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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에 가려져있던 양반가의 적나라한 속사정, 그리고 역사-양반의 사생활
"명분에 가려져있던 양반가의 적나라한 속사정, 그리고 역사-양반의 사생활" 내용보기
처음 읽을 때에는 몰랐는데, 두번째 읽으면서 잠깐 생각하니,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좀 있겠다 싶기도했다. '사생활'이란 말에서 풍기는 어감에서. 그런데 사대부들은 학문이나 공론같은 공적 영역의 활동은 공개적으로 글이나 기록으로도 많이 남겼지만 반면 가정사같은 사적 영역은 드러내지 않아, 알 길이 많지 않았다.   '양반의 사생활'에서는 조병덕이 아들 조장희에게 보낸
"명분에 가려져있던 양반가의 적나라한 속사정, 그리고 역사-양반의 사생활" 내용보기

 

처음 읽을 때에는 몰랐는데, 두번째 읽으면서 잠깐 생각하니,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좀 있겠다 싶기도했다. '사생활'이란 말에서 풍기는 어감에서. 그런데 사대부들은 학문이나 공론같은 공적 영역의 활동은 공개적으로 글이나 기록으로도 많이 남겼지만 반면 가정사같은 사적 영역은 드러내지 않아, 알 길이 많지 않았다.

 

'양반의 사생활'에서는 조병덕이 아들 조장희에게 보낸 사적인 내용 가득한 편지를 담고 있는데, 이 편지를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19세기 조선의 시대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병덕은 세도정치와 대원군이 집권하는 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아들에게 보낸 1700통의 편지에는 몰락한 양반 조병덕의 체면 뒤에 가려져있던 개인사의 속사정들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데,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는 실로 구차할 정도였다.

가정사 속사정도 알고보면 순탄치 못했다. 고부갈등이 드러나고 아들의 부정(不正)한 행동을 질책하는 내용도 담겨져 있었다. 남이 알까 쉬쉬하는 내용도 적지 않아서 편지를 없애라는 내용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조병덕 집안은 3대에 걸쳐 과거 급제자가 나오지 않아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노론계 사대부가였다. 그래서 조병덕 부친대에  한양에서 삼계리로 이주하게 된 것은 한양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조병덕은 삼계리로 이주하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학문을 닦으려고 계획했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경제 의식이나 생활 방식을 보면 여전히 사대부라는 신분이나 체면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소유하고 있던 농지가 줄어들고 집안 행사나 병치레 등으로 가세가 기울었지만 그는 여전히 쓰임새를 줄이지 못했다. 지출이 수입보다 적으니 발생하는 문제는 뻔했다.

그나마 관직에 나가있던 일가에게 부채나 붓, 종이 등을 조달하거나, 집안에 대사가 있을 때에는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메꿔왔다. 그럼에도 그는 씀씀이를 줄이지 못했다.

 

그는 지역의 향반과는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호의를 갖지 않았다. 여전히 중앙지향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는 삼계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들 장희가 등과를 하게 됐지만, 장희는 아버지와는 달랐다. 야망도 넘쳤고, 성격도 포악해서 사고도 많이 쳤고, 백성들을 쥐어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여파로 그는 민란을 일으킨 백성에게 표적이 될 정도였다.

편지에는  아들이 걱정돼 장희를 타이르고, 교육하는 내용 적지 않았지만 아들에게 큰 영향을 발휘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1700통에 이르는 편지 속에는 조병덕 가정사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지만,  역사에서 의미를 두는 것은 분명 조병덕의 가정사가 아닐 것이다.우리가 흔히 미시사라고 말하는 역사학의 연구방법을 차용하게 되면 값진 편지라고 할 수 있다.

 

이 편지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사를 엿볼 수 있었다. 우선 이 일가의 가정사를 통해 19세기에 이미 그 서슬 파랬던 가부장제나 사대부의 위세가 조금씩 기세가 떨어지고 있다는 조짐이 읽히고 있었다.

맏며느리가 대놓고 시어머니와 불화를 일으켜 분가하고, 조병덕의 기세는 삼계리에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라는 것은 양반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지 못하는 변화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편지를 전하는 통신에 대해서나, 부채나 먹, 종이들을 현물로 선물 받는 것으로 보아, 양반들이 주로 쓰는 물품들이 상품화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편지가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렇게 중시하던 사대부의 체통을 내던지기라도 한 듯 금전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쉬운 소리를 너무 자주하니 읽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물 위에선 고고하고 우아하게 떠있지만 보이지 않는 물 밑에선 물위에 떠있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고  있는 백조가 연상되기도 했다.

 

19세기 조선은 결국 사대부의 공적 영역을 작동시켰던 명분과 명분만으로는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사생활의 영역과의 괴리, 이 괴리를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 시대가 닥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사생활 영역에 속했던 욕망을 그 어떤 명분으로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이고, 경제활동과 분리된 채, 신분만으로 사회적 지위를 더 이상 지태할 수 없게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적, 사적 영역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가치와 시스템을 갖춘 체제로 전환이 필요한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조선 사대부들와 지배층들은 변화의 흐름에 둔감했다.

편지를 통해 들여다 본 조병덕 역시나 변화의 조짐에 발맞추지 못했고, 여전히 신분질서와 유교적 가치에 연연한 인물이었다.

 

 

e****0 2015.11.22. 신고 공감 7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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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 양반의 사생활
"변화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 양반의 사생활" 내용보기
1700여통의 편지를 통해 드러난 조선 말 급변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의  그 적나라한 삶이란. 양주 조씨 조병덕은 노론 화족이었지만 조부, 부친, 본인 3대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일가를 이끌고 한양을 떠나 조상의 묘가 있는 충청도 삼계리에 정착하게 됐다. 정치적 위상의 하락에 경제적 몰락까지 겹쳐지면서 조병덕은 궁핍한 생활에 쫓기게 되는데, 그가 아들 장희에게 보낸 편지
"변화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의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다- 양반의 사생활" 내용보기

1700여통의 편지를 통해 드러난 조선 말 급변하는 시대에 몰락한 양반의  그 적나라한 삶이란. 양주 조씨 조병덕은 노론 화족이었지만 조부, 부친, 본인 3대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자 일가를 이끌고 한양을 떠나 조상의 묘가 있는 충청도 삼계리에 정착하게 됐다. 정치적 위상의 하락에 경제적 몰락까지 겹쳐지면서 조병덕은 궁핍한 생활에 쫓기게 되는데, 그가 아들 장희에게 보낸 편지에는 가족간의 갈등이나 가난, 아들에 대한 걱정 등 내밀한 사생활을 가감없이 적혀있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양반들의 상투적이 내용에서 완전히 벗어나, 그야말로 몰락한 양반의 속살과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병덕의 편지는 차별성과 돋보이는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후처와 며느리 간의 극심한 고부갈등이나 빚을 융통해야 하는 처지, 암행어사에게 적발돼 수감되고 유배형에 처해졌던 아들 등..조병덕의 개인적인 삶은 그야말로 바람잘 날 없는 날들이었다. 스무살에 어머니를 잃고 과거 응시를 포기하는가 하면, 첫 아내가 죽고 그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과 다시 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모두 4남을 두었다. 그 중 한 아들은 후사가 없는 집안에 양자로 보낸 처지였다.

자신을 포함해 선대3대에서 과거 급제자가 나오지 않아, 노론화족으로서 화려했던 시절은 과거지사가 됐고, 그는 삼계리로 내려와 문중의 대소사를 담당하며 지내게 됐다.

 

 

 

 

수입은 소출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였지만 체면을 의식한 쓰임새는 줄이지 못해서 그는 경제적으로는 궁핍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벼슬자리에 나간 집안 자제들이 보내주는 선물을 기다리거나 돈을 빌려달라는 하소연의 편지를 자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는 아들에게 1700여통의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 편지들은 대부분 여백이 안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채워져 보내졌는데, 그 편지 모두 아들에게 보낸 것은 아니었다. 아들의 손을 거쳐 다른 곳으로 보내는 편지도 상당수였는데,

그는 자신의 생활과 관련한 적나라한 내용을 쓰고는 이내 아들에게 편지를 태우거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었으니, 남들이 다 보는 조병덕의 문집에 실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였던  것이다.

 

조병덕의 편지는 비단 사생활 뿐 아니라 변화의 시기, 양인들이 출몰하는 시대를 걱정하는 그의 생각 또한 잘 드러나있다. 그는 전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신분제가 흔들리고, 삼강오륜에 기반한 강상의 윤리가 흔들리는 조짐들을 하늘과 땅이 바뀌고, 춘추대의가 무너지게 해선 안되다고 강개하는 전형적인 노론의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1700통의 편지를 썼다고 해서 아버지의 편지를 며칠이 멀다하고 끊이지 않고 받는 아들은 어떤 기분일까 싶었는데..점점 조병덕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끊이지 않는 집안 대소사와 경제적 궁핍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에, 또 지병에 가족갈등까지 깊어지니, 골치는 아팠을거고 그는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던 것이라.

장성한 아들이 넷이나 됐지만, 그 어느 며느리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상황에, 당시 민란이 발생하자, 안전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위상이 추락한 양반과 신분제와 삼강 오륜이 흔들리는 변화의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불행에 민감해졌을 수도 있고, 낙오자가 된 느낌도 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본다면 편지는 그에게 그의 말을 들어주고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의 소통이자 치유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왕래망(往來網)은  전국에 걸쳐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관편(官便),인편(人便), 전인(傳人)이라는 방법을 통해 편지를 전했다는 그 방식에 관심이 갔다. 관편은 관리들이, 인편은 그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게 편지 전달을 부탁하는 방법이고, 전인은 삯을 주고 편지 전달을 하게 했다는 건데.. 조선시대에 편지를 어떻게 전했는지 궁금해했는데, 그 궁금증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해결할 수 있었다.

 

'양반의 사생활'이란 제목처럼, 이 편지를 바탕으로 좀처럼 양반들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던 속살을 본 느낌마저 들었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몰락한 기득권층은 비루하고 ㄱ 중심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절치부심해서 다시 주류로 복귀하거나,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신하지 않으면.

그런데 조병덕은 그 두 가지 모두 아닌 입장이었고 여전히 노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그에게 양이선이 출몰하고 민란이 발생하고, 신분제가 흔들리는 세상은 강상의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변괴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e****0 2012.12.30.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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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양반의 사생활 - 하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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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보낸 1700 통의 편지를 통해서 조선시대 양반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외적으로 보면 관직에 나가있는 떳떳한 아들들과 소박한 생활속에 속세를 떠나 학문을 추구하는 청렴한 자신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고부간의 갈등과 시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며느리폭행과 재물탈취 등 토호질에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아들,국왕이 수차례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세속에 물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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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보낸 1700 통의 편지를 통해서 조선시대 양반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외적으로 보면 

관직에 나가있는 떳떳한 아들들과 소박한 생활속에 속세를 떠나 학문을 추구하는 청렴한 자신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고부간의 갈등과 시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며느리

폭행과 재물탈취 등 토호질에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아들,

국왕이 수차례 벼슬을 주며 불렀으나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 나가지 않고,

스스로 벌어서 공부한다는 조경모독과 비기력불식을 생존철학으로 삼았으나 정작 실행은 안되고,

당장 내일먹을 쌀한톨 없음에도 유교적 도덕과 명분때문에 관혼상제 및 선물 등의 예를 챙기느라 빚을 지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관직에 나가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할수 밖에 없는 생활이다.

 

그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였는데

 양식으로 말하면 보리는 벌써 떨어지고, 오직 동곡 이자우에게 꾼 벼 예닐곱 석으로 근근이 연명하는데

 이것도 오늘내일 끊어지려 한다.

 

양반이 자식의 과거응시까지 말릴 정도로 궁핍한 생활이었다.

명희가 과거보러 간다고 하면 또 3,40냥이 들 것이니 이것을 장차 어떻게 하면 좋으냐?

문장도 없고, 글씨도 없고, 또 돈도 없고, 게다가 기댈 권세도 없는데, 하필이면 과거에 응시하려 하느냐?

 

이렇게 편지마다 돈타령을 하면서도 오랑캐의 돈은 안쓰겠다는 대책없는 꼿꼿함

 나는 반드시 호전을 쓰고싶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가려낸다. 

몹시 낭패스럽지만 또한 어떻게 하겠느냐?

 

그리고 전국 각지의 6,70명에 다다르는 왕래망으로 화려한 인맥을 가졌으나

정작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정의례는 마치 현대를 보는 듯한 조촐한 모습이다.

 진사 보아라.

수일간 무사하냐? 나는 어제 산소 14위와 묘사 세곳의 가을 제사를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단지 네 형과 둘이서 지냈다

 

돈벌이가 없던 그는 받은 선물들로 생계를 이어간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남들의 수탈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 들어오는 증여와 선물을 당연시 생각하였다.

 

자제들에게 부채선물을 요구하는 편지인데

요즘 말하는 누구집 엄마는 명품백을 선물받았다던데.... 등의 장면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부채는 왜 보내지 않았느냐?...중략...

대저 남원이 도임한 것이 벌써 1년이 되었는데, 남원부채는 나와 네 형은 아직 모양도 보지 못했으나,

소위 도립보, 김성열 무리는 손에 들지 않은 놈이 없으니, 이 또한 어찌 상도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사람사는 것이 다 똑같다 싶다.

 이제 네 형은 참봉이 되었고 너는 진사가 되었고 네 아우는 분가를 했으니,

겉으로 보는 사람들은 내가 아들이 많고 팔자가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착할 곳 없는 내 신세는 죽어서 정처없이 떠도는 백골보다 심하다.

 

이런 저런 일로 세상사는 즐거움은 하나도 없다.오직 속히 죽고싶다.

귀에 들어오고 눈에 보이고 몸에 부딪히는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걱정스럽고, 고민스럽고, 놀랍고, 해괴하지 않은 일이 있느냐?

 

속내야 어떻든 

이렇게 학문적, 안분, 곤궁, 인의 를 추구한 아버지와 달리

그의 아들 조장희는  세속적, 출세, 욕망, 돈벌이를 추구하였는데

 

그가 경제적 기반을 위해 토호질을 한것일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표리부동한 모습에 환멸을 느껴 그냥 대놓고 세속적으로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가 그 폐단 속에서도 500년이나 끌고 갔던 것이

속으로 곪을대로 곪아 터지기 직전인데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이런 사회의식 때문이었지 않나 싶다.

그 덕에 민중들만 썩어 문드러져 나갔고..

 



m******5 2014.03.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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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실생활은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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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통에 달하는 행서와 초서의 편지들. 그 편지 속에서 19세기 한 양반의 생활상과 그가 살았던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자 주문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정말 녹녹한 책이 아니다. 어려운 말로 태반을 채운다거나 하는 일도 없는데도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이 '노작'이란 점 때문이리라. 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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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통에 달하는 행서와 초서의 편지들. 그 편지 속에서 19세기 한 양반의 생활상과 그가 살았던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 책이다.

 

책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자 주문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정말 녹녹한 책이 아니다.

어려운 말로 태반을 채운다거나 하는 일도 없는데도 이 책을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이 '노작'이란 점 때문이리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건성으로 넘기기엔, 한 학자가 원사료를 보고 해석하고 그 해석을 다시 재구성하여 하나의 글로 만들어내는

그 힘든 과정이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사이 나오는 가벼우면서도 자극적인 책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책으로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가는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다.

(뒤에 달려있는 미주들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읽었기에 읽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노력 끝에 짧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균형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놓고서 그 작업에 타당한 '한계선'을 스스로 긋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더라도, 자기가 고생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점이 가장 큰 착각이며 가장 위험한 지점이기도 하다.

필자는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끔, 자신의 노고에 대한 '애정'을 툭툭 잘 털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19세기 양반 유학자의 일용품은 대부분 선물에 의하여 조달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중략)...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실생활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미미했음을 의미한다. 선물, 이른바 '도덕경제'가 시장경제의 발달을 강력히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의 삶은 공과 사로 구분되어 있었다. 학문, 벼슬살이, 사회생활은 공에 속했고, 가정생활은 사에 속했다. 그들의 공은 훤히 드러나 있는 반면, 사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들은 말과 행동에 늘 공을 앞세웠기에, 평소의 말과 행동은 모두 공에 속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감정까지도 공과 사로 구분하고 있었다. 혹 사적인 감정이 드러날 경우, 반드시 '사적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였다.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사적으로' 슬펐고,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면 '사적으로' 기뻤다.

 

  조병덕의 편지를 통하여 살펴 본 19세기 조선사회의 모습이 결코 19세기 전체 조선사회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은 19세기 기호지방 양반에 관한 하나의 사례연구에 불과할 뿐이다....(중략)...

  조병덕의 눈을 통하여 본 19세기 조선 사회가 암울하고 변괴로 가득한 사회였다고 해서, 그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략)... 만약 조병덕의 반대편에 서서 19세기 조선 사회를 바라본다면, 조병덕이 '세상의 변괴'라고 한 갖가지 모습은 바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새로운 몸짓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몸짓은 그 전 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음을 조병덕의 편지는 말해주고 있다. 바로 거기에 조병덕 편지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양반'들'의 사생활'이 아니라 '양반의 사생활'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양반의 여유나 멋 같은 것 보다는, 몰락해가는 양반의 서러움과 어려움,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하는 양면성.

아들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기는 한데, 역시 어느 시대나 '아비의 마음'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부모 걱정 시키는 자식놈도 마찬가지고.

1******n 2008.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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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충청지방 몰락 양반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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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양반은 '의'를 얘기하지 '이익'을 얘기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궁금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말, 양반들은 간서치이고, 가난 앞에서도 당당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몇몇 조선 후기 한문 소설에도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이나 비유적 설명일 뿐이다.   여기 그 답을 알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19세기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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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양반은 '의'를 얘기하지 '이익'을 얘기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까? 궁금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말, 양반들은 간서치이고, 가난 앞에서도 당당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몇몇 조선 후기 한문 소설에도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이나 비유적 설명일 뿐이다.

 

여기 그 답을 알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19세기 충청지역 양반인 조병덕이라는 인물의 편지 모음이다. 조병덕은 서울에 살았으나, 3대째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가세가 기울어 지방에 낙향했다. 그는 낙향의 변에서 스스로 힘으로 농사지어 공부에 힘쓰는 일이 도라고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기 보다, 과거에 떨어지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이 편지는 아주 개인적인 편지라서 가치가 있다. 개인 문집이었다면 포장된 양반의 모습만 볼 수 있으니, 이 편지는 개인의 내밀한 욕망까지 살필 수 있다. 주의할 사실은 이 편지에 나타나는 모습이 19세기 양반의 일반적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각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습이 많다.

 

조병덕은 벼슬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고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를 경계한다. 정작 당사자는 주의 친척과 자제들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한다. 가난하지만 먹고살기에는 충분했음에도, 체면치례를 위해 가산을 탕진한다. 그의 많은 편지는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려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설사병과 체기에 괴로워 한다. 고부갈등도 심했다. 조병덕의 가문은 노론 출신이지만, 권력을 상실한 집 근처에는 누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집안 제사에조차 친척들과 자식들을 발을 끊는다. 모두 가봤자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 지역에서 토호로 행세한다. 말이 좋아 토호지, 오늘로 말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폭력배다.

 

쉽게 알 수 없는 양반의 욕망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아쉽고 개인적으로 뜨끔한 부분이 있었다. 조병덕은 삶과 지식이 일치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의 불행은 삶과 지식의 불일치를 위선으로 덮고자 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상하지 않았지만 고상한 척 했다. 아니, 진정한 고상함이 무엇인 지 몰랐다.

 

우리가 양반들의 문집을 아무리 뒤적여 볼 들, 그들의 위선 이외에 무엇을 더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전부 다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더 정확하게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우리가 양반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g********m 2009.0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양반의 사생활을 알게되다.
"양반의 사생활을 알게되다." 내용보기
양반의 사생활은 순조 부터 고종시대까지 살았던 조병덕의 편지로 본 조선 후기의 생활상 및 환경을 가르쳐주는 책이다.충청도 삼계리에 살았던 아주 평범한 양반이 21세기인 요즘에 책으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을 적어서 아들에게 편지로 보냈고, 그 편지가 잘 보관되어 고서 와 고문서를 연구하는 저자의 손에 들어 갔기 때문이다.여기에 기록된 편지
"양반의 사생활을 알게되다." 내용보기

양반의 사생활은 순조 부터 고종시대까지 살았던 조병덕의 편지로 본 조선 후기의 생활상 및 환경을 가르쳐주는 책이다.충청도 삼계리에 살았던 아주 평범한 양반이 21세기인 요즘에 책으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을 적어서 아들에게 편지로 보냈고, 그 편지가 잘 보관되어 고서 와 고문서를 연구하는 저자의 손에 들어 갔기 때문이다.여기에 기록된 편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 후기의 양반들의 편지하고는 다르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약용,박지원,박세당,김정희의 편지등이 문집에 함께 실렸던 편지라면,지금 읽고 있는 편지는 말그대로 양반의 사생활 이다.시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며느리등을 보면서, 집에 화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며,시어머니 와 며느리 간의 갈등에 괴로워 하며,토호질을 일삼는 아들을 보며, 사람이 많이 왕래 하는곳에 살면 항상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니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라고 한다.전자의 편지들은 널리 읽히는 문집에 실린 글이니 절제가 있으며,해당 양반에게 불리한 글들은 실리지 않았다.하지만 조병덕의 편지는 시시콜콜 한것 까지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편지를 불살라 없앨것을 당부한다.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없애지 않는다.그래서 지금의 책으로 탄생 했는지도 모른다.

조병덕의 편지로 인하여 사소한 것 까지 알수 있다.조선시대의 관혼상제,과거,종계,가계생활,음식,농사,생활도구,교통,통신,질병,의약등등...자식들의 혼례 때문에 집안의 조카에게 돈을 이야기 하는 모습,그리고 아들들의 과거시험 비용 때문에 땅을 팔아야 하나 못팔아서 소를 대신팔아 그것으로 과거 비용을 만들었다는 것,양반이라는 허위의식 때문에 전답의 숫자와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나 양반으로써의 의식은 놓지를 않으려고 한다.편지가 왕래 하면서 알수 있는것은 전달해 주는 사람이 전문적으로 있었다는 것이다.중요하지 않은 것은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는곳에 갈 사람에게 식사한끼로 부탁을 하고 중요한 것은 전인을 이용했다는 것이다.전인은 돈을 받고 목적지 까지 편지를 전달해 준다,돈 때문에 항상 이용할수는 없고 중요한 편지가 있을때만 이용했다.그리고 혼란한 사회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조병덕은 세변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세변은 세상의 변고라는 말의 준 말로써 양반의 말이 먹히지 않고,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자 세변 이라고 하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탄을 한다.

조경모독과 비기력불식은 조병덕의 인생 철학의 요점이다.낮에 밭갈고 밤에 독서를 한다.자신이 지은게 아니면 먹지 않는다가 요점이다.하지만 양반으로써 해야할 예와 관혼상제 등으로 인해서 생활은 점 힘들어 진다.그래서 관직에 나가있는 종가 사람들 에게 많이 의지하고 그것으로써 해결 하려고 한다.이것이 조선시대 후반기에 양반이 가지고 있는 의식과 생활에서의 괴리이다.생각은 이상적 이나 행동은 그렇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삷이다.편지가 남으로써 조선 후반기의 생활상들을 소상히 알수 잇었다.그래서 기록은 영원한 것이다.

s***l 2009.01.13. 신고 공감 0 댓글 0