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하자, 라고 말하고 나니 작업실을 갖게 되었고, 작업실이 있고 보니 삶이 모양을 바꿨다. 그러므로 작업실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한없이 깊게 한다. 삶을 만들고 채우고 궁리하는 이 작은 공간. 이 책은 ‘작업실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이야기다. -<달콤한 작업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공간과 장소, 홍차와 여행, 사람과 사람사이, 그런 일상의 모습들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최예선 작가의 작업실 노트를 공개합니다. 연남동 한 귀퉁이 작업실에서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채우고 궁리한 일상의 기록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달콤한 작업실로 어서 오세요. 아, 생각을 키우고 생각을 행동으로, 만남으로 이어가는 나만의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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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 마련이지만 은연중에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어울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고 듣는 것에서, 머무는 공간에서. 개중에는 어느 상황이건 상관없이 제 뜻대로 밀고 나가는 당차고 의지 굳은 사람도 있는 법이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야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해야 할 일 하지 않고 주변 정리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잠깐 이리저리 눈길을 주다가 머뭇거리고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사람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도 그저 연장 탓만 하는 목수일 뿐이라 한심스럽다. 글 한 번 써봐야지 하면 책상이 깨끗해야 집중이 될 것 같아서 주변을 청소하고, 키보드의 먼지도 닦아보고, 키보드를 경쾌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바꾸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청축키보드로 바꿔보고, 생각해보니 키보드가 아니라 공책에 펜으로 끼적이면 또 잘 될 것 같아 좋은 펜과 공책도 사본다. 그러다 안 되니 이젠 괜히 내가 있는 공간 탓을 해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작업을 위해 노트북과 서류뭉치를 들고 커피숍을 전전한다. 아무래도 집에서는 일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데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되었다. 왠지 집에서는 더 게을러지고 더 느릿해진다. 집은 그런 장소인 모양이다. 커피숍을 찾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커피숍은 소란스러운 듯하면서도 너무 시끄럽지 않은 소음이 좋고, 군중 속의 한 개인이기에 오히려 더욱 자기 자신에게로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날마다 돈 들여 뭔가를 사먹어야 하니 돈도 돈대로 든다.
그래서 저자는 홍대 부근의 골목에 작업실을 연다. 프리랜서지만 자기만의 일터를 가지게 되어 그의 능률은 바짝 오른다. 더욱이 그는 작업실을 일터로서만이 아니라 모임과 배움의 장소로서도 활용한다. 날을 정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그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신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강사를 초빙해 그들과 다른나라의 언어를 배우거나 공예 등을 배우는 아카데미의 기능도 한다. 저자도 책 중에 적었지만 귀부인들이 운영하던 살롱 또는 블룸즈버리 그룹 같은 모임과 비슷한 느낌의 흥미로운 모임이 됐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따스한 노란 불빛이 가득한 작업실 내부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듯한 흐뭇한 풍경이다. 나라면 난 이처럼 사교적인 모임을 절대로 운영하고 해나갈 수 없을 터다. 그래서 더욱 좋아보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무언가 토대를 쌓아놓은 것도 없이 무작정 작업실을 열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 집 외의 다른 공간을 갖는 것은 꿈이다. 카페라도 전전하며 뭔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데에 대한 동경만은 아니었다. 저자처럼 문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으며 봄날의 따스한 햇살 속에 먼지들이 떠올라 춤추고 전면 유리창 앞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소품들은 제 크기만큼 작은 그림자를 동그랗게 드리운 풍경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의 작업실은 내겐 달콤하다기 보다는 담백한 비스킷 같은 맛이다. 외따로이 떨어진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내 동경과, 자꾸 머뭇거리기만 하는 내 망설임에 대해 우선은 앞으로 나아가라는 고요한 응원을 받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좋은 에세이스트를 안 것 같아 좋다. |
성경에 나오는 음식도 아닌데 죽죽 늘어나는 작업실이 있었다. '바라보다 어루만지다 길을 걷다'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저자의 9.5평 작업실엔 서른 명 정도의 사람이 들어찰 수도 있다고 했다. 참 좁게 느껴지는 평수인데 겹겹이 쌓여 앉는다는 이야기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장의 뉘앙스로 봐서는 불편함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던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주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지인들이 있어 '작업실'에 자주 놀러 가곤 했고 사진을 찍거나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공간인 '스튜디오'에도 종종 들르곤 했으므로 [작업실]이라는 단어는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래서 처음에는 여러 작가의 작업실 사진을 잔뜩 구경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기대했었다. 몇 년 전에 '작업실' 시리즈의 책들을 꽤 많이 구경하곤 했었으므로.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책엔 사진보다 글자가 더 많이 등장한다.
2010년 3월, 연남동에 작업실을 연 저자는 카페에서 작업하던 프리랜서 작가였다고 한다. <밤의 화가들>,<언니들의 여행법>을 비롯한 여러 책을 집필하면서 점점 더 작업공간이 절실해졌고 둘러본지 이틀만에 직감적으로 '여기다' 싶은 공간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뭔가 술술 풀리는 사람 같아 부럽기 그지 없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공사 과정을 보면서 나는 부러움을 살짝 접었다. 셀프 리모델링은 무척이나 힘든 과정이므로.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게 되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다. 몰래 보는 것이 아닌 그가 알려주는 모습들만 글이나 사진으로 보게 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전달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저 원하는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그 모습 그대로가 타인에겐 감동을 전할 수도 있다. 롤모델이 될 수도 있고 가보지 못했던 길에 대한 대리만족격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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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작업실을 구경해도 좋았겠지만 왜 작업실이 필요했는지, 원하는 작업실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그 작업실에 채워지는 것들을 책으로 접하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근사한 일이었다. 특히 작업실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내뱉은 말의 의미도 어렴풋이 짐작가기도 했고.
살아가는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언제나 부러울 수 밖에 없다. 반짝바짝하게 빛나기 마련이니. 그들의 일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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