을 막기 위해 땅을 그냥 포기하는 것, 이런 건 혹독한 징수나 거대한 전쟁이 불가능한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얘기인데 만약 좋은 환경이었다면 어땠을 지는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에스트라벤의 기본적인 생각에는 무척 공감한다. 내가 사는 곳의 땅과 자연이 사랑스럽듯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의 땅과 자연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내 나라만을 사랑하는 좁은 의미의 애국심보다 더 중요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이 대목을 보면 역시 ''이름붙임''에 천착하지 않는 노자의 사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
절판이 되서 보다 많은 독자들이 접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작품이다. 르귄의 소설들은 네임밸류 때문인지 가격은 무척 비싼데 왜 재판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SF의 과학적 설정을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던 독자나, 흥미위주의 스토리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졌던 독자라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그런데 제가 오르고린을 싫어한다고요?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티베는 물론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제게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나는 그 나라의 사람들을 알고 도시들을 알고, 농장과 언덕이며, 강과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구릉에 태양이 어떤 모양으로 지는가를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것에 경계선을 긋고 이름을 붙인 다음,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곳은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된다니 대체 그 이유가 뭐지요? 그리고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자기 나라 아닌 곳은 미워하고 증오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도 중요한 것입니다만 미덕이 될 수는 없지요...... 인생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에스트르 영지의 언덕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에 증오의 경계선은 없어요. 저는 그런 감정을 넘어서서 ''무지''하기를 바란답니다." p271 |
| 2년전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낸 걸작이다. 그런데,올해 paper라는 잡지를 보는데 이런말이 적혀있었다. "어둠의 왼손이란 책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애슐러 르 귄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여러분을 탓할 생각은 없다. 국내에는 3000권밖에 없는 휘귀한 책이다.. " 나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는데 우선 기쁨을 느꼈고, 이런책이 휘귀본이라는게 슬펐다. 그때 잡지에는 여성인권에 관한 책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2년전 이책을 읽을때는 여성인권에 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 그 내용을 되세겨 보니 어떤 의도에서 적은건지. 이제 알거 같다. 겨울행성에 도착한 남성과, 양성을 가진 그 행성의 주민..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나고, 겐리 아이(지구인)와 하스(양성인간)가 탈출하는 장면에서 그 미묘한 감정들... 매력이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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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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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주인공 '아이'는 '게센'을 '에큐멘 연맹'에 가입시키기 위해 외교 사절로 왔다. '게센'을 '에큐멘 연맹'에 가입시킴으로써 먼 옛날 '헤인'인들이 우주 여기저기에 뿌려 놓은 인류들을 다시 하나로 묶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헤인'이 무엇인지는 '르 귄'의 '헤인 시리즈'를 통해 따로 섭렵할 기회가 있으리라. 정확하게는 아직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